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사성 탈환에 나서다.
안시성에서 당 수군이 장산군도해전(長山群島海戰)에서 패배했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태종은 노발대발하여 즉각 장량을 파면하여 백의종군(白衣從軍)시켰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패군지장인 장량은 황제가 자신의 목을 베지 않은 것만 해도 감지덕지했다.
장량의 후임 수군 대총관에는 장문간이 임명됐다. 장문간은 지난번 패수 진공작전에서 연개소문에게 참패를 당해 본국의 내주로 쫓겨가 있다가 황제의 명령을 받자 증원 병력 6만 5천명, 함선 8백척을 이끌고 발해만을 가로질러 비사성으로 건너왔다. 8백척의 함대 가운데 절반 이상은 태종의 본군에게 보급할 군량수송선이었다.
당군의 이런 움직임을 파악한 연수영은 장산군도해전의 후유증이 채 가시지도 않았지만 대책 마련에 부심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평양에서 이복 오라비 연정토가 연수영의 전공(戰功)을 시기하여 시도 때도 없이 누이동생을 헐뜯어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연정토는 개전 초기 연개소문의 명령에 따라 국내성의 응원군을 이끌고 요동전선으로 출전했다가 이세적의 당군에게 대패한 적이 있었다.
그 일로 연개소문이 평양성으로 소환하여 근신하도록 했는데, 연수영의 승전보를 들을 때마다 배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연수영이 전공을 세워 군주(軍主)에서 원수(元帥)로 승진하고, 연개소문도 대군을 거느리고 오골성(烏骨城)에서 반격의 기회만 노리고 있는데, 자기만 혼자 도성에 죽치고 앉아 근신이라니, 이럴 수는 없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연정토는 주변의 장수와 대신들에게 이렇게 떠벌이고 다녔다.
“원래 수군은 내가 맡기로 되어 있었소이다. 그런데 형님께서 처음에 수영을 석성에 보냈더니 저렇게 운이 좋아 몇 번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니겠소?”
그런 정도였으면 듣는 사람들로서는 그런가보다 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면 그만일 텐데 또 이런 허튼소리도 덧붙였다.
“수영이 지난번 해전에선 무리를 하는 바람에 아까운 군사를 3천명도 넘게 죽게 했다지 뭣이겠소? 한 척의 배도 아까운 판국에 병선도 2백척이나 잃었다는구려! 그런데도 무슨 큰 승첩(勝捷)이라도 거둔 것처럼 원수 벼슬을 내리다니, 이거야 원 참 기가 막혀서! 계집년에게 원수가 다 뭐야, 원수가!”
듣다 못한 사람들이 이렇게 핀잔했다.
“여보쇼, 연 대인! 이름값을 좀 아시오. 연수영 장군은 당신의 누이동생이 아니오? 혹시 흉허물이 있더라도 덮어주고 감싸주는 것이 형제·자매간의 도리거늘 당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에이, 참! 내 안 들은 걸로 하리다!”
그래도 연정토는 쉴 새 없이 연수영을 음해하고 다녔다. 요는 제가 다시 장수가 되어 일선으로 나가야겠다는 소리였다. 그래서 빛나는 전공을 세우고 더 높은 벼슬을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연정토는 걸핏하면 황궁으로 들어가 보장태왕을 졸라댔고, 압록수를 건너 오골성으로 연개소문을 찾아가서 연수영을 헐뜯고 일선으로 보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형님! 제발 절 요동으로 보내주세요! 이번에는 틀림없이 잘하겠어요!”
“도대체 요동 어디로 보내달란 말이냐? 내가 보기에 요동이고 어디고 네가 갈 만한 전쟁터는 없는 것 같구만!”
“아, 비사성이 있잖습니까? 비사성이요!”
“비사성?”
“그렇습니다요! 지금 이 시간에도 오랑캐들이 비사성에 군량을 산처럼 쌓아두고 안시성을 공략하는 이세민에게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요? 아, 수영이는 수군을 거느리고 여태껏 비사성도 되찾지 못하고 뭘 하는 거야!”
“넌 왜 그렇게도 수영이를 미워하는 게냐? 어머니가 달라도 어쨌거나 단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아니냐, 응? 형제간의 우애도 모르는 못난 자식 같으니……. 이젠 나잇값을 좀 해라!”
“그렇지만… 비록 수영이가 당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여러 차례 적의 함대를 무찔렀다고는 하지만 비사성을 되찾지 못했기 때문에 당군의 병력이 계속 증강되고 군수물자도 원활하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분명 수영이에게 장수로서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사실입니다. 제가 출전하면 비사성 정도는 이틀만에 되찾을 수 있습니다.”
연개소문은 불세출의 영웅호걸이었지만 아쉽게도 한 가지 결점이 있었다. 사람인 이상 누구에게나 장점이 있으면 결점도 있게 마련이다. 공포의 대왕처럼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격하고 무서운 연개소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가족에게는 관대했다. 전에 연수영에게도 싫은 소리를 들었지만, 겨우 아홉 살밖에 안 된 맏아들 남생에게 소형 벼슬을 준 것만 봐도 그랬다.
좌우지간 그렇게 해서 연개소문은 연정토에게 다시 한번 넘어가고 말았다. 전에 그에게 응원군을 맡긴 것처럼 이번에도 3만명의 보병과 1만명의 기병을 주고 또 다시 병마원수로 임명해 비사성을 치라고 보낸 것이었다. 일이 그렇게 됐던 것이다. 연개소문은 하나밖에 없는 사내 아우가 전공을 세워 남들에게 당당하게 나서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 대신 엄한 말로 다짐을 두었다.
“이번에도 실패한다면 다시는 내 눈앞에 나설 생각을 말아!”
연개소문은 못 미더운 동생에게 훈계했다.
“잘 들어라. 내 너에게 병법에 관해 한 마디 일러두마.『손자(孫子)』의「군형(軍形)」편에 승리하는 군사는 먼저 이긴 뒤에 싸움을 구하고, 패배하는 군사는 먼저 싸운 뒤에 이기기를 구한다는 구절이 있다. 전쟁은 나라와 백성의 생가가 걸린 막중대사인 만큼 필승을 기해야 하고, 승리를 위해서는 만반의 준비를 갖춰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완전한 승리의 기틀을 굳혀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미 당적과 전쟁을 시작했으니 만큼 반드시 이기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와서 네게 병법을 모두 이야기할 수는 없고,『손자』의「모공(謀攻)」편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만 다시 일러줄 터이니 잘 새겨두도록 해라. 손자는 승리를 할 수 있는 방법은 다섯 가지가 있다고 했다. 싸워도 좋은가, 싸워서는 안 되는가를 할고 있다면 승리한다고 했다. 병력이 많거나 적거나 용병을 잘하는 자는 승리한다고 했다. 또 상하의 뜻이 일치하면 승리한다고 했다. 아군은 피로하지 않은 채 적이 먼저 지치기를 기다리면 승리한다고 했다. 장수가 유능하고 임금의 간섭을 받지 않으면 승리한다고 했다.『손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험하지 않고, 적을 모르고 나만 알면 한 번 이기면 한 번은 질 것이요, 적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싸울 때마다 패배하리라[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貽]. 군사를 거느리고 적과 싸우는 장수로서 이 명구는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야. 알아들었느냐?”
“네, 형님. 그거야 다 배운 얘긴데요 뭘……”
대꾸가 영 시원치 않았다. 연개소문은 마음속이 영 불편했다. 연정토의 군사적 재능이 볼품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못미더운 나머지 연개소문은 오골성주 추정국의 양해를 얻어 오골성의 기병대장 대사자 고돌발을 참좌(參佐)로 삼아 딸려 보냈다.
그때 고구려군의 최고 사령관인 대막리지(大莫離支) 연개소문(淵蓋蘇文)은 오골성에서 친위부대를 비롯해 10만의 주력군을 거느린 채 태종이 친히 이끄는 당군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당시 안시성의 운명은 풍전등화와도 같았다. 만일 태종의 본군이 안시성을 함락시킨다면 곧장 편령을 통해 천산산맥을 넘어 오골성으로 직행할 것이고, 실패한다면 건안성을 노릴지도 몰랐다. 또 만일 당군이 건안성을 함락시킨다면 청석령을 넘어 오골성으로 진격할 것이 분명했다. 따라서 연개소문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오골성과 박작성, 그리고 압록수 전선을 몸소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시 지휘권을 얻는데 성공한 연정토는 군사를 거느리고 비사성으로 향했다. 그런데 큰소리는 치고 나섰지만 천험의 요새인 비사성을 어떻게 공격해야할지 난감했다. 타고난 성품이 용렬하고 겁쟁이인지라 두려운 생각부터 들었다.
연정토는 미리 생각해둔 대로 광록도에 주둔하고 있는 연수영에게 전령을 보내 자신이 지휘하는 육군은 북쪽에서, 연수영 휘하의 수군은 남쪽에서 수륙협공작전을 펼쳐 비사성을 탈환하자고 제의했다.
연수영은 연정토가 다시 일지군을 거느리고 전장에 나섰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비록 연정토가 이복 오라비이긴 하지만 그의 사람됨이 신통치 못하고 군사적 능력이 형편없다는 사실을 연수영은 어려서부터 지겹도록 보아온 바였다. 지난번 작전 임무도 개죽을 쑤어 고구려군을 난처한 상황으로 몰고 동부가의 얼굴에 먹칠을 한 연정토가 아닌가? 그런 연정토에게 또 다시 군권을 쥐어준 큰오라비 연개소문의 조치가 못마땅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래도 전쟁의 승리라는 대국(大局)을 위해서 연수영은 그의 제안을 수락했다.
4만명의 육군이 배후에서 협공해준다면 현재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3만여명의 군사와 3백여척의 군선으로 비사성을 충분히 탈환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비사성은 고구려 수군에게 가장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기 때문이었다.
연수영은 장수들을 불러 작전회의를 열고 비사성 진공 방안을 협의했다. 작전회의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앉아 있었다. 지난번 장산군도해전에서 전사한 강철우와 고대수 등의 빈자리를 메웠던 것이다. 그 무렵 병마대원수 고정의 휘하에서 당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벌이다가 연개소문의 특명으로 자신의 근무지를 수군 쪽으로 옮긴 온사문이 연수영의 참좌가 되어 있었다.
비록 온사문은 나이가 연수영보다 네 살이나 더 많고, 군대에서도 선배였지만 현재 계급은 연수영이 상관이었다. 연수영은 4품관인 태대사자(太大使者)로서 원수(元帥)였고, 온사문은 6품관인 대사자(大使者)로서 모달(模達)이었다. 연수영은 사석에서는 온사문을 오라버니라고 불렀지만, 온사문은 공석에서는 연수영을 깍듯이 ‘원수님’이라고 불렀다. 기꺼이 연수영의 휘하 막장(幕將)이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참좌 역할을 했던 대형 장운형은 강철우의 빈자리인 전위장을 맡았다. 또 돌격장 모청호의 부하로서 지모와 용맹을 겸비한 14품관 선인 해광윤(解光允)을 일약 10품관인 소형으로 발탁하여 고대수의 빈자리인 후위장을 맡겼다.
그동안 연정토와 고돌발의 군대는 오골성을 출발하여 박작성·적리성·성산성·오고성을 거쳐 비사성 북쪽으로 진군했다. 연수영이 함대를 이끌고 광록도 기지에서 출전한 것은 645년 9월 11일 새벽. 군사 3만명에 크고 작운 전함 3백여척이었다. 자신이 거느린 전 병력을 총동원했던 것이다.
비사성을 본영으로 삼은 당 수군 총사령관인 평양도행군총관 장문간은 고구려 수군이 광록도를 떠나 비사성으로 진격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자 부하들에게 현 위치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비슷한 시각에 고구려군의 움직임을 보고받은 태종은 강하왕 이도종에게 군사 5만명을 주고 연정토가 이끄는 고구려 육군을 저지하도록 했다.
먼저 양국 수군이 조우한 것은 9월 12일 오시 무렵이었다. 당 수군은 비사성 남쪽 근해에서 이자방진(二字方陳)을 펴고 좁은 협수로를 틀어막으며 필사적으로 고구려 수군의 진격을 저지하는데 전력투구했다.
“전 함대, 장사진(長蛇陣)을 펴고 공진(攻進)하라!”
연수영이 붉은 군령기를 높이 올리며 공격 명령을 내렸다. 진격의 북소리와 고각소리가 일시에 울려 퍼졌다. 모청호의 돌격대가 대장선을 앞질렀다. 장운형의 전위대와 담열의 좌위대가 그 뒤를 이었다.
“노포수, 방포(放砲) 준비!”
“궁수는 수사(水射) 태세를 갖추어라!”
“격군장(格軍長), 전투속력!”
마침내 적선들이 노포의 사정거리 3백보 이내에 들어왔다.
“지금이다. 방포하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전열의 전함부터 노포를 연발했다. 수백개의 돌덩이와 철창, 화토병이 우박처럼 적선으로 날아갔다. 당군도 반격에 나서서 죽을 힘을 다해 포차와 쇠뇌를 발사했다.
“궁수들은 활을 쏴라!”
2백보까지 근접하자 방패수의 호위를 받으며 궁수들이 일제히 단궁(檀弓)의 시위를 힘껏 당겼다. 수백개의 화살이 빗발처럼 날아가 적선으로 떨어졌다.
“직사(直射)하라!”
유효사거리 1백보로 근접하여 수평사격이 시작되었다. 하늘을 향해 곡사(曲射)하던 궁수들이 일제히 적선을 정면으로 마주보며 수평사격을 개시했다. 노포든 활이든 사격 솜씨는 아무래도 고구려군이 한 수 위였다. 똑같은 양의 돌덩이를 쏘고 화살을 날려대도 맞아서 거꾸러지는 쪽은 당군이 훨씬 많았다. 벌써 불이 붙어 검은 연기를 풀풀 내뿜으며 타오르는 당군 전함도 있었다.
당 수군의 주장 장문간은 누선 위에서 독전하다가 전세가 불리해지자 부장들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화공이다! 협선에 불을 붙여 적의 함대로 말어붙여라!”
당군은 불붙은 중선·협선은 물론 멀쩡한 협선 20척을 골라 급히 불을 질러 고구려 전함 쪽으로 밀어 보냈다. 적군이 화공을 펼치자 고구려군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 후위에 있던 중선·협선들이 급히 쫓아 나와 불붙은 당군 선박을 격침시키거나 쇠밧줄을 걸어 전역(戰域) 밖으로 끌어냈다. 그 사이에 당군 함대는 이미 30척 이상의 누선·중선이 불타고 부서지고 격침되었다.
“저런 자라새끼 같은 놈들!”
장문간은 펄펄 뛰며 화를 냈다. 자라니 거북이니 하는 소리는 예나 이제나 서토인들이 자다가도 거품을 물고 벌떡 일어날 정도로 듣기 싫어하는 가장 심한 욕이다. 함대 간의 거리가 50보까지 접근하자 연수영은 패검을 빼어들고 명령했다.
“도선하라!”
노포수와 궁수들은 몸을 낮추고 재빨리 무기를 바꾸어 잡았다. 적선에 뱃전을 대기가 무섭게 사다리와 판자를 걸치고 쉴 새 없이 건너갔다. 고구려 군선보다 뱃전이 높은 당군의 전함에는 쇠갈고리 밧줄을 걸고 기어올랐다. 이내 백병전이 벌어지고 비명과 고함이 바다와 하늘에 울려 퍼졌다. 하늘은 수십 척의 불타는 전함이 내뿜는 시커먼 연기 때문에 어두컴컴했다.
“에잇, 두고 보자! 괘씸한 까우리 계집. 후퇴하라!”
당 수군은 황급히 뱃머리를 돌려 비사성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결국 이날의 해전도 연수영의 승리로 돌아갔다. 장문간은 이날 전함 1백여척에 1만여명의 군사를 잃고 비사성으로 퇴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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