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짊어지기에는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네이트판 여러분에게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XXX신학교 XXX 교수/목사의 외동 아들 되는 XXX라고 합니다.
우선 이글은 판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서요..
지금 현재 XXX신학교 재직중인 저의 아버지, 그리고 수많은 교회에서 은혜로운 설교를
하시는 아버지가 얼마나 부당한 위치에서 계신지에 대해서 나눠볼려고 합니다.
지금 XXX 교수/목사는 은혜가운데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동시에,
집에서는 부인을 쫓아내고, 새로운 부인과 가족을 만들고, 자기 친자식도 쫓아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은 일체 비밀로 저에게 압력이 가해져 왔으며,
저 역시 어찌 부모를 욕되게 할 수 있을까 해서 참고 참았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은 점점 황폐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 모든 행동은 새로 재혼한 XXX심리상담교수/프리랜서와 계획하에 이루어졌으며,
더 큰 문제는 교단/신앙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 이런 행동이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제가 부모를 욕 되어 보이게 하는 못된 짓인지, 여러분이 판단해주기 바랍니다.
기독교의 종교리더이며 수많은 교회에서 특강하시면서 50~200만원특강 봉투 받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기독교의 위대한 지도자라고 하시겠습니까?
아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최대한 자세하게 나열해보았습니다.
조금은 긴 글이 될 줄로 알겠지만, 한번씩만 꼭 읽어주세요.
꼭 참조해주세요.
3년 반전쯤에 저는 외국에서 유학 중이었던 졸업반이었는데,
학교를 마치기 직전에 군대호출 및 졸업에 대한 무서움 때문에 작정하고 돌아왔습니다.
(예전에 축구 하다가 운동신경을 크게 다쳤던 게 면제가 됐지만요)
3년 전에 저희 어머니가 동창회 나가서 어떤 아저씨랑 특별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여서 아버지는 저희 어머니를 쫓아내시고 집은 초상집이 되었죠.
저희 어머니가 잘못하신 게 처음 계기는 하지만,
저는 아버지가 가족 안에서 100% 실패했다고 확신 있게 말씀 드립니다.
밖에서는 대단하고 현명하신 지도자로 칭송 받지만, 집에서는 정말 가족사는 몰라보셨습니다.
집에서 당연히 그러시는데, 저는 어머니가 이해가 갔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12년 살고 미국에서 17년 거주했습니다 (왔다 갔다 해서 복잡해요.)
가족과 함께한 나이는 고작 해봐야 16년이었습니다 (현재 외국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저의 가족사로 말씀 드리자면, 아버지는 제 삶에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만큼은요.
저축만이 살길이다 하시면서 열심히 돈을 모으시는 분이셨거든요.
저 역시 그 당시에 그런 일을 겪고 나서 1년 이상을 폐인같이 지냈습니다
귀를 틀어막고, 미친 듯이 게임에만 열중하기를 1년.
2009년 중순쯤에 어머니가 돌아왔습니다. 아버지의 회유 끝에.
하지만 제 확신으로는 그것은 일부의 밑 작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저희 집의 주소지는 어머니이름으로 명의가 되어 있었거든요.
어머니가 돌아오시기 전에 잠시 바람 좀 쐬고 오라고하시면서, 미국의 친척분들에게 1달 보내두시고, 집 명의 및 모든 통장 및 재산정리를 확실하게 마치신 거죠.
그리고 나서, 저희 부모님께서는 이혼을 하시게 됩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무것도 모르시고 그냥 이혼을 하시게 됩니다. 워낙 어머님이 20살 때부터 결혼하시고 세상물정 잘 모르시고 돈에 대한 것도 그렇게 잘 모른 채로, 재산분할 규칙상 50:50이지만,
이미 모든 회계정리를 마치신 아버지에게 아마 20~30%의 재산만 받으시고 집에서 쫓겨나셨습니다.
저는 사실 이때만해도, 25살의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돌리고 무작정 게임 만했습니다.
제가 바보였죠, 한번이라도 마음 크게 먹고 가족을 붙잡았어야 했는데.
이혼은 2009년 12월쯤에 한 걸로 기억합니다.
2010년 1월, 갑자기 아버님이 오더니, 저에게 1 주일 뒤에 새로운 어머니가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어이가 없었죠. 이혼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재혼할 작정인지..
저한테는 평생 성직자로 홀로 살아가시겠다고 다짐하신 아버지였는데.
더 웃겼던 건, 그 아줌마는 예전 저희 아버지가 XX대학교에서 교수를 하실 때 학생이었던
XXX 라는 불여시 더군요. 그 당시에 그 아줌마의 자식들하고 소꿉놀이했었는데, 그 아줌마가 저희 집을 자주 왔었거든요.
어쨌든, 말로는 뭐 이렇게 저렇게 해서 1달 만에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아 부분에서 제가 생각하기로는, 2009년 초중반때부터 만나서 이미 계획을 하고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 당시에도 일이 어떻게 돌아 가든간에 내 알 바 아니다 하고 무시했죠.
그렇게 해서 그 미친 불여시가 저희 아버지랑 살게 되시고,
저에게도 엄청 잘해주셨죠. 어떤 새엄마가 처음에는 잘 안 하겠나요?
이쯤에서 제 자신에 대해서도 말씀 드리자면, 저도 사실 폐인이나 다름없는 형편없는 아들이었습니다. 제가 꾸준히 알바하면서 돈 벌기도 했지만, 아버지카드로 먹을 것도 사먹고 그랬죠.
2월쯤이 돼서, 돌연 변하시는 우리 아버지.
이 아줌마는 심리상담 쪽으로 무슨 공익요원들 가르치고, XX대학교(인지는 정확히)에서는 파트타임 교수를 한다고 합니다. 어쨌든, 제가 보기에는 저희 아버지는 뒤늦은 신혼바람에 아주 행복하게 잘 살아 보였습니다. 근데 문제는 아버지가 점차 그 아줌마에게 세뇌되어가듯이 집에 행사 권 일체를 아줌마에게 포기한 듯이 집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씀도 안 하셨습니다.
돌연 갑자기 말을 하더라도, 어색한 말투로 아줌마가 시킨 말을 더듬더듬 거리면서 저에게 살길을 찾으라고 갑자기 강조하기 시작하셨고, 저에게 일을 구하라고 강요시켰습니다.
그때쯤에 위기의식을 느껴서 무작정 일을 시작해서 그나마 밥은 얻어먹고 다녔지만.
이쯤에서 제 아버지랑 아줌마는 제가 어머니랑 만나는 것을 상당히 반대했습니다.
왜 남에게 집안일을 말하느냐고….. 음.. 제 어머니가 남이겠습니까….
절 낳아주시고 제가 사랑하는 어머니인데.. 어찌 어머니를 만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점점 더 제가 집에 살기에는 조건이 힘들어지고, 결정적으로 2010년 8월에
대학교 및 대학원 준비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아줌마가 저에게 4월쯤에 눈물을 보이시면서 먹고 살기가 힘들다고 어떡하겠냐고 어필을 하더군요.
전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그러면 제가 알아서 해보겠다고 그 냥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야 알았어요.
2009년 초에 재혼할 때쯤에 바로 강남 권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 갔습니다.
제가 정확히 계약이나 이런 거는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까지 빚을 지면서 이사를 갔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무리를 해서 왔는데, 아예 유학 보낼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던 거죠.
쉽게 말해서 아줌마가 아버지를 이용해 보이려고 밖에 안보이더군요.
더 중요한 건, 저는 뒤늦게야 알았지만, 이혼조건 속에 (계약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어머니에게 저의 모든 교육, 즉 대학교 및 대학원에 대한 100%지원을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자기 아들 포기하면서 여자 뒤꽁무니 쫓으신 아버지이십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머니도 정말 억울해하셨지만, 막상 저는 이때만해도 아버지와 그 아줌마의 말만 믿고, ‘그래 내가 돈 열심히 벌어서 유학가야지’, 이렇게만 생각했지 어렵게 생각한적 없습니다.
어머니가 너무 억울하셔서 2010년 12월에는 집에 직접 찾아 오시다가 아줌마랑 길거리에서 만나서 크게 싸우셔서 경찰서에도 끌려가 셨었죠.
이후에도 어머니는 법적으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지만, 변호사를 구해서 하는 것도 비용이 엄청나게 많이 들다 보니까 어머니도 포기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집에서 찬밥신세가 됐습니다. 이 맘 때쯤에 그 아줌마의 자식도 저희 집에 들어오게 되는데요, 그 동생도 그 아줌마의 전남편집에서 푸대접 받고 살다가 저희 집으로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그 녀석이 밉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걔도 피해자니까요..)
아마 그때쯤부터 저는 방안에 있고 쉬고 싶은 날이면, 바깥 거실에서는 히히덕거리고 맛있는 거 해먹고 행복한 일상의 다른 가족이 제 집안에 있어요. 쓰레기 취급 받았죠 저는. 세 들어 사는 좀 벌레보다 못 살았습니다.
뭐 그런 상황 속에서, 저는 아주머니, 즉 아버지와 아주머니의 가족의 일원으로서 잘하지 못했다고 엄청 욕을 들었습니다. 제가 어머니를 만나서 이런 일이 생긴 거라고 하시고, 저와 어머니를 정신병자 취급하셨습니다. 물론 ‘욕’은 안 하셨습니다. 단지 부모님을 욕 되어 보이게 하는 말, 예를 들어 ‘너네 엄마는 진심으로 정신병원에서 정신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을 거 같아’, 이런 식으로 욕을 했습니다. 천 번, 만 번, 한번도 넘어가지 않고 욕을 했고요.
제가 얼마나 상대하기 싫었으면, 나중에 집착적으로 욕을 하시려는 모습을 보고, 피하고 싶어서 경찰까지 불렀겠습니까? 무서웠어요. 정말.. 많이.
전 귀를 틀어막고 일하는 데만 전념하고, 그 이후로 밥을 집에서 한번도 먹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동안에 나름대로 모정이 있는지 아버지께서 노력 안 하신 건 아닙니다. 누구나 다 사람이고 먹고 살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방안에서 라면 끓여먹는걸 보시더니, 성내시면서 뒤늦게 4월쯤에 밥은 같이 먹는 거라고 하시더군요. 뭐 그렇게 해서 어떻게든 조금 더 타협을 하면서 살 줄 알았지만, 제가 공부를 마저 마치고 싶은 의지를 보이면서 이혼요구 중에 학업에 대한 보장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그 아줌마의 심기를 엄청 건드렸나 봅니다.
제가 당연히 받아야 되는 사항인데, 무작정 그것은 나와의 약속이 아니고 어머니와의 약속이기 때문에 저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 2011년에도 유학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친구셨던 교수님에게도 찾아가서 얘기도 하고, 상담도 받았습니다. 이쯤에서 아줌마가 또 미친 듯이 어머니 욕과 심지어 아버지 보는 앞에서 아버지 욕도 하셨습니다. 그 와중에도 아버지는 바보같이 우두커니 서있기만 하고요.. 참지 못했습니다. 욕 한마디 했습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3일 동안 집에서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쫓아내라고, 쫓아내라고, 저런 패륜아를 왜 키우냐고? 당신은 자식을 왜 쓰레기같이 키웠냐고, 지 엄마 닮아서 미쳤네’
아줌마가 어떻게든 저 쫓아내려고 난리였습니다. 전 당연히 무시했죠, 집의 소유는 아버지니까요.
또한 학비 문제 때문에 사실 학교에서 사정 얘기한다고 있는 사실대로 메일에 보냈습니다. 집안일이 생겨서 이렇다. 그걸 보시고 아버지와 아줌마는 화내면서 지원해 주겠다 하던 것도 없던 일로 하고 제가 알아서 살라고 하더군요.
3일 뒤에, 전 회사에서 퇴근 후에 결국 소식을 접합니다.
‘넌 가족으로 타협할 생각이 없는 어른이다. 가족을 위해서 집을 나가라’.
유일하게 기운 내고 버텼던 게 절 믿고 사랑해주는 사람들,
쓰레기 취급 받으면서 집 나가면 그 여자가 계획했던 것처럼 된다는 생각에
뭐하나 꼬투리 잡아서, 새벽 내내 소리지르고, 결국 아버지가 나가라고 하시고..
결국 아줌마 계획대로 잘된 거죠.. 유학자금은 커녕 밥 한끼, 우리 가족사진들, 물품들 하나 챙겨 들지 못하고 쫓겨나갔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저는 흔히 말하는 신림동의 모텔 촌 사이에 작은 월셋방을 꾸려서 계속 돈을 벌어나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사실 희망 따위는 없었죠, 그냥 일해서 언젠가 가겠지..하는 막연한 생각뿐이었으니까요.
뜻밖에 아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친구셨던 교수님이 선뜻 3천만 원을 빌려주셨습니다.
삶을 포기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우선 하고 보는 거라고 말씀하시면서요.
어떻게든 미국에 와서 현재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게임도 끊고, 술도 끊고 열심히 삽니다.
근데 꼭 자려고 하면, 심장 속에 미친듯한 불길이 자리 잡힙니다.
잠을 자고, 꿈을 꿉니다. 항상 화에 미쳐서 잠에서 깨어납니다.
점점 제 자신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억울합니다. 바보같이 멀뚱멀뚱 될 대로 되라 라고 생각했던 제가 싫습니다.
이제라도 싸울 겁니다.
이건 제 자신을 위해서도, 어머니를 위해서도, 그리고 특별히 아버지를 위해섭니다.
잘못을 했으면 달게 받는 게 진리거늘, 이런 사실을 숨기면서 아직도 강의하시는 XXX
교수/목사, 그리고 집안을 초토화신 XXX 교수/프리랜서를 고발합니다.
저 역시 하나님을 믿지만, 교회에 대한 믿음은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이런 허황된 진실로 살아가며,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생각하면,
몸이 쇠약해지신 제 어머니와, 그리고 이런 제 감정을 3년 숨겼던 제가 죽어갑니다..
꼭 부탁 드리겠습니다. 도와주세요.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