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 ‘바다의 여왕’ 연수영 」(평해거사 황원갑 원작·정천 김재암 편작)6. 조양대전 ⑵

김종욱 |2011.09.02 21:54
조회 48 |추천 0

● 연정토(淵淨土)의 배반행위

 

이튿날인 9월 12일. 군사 절반을 이끌고 해안에 상륙한 연수영은 비사성 아래에 진영을 세우고 공성(攻城)을 준비했다. 그런데 정작 수륙협공을 제안했던 연정토의 육군은 그때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연수영은 즉각 오고성에 있는 연정토에게 전령을 보내 9월 14일 오시(午時)에 비사성 서문에서 합세하여 성을 공격하자고 했다. 연정토는 그렇게 하마고 대답은 시원하게 했다.

 

협공의 약속을 받은 연수영은 군사 1만여명을 거느리고 예정대로 9월 14일 오시 무렵 비사성에 다다랐다. 비사성은 사면이 깎아 세운 듯한 절벽인데 오직 서문으로만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연수영의 수군이 서문 앞까지 진격, 군영을 다 세우도록 연정토의 육군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연정토는 기병대장 고돌발에게 군사 1만명을 나누어주고 비사성으로 보냈는데, 이 부대는 비사성 북쪽 30리 지점에서 강하왕 이도종이 깔아둔 2만여명의 복병을 만나 고전하고 있었다.

 

강하왕은 이미 이틀 전인 9월 12일에 3만여명의 당군을 이끌고 비사성으로 들어가 바다에서 연수영에게 패배해 쫓겨 들어온 장문간을 비롯하여 설만철·구행엄·왕대도·정명진 등 수군 장수들과 함께 비사성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다. 비사성을 지키는 당군은 6만이고 연수영의 병력은 1만이었다.

 

전황을 살펴보던 참좌 온사문이 불쾌한 표정으로 연수영에게 말했다.

 

“연 원수, 아무래도 우리가 속은 듯하오!”

 

“온 장군, 속다니요?”

 

“여태껏 기다려도 연정토의 육군이 오지 않고 있잖소?”

 

“……”

 

“이젠 결심을 해야 하오! 성을 치든가 군사를 물리든가…”

 

“좋아요! 오늘밤 야습을 합시다. 본군은 서문을 치고, 그 사이에 돌격대를 남쪽 성벽으로 올려 보냅시다! 이제 와서 회군할 수는 없어요! 물러나자마자 적군이 달려 나와 후미를 치지 않겠어요?”

 

연수영은 장수들을 중군막으로 불러 작전지시를 했다. 그리고 발 빠른 세작(細作)들을 놓아 육군의 행방을 알아오도록 시켰다.

 

그날 밤 삼경(三更)에 연수영은 1만여명의 본군을 이끌고 서문을 공격했다. 그리고 본군이 서문을 공격하는 사이에 모청호에게 1천명의 결사돌격대를 이끌고 몰래 뒤로 돌아가 남벽을 타고 올라가도록 했다.

 

“전군은 비사성 서문을 총공격하라!”

 

연수영 장군의 군령이 떨어지자 고구려군은 일심동체가 되어 비사성을 공격하였다. 포차에서 돌덩이가 성벽 쪽으로 날아가고 화살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말객(末客) 효슬(效膝)이 이끄는 수백명의 선봉대가 방패에 몸을 숨긴 채 충차와 운제를 밀고 성문으로 돌격했다. 그 사이에 모청호의 결사대는 외곽으로 우회하여 비사성 남벽 아래에 이르렀다.

 

“얘들아! 맨 처음 성벽 위로 올라가는 용사에게 내가 돼지 한 마리를 주겠다! 자, 올라가자.”

 

하지만 이번에는 연수영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꾀 많은 강하왕은 고구려군이 모두 합쳐도 1만명밖에 되지 않는 것을 보자 야습을 예측하고 있었다. 야간전투는 먼동이 훤히 터오는 묘시(卯時)까지 치열하게 전개됐으나 성문을 돌파하는 것도, 성벽을 오르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모청호의 돌격대도 누구 하나 성벽을 오르지 못했다. 그날따라 당군 초병들이 철저히 경계근무를 했기 때문이었다.

 

날이 밝았다. 전사자가 1천명이 넘자 연수영은 공성을 포기하고 징을 울려 군사들을 불러들였다. 강하왕이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성문을 활짝 열고 꾸역꾸역 군사들을 내보냈다. 1만, 2만, 어느새 3만명이 성밖으로 나와 고구려군을 밀어붙였다. 연수영은 자신의 실책을 후회했으나 이미 늦은 뒤였다. 우선 적군부터 막아야만 했다.

 

“오냐, 어디 한 번 붙어보자!”

 

연수영은 악에 받쳐 이를 악물고 쌍예검(雙銳劍)을 휘두르며 적진을 향해 앞장서서 달려 나갔다.

 

“연 원수! 아니 되오!”

 

“원수를 보호하라!”

 

온사문과 모청호·장운형·담열 등 장수들이 소리치며 급히 그 뒤를 따랐다. 얼굴을 하나같이 시커멓게 칠한 낭자군들이 저마다 칼을 빼어 들고 주군을 보호하기 위해 뒤쫓아 달렸다. 적진으로 돌입한 연수영은 마치 한 마리 성난 암사자처럼 무서운 기세로 쌍예검을 휘둘러 닥치는 대로 적병들을 베고 찔렀다. 어느새 연수영의 전신은 온통 적병들의 붉은 피로 시뻘겋게 물들었다. 그 모습을 보자 고구려군 병사들이 무서운 함성을 지르며 돌격했다.

 

칼과 창이 부딪쳐 금속성(金屬聲)이 울리고 화살이 바람을 끊는 파공음(破空音)이 요란하게 들리는 처절한 백병전(白兵戰)이 그날 9월 15일 종일 계속되었다. 마상(馬上)에서 장창(長槍)을 비껴들고 주위를 에워싼 당군 병사 수십명을 찔러 죽이며 분전하던 온사문이 연수영에게 말을 몰아 달려오며 소리쳤다.

 

“연 원수, 더 이상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면 전멸을 당하고 말 것이오! 어서 함선이 정박한 곳으로 퇴각합시다.”

 

연수영은 억울하고 분했지만 고구려의 수군을 총지휘하는 장수답게 냉정한 판단을 내려 군사들에게 퇴각을 명령했다. 함대를 지키고 있던 고성운은 연수영의 본군이 적의 추격을 받으며 도망쳐오는 모습을 보고 노병(弩兵)들에게 포노와 쇠뇌를 발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포노를 쟁여 방포하라! 창뢰를 발사하라! 아군이 무사히 승선할 수 있도록 엄호하라!”

 

고구려의 함선에서 돌덩이와 화살, 창뢰가 발사되어 연수영의 본군을 뒤쫓는 당군을 향해 무수히 날아갔다. 선두에서 달려오던 당군 기병 수백명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사상자를 낸 당군이 잠시 추격을 늦추자 그 틈을 타서 연수영의 본군은 큰 방해를 받지 않고 함선에 탑승할 수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로 도망친 연수영의 함대가 인명피해를 조사해보니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상륙군 1만명 가운데 절반인 5천여명의 군사를 잃었고 돌격장 모청호, 후위장 해광윤 등 소형 이상 장수 6명과 선인 이상 장령급 20여명, 그리고 고광미·양희봉·금화 등 낭자군 3명이 전사했다. 또한 주장인 연수영 자신도 완쪽 어깨와 허벅지에 창상(槍傷)을 입었다. 부상자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다.

 

누구보다 가장 슬픈 것은 늦장가를 든 지 두 달여만에 아내인 양희봉을 잃은 담열이었다. 담열은 양희봉이 연수영의 호위를 담당하는 낭자군으로서 주군을 보호하기 위해 전장에 뛰어들었다가 변(變)을 당하자, 어지러운 난전(亂戰) 속에서도 죽음을 무릅쓰고 적진을 헤치고 들어가 그녀의 시신을 겨우 수습했다. 그는 하얀 천으로 감싸덮은 양희봉의 시신 곁에서 털썩 주저않은 채 오열했다. 장수들은 그런 담열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이날 전투가 결코 패전은 아니었다. 당군의 피해가 훨씬 더 컸기 때문이었다. 태종이 장안으로 돌아간 다음인 그 해 11월에 수군 총관인 장문간을 비사성 전투의 패배 책임자로 지목해 참수형에 처한 것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었다. 이른바 춘추필법(春秋筆法)에 따라 자신들의 패전 사실은 최대한 감추고 속이는 중국의 역사가들이 이 전투를 당군의 패전이라고 분명히 인정했던 것이다. 

 

안시성 외곽에서 패전을 보고받은 태종은 이렇게 한탄하고 분노했다.

 

“다섯 배나 더 많은 군사를 가지고도 지다니, 이것들이 과연 대당제국의 장수란 말이냐!”

 

그러면 그동안 연정토는 어디에 있었던가?

 

기병대장 고돌발이 복병을 만나 수군과 합세하기는커녕 군사 절반을 잃고 악전고투(惡戰苦鬪) 끝에 가까스로 본진으로 퇴각해오자 겁쟁이 연정토는 어마 뜨거워라! 하고 남은 군사를 모두 이끌고 오고성에서 훨씬 후방인 적리성으로 후퇴해버렸다. 보고를 받은 대막리지 연개소문은 노발대발했다.

 

‘이런 형편없는 놈한테 군사를 맡기다니! 아, 이제부터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들고 다닌단 말인가!’

 

그는 즉각 연정토를 파면했다. 그리고 적리성으로 집형대를 보내 연정토를 체포해 오골성으로 끌고 오도록 했다. 연정토가 잡혀서 쓸려오자 분을 못 참은 연개소문은 꿇어앉은 연정토의 얼굴을 냅다 걷어찼다.

 

“이 밥벌레 같은 새끼! 무슨 염치로 아직도 살아 있냐? 당장 죽어버려!”

 

연정토의 얼굴이 금세 피투성이가 됐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연정토가 손바닥이 발바닥이 되도록 싹싹 비비며 애걸했다.

 

“형님,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죽을죄를 지었지만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요! 으흐흐흑……”

 

“네 이놈! 여기서 무슨 변명을 또 하겠다는 거냐?”

 

“중과부적이었습니다요! …으흐흑! 어쨌든 당적이 물러가고 있으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이런 뻔뻔한 놈을 봤나! 여봐라, 이놈을 당장 참형에 처하라!”

 

연개소문이 동생을 처형하라고 명령하자 오골성주 추정국이 깜짝 놀라서 만류했다.

 

“고정하시오, 대막리지(大莫離支) 합하(閤下)!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장수를 죽이면 자중지란(自中之亂)으로 보일까 두렵습니다! 또 우리 군심(軍心)도 흔들릴까 걱정됩니다!”

 

연개소문의 오른팔 격인 두방루도 말렸다.

 

“그렇습니다. 합하께서 연정토 대인을 처형하신다면 대막리지 형제간의 다툼으로 보지 않겠습니까?”

 

술탈 역시 연정토를 두둔한다.

 

“연 대인이 비록 작전을 그르쳤다고는 하나 그래도 태왕(太王) 폐하(陛下)께서 임명하신 장수가 아닙니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지요?”

 

동생이고 뭐고 생각 같아서는 당장 죽여 없애고 싶었지만 그 말을 듣고 보니 고질병이 도지듯 또 다시 마음이 약해졌다. 연개소문이 소리쳤다.

 

“이 못난 놈! 썩 물러가라! 앞으로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면 내 몸소 네놈의 목을 치겠다!”

 

그렇게 연정토를 군문 밖으로 내쫓은 연개소문은 장수들과 더불어 퇴각하는 이세민을 추격하고 침략군을 섬멸하기 위한 전략 구상에 몰두했다.

 

안시성주 양만춘이 보낸 급보에 따르면 당군은 엊그제 9월 18일에 전면 철군을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겨울이 다가오고, 군량도 떨어져 갔기 때문에 어차피 당군의 퇴각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드디어 때가 왔소이다! 이번 싸움에서 우리는 반드시 이세민을 사로잡아야 합니다. 추정국 장군은 지금 즉시 안시성으로 가서 양만춘 장군과 병력을 합쳐서 창려성과 마미성 방면으로 진격, 연수영 장군의 수군과 함께 수륙병진(水陸竝進)으로 비사성을 탈환하시오. 나는 신성과 건안성을 차례로 통과하여 회원진(懷遠鎭)으로 진격, 당군의 퇴각로를 차단할 것이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합하!”

 

추정국은 연개소문에게 군례를 올리고 서둘러 오골성을 떠났다.

 

연개소문은 두방루·술탈, 그리고 박작성주 소부손과 더불어 자신의 친위부대를 비롯한 군사들을 소집했다.  

 

“고구려의 용맹스러운 군사들이여! 마침내 전세(戰勢)는 우리 쪽으로 기울었다. 당괴(唐傀) 이세민(李世民)은 안시성에서 발이 묶여 아까운 병력과 군량만 소비하고 드디어 철군을 시작하고 있다. 우리 땅을 제멋대로 유린한 이세민을 그냥 고스란히 돌려보낼 수는 없지 않은가!

 

저 서토의 한족(漢族)들은 중원의 혼란을 수습하고 통일된 제국을 세우게 되면 소위 중화사상(中華思想)을 만들어 주변국과 변방의 이민족에게 그것을 강요했다. 자신들만이 진정한 문명국이고 다른 나라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이민족으로부터 종주국 대우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으로 우월한 의식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에 단군조선(檀君朝鮮)이 2천여 년을 존속하면서 이웃 서쪽 땅에서 수많은 단명국(短命國)들이 나타났다가 얼마 가지 못하고 사라지는 꼴을 지켜보았다. 모두 알다시피 진나라의 영정(英政)이란 자가 소국 일곱 나라를 합친 후 영역이 넓어지자 황제(皇帝)란 칭호를 만들어 처음 사용했다. 소위 진시황이라 불리는 자가 바로 그였다. 그 후 서토에서 일어나는 나라는 개나 소나 칭제(稱帝)를 해왔다.

 

단군조선의 적통을 이은 우리 고구려 역시 이웃의 단명한 나라들이 칭제하는 꼴을 오랫동안 지켜봐왔느니라! 우리 선조께서는 후손들이 천박한 싸구려 유행에 물들 것을 경계하여 고구려의 지배자는 제왕 중의 제왕, 즉 태왕(太王)으로 칭한다는 전통을 확립했던 것이다!”

 

갑주(甲胄)와 기치창검(旗幟槍劍)으로 무장한 군사들 앞에서 연단에 올라 연설하는 연개소문의 목소리는 허공에 번지기 시작했다.

 

“우리 선조들은 서토의 단명국들이 황제라는 호칭을 쓰는 것을 매우 우습게 생각했느니라! ‘왕(王)’이란 글자는 ‘삼(三)’이란 글자를 획 하나로 연결한 형태로써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전능한 지도자에게 부여되는 칭호이니라! 그렇기 때문에 이 ‘왕(王)’이란 완전한 글자에 ‘백(白)’이란 글자를 합친다고 해서 더 높고 위대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저 서토의 오랑캐들은 ‘황(皇)’이란 이상한 글자로 우스꽝스러운 칭호를 만들어 우리를 마치 제후국 취급하고 있으니 참으로 미련하고 무례한 태도가 아닌가? 이제 나 연개소문은 대고구려의 국상(國相)으로써 태왕 폐하를 대신하여 저 건방지고 어리석은 당괴 이세민에게 진정한 천하의 중심이 어느 나라인지 가르쳐주고자 하노라! 우리는 요택(遼澤)으로 가서 이세민을 사로잡아 항복을 받아내고 서토를 침벌(侵伐)할 것이다!”

 

군사들은 창과 칼을 높이 쳐들며 연개소문의 우렁찬 호령에 함성으로 호응하였다.

 

연개소문은 조의선인(早衣仙人) 1만이 포함된 경갑(頸甲) 기병 5만명을 거느리고 직접 추격전(追擊戰)에 나섰다.

 

 

▶ 다음 편에 계속…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