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우린 만나고 또 이별합니다.
크게 의미를 두는 만남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읽고 접했던 많은 글들과 댓글들을
통해서 재밌게 놀았고 즐겼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삶에 즐거움이 가득하시길 바라지만,
참된 행복은 그리스도 안에만 있다는 사실을 기억시켜드리면서 닫는 메세지를 남기고 가겠습니다.
화내는 일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화내는 일은 좋은 일이 아닙니다.
가족들이 아주 많이 살고 있는 어느 집에 강도가 들어왔습니다.
강도는 총을 들고 있었고 가족들을 위협했습니다. 그때 부엌에서 칼을 들고 가족 중 한 사람이 강도에게 대항하다가 서로 엇갈려서 넘어졌습니다. 강도는 부엌 칼을 빼앗았고 그 한 사람을 해치려 했습니다. 그 순간 아버지가 강도에게로 뛰어갔는데 강도는 부엌 칼을 곧바로 아버지에게로 찔렀습니다. 그리고 다시 뽑고, 다시 찌르고, 또 뽑고, 다시 찌르기를 수십번을 했습니다. 피가 낭자하게 퍼져있는데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달려오면서 외쳤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그리고 아버지의 몸에 꽂혀 있던 부엌 칼을 빼내서 들면서 말했습니다.
“부엌 칼 괜찮아? 애들 요리해줘야 되는데”
물론 이건 제가 만든 얘깁니다.
아주 깜깜한 밤 중에 놀이터에서 어떤 남자가 그네에 앉아서 아주 천천히 왔다 갔다 하고 있었습니다. 하늘 위엔 달빛만이 보이고 아주 가끔 별빛이 보이는 때였습니다. 어둡고 시커먼 밤중이었는데, 그 때 갑자기 남자의 머리 뒤편에서 누군가가 둔기로 남자를 때려서 앞으로 고꾸라지게 했습니다. 달빛과 가로등 빛 아래 시커먼 그림자가 출렁거렸습니다. 남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물론 이건 제가 만든 얘깁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얘길 했습니다. 교회 안에는 가끔씩 염소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양들을 키울 땐 양 무리들 가운데 염소를 한두마리씩 놓아기르는데, 염소들이 하는 역할은 양들이 너무 붙어다녀서 압사 당하거나 숨막혀 죽는것을 방지하도록 들이받게 하는 일이랍니다.
그런데, 성경엔 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태복음 13:24-30
http://cafe.naver.com/arcadianet.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3&
http://blog.naver.com/xptmffk34?Redirect=Log&logNo=30085781273
염소의 뿔을 표현하여 담은 어떤 메틀음반의 표지가 있습니다.
누군가 이런 음악을 접하지 않던 사람이 나 때문에 접하게 된다면 나는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은 화가 있도다’ ‘누구든지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리라’는 말씀이 분명코 적용되어야 하는 것일 것입니다.
이는 당연하게 사탄에게 속한 음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난 이런 것들도 좋아하고 또 살인에 대하여서 요즘 문득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을 보면, “선을 간절히 찾는 자는 은총을 받을 것이나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는 악이 임하리라” 라는 말씀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일런지도 모릅니다.
염소와 양을 언급한 예수님의 말씀엔 이것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두 명의 청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두 명의 건장한 남성이 그 자전거 옆으로 나란히 걷고 있었습니다. 아주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자전거 바퀴는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건장한 남성들 중 한 명은 두꺼운 나무토막을 자전거 바퀴 쇠 사이에 던져 끼워넣고 또 한명은 다른 자전거 바퀴 쇠 사이에 번뜩히는 은색 칼 긴것을 끼워넣었습니다.
자전거는 동시에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넘어졌는데, 한 자전거는 나무토막 때문에 바퀴가 순식간에 회전을 멈추면서 고꾸라졌고 한 자전거는 바퀴 쇠와 자전거 몸체 사이에서 회전하는 힘에 의해서 칼이 꾸부러지면서 그 자전거를 운전하던 청소년의 심장에 그대로 칼이 꽂히면서 등으로 삐져나왔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물론 이건 제가 만든 얘깁니다.
유태인의 탈무드를 설명하는 글 가운데서 어떤 부분엔, “신이 주신 세상을 즐겁게 살지 않으면 신에 대한 죄가 된다는 생각이 유태인에게 있으므로 즐겁고 낙관적인 태도를 갖는다” 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우발적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은 작은 즐거움을 놓치고 살면서 어둠 속에 갇혀서 그런 짓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탈무드의 권고처럼 낙관적이고 즐겁게 살아가면, 실제로 즐기지 않는 것은 신에 대한 죄라는 인식까지 갖고서 즐긴다면 그런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인터넷을 하다보면 가끔씩 굉장하게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직접 상대방을 찾아가서 그를 살인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은 이런 위협을 느끼고 경찰을 동원하였고 넷상으로 만난 상대를
살인 미수죄로 처벌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런 물적 증거를 찾을 수가 없어서 석방되었는데, 그 다음날 진짜로 상대로부터 그가 살해당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멀쩡한 사람을 의심한 댓가로 죽였다고 하더랍니다.
물론 제가 만든 얘기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인터넷 앞에서 대화한 상대가 내일 자신의 눈앞에서 자기의 뿜어오르는 피를 보게 하며 자신을 계속 끊임없이 죽이고, 죽이고, 죽이는 일 말입니다.
어떤 경우엔 혹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서울의 어느 아파트 단지 안에서 어떤 남자가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갑자기 그 순간 아파트 밖 단지 내에서 ‘뻥!’ 하는 큰 소리가 들렸습니다. 놀라서 돌아보는 사이 손가락이 문틈에 끼었고 문 안에서 누군가가 문을 세게 잡아당기면서 ‘빠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이 으스러져버렸습니다. 피가 잔뜩 흐른 복도에서 그 남자는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하여서 아픈 손가락을 대충 움켜쥐고 피를 흘리며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형 몬스터 트럭이 그 바퀴 아래 한 여학생을 깔아뭉개서 내장과 온 몸을 터트려 버린 것입니다. 여학생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게 짓이겨져 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 반은 지어낸 얘기고 반의 반은 사실입니다.
어느 고교에서 공사차량에 깔려 죽은 소녀가 있는데 그 사실이 크게 보도되지도 않았고 학교 측과 교장 측에서도 조용히 넘어갔습니다.
전혀 앞뒤도 안 맞는 말도 안되는 ‘광우병 소 수입’건에 대한 방송은 연일 우매한 사람들을 거리로 몰아냈는데도 말입니다. 참으로 우스꽝스런 일입니다.
아마도 학교 건축이나 공공기관 건축 건에 대한 제재를 피하기 위하여서 그런 사항에 대한 보도는 자제함이 있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우린 보고 듣는 것들에 민감합니다.
심지어는 사람의 피부색만으로 차별을 하는 것이 가능하였던 역사가 있는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스스로도 ‘착시현상’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자신들의 눈에 입력되는 내용에 대한 신뢰성이 부족함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확실하게 인지해야 합니다. 인간은 연약하고 미혹받기 쉬우며 악하고 불쌍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강하시며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만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겸손하게 의를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