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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진실(혐오)

심심아 ㅠㅠ |2011.08.27 12:37
조회 10,810 |추천 27

안녕하세요 초딩 입니다 어떻게 시작할 지 ㅠㅠ 어쨌든 꼭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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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진실

 

- 에조 보고서 -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여러분이 다들 아시는 사건이시지요.

 

하지만 일본이 명성황후에게 저지른 만행은 그게 다가 아닙니다.

 

더 끔찍하며 상당히 치욕적이며 수치스럽고 더러운 모욕감을 주는...

 

일본이 숨겨 왔던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진실입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진실 (에조 보고서)

 

 

 


일본에서  '에조 보고서' 라는, 편지 형식으로 된 정식 보고서입니다.

에조라는 사람이 명성황후의 시해 사건 장면을 아주 정밀하게 묘사 해놓았습니다.

 


먼저 일본 낭인들이 20명 정도 명성황후가 계신 궁에 쳐들어왔고 고종을 무릎 꿇게 만들었다.

이를 말리는 세자의 상투를 잡아 올려벽에다 던져버리고 발로 짓밟았다.

그리고 명성황후를 발견하자 옆구리 두 쪽과 배에 칼을 꽂은 후

시녀들의 가슴을 다 도려내고 명성황후의 아랫도리를 벗겼다.

 


그리고 명성황후를 돌아가면서 20명이 강간을 했다

살아있을 때도 하고 한 6명째에명성황후가 죽어있었는데도 우리는 강간을 계속 했다

시체에 하는게 시간이고 살아있는 거에 하는게 윤간인데 명성황후는 시간과 윤간을 다 당했다.

그리고 그것을 뜯어 말리는 충신의 사지를 다 잘라버렸다. (에조는 하지 않았다)


어떤 놈들이 한 나라의 황후를 그렇게 대하는가. 이 경우는 고대에도 근대에도 절대 찾아볼 수 없다.


그렇게 명성황후를 시간과 윤간을 한 후

너덜너덜해진 명성황후의 시체에 얼굴부터 발 끝까지 차례대로 한 명씩 칼로 쑤셨다. 죽은 후에도...(이건 에조도 함)
그리고 여자로써 가슴도 도려내는 큰 수치를 당했다 .그것을 길거리 서민들이 다 보고있는데서 시행했다.


그 다음에 명성황후 시체에 기름을 붓고 불로 활활 태웠다.

 


일본 사학자가 이 문서를 발견하고 수치스러워서 공개를 안 했다고 할 정도
그리고 공개를 2002년 폴란드전 때 했는데 조중동 어디에도 기사를 실지 않았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범인중 상당 수가 지식인들이었고 그 중에 여섯명은 유학파였다.

 

 

재일 사학자 김응룡씨가 쓴 이 책은 '에조 보고서' 전문 중 10분의 1 정도만 인용하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나온 어떤 저술보다도 풍부하게 보고서 내용을 소개하고 있었다.

다음은 이 책에 서술된, '에조 보고서'의 주요 내용에 대한 설명이다.


"에조는 법제국장 앞으로 보낸 보고서 안에서, 명성황후 살해를 일본의 모든 이들이 생각하고 있었다고 보고서 머리에 적고 있다.

왕비 살해의 필요성은 미우라도 일찍부터 생각해 오고 있었다고 말하고,

일본의 수비대가 주력이었던 일, 명성황후살해와 사체에 대한 능욕의 상황을 자세하게 적고 있다.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을 외국인들에게 보인 데다, 이 외국인들과 언쟁까지 벌인 일과 대궐에서 난동을 끝내고,

보기 흉한 몰골로 대궐에서 철수하는 것을 대궐 앞 광장에 몰려든

조선인 군중들과 서둘러 성안으로 들어가는 러시아 공사에게도 보이고 말았다고 보고하고 있다."

 

......

 

실제로 시해 장면을 묘사한 '에조 보고서'를 뒷받침하는 증언과 자료들은 많다.

 

 

일본인 흉한들은 명성황후를 내동댕이치고

구둣발로 가슴을 세 번이나 내리 짓밟고 칼로 찔렀다

"(왕세자 이척의 증언) "

 

 

명성황후는 뜰 아래로 뛰어나갔지만 붙잡혀 넘어뜨려졌고 살해범은

수 차례 왕비의 가슴을 짓밟은 뒤에 칼로 거듭 명성황후를 찔렀다

"(영국 영사관 힐리어가 북경의 오코너에게 보낸 보고서)"

 

 

등이 대표적이다.  

 

 

 

 

 

 

아직 일본이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진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국일보에 올라온 기사이며 중요한 내용만 간추렸습니다.

 

 

 

 

또한 을미사변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일본은 청나라에 대한 선전포고에 앞서 전쟁터가 될

조선 및 중국 동북부에서부터 일본까지 연결되는

전신선과 전신국을 확보하려고 사력을 쏟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와 결탁해 일본에 반기를 든 명성황후는 눈엣가시였다.

 

결국 일본정부와 대본영의 뜻을 받은 전권공사 미우라 고로는

조선에 친일정권 확립을 목표로 경성수비대라는 일본 군대를 동원해 명성황후를 시해한다.

미우라는 일본인 사관이 훈련시킨 조선군이대원군을 옹립하려고 벌인 쿠데타로 가장해 명성황후를 살해함으로써

일본정부와 일본군의 현안이었던 전신 문제와 군대 주둔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대본영으로부터 병참수비대의 지원권을 위임 받은 미우라는 명성황후 살해 이 후

다른 나라의 군사 간섭이 있을 경우 수립된 친일정권의 의뢰를 받는 형식을 취해 수비대를 출병한다는 치밀한 계획도 세웠다.

 

 

 

 

 

 

 

 

 

 

 

 

 

 

 

 

 

일본 개(dog)자식들....

 

조선의 황후를 어떻게 저렇게 할수가 있는건지...

 

일본은 그저 발정난 개로 밖엔 안보이네요...

 

아 일본 용서가 안되네요ㅠ....

 

그게 자기네들이 말하는 사무라이 정신이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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