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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피상' 에 관한 이야기 ◆◆◆◆◆

뽀잉뿌잉? |2011.09.10 17:02
조회 1,912 |추천 4

 

 

 

 

 

 

 

 

 

 

 

 

 

 

 

 

우리 외할머니댁은

나가노 현의 깊은 산 속

'신슈 신마치' 라는 곳에서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 곳이야.

 

내가 초등학교 3, 4학년 무렵

그 해 여름 방학대 외할머니 댁에

놀라가게 됐어.

 

그곳은 산과 논, 밭 밖에 없고

민가도 드문드문 했어.

 

마을 버스도 아침, 저녁으로

두번밖에 다니지 않는 곳이었어.

 

평소 같았으면 그런 아무것도 없는

촌구석에 가지 않았겠지만

그 해엔 나와 친했던 친구가

가족 여행을 떠나버려서

부모님을 따라 외할머니 댁에 가게 됐어.

 

막상 도착 해보니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어.

 

백화점에 가자,

가게에 가자 아무리 졸라대도

가장 가까운 구멍가게가

차로 1시간은 걸리는 거리였기에

아버지는

 

"모처럼 조용하게 놀러 온 거잖니."

라며 꿈쩍도 않으셨어.

 

유일하게 그나마 숨통이 트였던 것은

이웃집에 나와 같은 또래의 남자아이가

놀러 와 있었던 거야.

 

그 나이때엔 신기하게도

금방 친해지곤 해서

나와 K는 함께 놀게 됐어.

 

논다고 해도 그런 촌구석에서

할 수 있는거라고는

모험놀이, 탐험 정도밖에 없었어.

 

외할머니 댁에서는

1주일동안 머무를 예정으로 갔어.

 

그곳에 간지 3일째 저녁이었던거 같아.

오후 3시가 지나 해가 슬슬

저물기 시작 할 무렵.

 

여름이라고는해도

시골에선 해가 빨리 떨어져.

 

나와 K는 그때까지 들어가 본 적 없는

산에 들어가 봤어.

 

처음엔 사람이 다닐 법한 길로

올라갔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산짐승들이나 다닐 법한

좁은 길에 들어서 있었어.

 

"어라, 이게 뭐지?"

 

K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자

비석같은것이 서 있었어.

 

동네에서 볼 수 있는

도소신 같은 느낌에

높이가 50cm 정도였던것 같아.

 

도소신이란

도로와 행인을 지키는 신이야.

 

꽤 오랫동안 비바람에 노출 된 듯

이끼가 끼어 있었어.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나와 K는 땅에 떨어져 있던

나뭇가지와 손을 이용해

이끼와 흙을 걷어내 봤어.

 

도소신 같긴 했지만

조금 느낌이 달랐어.

 

평범한 도소신은 남녀 2명이

사이좋게 가까이 붙어 있는것을

조작 해 놓은 것인데

그 비석은 네사람이 선 채로

서로 얽혀 있었고

고민을 안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어.

 

나와 K는 불길해져서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일어섰어.

 

주위도 어슴푸레 해져서

나는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었어.

 

내가 K의 손을 잡아 끌어

돌아가려고 하자

K가 비석 아래에 있던

무언가를 발견했어.

 

아주 오래 된 가로 세로 4cm 정도의

나무 상자였어.

 

반정도는 땅에 묻혀 있었고

반은 땅 위에 드러나 있었어.

 

"뭐지?"

 

나는 영 불길했지만

K는 나무 상자를 파냈어.

 

겉에는 헝겊같은 것을 두른 흔적이 있고

먹물같은 것으로 글자가 쓰여 있었어.

 

당시 어린 아이였던 나는

읽어내지 못했지만

불경같은 어려운 한자가 가득 쓰여 있었어.

 

"뭔가가 들어있어!"

 

상자가 부서진 부분에서

빼꼼하니 뭔가가 보였어.

 

K는 그것을 빼내서 봤어.

 

벨벳 같았어.

 

검고 반질반질한 매듭같은 것으로 묶인

완장처럼 보였어.

 

직경은 약 10cm 정도,

원형이었고 5개의 동그란 돌같은 것이

박혀있었어.

 

그 돌에도 어려운 한자들이

새겨져 있었어.

 

땅 속에 파묻혀 있었다고는

생각지 못할 정도로 반질반질 광택이 났고

기분 나쁘면서도 몹시 아름다웠어.

 

"이거 내가 먼저 찾았으니까 내꺼다!!"

 

K는 그렇게 말하고

그 완장을 차 보려고 했어.

 

"하지마!!"

 

나는 울며불며 말렸지만

K는 내 말을 듣지 않았어.

 

께에에에에에에에엑!!!!

 

K가 완장을 찬 순간

이상한 새 울음 소리 같기도 하고

원숭이 울음 소리 같기도 한

기묘한 울음소리가 온 산에 울려 퍼졌어.

 

정신을 차려보니

주위는 이미 어두컴컴했고

나와 K는 겁이나 서둘러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어.

 

그리고나서는 완장에 대해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어.

 

밤 10시가 지나 뒹굴뒹굴 거리며

아직 잠들지 않고 있어서

엄마가 "빨리 자!" 하며

혼이 나고 있을때 따르르릉

전화벨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울렸어.

 

"이런 한밤중에 누가 예의도 없이.."

 

할아버지가 궁시렁대며 전화를 받았어.

 

반주로 붉어져있던 할아버지의 얼굴 빛이

갑자기 싸악 창백해졌어.

 

전화를 끊은 후

할아버지가 방바닥에서 뒹굴거리고 있던

나에게 달려왔어.

 

나를 험하게 일으키고는

 

"너 오늘 어디 갔었어!!!!!!

뒷산에 간거냐!!!?? 산에 들어갔어!!??"

 

할아버지가 그렇게 심각한 얼굴로

화내시는것을 처음 본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했어.

 

할아버지가 내는 큰 소리를 듣고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온 할머니와 엄마도

내 얘기를 듣고는 얼굴이 새파래졌어.

 

"아아, 설마.."

"그럴지도 모르겠구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시자

엄마는

 

"그거 미신 아니었어요?"

 

라고 말했지만

나는 무슨말인지 알아 듣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듣고만 있었어.

 

아버지도 도통 이해하지 못하는것 같았어.

우선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K의 집으로 갔어.

 

K의 집 현관문을 열자

몹시 불쾌한 냄새가 났어.

 

먼지 냄새 같기도 하고

뭔가 시큼한 냄새였어.

 

"K!! 정신 차리거라!!"

 

거실쪽에서 K의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어.

 

할아버지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성큼성큼 집 안으로 들어갔어.

 

나와 할머니도 그 뒤를 따랐어.

 

거실로 들어가자

그 냄새가 더욱 심해졌어.

 

그곳에는 K가 누워있었어.

그리고 그 옆에 K의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가 필사적으로 뭔가를 하고 있었어.

 

K는 의식이 있는건지 없는건지

눈을 뜨고 있었지만 초점이 없었고

입은 반쯤 벌리고 하얀 거품을 질질 흘리고 있었어.

 

자세히 봤더니 다들 K의 오른팔에서

무언가를 벗겨내려 하고 있었어.

 

완장이었어.

 

그런데 아까와는 상태가 달랐어.

아름다웠던 매듭이 풀려서

풀린 실 한올 한올이 K의 팔을 찌르고 있었어.

 

완장에서부터 손이 검어져 있었고

그 검은 실들은 마치 움직이고 있는것 같았어.

 

완장에서 팔을 찌르고 있는 실들이

K의 팔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것 같았어.

 

"발피상이구나!!!"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외치고는

부엌으로 달려갔어.

 

나는 K의 팔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

마치 피부 아래에서 무수히 많은 벌레들이

기어다니고 있는것만 같았어.

 

곧 할아버지가 돌아왔어.

손에는 사시미용 칼이 들려있었어.

 

"뭘 하시려는 겁니까?"

 

할아버지는 말리려는 K의 부모님을 뿌리치고

K의 할머니에게 소리쳤어.

 

"이제 이 놈, 팔은 못쓴다!!

아직 머리까지는 안갔어!!"

 

K의 할머니는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어.

 

할아버지는 잠깐 망설이는 듯 하더니

칼을 K의 팔에 내리쳤어.

 

K의 부모님은 비명을 질렀지만

K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어.

 

나는 그 광경을 평생 잊지 못할거야.

 

K의 팔에서는 피 한방울 조차

흐르지 않았어.

 

대신 무수히 많은 머리카락이

잘린 팔에서 흘러 나왔어.

 

잘린 팔 안에 있던 검은 것들은

움직이지 않았어.

 

잠시 시간이 지나서

근처 절에서 스님이 와주셨어.

 

스님은 K를 침실로 옮기고

밤새도록 불경을 읽었어.

 

K에게 불경을 읽어주기 전에

나를 위해서도 불경을 읽어 주셨고

나는 할아버지 댁으로 돌아가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어.

 

다음날 K는 얼굴도 보이지 않았고

아침 일찍부터 부모님과

집으로 돌아갔다고 했어.

 

큰 병원으로 간다고 했었어.

 

할아버지가 말하기를,

팔은 이미 못쓰게 되었다고 해.

 

할아버지는 몇번이고

"머리까지 안가서 다행이야.." 라고 했어.

 

나는 할아버지에게

'발피상' 에 대해 물어봤지만

좀처럼 가르쳐 주시지 않았어.

 

단, 發被喪 이라 쓰고 '칸히모' 라고 읽는다는 것.

(역자 주: 역자의 판단 상,

'칸히모' 를 한자 음독인 '발피상'으로 번역)

 

그리고 그 도소신은

'아쿠' 라는 이름이라는 것만은

할머니에게 들을 수 있었어.

 

이 이야기를 인터넷에 투고하게 되고

다시 한번 진상이 궁금해져서

지난 주말에 외갓집에 다녀왔어.

 

할아버지는 이미 돌아가셨기 때문에

문헌과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내 나름대로 추측을 해본것에 지나지 않지만

사전을 찾아보며 열심히 알아내 보려고 노력했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발피상' 은 주술의 한 종류인 듯 해.

 

그것도 별로 좋지 않은 계통.

 

옛날 아직각 마을이 다른 마을과의

소통없이 살아가던 시절

그때는 주로 마을 내에서 혼인이 이루어졌다고 해.

 

그렇게 되면 흔히들

'피가 진해진다' 고 하듯

장애를 가진 아이가 태어나는 일이 많았어.

 

지금처럼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

그런 아이들은 '흉한 아이' 라고 불리며 꺼려졌어.

 

그리고 그 '흉한 아이' 를 낳은 여자도

'흉한 어미' 라고 불렸어.

 

그러나 '흉한 아이' 가 태어났다고 해도

태어나자마자 분별 할 수 있었던게 아니었고

어느정도 아이가 성장하고 나서

'흉한 아이' 라는 것이 밝혀지는 일이 많았어.

 

그리고 그 '흉한 모자(母子)' 는

마을에 재앙을 불러온다는 이유로 살해 당했어.

 

게다가 그 살해 방식이라는것이

'흉한 어미' 가 자신의 손으로

아이를 죽이게 하고 그 '흉한 어미' 또한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 당했다고 해.

 

그리고 '흉한 어미' 는 죽은 뒤에도

마을에 재앙을 가져 온다고 여겨졌어.

 

그래서 '발피상' 이라는것이 생겼어.

 

머리카락 髮, 씌울 被, 잃을 喪 자를 써서

'발피상' 이라고 하는 이것은

머리카락을 이용한 주술로

좋지 않은 일을 다른 이에게 덮어 씌운다는 의미야.

 

흉한 어미의 머리카락 다발을 이용하고

흉한 아이의 뼈로 만든 구슬을 박은 주술이었다고 해.

 

그리고 그것을 이웃마을(이웃마을이라고는 해도

거리상으로는 상당히 멀었다고 해) 땅에 묻어

재앙을 다른 마을에 덮어 씌우려고 했어.

 

우리가 발견한 것은 완장 형태였지만

목걸이 등 여러가지 형태가 있다고 해.

 

그러나 그런 저주라는 것이

반드시 보복이 따르기 마련이야.

 

자신들의 마을에 '발피상' 이 묻혔다는 것을 알면

그것을 파내어 다시 원래 마을에 묻는 일이 있었다고 해.

 

그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도소신인 '아쿠' 였어.

 

마을 사람들은 다시 자신들의 마을로

돌아 온 '발피상' 을 알아차리게 되면

그 위에 '아쿠' 를 세워 봉인했어.

 

'아쿠'는 본래 '카쿠' 라고 불렸으며

비석에 새겨진 사람에게

고통을 전가하는 것으로 마을에 다시

재앙이 돌아오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고 해.

 

그리고 그 이웃 마을로 향하는 길이

마침 뒷산에서 이어져 있었다고 해.

 

세월이 흐르면서 '발피상' 이라는

풍습은 없어졌지만 이미 만들어진 발피상의 효력은

아직 남아 있었는지도 몰라.

 

그 후 할머니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K는 큰 병원에 가게 되었고

스님의 독경때문인지 그때는 이미

머리카락은 한 올도 남아있지 않았고

베인 팔은 안이 텅 빈 피부 가죽만이 남아 있었대.

 

다행히 목숨은 구했지만

K는 평생 식물 인간 상태가 되었어.

 

 

 

 

 

 

의사가 말하길,

 

 

뇌에 자잘한 머리카락 굵기의

무수히 많은 구멍이 나 있었다고 해.

추천수4
반대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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