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ction bluring(){
if(event.srcElement.tagName=="A"||event.srcElement.tagName=="IMG") document.body.focus();
}
document.onfocusin=bluring;
*/
function openWin1(url) {
var width_ = 407;
var height_ = 350;
var left_ = screen.width;
var top_ = screen.height;
left_ = left_/2 - (width_/2);
top_ = top_/2 - (height_/2);
window.open(url,'cafeinfo','height='+height_+',width='+width_+',status=0,scrollbars=1,resizable=1,left='+left_+',top='+top_+'');
}
1동 |
2동 |
3동 |
4동 |
5동 |
6동 |
CC |
동문 |
지역 |
기타
바로가기 내블로그가기 마이페이지 칼럼 레슨 게시판 뉴스 동영상 동호회 블로그 쇼핑
골프&바둑
Since : 2004-05-30
대표운영자 :
bkk072887
총회원수 : 16명
총게시물수 :
884건
[게시판]
자유게시판
회원전용
UCC게시판
[앨범방]
사진방1
[자료실]
자료실
대회기록실
[베스트]
베스트
자유게시판
일인골프팀
글쓴이 : 자연류
등록일 : 2009-10-02 00:36
조회수 : 156
3남 2녀 형제 자매중에 별로 친하지 아니한 여동생!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하다시피 활동중단중인 작은 여동생입니다.
어머님 삼우제 지내고 모처럼 모인 온가족앞에서
'축하해 작은 오빠!'
그저 무뚝둑하게 ,,,
'그래 고맙다'
사실 친하지는 않아도 항상 미안한 마음은 있습니다만은...
큰오빠이자 보육원골프단 을 창단하시고 목자의길을 걸으시는 (형님)백단장님과는 가깝게 지내는 사이이고...
작은오빠이며 과거 록그룹 [부활]의매니져인 나하고는 음악적 취향이 달라 별 교류가 없이 지냈습니다.
당근 내가 이혼한 사실도 제일 늦게 알았을것이고...
조카인 현범이가 보육원에 들어가 골프한다는것도 아마 가족중에 젤 늦게 알았을... 겁니다.
다만 내가 제일 미안하게 생각하는 점은 ....
스타인 가수 민해경의 조카가 보육원에 있다면 얼마나 위신이 깎일까?하는 우려였습니다.
말많은 대중들은 별말을 다하겠죠...
조카하나도 돌봐주지 않는다고요...
올 7월초 불쑥 말하더군요
'세미딴거 축하해...내가 이제부터 좀 도와주까?'하는게 아닙니까?
그때 옆에계셨던 형님 께서...
'그래 해경이가 도와주면 좋지 '하는데 뭔가 속에서 울컥하는 병이 발짝하는것이였습니다.
'됐다! 스탑! 말만이라도 고맙 지만 정중히 사양하겠다'
맘에 없는 말이 또... 먼저 튀 어 나 갔 습 니다.
화를 벌컥냈습니다.
불치의 병이 발작 된것입니다.
갑자기 그동안의 온갖 상념에 목이 메어 눈물이 핑~ 돌며...
생각 나는 분이 계셨습니다.
블루맥스!
b,m이란 아이디로 유명하셨던 그 분이 생각이나 눈물이 흘렀습니다.
김 덕준 선배!
어디 계십니까?
내 글 읽고 있지요.
꼭 한번 보는겁니다.
*****************************************************************
요즘들어 어머니의 빈자리가 유독 컸다는 생각에가슴이 허한데...
골프하는아들녀석의 연상의 이성문제로 크게 다투고는 무슨 쓸말이 많은지 부쩍 컴앞으로 다가 갑니다. 지난 10년의 세월이 자꾸 떠오릅니다.
************************************************************
2002년 2월과 3월 사이의일만 써도 한참 쓸것 같습니다만 ...
또 생략하겠습니다.
안양 아성골프장의토지가 해관보육원이였던것입니다.
순간 생각이 아니 형님도 1999년 보육원골프단 창단할때 이런데서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생각이들더군요.
내가 한번 해관보육원에 건의해보까?....
사실 이때즈음에 축구 김병지골키퍼도 축구가 하고싶어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부산 소년의집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는사실을 기사를통해 알았습니다.
해마다 부산에 내려가 소년의집에 들러 아이들과 함게하고 소년의집의 희망이빛역활을 한다고 합니다.
(나도 저렇게 될수있을까?)
해관 보육원을 찿았을때는 그런 기대감에 잔뜩 부풀었습니다만...
뭔가 어색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나의 생각이 제데로 전달되지 않은탓인지는 몰라도...
해관보육원 골프팀창단에 좀 시큰둥한 반응이였습니다.
이런 민감한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기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며칠후 큰여동생이 전화왔습니다.
"오빠 어떻게됐어 시장 사모님이 궁금해하시던데..."
"아 그거 그냥 그래... 아성 연습장서 그냥 혼자 연습만해.괜챦다 신경쓰지마라!'
하고 끊었습니다
일이 끝날려면 거기서 모든일이 끝나야되는데...
며칠후..
"작은 오빠? 내일 안양보육원으로 점심때 가보세요"
"아니 왜?"
"시장님이 직접 안양 보육원으로 전화를 하셨데요. 한번 가보세요"
"그래 ,,아니 뭐 그렇게 까지나..."
너무 황송하가 짝이 없더군요.
다음날 아침일찍 찿아갔더니....
사지숙 원장님께서 직접 반갑게맞아 주시는것이 아니겠습니까?
모든 이야기가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이 이야기도 길게 쓰자면 한도끝도없습니다)
또 생략하고...
이리하여...
안양의집...아니 당시에는 안양 보육원 여자 골프팀이 탄생합니다.
감독 /백강기
선수겸 원생겸 코치/백현범
전원여자원생 으로구성된 10명의 [안양보육원 여자골프팀]이 탄생됩니다.
그렇게 창단은 엉뚱한데서하고 연습장은 이미 하고있는 아성골프장에서 새로 허락을 받고
레슨은 간간히 표프로님에게 받고 나는 나데로 후원받을수있는 곳곳을 찿아다녔습니다.
제주도 처럼 쉽지만은 안더군요..
그렇게해서 2002년 3월 안양보육원에 재 입소하고 안양중학교입학과 함께...
다시 제4회 제주도지사배에 혼자 출전할 준비를 하고있었습니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한편의 드라마는 있기마련....
점점 책으로 출판해 보겠다는 마음이 굳어집니다.
가장 큰 목적은 아들의 골프인생에 찿아올 슬럼프때를 위해서라도 이 기록적인 글들이 반듯이 필요할것 이란 확신 때문이죠.
아들아~ 결코 포기하지라!!
************************************************************
쓰고싶은 이야기가 많아 이제부터는 시합 위주로 쓰겠습니다.
2002년 안양보육원 재입소와 안양보육원 여자골프팀창단(후에 안양의집 일인골프팀으로 운영됨)
그리고 안양중학교 입학!
'원장님 ! 이번 제주도지사배대회는 현범이 혼자 출전 하겠습니다.'
아직 여자팀들을 출전시키기에는 좀 무리가 있을듯합니다하고 조심스레 말했다.
(이때가 2002년 3월20 쯤 일입니다.)
원장님 말씀!
'잘하고있는 아들을 너무 심하게 몰아치지 마세요.'
'갔다오시면 할말이 있는데 시합잘하고오세요 '하시며 봉투를 주십니다.
비행기표값으로 15만원을 넣어주시더군요.
당장에 도로 드리며...
'원장님 제 아들을 포함 전체 골프팀운영에 보육원의 예산은 사양하겠습니다. 제힘으로만 꾸려 가 보겠습니다'
웃으시며...
'뜻은 알겠지만 서로 돕는 것이 아이들을 위해 좋치않을까요.
역쉬나~평생을 보육사업하신분이라 뭔가 틀렸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
아이들을 위해서....
원장님의그한마디가 앞으로의 내 힘에 커다란 힘이 될것같았습니다.
'엣 알겠습니다,명심하겠습니다'
드디어 제주도를 다시갑니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장장 16시간의 긴 항해를 하며...
배 위로는 비행기가 납니다.
그래 !언젠가는 저 비행기를 타고 월드투어를 할날이 있겠지...
******************************************************************
보통 제주도지사배대회는 동계훈련이 끝나고 그동안의훈련성과를 체크해보는동시에 국가대표나 상비군이되기위한 점수가 상당히 커 주니어시합치고는 마스터즈급에 속합니다.
특히 컷오프만 통과해도 그랜드호텔에 연회를 베풀어주십니다.
연회규모를 떠나 전국주니어대회에서 오직 제주도에서만 행하여오는 의식이죠.
최고의 권위대회를 입증합니다.
그곳에 참석하지못하고 예선탈락하여 보따리 싸서 서울로가는 부모들의 축쳐진 어깨를 생각해보십시요.
시합일은 매년 3월25~30일 사이에 열립니다.
예선전 하루
본선전 이틀
내가 떨리는 심정으로 밤새 청해진 뱃머리에 부딯치는 파도를 보며 ...
그렇게 제주로...제주로...향했던기억이 새롭습니다.
아들녀석은 다행히 뱃멀미없이 잘 자고 있었엇습니다.
[실전과 연습의 반대개념]
인천항에서 전날 저녁 7시에 출항하여 다음날 아침 10시넘어도착하면 그냥 아무일없이 피곤합니다.어른일지라도 그런데...중1짜리 아이에겐 피곤 그 자체였을겁니다.
하지만 두가지 목적으로 배를 탔습니다.
첫째는 경비절감입니다.
인천 청해진호에 승선비는 세금 몇천원만 내는 조건으로 승선허락을 해주신겁니다.
두번째는 왠지는 모르겠으나 아들의 시합전 몸컨디션을 인위적으로 최고의 나쁜상태로 출전해보는것은 어떨까?하는 나만의독특한 발상이엿습니다.
다들 최적의 상태를 만들려고 하는데 난 정 반대의 개념을 갖고있었습니다.
(다만 아들이 눈치채지못하게...)
먼훗날 미대륙을 횡단하며 전셰계투어를 하려면 체력안배가 중요하다던데...
막연한 생각이지만 현재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나만의 태도였습니다.
핑계치곤 제법 그럴듯한것 같습니다.
(까짓거 어차피 풍요롭게 해주는 골프가 아닌데...)
(옛날에 록그룹 [부활]도 어렵게 음악했는데..)
'야~범아 괜챦냐? 피곤하지'
제주항을 내리며 물었습니다.
'아니 뭐~별로,,,'
다행이였습니다.
'우리 택시탈까?'했더니
'에 이 ~비싸쟎아 버스타자 아빠~'
'그러자 그돈으로 밥이나 사먹자'
그렇게해서 오라컨트리까지 그랜드호텔까지 갑니다.
그랜드 호텔앞에 오라행 셔틀버스를 타면 되니까요.
그때 아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 중학교부터는 빽티에서 친다! 고등학교 형들하고 같은 티에서 티엎을하니까?
넌 못친다고 거리가 안난다고 쫄지만 마라!,
시합성적에 대해선 절대 100타를 쳐도 책임을 묻지안겠다!.
다만 앞으로 6년후 2007년 고3때 이 제주도지사배대회때 3등안에만 입상해주었으면한다.!
중학교와 고2때까지의 이 제주도지사배대회는 연습라운딩으로 생각해라 알았지?~
그외 이런 저런 이야기를 최면하듯이 주입시켯습니다.
( 하지만 그때 아들이 이런 내 말뜻을 알아 들었을리는 없었을것 입니다.)
^&^
임시숙소를 정하고,,,
당장가보고싶은곳
제주 홍익보육원을 찿았습니다.
반갑게는 맞아주셨는데 아이들이 안보입니다.
제2팀 이 해산된겁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돌아서며...
(내가 떠나지 말고 그냥 형과 대립해가며 있었을것을 아이들을 위해서...)
(그러나 후에 안사실이지만 이때 형님도 제3세력에의해 밀려?난상태였더군요)
보육원 원장님들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서....
이 화두가 자꾸 맘에 걸리더군요...
이제 기다리던 시합날입니다.
당연히 크게 기대 할수없는 대회죠
한 5~6개월쉬었죠.
초등학교때보다 훨씬뒤에서 티엎하죠.목표는 90타만 깨기 입니다.
결과는 87타였습니다 물론 예선 탈락입니다.
그래도 가슴뿌뜻했습니다.
골프를 다시할수있어서요,,,
형님 백단장님을 봤습니다.
크게 아는척 안할려고 돌아서는데...
'골프 다시 하는거냐?'하시더군요.
퉁명스럽게...
'왜 내가 못하기라도 바랬수!'
획~하고는 냉랭히 돌아섰습니다.
그래도 형만한 동생없다고...
'도울일 있으면 예기해라!'
'알았시다'
그러고는 컷오프탈락과 동시에 다시 제주항 배를 탑니다.
다시 인천으로 갑니다
이렇게 해마다 우리 父子는 배를 타는데 익숙해집니다.
이제 다음 목표는 제2회 목포대학교 총장배 대회!
그 대회는 이상하게 뭔가 한건 힛트칠것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사전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
(안양보육원 사무실)
"원장님 죄송합니다."
"아니요 수고하셨읍니다"
안양에 도착하자 마자 원장님 부터 인사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참가자 전원에게 선물로 주는 서귀포 감귤 한세트를 내놓았습니다
"몇달 쉬었더니 별로 성적이 나지 않네요.내 년엔 더존 성적을 내겠습니다"
"별말씀을요...내가 골픈 잘 모르지만...우리 원생이 그것도 중1짜리가 87타쳤다니까 ..
다들 놀라던데요 "하며 웃으십니다.
좀처럼 웃으시지 않는 근엄한 분이시거든요.
"참 감독님! 앉아보세요 .할 얘기가 있어요"
"무슨 말씀인데요"
"여자팀자체를 포기하시고 범이 하나에만 집중하시면 어떻겠어요?"
"아니...왜 그런 말씀을..."
"백감독님이 무슨 뜻을가지고 우리 안양보육원에 왔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다만 이것이 인연이라면 오직 아들 하나에만 집중해서 좋은결과가 나온다면 더 뜻깊은 일이 될것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순간 뒤통수를 때리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정곡을 찌르시는 겁니다.
감히 거역할수없는....
"정말 그리해도 괞챦겠습니까? 원장님!"
"그럼요 오히려 분산됨을 막으세요.한가지... 아들을 너무 닥달하지 마세요,제가보기에는 너무잘하기를 바라시는것같아요 역효과가 나올수있습니다.유념하세요"
역시 정말 많은 문제를 않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키워내시고 보호 관리 육성한분이라 그러신지 예삿 말씀이 아니였습니다.
"엣 늘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일인 골프팀으로 가겠습니다"
"네 그렇게하세요 그리고 천천히 하세요.아름다운 빛깔의 나비가 태어나는것은 다 때가 되야지 빨리 보고싶다해서 누에고치를 숙성시키면 흉물스런 괴물날개를 가진 나비가 탄생됩니다"
정말 보육원 사무실을 나오면서 가슴이 찡함을 느꼈습니다.
그래 이 안양보육원에서 내 아들을 시드 프로로 만들수있겠구나...하는 막연한 생각에 가슴차오르던 순간이 였습니다.
당장 두개의 시합준비를 해야했습니다
충청일보대회와 목포대학교 총장배대회에 전문을 뛰웠습니다.
목포대학교측에서 회신을 받아 냅니다.
특별 출전을 허락한다고...
무안시씨에 묵을 숙소가 없어,,,목포대학교 주임 교수님 숙소를 제공해주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이미 무안 씨씨는 평지이고... 해안선에 위치해 중문라운딩 경험이 있는 아들에게 유리할것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2년 4월 이였습니다.
그리고 이 목포대회에서 마지막 3일째 압박골프를 실험삼아 해봅니다.
그 글도 이곳 골스에 올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기록이 기억보다 강한가봅니다.
결과는 1등에서 5등까지는 상장과 부상이 주어지지만 6등은 딸랑 상장 하나만 줍니다.
그 6등을 합니다.
부상없이 딸랑 6등 상장 하나 ...
처음 입상해보는 지역 대회였습니다.
그 글을 퍼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