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종교에 대하여서, 영원에 대하여서, 선과 악에 대하여서, 기독교에 대하여서,
여러 가지 관심을 갖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혼의 문제에 대하여서,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서 관심도 없는 인생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오늘날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자꾸 들어오게 되고, 읽기를 계속 하게 됩니다. 당신의 글에 자꾸 끌립니다.
1.인격적이고 구체적으로 성취된 하나님의 말씀과 섭리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창세기 15:13,14
그리고 그 말씀을 확실하게 이루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출애굽기 1:13,14
하나님은 인격 (신격과 대비되는 의미로서의 인격이 아닌, ‘지.정.의’를 지닌 의지를 갖고 계신)을 갖고 계십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
출애굽기 2:23-25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출애굽기 3:20-22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하여 애굽 사람에게 은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이스랑레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하사 그들이 구하는 대로 주게 하시므로 그들이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였더라”
출애굽기 12:35,36
또한 하나님의 영은 어떤 우주의 자연 에너지가 아니라 인격과 의지를 갖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열왕기상 19:11-13
여호와 하나님은 폭풍 속에서도, 지진 가운데도, 불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지만, 세미한 음성으로 계셨습니다. 호렙 산에서 엘리야에게 세미한 음성으로 만나주신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갔습니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마태복음 3:3-9
그는 기존 종교로부터 교육받지 않았으며, 하나님과 독대하여서 컸습니다. 기존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은 그의 세례를 거부했습니다.
2.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것으로서 ‘자연에너지’와 같은 성질의 힘이 아닙니다.
운동에너지는 힘이 작용하는 방향으로 더 많은 힘을 가하면 더 많은 운동에너지를 갖게 됩니다.
그렇지만 기도는 ‘더 많은 기도’와 ‘응답’이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면 일이 되는 것입니다.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잠언 1:25-30
3-1.남의 잘못에 집중함은 잘못된 것입니다.
기독교의 범죄 목록을 나열하기 위하여서 내가 검색한 단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개독 목사’ ‘기독교 목사 범죄’ ‘기독교인 범죄’
당신도 혹시 기독교인의 잘못된 것을 찾아내기 위하여서 노력해본 일이 있습니까?
보십시오. ‘잘못된 것’만 일부러 찾고 있지 않습니까? 또 남의 잘못만 보고 있지 않습니까?
좋은 것을 보고, 좋은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지 않은 것을 일부러 찾으려 하고 남의 잘못을 들추어내려 하니 기분도 좋지 않고 맘도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굉장한 피곤함까지 느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남의 좋지 않은 면을 드러내고 비방하는 것은 참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괴로운 일입니다.
성경의 잠언서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
11:27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누가복음 6:41
힘에는 방향이 있습니다. 콘크리트 벽을 자신이 미는 작용을 하면, 벽으로부터 자신쪽으로 반작용하는 힘이 형성되고 그 방향을 따라서 밀리게 됩니다.
우리의 내면과 지력과 사고방식도 방향을 갖고 있으며, 그 방향을 향하여서 열심을 낼 때에 그 쪽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반대하고자 하니, 잘못된 부분을 찾게 되는 등, ‘악’을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옹호하고자 하고 기독교에 동의하고자 하면 좋은 부분을 알고 싶어지게 되고 좋은 부분을 찾게 될 것이며, 그러므로 ‘선’을 따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기독교에 찬성할 때 ‘선’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며, ‘선’으로 나아가는 방향에 기독교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신은 참 신입니다.
복음의 빛의 특징적인 한 부분은 이렇습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3:19-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태복음 18:4
3-2.기독교인의 범죄로 기독교의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 삼는 것은 오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8:3 하셨으니 어린이 과학을 비유로 들어서 설명 드립니다.
초등학교 과학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힘X거리>와 <일>의 원리를 가르치기 위하여서 야구 배트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두 아이를 택해서, ‘온 힘을 다해서 팔씨름을 해보라’고 실험1 시켰습니다.
아이S가 아이P를 이겼습니다. 아이S는 아이P보다 힘이 센 것입니다. 이것을 아이들에게 상기시켰습니다.
이제 야구배트의 몽뚝한 부분을 아이P(약한아이)가 잡고 시계방향으로 돌리게 하고, 반대편에서 마주 서서 야구배트의 가늘은 부분을 아이S(힘쎈아이)가 잡고 시계방향으로 돌리게 했습니다.
이 때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야구배트가 어느 쪽 방향으로 돌아갈지를 맞춰보라고 했습니다.
각자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아이S와 아이P의 실험2을 진행시켰습니다. 야구배트의 몽뚝한 부분을 잡은 아이P(약한아이)가 팔씨름엔 졌음에도 불구하고 자신 쪽에서 시계방향으로 돌렸습니다.
<일> = <이동한 거리 X 힘>
이는 아이P가 아이S보다 힘이 세지 않더라도 몽뚝한 부분은 지름이 크기 때문에 <이동한 거리>가 길고, 가늘은 부분은 지름이 작기 때문에 <이동한 거리>가 짧으므로, 같은 양의 <일>을 할지라도 <아이P의 힘X많이-이동한 거리>가 <아이S의 힘X적게-이동한 거리>보다 단위 시간 동안 더 적은 힘으로 같은 양의 <일>을 할 수 있으므로 아이P가 이겼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실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실험에서 [만약], 선생님이 아이P와 아이S의 팔씨름 실험1을 시켜서 결과를 봐놓고선 아이S를 들여보내고 새로운 아이T를 세워서 팔씨름 없이 실험2을 하게 했다면, ‘이동거리차리’ 때문에 이기고 지고 한 것인지, ‘힘차이’ 때문에 이기고 지고 한 것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며 잘못된 실험2이었을 것입니다!
무엇인가 인지하셨습니까? 기독교인들의 범죄를 드러내며, 그것으로 기독교 진리를 비판하는 것은 이[만약]의 경우와 똑같은 오류를 범하는 일인 것입니다!
‘사람의 행실’이 곧 ‘진리의 진실성’을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이S와 아이P의 팔씨름 실험1을 통하여서 아이S와 아이P의 힘의 차이를 알게 되었다면 그 아이S와 아이P를 실험2의 결과에 연결되는 원인으로서 인식하여서 진행할 수 있는 것이지만, 아이T가 아무리 같은 교실 안의 같은 반 아이라고 할지라도, 아이T를 실험1에 참여시키기 이전까지는 아이T의 힘에 대하여서 전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이므로 아이T를 실험2의 결과와 연결시켜서 생각할 수는 없는 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 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누가복음 6:43-45
사람의 행실은 그 사람의 마음에 쌓은 것을 판단하는 자료인 것입니다.
사람의 행실은 그 사람이 나쁜지 좋은지를 판단하는 자료인 것입니다.
“기독교 진리”자체를 “기독교인의 행실”로 말미암아 판단하는 일은 ‘서로 인과관계가 부족한 요소들’을 ‘억지로 엮어서 해석’하는 오류인 것입니다.
4.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영은 온전함을 추구합니다.
결코 허황된 가능성을 믿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믿음을 갖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통신호를 잘 지키자 라는 율법이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세상 보통 방법으로는 교통신호를 지키면서도 운전대를 잡고 온갖 욕을 하고 신호등을 만든 사람을 원망하고 불평하더라도 오직 교통신호만 잘 지키면 잘 지킨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기독교의 법대로라면 교통신호를 지킬 때에도 어떻게 지키는가 하면, “교통신호등을 만든 사람에 대한 감사”와 “교통신호를 지키는 일에 대한 즐거움”을 갖고서 지키는 것이 합당한 것입니다.
또한 아주 옛날 우리나라에 기독교 신앙이 전파된지 오래지 않았을 때 어느 마부가 예수를 믿고, 자기 주인에게 예수를 전할 기회를 엿보다가 어느 날 주인을 태우고 가면서 전하게 되었답니다.
“나리, 예수 믿으십시오!”
“이놈아 너같은 상놈이 예수 믿는다고 누가 양반이라도 시켜준다더냐?”
“나리, 예수 믿는 도는 그런 것이 아닙지요. 제가 예수를 믿으면 마부 일을 더 잘 해야 하는 것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