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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변론 1# 아버지

오택만 |2011.09.21 19:08
조회 44 |추천 0

 

기독교인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기독교의 교리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어떻게 아버지 하나님이란 분이 사람을 지옥으로 보내는 것이 가능하느냐 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재앙과 환난과 여러 가지 갈등과 불평등을 허락하는 것이 가능하느냐 라고 말합니다.

인류 가운데서 육신의 아버지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흔히 아버지는 보살펴주시고 키워주시는 은혜를 베푸는 존재입니다. 좋은 아버지이지요.

만일 아버지가 낮술을 잔뜩 먹고 들어와서 했던 얘길 이천번씩 또 하는 스킬을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아버지는 아버지입니다. 나쁜 아버지도 일단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탈무드에 의하면 아버지가 존경받을 수 있는 이유는 잘곳과 의복과 식량을

공급해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아버지라는 존재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면 그 존재의 결점도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라는 존재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더라도 그 결점이 보인다고 말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갖고 계시고 둘 중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심지어 자기의 사랑하는 아들에 대하여서, 독생자, 즉 하나님이시면서 육체를 입으신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서도 죄로 말미암은 값을 치르도록 십자가에 못박게 내어주신 것이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관점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될 때 발견할 수 있는 공의에 의한 공정한 심판과 응보를 향하여서 하나님의 결점이라고 판단하고 그러므로 교리의 결점이며 그것은 결국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닐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의도 하나님께 속한 성품이며 사랑도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은 둘 다 아무것이라도 포기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죄에 대한 ‘용서’를 통하여서 영혼의 구원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가능하지만,

죄에 대한 응보, 보응, 죄로 말미암은 그 영향력의 심판은 그대로 있는 것이며 누구라도 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육신의 아버지와 하늘 아버지를 비교할 수 없는 부분은, 육신의 아버지는 실제로 돈도 주시고, 음식도 주시고 집도 주시고 의복도 주시지만, 눈에 보이고 만질 수도 있으며 대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겠지요. 하늘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도 부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선한 사람도 있게 하고 직접 말씀하시거나 직접 나타나거나 만질 수 있게 곁에 있지는 않는 다는 것이겠지요.

여기서 하늘아버지에게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이 ‘만질 수 없어도 있다고 믿는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 아버지에게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도 나의 필요를 공급해주신다,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 라는 것을 믿는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늘 아버지께 가까이 다가간다면 당신도 그러한 은총을 입는 것이 가능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하늘 아버지의 가까이로 가기 이전에 하늘아버지의 ‘결점’만을 보고 자신의 시각 안에서 제한시켜서 더 이상 가까이 나아가지 않는다면 ‘결점’이 ‘공의’로 바뀌어 보이고, ‘불공정’이 ‘선택과 은혜에 대한 감사’로 바뀌어 보이는 기적을 체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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