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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남자의 조건

시크릿타투 |2011.10.11 09:26
조회 785 |추천 1

J는 일주일 내내 출장이다. 오랜만에 혼자인 오늘은 글을 쓰고 싶은 날이다.


네이버에 레몬테라스라는 카페가 있는데, 타지에서 이민자의 삶을 살다보니, 한국말 소통이 그리워 질 때면,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타인의 삶을 엿보고, 생각을 나누고 하던 일이 그리워 이 카페에 들어가서 글을 읽곤 한다.


주로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신부들, 신혼부부, 시댁과의 갈등, 커플 불화 등이 얘기의 주를 이루고, 삶의 지혜, 결혼/육아, 쇼핑 정보 등을 나누는 장으로도 널리 이용되는 것 같다.


가입자 150만인데, 주로 결혼 준비를 하며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멤버들의 평균 나이는 서른 살? (이건 완전 내 생각) 딱 내 나이쯤 되지 않을까.


여하튼, 현재 미국 생활 3년이 되어가는 한국의 전통적인 인습과 상식과는 완전히 결별하고 사는, "서른살 여자"인 내게 있어 '시댁과의 갈등', '조건 좋은 남자와의 결혼', '남편의 회식' 등과 같은 이슈는  '늘상 같은 얘기'거나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얘기들이지만, 마치 끊을 수 없는 마약처럼, 읽다보니 중독같아서 혼자 길을 걷거나 할 때면, 습관처럼 글을 찾아 읽게 된다.

그러던 중, 언젠가 꼭 한번 이 주제로 글을 쓰고 싶었던 글귀가 있어 따로 적어놨었는데, 다름 아닌... 이것.


"지금 잘해주는 남자? 결혼하면 변하니까 그냥 네가 좋아하는 사람을 택해." (반박거리가 있지만, 주체적인 여성상에 솔깃하여 일단 통과)

"얘, 결혼은 현실이야. 시간 지나면 (누구나) 사랑때문에 사는 것 아니야. 그러니 조건 보고 결혼해." (??? 켁.)



1. 내 남자의 조건


내 생각을 나누기에 앞서, 내 남자 얘기를 좀 하고자 한다.


내 남자는 이렇다. 나보다 아홉 살이 많은 그는 미국 남자이다. 2007년 MBA 졸업하던 해 미국 건축업 불경기로,아버지가 하시던 건축 사업이 망해 파산 직전에 처했을 때, 남은 인생 떳떳하게 사시라고(집, 연금을 지키기 위해), 파산을 면하게 하고자 본인 재산(4억 가량)을 다 쏟아 붓고도 본인 MBA 학자금 대출을 받아 3억~4억 가량의 빚을 지게 되었다. 이후 지난 4년간 나름 명문 MBA라는 가방끈이 있어 열심히 빚을 값았다지만, 나를 만났을 때만해도 2억 정도, 일년 반쯤 지난 지금도 1억 이상의 부채를 지고 있다.


J와 아버지 사이는 매우 각별했던 듯싶다. 아버지의 자존심을 지켜드리고자 자신이 모든 짐을 떠안은 노력이 헛되이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2년전 돌아가셨고, 고향 플로리다에는 어머님 혼자 살고 계시다. J말로는 어머님께서 의료보험과 연금이 있으셔서, 따로 생활비는 필요 없다고 하는데, 일 년에 몇 번 J가 어머니께 $200씩 용돈을 보내드리는 것을 봤다.


우리의 만남도, 전통적 관점에서 많이 벗어났다고 할 수있다. 우리는 지난 2010년 3월 Match.com이라고 하는 미국에서 유명한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를 통해 만났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 서부에서는 온라인 데이팅 사이트를 통해 남녀가 만나는 일이 매우 흔한데 미국 커플 중 1/4이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만난다고 한다. (서부지역은 이 비율이 훨씬 높다) 당시 직장이 LA에서 Seattle로 이전하게 됨에 따라 시애틀로 옮겨온 나는 이 낯선 도시에 온전히 혼자였고, J 또한 시애틀에 위치한 회사에 취업이 되어 연고 없는 시애틀로 막 옮겨온 상태라 첫 데이트 후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만약에 Match.com 프로파일에 그가 자신의 재정 상태를 적어놨더라면, 나는 그를 솎아냈을까???


 

2. 사랑에 빠지다


J는 첫 데이트에서부터 내 맘에 꼭 들었다. J는 아버지가 아이리쉬계 미국인, 어머니가 대만 사람인 혼혈아이다. 어머니 영향이었는지, 그는 처음부터 아시안들의 무언의 소통(non-verbal communication)을 잘 이해했고, 굉장히 오픈된 사고를 가졌으며, 어찌된 건지 나는 처음부터 그에게 영어로 말을 한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그는 내 손을 잡았고, 세 번째 만남에선가 그가 내 볼에 가볍에 뽀뽀를 했다. 모든 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나는 우리가 서두른다?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한번도 없다.


만난 지 2주 쯤 된 날, 그가 내게 여자친구가 되어달라고 말했을 때, '나는 더이상 다른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 너만 만나고 싶다. 하지만 너는 다른 사람을 만나도 괜찮다'라는 믿기지 않는 쿨한 조건때문에 나는 여자 친구로 불리는 것을 흔쾌히 허락했다.


그렇게 커플이 된 후, 언젠가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I love you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자연스럽게 J외에 남자들의 '간보기' 인사치례를 모두 차단했다. 여자친구로 불린지, 3달이 지난 어느 밤 J가 덜덜 떨며 내게 청혼(우리만의 약혼식 글 참조)했을 때, 나는 '싫다'라는 대답을 간신히 피하고자 'Yes, someday' 라고 말해 버렸고, 2달 후 레스토랑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그가 다시 청혼했을 때, 나는 한치로 망설임 없이 ''Yes'라고 답했다.


만난 지 7개월 만인 10월 우리는 석양이 물든 페리에서 증인 두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혼인 서약을 했다. *함께하기 위해 신분 문제가 있어 우리는 미국 서류상 부부가 되었지만, 우리는 몇 년 후 내가 정말 '결혼'이 하고 싶어질 때까지 '약혼자'라는 호칭을 고수하기로 했다.  (결혼에 대하여 글 참조)


 

3.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하라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이 남자 조건 좀 봐주세요", "둘 중 어떤 남자가 더 낫나요?", "돈 많은 남자와 성격 나쁜 남자, 성격 좋은 남자인데 능력 없는 남자, ... 등등 중에 투표 좀 해 주세요"...


이런 질문과 이에 대한 많은 이들의 답변을 보고 있자면, 나는 희한한 감정 상태가 되는데, 살짝 불편하면서도, 딱하면서도, 화가나면서도, 한편, 서른해 동안 사랑을 부정하던 내가 어느날 마법에 걸린듯 이런 저런 골치 아픈 고민 없이 짝꿍(J)을 만나 사랑 듬뿍 받고 살고 있는 스스로를 만족스러워 하면서도, 한편, 멋들어지게 꾸민 50평형 아파트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하는 자랑 글을 볼 때면, 살짝 부러운 맘이 드는 건 부정할 수 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말한다.


"남편이 변했어요.", "집에서 손까딱 안해요", "남편이 노래방에 갔어요", "남편이랑 대화가 안되요."...


이런 글을 볼 때의 반응은 오히려 단순한데, 답답하고 화가 나 '아니, 왜 그런 남자를 골랐어요?' 라고 되려 묻고 싶어진다. 나는 살짝 페미니스트 성향이 있어,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물리적, 정신적, 사회적 압력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서, 불합리한 대접을 받는 여성을 볼 때면, "당신은 충분히 존중 받고 사랑 받을 가치가 있으니 당당히 일어서요"라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하지만, 때론 '(외적)조건(만)'을 보고 남자를 고른 당신 책임이다!라고 쏘아붙이고 싶은 맘이 들 때도 있다.


우리나라는 성인인 여성 스스로가 '사랑'과 '파트너' 선택에 있어 주체적인 판단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나는 괜찮다'는데도, 주위의 친구들, 언니들, 어머니들이 한몫 거둔다. 가장 나쁜 말은.... "니가 아깝다." 는 말. 한 두번도 아니고, 특히나 결혼을 앞두고, 그런 말을 수십 번 듣고 나면, 내 남자가 나름 괜찮았는데도 언젠가부터 '내가 아깝나보다'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남들이 보기엔 비슷한 조건 (도대체 "비슷한 조건"의 기준이란 게 있는가 싶지만...)인데도, 주위의 그런 무책임한 소음들이 갑자기 왠지 내가 손해 보는 기분이 들게 만드는 것이다.


이해를 돕고자, 위에 썼지만, 한국에서 말하는 '조건'이란 기준에서 봤을 때, J는 미달이다. (J 미안-_-) 하지만, 나는 이 남자를 만난걸 크나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함께한 지난 일년 반 동안, 나는 한 순간도 그의 사랑을 의심한적이 없다. 이 사람은 항상 나를 최우선순위로 생각해주며,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피아노를 쳐주고, 요리를 하고, 하루에 수십 번 사랑한다, 널 만난 것이 일생일대의 최대의 행운이라 말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남들이 보는 조건이 어떻든 '내가 남자에게 바라는 조건'을 모두 갖춘 그 자체로 내겐 완벽한 남자이다. 나는 그와 함께 장을 보는 시간이, 그와 함께, 거울 앞에 서서 장난치며 양치질하는 시간이, 함께 요리하고, 함께 식사하고, 함께 치우는 시간이 너무 즐겁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것 말고도 내가 J와 사랑에 빠진 것에는 중요한 조건이 하나 있는데, J의 능력과 미래에 대한 믿음이다. 사실 이것의 실체는 나와 평상시 얼마나 대화가 통하는가 하는 것이다. 20대 초반에 친구들과 창업을 한 후 회사를 팔아 나이에 비해 일찍 큰 돈을 만졌던 적이 있는 J는  2007년 아버지 부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나는 그의 선택과, 이로 인한 경험이 그를 더 큰 사람, 더 믿음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안다. 그는 내게 지금 본인이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없는 것을 항상 미안해 하는데 나는 그의 능력, 성실함, 책임감, 무엇보다 그의 사랑을 믿기에, 아니, 이 남자가 내게 얼마나 완벽한 남자인지를 알고 선택했기에 금전적인 부분에 있어서 나는 걱정이 하나도 없다.


글을 읽다가 꼭 답변을 써주고 싶은 글은 이런 글들이다. '내 남자에게 (부모님) 빚이 있어요, 현재 능력은 출중해요. 이 남자와 결혼해도 될까요?라는 글.


이건 전적으로 당신의 선택이고 책임이다. 지금 당신 앞에 있는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조언을 주고 싶어하는 레테의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안전한 선택을 말한다. '사랑이 변하니, 조건을 보고 결혼해라...'  이건 그야말로 리스크가 적은 안전 투자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혹시라도 당신이 결혼이 하고 싶어서 남자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평생 함께 사랑하고 싶어 결혼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좀더 행복한 삶을 꿈꾸는 용기 있는 당신을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이거 하나다.


만약 당신이 당신 운명의 남자(Right person)을 찾았다면, (남들이 설정한 기준의) 조건 따윈 중요하지 않다고.


운명의 남자(Right person)인지를 어떻게 아나요? 라고 한다면, 이에 대한 글을 다음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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