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현제 프랑스에서 국제경영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에서 어학공부를 하는 22살 남자입니다.메일로도 부모님께 보낼수도 있지만 제 자랑이 아닌 부모님 자랑을 하려고 여기다 글을 올립니다 :) 재미있게 보시고 부모님 보여드리게 댓글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8살 때 까지 저희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대우 전자부분에서 사장과 부사장을 하시다 IMF로 인해 결국 큰 부도를 맞아 아버지는 교도소를 가시고 어머니 저 2살어린 남동생은 좋은 집에서 반지하방으로 이사를 갔습니다.아직도 기억나는게 이사하는 날이 하필 소풍을 가는 날이라 결국 집을 못찾아서 큰아빠차를 타고 갔는데 커다랗고 높은 대저택었습니다. 아버지가 이사를 가기 얼마 전 제 방으로 와 8살인 제 손을 잡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고 말씀하셨는데,, 어?이게 어떻게 됀일이지,어린마음에 /아 이런게 깜짝선물이라는 거구나?/ 하면서 우와 집크다 하면서 들어가는데 어딘가 지하에서 제 이름을 부르길래 어?세상에 땅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리다니..하면서 주위를 돌아보니 그 반지하방이더군요 참 ㅎㅎ 약 3년을 살았는데 아직도 잊지못하는게 반지하라 비가오면 방이 물에 다 잠겼습니다.그런날이면 하루종일 동생이랑 죽어라 컵으로 물퍼냈는데,,그러던 어느날 학교다녀오니 역시나 또 집은 물로 가득차있고 기르고 있던 강아지가 그 물에 둥둥떠다닌체 죽어있던 기억이 아직도 나네요.. 그 후에 2주정도 있다 제가 집에 친구 2명을 대려오니 그 날 저녁 어머니는 제 앞에서 /우리아들 고마워 고마워 챙피했을텐데../하시면서 하염없이 우시던 기억이 납니다..지하방으로 이사온 후 시간이 흘러 저희 아버지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고 꿈만 같던 옛 기억은 버리신체 바로 고물을 줍기위해 리어카를 끌었습니다..나중에 저 말년휴가 나왔을때 하시는 말씀이 /너희가 아빠 리어카 끄는 거 보면 기죽을 까 항상 그 리어카를 끌고 집에서 딱 2키로 먼곳으로가 고물을 주웠다/ 라고 하시더군요.
그 후 9살때부터 15살 때 까지 주말만 되면 적어도 한달에 5번은 아버지 고물상에 가서 일을 도와드렸습니다. 시급으로 저는 300원 동생은 250원 받았는데 하루종일 일하면서 동생이랑 /야 일끊나고 무슨과자사먹지 아 이번에 새로나온 스타그래프트 저그맛 음류수 마셔보고싶은데/ 하면서 신나하던게 생각나네요. 참고로 어머니는 그때 1000원 받았다고하네요 ㅎㅎㅎㅎ일하는 주말만 되면 온 가족이 새벽5시 30분에 일어나서 얼른 밥먹고 같이 조그만한 중고트럭에 4식구 타면서 빨간 공업용 장갑끼고 전봇대에 앞에 떨어진 병,고철,신문지,박스를 주웠어요. 여름이면 너무 더워 집에와보면 발에 땀이너무나서 수영장에 하루종일 있었던것같이 발이 쭈글쭈글해지고 겨울이면 손이 다 불어터져서 주말에 장갑낄때 손이 따끔따끔했지만 ,그래도,그래도 원망은 결코 한번도 한적이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10살도 안 된 두자식이 새벽같이 일어나 고물줍겠다고 쫄래쫄래 따라오는 거 보시면서 무슨 생각드셨을지 참 궁금합니다.. 아버지는 고된 노동에 매일 밤 좁은 방에서 신음을 하셨고 어머니는 30대 중반에 얼굴이 바둑판처럼 기미와 주근깨로 다 덮히셨죠. 온식구가 낑낑대면서 하루종일 일을 해도 집안 형편은 나아지질 않고.
그래도 참 웃기는게 이런 말이 있잖아요. 부모가 아무리 가난해도 자식보단 가난할수가 없다 라는 말,,기죽지 말라고 두자식한테는 항상 좋은 옷 입히고 어머니 아버지 다 떨어진 신발 밑창에 대형마트에서 나눠주는 방수전단지 쓰시고 ,,4학년 여름방학에 가족끼리 대천에 놀러갔다 온 후 비가 많이 올때였는데 아버지가 자꾸 똑같은 길을 도시는 거에요. 그래서 어머니가 왜 자꾸 똑같은데를 빙빙도냐니까 사실 저기 버려진 간판있는데 비도오고 간판도 너무크다니까 저랑 동생이 먼저 아빠아빠 저거 주워요 하면서 나선게 생각나네요 ㅎㅎ 결국 비오는날 4식구는 비맞으면서 트럭뒤에다 실을려다 비만홀딱맞고 결국에는 못실었죠 ㅋㅋ 집오는 길에 4식구 계속 릴레이로 기침하고 2틀동안 감기걸리고 ㅎ
그 후 12살이 되던때에 14평쯤되는 옥탑방으로 이사가기 전날 아버지한테 몇번이고 /진짜 집안에 화장실있어요?그럼 뜨거운물도 나와요??/하며 물어보던게 생각납니다. 그 후에도 아버지는 주말 한번 없이 일하시며 고물상에서 전선줄에 있는 구리를 뽑아내는 일로 바꾸시고 저와 동생도 열심히 주말마다 도와드리며 어머니도 글쓰기 선생님으로 열심히 일하셔서 15살이 되던해 50평이 되는 아파트와 아버지는 200평이 되는 개인공장 어머니 개인학원 2대의 자가용 집게차 400평의 개인 땅 등 정말 하룻밤의 꿈처럼 이루어지고 제가 고 2가 되던해에 전교 회장이 되며 드디 저희집에도 봄날이 왔습니다. 집안사정에 항상 기가죽어 초등학교때는 왕따였지만 훌훌 털어버리고 중학교때부터 반장을 해오다 고등학교때는 전교회장을 하며 부모님에겐 지옥같았던 9년의 세월 저와 동생에게는 너무나 감사하고 감사한 가난한 유년기가 아쉽게도?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15살때 일을 하다 기계에 손이 들어가 약지가 잘릴뻔하기도,5학년때공업용 냉장고에 깔려 불구가 될뻔하기도 중2학년때 다컸다고 산소용접해보다 심한 화상을 입을뻔한 기억 등 지금 제겐 너무나 소중합니다
어렸을 때는 이순신 세종대왕 하면서 학교 발표시간에 발표했지만 이젠 저희 부모님입니다.노동이 너무 고되셨는지 50초반인데도 서서 하늘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등이 굽어버린 아버지, 젊을때는 체조선수 였지만 여자에겐 너무 고된 노동으로 인해 발이 거북이 등껍칠처럼 변해버려 항상 아파하시는 어머니, 무슨말이 더 필요하며세상 어느 누가 저를 위해 이러한 희생을 하겠습니까. 누가 그러더라고요, 성인이 된 이후 처음으로 부모님 손 꼭 잡고 사랑한다고 말하는건 부모님 돌아가셨을때라고요, 모두들,부모는 효도를 기다리지 않는다 하잖아요. 꼭 손 잡고 마음에서 나오는 말을 그대로 하세요. 여자친구 남자친구 에게 하듯제 자랑을 하자면 저는 군인 월급 꼬박꼬박모아서 병장때 아버지께 보약 한 박스 해드리고 어머니께는 보약이 부럽지 않은 새 가스렌지랑 가스렌지 2배값하는 화장품사드렸습니다./아 이런 자랑은 괜찮겠죠..>?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가족을 위해 과일만 사와도 행복해하시는 분이 부모님이잖아요. 마지막으로!
아빠엄마.정말 안 미안해하셔도돼요 , 제발 안그러셔도 되요.식구끼리 딱지치기로 일당걸고 아이스크림 내기한거,17일마다 회식하는 날 동생이랑 롯데리0가서 불고기버거 배터지게 먹고싶다 조른거,맨날 김치랑 단무지 먹는다고 우리 토끼가족이라고 한거,같이 약수터가서 동생 공찰 때 몰래 옆에서 공에다 돌던져서 동생 바닥에 뒤통수 박고 엉엉하면서 울고,가끔 고물줍다가 빵사들고 드라이브도 가고, 엄마아빠 다 좋은 추억이잖아요. 저랑 동생은 항상 이런 추억에 감사해요. 엄마아빠 10년전 신발 밑 깔창 아직도 기억나요, 아빠는 사과랑 배 전단지였고 엄마는 신문지에 스폰지. 엄마아빠 저는 두분의 가장 좋은 친구,자식이에요.고기도 씹어 본 놈이 안다고 가난도 한 번 가난해 본놈이 알지 별거 아니였잖아요. 4식구 지하방 옥탑방에서 행복했잖아요. 항상 한방에서 자고. 그게 저어겐 가장 큰 재산이고 제 인생의 나침반이에요.그리고 아빠가 저 이등병때 편지에 쓰신말씀처럼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있지만 마음만은 항상 함께하고 있어서 있지 너가 내 곁에 없다는 것에 대해 별 느낌이 없어.다만 문득 우리가 같은 공간에 없다는 걸 느낄대에만 조금은 공허할뿐이지.이 말 항상 되내이고 되내어요. 아빠 편지 읽을 땐 정말 시간이 멈춘듯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감사해요 정말로. 그리고 이 글 다 읽으면 동생이랑 같이 쓰리쿠 한 번치러가요!!점당 천원해가지고 엄마도 재미없다고 집에있는다 하지 마시고 같이가요!아 그리고 엄마 이제 아빠 머리좀 기르게 해주세요. 저도 아빠가 이외수처럼 머리를 뒤로 따고싶어하시는 거에 대해선 반대지만 , 아빠를 너무 필요이상으로 미용실로 끌고가시는 것같아요..아빠 미용실 다녀오시고 나서 표정한번보세요. 라이언일병에서 동료잃은 표정이랑 다를게 없어요.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