[다음스포츠 2011-08-07]
이광종 감독이 이끄는 20세 이하 한국 축구 청소년대표팀이 2011년 콜롬비아 U-20 월드컵 16강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씁쓸함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1승2패로 조 3위에 그친 뒤 와일드카드 제도 덕을 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월드컵 같이 조 2위까지 16강에 오르는 방식이었다면 우리는 탈락입니다. 다행히 24개국 중 16개팀이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는, 여유로운 방식 덕분이죠. 출전국 중 3분의 2가 16강에 오르니 사실 16강에 올랐다고 잘 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16강에 올랐지만 팬들의 질타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1승2패라는 씁쓸한 성적표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프랑스전, 콜롬비아전에서 드러난 세계수준에 비해 많이 뒤지는 기본기, 대충 뛰려는 태도, 우유부단한 감독의 용병술 때문이었습니다. "기본기를 다시 배워야한다"는 점잖은 평가도 있지만 "사상 최악의 대표팀이다", "대표선수 선발 자체에 대한 신뢰성을 가질 수 없다"는 심각한 의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왜 한국 축구가 세계적 수준에 비해 뒤지는 걸까요? 비단 이게 이번 청소년대표팀에 국한된 이야기일까요? 한국축구의 한계일까요? 한국축구는 왜 스페인 선수들 같은, 브라질 선수들 같은 플레이를 하지 못할까요? 정말 외국인 감독을 데려다놓으면 짧은 시간에 한국축구가 확 달라질까요?
한 나라의 축구는 절대 하루 아침에 달라지지 않습니다. 축구는 발로 하는 경기입니다. 다른 종목은 공을 가진 쪽이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질 수 있지만 축구는 다릅니다. 공을 가져도 발로 컨트롤하기 때문에 상대가 접근하는 순간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매순간 좋은 기술과 편안한 여유가 필요한 거죠. 기술은 어릴 때 배워야 합니다. 그것도 좋은 잔디에서 말이죠. 축구 전문가들은 웬만한 축구 기술은 14세 전에 익혀야한다고 합니다. 몸이 유연할 때 기술을 배워야지 고등학교에 가서 몸이 굳어지면 기술을 배우기 힘들다는 거죠. 성인이 된 뒤 기량이 좋아지는 경우는 기량 자체가 느는 것보다는 경험과 여유가 늘어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축구는 순간의 판단력과 기술이 큰 승부를 가르는 특성이 있습니다. 찰나의 순간 판단을 잘못하면 패배하고 잘 하면 이길 수 있는 경기죠. 희소성이 무척 낮은 소수의 골로 승부가 갈리기 때문에 순간이 모든 걸 좌우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축구는 국제대회에서 조금씩 성적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월드컵 성적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청소년 월드컵 성적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죠. 나름대로 경기력도 괜찮아졌습니다. 성인대표팀은 해외파가 늘어난 결과죠. 청소년대표팀은 코칭스태프의 지도력과 훈련법이 향상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죠. 하지만 성인대표든, 청소년대표든 내용에서 세계대회 출전국을 앞서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경우의 수로 가까스로 조별리그를 통과하는 경우가 다반사죠.
왜 우리나라 선수들의 경기력은 크게 향상되지 않을까요?
한 나라의 축구가 전반적으로 향상되려면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소수 좋은 지도자가 나오면 몇몇 좋은 선수는 나올 수는 있지만 나라 전체 선수들의 기량이 좋아지지 않습니다. 그건 축구가 단기간 소수에 의해 좋아질 수 없는 종목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한 나라의 축구가 좋아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건 바로 한가지 공통된 목표를 향해 통일된 시스템입니다. 유소년시절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그 나라 축구를 엮고 있는 시스템이 좋아야만 그 나라 축구가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멉니다.
일단 축구를 처음으로 접하는 연령대는 많이 낮아졌습니다. 고무적인 현상이죠. 그런데 아직도 풀리지 않은 것은 연령대에 맞는 교육을 받고 있느냐입니다. 어린 선수들은 무엇보다 기술을 가르쳐야합니다. 기술이 없이는 체력이 아무리 강해도 강호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술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는 형편입니다. 아직도 유소년 지도자들의 지도 수준은 세계적 수준에 비하면 떨어집니다. 그리고 감독은 학부모로부터 나오는 돈으로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적이 중요할 수밖에 없죠. 결국 기술을 배워야할 어린 선수들에게 단기간 성적을 내기 위해서 조직력을 먼저 지도할 수밖에 없죠. 기술이 없이 조직력을 다지면 기술이 덜 완성된 어린 연령대 경기에서는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기술을 익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조직력까지 겸비한 팀을 상대로는 이길 수는 없습니다. 그건 어린 시절 기술이 부족한 채 이기기 위해 조직력만 강조한 조기 성인화의 부작용이죠. 진정한 유소년 지도자라면 좋은 성적을 내는 게 목표가 아니라 좋은 선수를 키워내는 게 목표이어야 합니다.
어린 시절 기술을 배우기에는 인프라도 부족합니다. 축구는 잔디에서 배워야합니다. 그래야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몸이 유연한 어린 시절, 다양한 기술을 배울 수 있습니다. 맨땅에서 공을 차면 부상 때문에 몸을 던지는 동작은 못합니다. 또 태클도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성인선수가 돼서도 제대로 된 태클을 하지 못하죠. 황선홍 포항 감독은 과거 잉글랜드 축구유학을 갔다온 뒤 '한국축구가 세계수준에 비해 가장 부족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슈팅, 패스 등 기본기"라고 말이죠. 즉 어린 시절 제대로 배우지 못한 여파가 성인이 돼서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거죠.
이런 선수들이 고등학교에 가면 어떨가요. 상황이 나빠지면 나빠졌지 더 좋아지는 힘듭니다. 무엇보다 고등학교는 더더욱 성적을 중시합니다. 전국대회에서, 주말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내야만 좋은 대학교에, 좋은 팀에 갈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고교 지도자들은 공수 밸런스 훈련, 선수비 후역습 등 조직력을 끌어올리는 훈련을 주로 합니다. 사실 전문선수와 같은 고등학교 선수에게 개인기를 가르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죠. 초등학교, 중학교 때 개인기를 배우지 못한 채 고등학교에 올라간 선수들은 반쪽짜리 선수로 굳어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대학교에 가거나 프로에 가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우리 나라의 선수들이 대학교에 가는 것은 십중팔구 대학교 간판을 따기 위해서입니다. 축구를 잘하기 위해서 대학을 거쳐 프로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드문 케이스죠. 또 대학교에 가면 고교시절에 비해 모든 게 자유롭기 때문에 훈련보다는 먹고 노는 데 많은 시간을 쏟게 됩니다. 자유로운 대학분위기에서 자기 혼자 기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열심히 훈련한다는 것은 정말 강한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하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로로 직접 가는 경우 최대 문제점은 경기 감각 저하입니다. 고교 선수가 졸업하자마자 프로로 가서 첫해부터 주전급으로 활약하는 것은 박주영 등 소수 선수를 빼고는 불가능합니다. 결국 최소한 몇 년 동안은 2군에서 있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2군은 어떤가요? 구단 관계자, 코칭스태프, 선수 가족, 일부 팬 등을 빼고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리그입니다. 2군에 오래 있게 되면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의욕도 떨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어린 선수들의 조기 도태를 막으려면 다른 프로구단, 또는 내셔널리그 등으로 임대를 보내야합니다. 그런데 프로구단은 이것도 주저하고 있죠. "다른 프로구단으로 가서 행여 잘 하면 우리가 욕먹을 텐데"라는 어처구니 없는 걱정 때문입니다. 내셔널리그로라도 보내면 좋은데 선수들이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지금 내셔널리그는 어떻습니까. K리그를 밑에서 받치고 있는 어린 선수 양성소입니까? 아니면 K리그에서 은퇴한 선수들이 남은 선수생활을 마무리하는 곳입니까? 아쉽게도 후자의 모습이 짙습니다. 대학교, 프로생활 초반기에 2,3년 제자리 걸음을 하는 젊은 선수들 중 적잖은 선수들이 도중에 도태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인지 모릅니다.
우리 나라 축구가 가진 문제점은 이보다 훨씬 많습니다. 조금씩 개선되고는 있지만 아직도 페이스는 거북이 걸음이라 답답합니다. 성적 지상주의에 신음하고 있는 학원축구, 지도자들간 얽힌 복잡한 이해관계와 열악한 처우, 선수 또는 대회를 놓고 싸우는 시도협회간 알력, 축구계 기득권 세력들의 복지부동한 자세, 방만하고 폐쇄적이며 때로는 무책임하게 운영되고 있는 대한축구협회, 돈을 버는 경영은 모른 채 모기업(또는 지자체) 돈을 갖다 쓸 줄만 하는 무늬만 프로구단, 곳곳에서 비밀주의·폐쇄주의·형님동생주의로 인해 난무하는 온갖 비리... 우리나라 축구계가 앓고 있는 병을 거론한다면 그것만으로도 A4지 몇 장은 채울 겁니다.
몇 년전 한 프로구단 관계자와 한국 축구의 문제점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한국 축구를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한국축구는 머리부터 말끝까지, 뼛속부터 겉 피부까지 안 아픈 곳이 없습니다. 온몸이 구석구석이 모두 심각한 병을 앓고 있는 거죠. 한쪽 손을 잘라낸다고 온몸이 건강해질까요. 한쪽 발만 열심히 치료한다면 온몸이 건강해질까요. 몸 모든 곳이 아프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치료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부위마저 다시 도지고 맙니다. 결국 한국 축구는 온몸을 모두 조금씩 조금씩, 동시에, 그리고 꾸준히 치료해야 합니다. 그건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지만 그것만이 한국 축구를 완치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리 나라 축구가 강해지려면 유망주 발굴과 육성, 인프라 확충, 상급학교 진학방식 개선, 학원축구와 성인축구간 긴밀한 협조, 프로와 협회간 조화, 학부모 인식 전환, 프로리그와 실업리그간 이적 및 임대의 활성화, 협회·연맹 행정의 투명성 제고, 심판 육성방식 개혁, 행정력·외교력 강화, 지도자 교육 난이도 제고 등 모든 게 동시에 조금씩, 그리고 꾸준하게 바뀌어져야 합니다.
감독 한명 바꾸고 선수 몇몇 잘 뽑고 대진운이 좀 따르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일시적인 착시현상일 뿐입니다. 반대로 국제대회에서 부진하다고 해서 감독을 교체하거나 몇몇 선수를 희생양으로 삼아도 전체적인 한국 축구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지금 20세 이하 청소년대표선수들의 졸전도 좀 더 거시적으로 이해해야합니다. 이번에도 또 다시 몇몇 사람들의 잘못으로 돌린 뒤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 초보적인 대응책을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그건 순간적인 화풀이일 뿐입니다. 오히려 그 것에 묻혀 내면에 감춰진 진짜 진실을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냉정해져야합니다.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머리를 얼음처럼 식혀야합니다. 그리고 좀 더 먼 곳을, 그리고 좀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생각하고 고민하고 대책을 수립해야합니다. 그렇게 나온 대책이 20년짜리라도 30년짜리라도 50년짜리라도 좋습니다. 그 때 우리 자손들이 지금 우리가 반복적으로 느껴온 실망을 다시 느끼지 않을 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지구가 멸망하지 않은 한, 축구는 계속될 것이고 우리 나라도 축구를 계속 하고 있을테니까요.
〔다음스포츠 김세훈의 창과 방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