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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꼴등해 보셨습니까? 그거 진짜 서럽습니다.

브레이브하트 |2003.12.17 01:21
조회 4,045 |추천 0
(수요일의 객원지기를 맡아주신 브레이브하트님 입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브레이브하트님의 멋진 글 기대할께요~)

 브레이브하트 님의 한마디~

 

 

안녕하세요 여러분? 어느새 또다시 수요일이 되었네요. 수요객원지기 브레이브하트입니다.

여러분 학창시절에 모두가 시험 끔찍하게 망쳐본 일 한번은 있으시죠?

어떤분은 집으로 발송되는 성적표를, 우체통 앞에 서 있다가 가로채려고 하루종일 기다려보신 분도 계실거고, 공부 잘하는 친구성적표 빌려달래서 이름을 살짝 바꿔서 똘똘이복사를 해보신 분도 계실 거고...

 

아마 시험에 관련되어서는 악몽같은 경험이 한번씩은 있으리라 봅니다. 누구나 그랬듯 저도 학창시절 시험스트레스가 심해서, 학창시절은 기억도 까마득해진 지금도 시험에 대한 악몽을 꿀 때가 있습니다. 가령 시험시간 종료가 3분 남았는데, 정신없이 써내려간 답안지가 하얗게 백지상태로 남아있어서 너무 놀라 소리도 못 지르고, 땀에 푹 젖어 깨어보니 꿈이었다던가 하는게 그것이죠.

 

아마도 한번의 기막힌 기억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나봅니다. 예전에 물고기 대가리 날리던 일때문에 지금도 생선가게에서 물고기 대가리날리는 걸 보지 못하는 얘기를 예전에 바로 이곳을 통해 띄운 적이 있었는데, 실은 시험에 대해서도 그런 악몽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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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초등학교 4학년때 일이었습니다. 제 단짝친구녀석이 있었는데요.

그놈의 성이 '음'가고, 이름은 '다스릴 치(治)'. 해서, 이름이 <음 치> 였거든요.


그때 반에서 여자하고 남자의 수가 학년초에는 똑같았는데,

학기중에 여자애 두 명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 버렸죠. 그래서 남자가 두 명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다들, 남녀 한쌍으로 짝을 지어주는데 남자 두 명만은 서로 남자와 짝궁을 하게 됐죠.

그게 또 하필이면 음치하고 저였습니다.
 

그때, 선생님은 국어, 산수, 사회, 자연의 월말시험을 출제하기가 귀찮았던지, 이렇게 얘기하셨죠.

 

"자, 이번 월말고사는, 시험을 생략하고, 각자가 범위 내에서 시험문제를 출제해 와요. 그래서 옆 짝하고 바꿔 푸는 걸로 하죠. 이게 이번 월말고사에요. 시간은 내일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문제 만들어봐요."

 

이얏호! 시험문제를 만든다고! 신이 났죠. 시험 안보는 것도 신났지만 정작 더 신났던 것은, 장난기가 발동해서 괴상망칙한 문제를 가지고 이 음치란 놈을 골탕먹여 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나서요. 평소때도 이놈은 제가 화장실 간 사이에 제 가방을 열어서 아폴로(왜 있죠, 대롱속에 들은 쪽쪽 빨아먹는 그거)를 빼먹고, 아니 내 아폴로 어디갔지 맨날 저를 이렇게 만들곤 했으니까요.

 

어쨌든 그래서, 제가 다음날에 출제해 가지고 간 문제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이랬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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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1. 저번 국어시간에 치마에 쉬야를 하고 울어버린 우리 반 여자아이는 누구였는가?

2. 4단원은 '청개구리엄마와 아들'이라는 동화이다. 이 동화에는 '다'라는 글자가 모두 몇 번 나오는가?

.......

 

[산수]

1. 철수가 연필을 5자루 사려면, 400원을 내고 50원이 남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철수는 연필을 왕눈이 문방구에서 샀을까, 짝눈이 문방구에서 샀을까?

.......

 

[사회]

1. 우리나라 국보 1호인 남대문 그림이 있는 곳은 사회책 몇 페이지인가?

2. 지엔 피는 국민 총 생산을 말한다. 그렇다면 새발의 피는 무엇을 뜻하는가?

3. 감자와 고구마는 둘 다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다. 그렇다면 둘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맛있나?

4. 고려시대에 무관들이 불만을 터뜨려서 난을 일으켜 이후 수십년간 실권을 잡았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왜 전부 최씨인걸까?

........

 

[자연]

1. 콩나물은 어둡고 습한 곳에서 잘 자란다. 그러면, 100원을 주면 콩나물을 몇 송이나 줄까?

2. 올챙이는 알을 흐르는 물에 낳을까, 아니면 고인 물에 낳을까?  (※ 이것만 정답 공개. 올챙이는 알을 낳지 않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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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 가지고 의기양양해서 학교에 갔죠. 음치녀석 시험문제 받아들고 울상지을 걸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학교에 가 보니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죠.

 

"자, 여러분, 문제 내느라 수고 많았죠? 범위 뒤적이면서 문제 만드느라고, 시험보는 것보다 더한 공부를 했을거에요. 이정도로 해도 충분히 공부는 됐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문제 내어 논 게 아까우니까, 각자 내어온 시험문제 꺼내서, 스스로 답을 달아서 내세요. 이번 월말고사 평가는 그걸로 대신할께요."

 

자기가 내 온 문제니까 자기가 답을 제일 잘 알겠죠.

애들은 다들 와와와 하고 쾌재를 부르면서 자기 문제를 꺼내서 열심히들 답을 달고 있었어요...

꼬마 브레이브하트 혼자 똥먹은 얼굴로 고개만 푹 떨구고 시험지 위에 비듬만 털고 있었고요...

초등학교라 석차는 없었지만, 석차가 있었다면 저는 그 시험에서 보나마나 꼴등을 했을 겁니다. 자기가 낸 문제니 거의 만점받고, 두세개만 틀려도 거의 바닥을 기게 되는데, 반타작도 못했으니 이건 볼 것도 없이 꼴등인겁니다.

 

-- < 여기까지는 제 주근거지인 [불륜과 로맨스] 게시판에 예전에 올렸던 내용이지만 > --

-- <                그때 공개되지 않았던 속편이 여기서부터 계속 이어집니다                   > --

 

성적표를 집에 허이허이 들고간 날은 월요일이었습니다.

집에 못들어가고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독서실에 허이허이 가서 엎드려 잤죠.

그러고서 집에 못들어가고, 화요일은 곧장 학교에 그대로 간겁니다.

가방속에 들어있는 건 월요일 시간표. 결국 시간표를 못챙겨갔죠.

화요일은 그렇게 넘어가고 집에 왔습니다.

다음날 수요일.

저는 책가방을 챙길때, 전날 저녁에 안챙기고, 게을러터져서 그날 아침에 반쯤 감긴 눈으로 챙깁니다.

그런데 수요일 아침에 비몽사몽간에 책가방을 우루루 쏟으니, 가방에서 쏟아지는 건 월요일 시간표.

그래서, 저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졸린 눈으로 화요일 시간표를 챙긴거죠.

실은 수요일 시간표를 챙겨야 하는건데.

 

이 '음치사건'의 후유증이 실로 컸습니다.

하루는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또 담날은 시간표를 아예 못챙겨가고

또 또 그 다음날은 시간표를 잘못 챙겨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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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꼴등갈구지 맙시다. 나름대로 마음고생 심합니다.

그리고 단지 공부만 그렇다뿐이지, 실제로 그 아이가 무슨 숨은 재주가 있을지 모릅니다. 저능아가 아니라면 무엇 하나는 놀라운 재능에 대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저는 항상 믿고 삽니다.

 

저는 가끔 악성(樂聖) 베토벤의 초상화를 볼 때면, 이 위대한 음악가가 어릴때 주정뱅이 아버지한테 얼마나 폭행을 당하고 마음고생이 심했으면 성인이 되어서 얼굴이 저렇게도 비극적으로 일그러졌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각고의 눈물과 노력을 통해서 결국 그는 음악가로 대성하였지만, 나중에 제 자식은 고생한 천재보다는 차라리 즐겁게 자라난 모나지 않은 평범한 이를 더 원합니다. 모두들 좋은 한주 보내세요. 다음 차례가 돌아오는 내주 수요일은 크리스마스 이브네요. 멋진 크리스마스선물을 준비하겠습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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