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독의 중요성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2011 손안애서(愛書) 공모전 수상작 나영완>
‘쿼터리즘’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과거 농경문화에서 노동(2시간) 후 휴식이라는 2시간의 생체리듬이 보편적이었던 데 비해 오늘의 청소년은 15분 이상 해야 하는 논리적 사고나 사색, 인내심 등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학교 교사 연수회에서 만난 교사들은 요즘 아이들의 집중 시간이 1분이라고까지 말한다. 또 아이들은 메신저와 휴대전화 문자의 영향으로 짧은 문장을 읽고 표현하는 순발력은 좋아졌지만 긴 문장을 읽는 호흡, 즉 지구력은 약해져서 깊이 생각하기를 귀찮아한다. 이렇게 어려서부터 깊이 생각하지 않는 독서습관을 가진 아이들은 고3이 되었을 때 수능 언어영역의 긴 지문들을 읽어내는 것도 힘들어하게 된다. 글의 표현이나 의미에 중점을 두면서 읽는 게 아니라 줄거리만 기억하는 방식으로 읽어나간다면 창의성이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많이 해야 한다는 열기가 수년 전부터 고조되고 있다. 문제는 부모의 관심이 아이들이 얼마나 책을 깊이 읽었느냐보다 몇 권이나 읽었느냐는 독서의 양에 있다 보니 책을 읽어도 내용과 문맥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글자만 훑어보는 정도로 읽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아이가 읽기 쉬운 책을 반복하여 읽으면 자연스럽게 책의 단계가 올라간다. 그런데 부모들은 책을 골고루 보지 않고 한 권을 몇 번이나 다시 본다며 뒤처질까 염려한다. 심지어 하루 2~3권, 일주일 10권, 한 달 50권을 목표로 정하고 무조건 많이 읽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처음 보는 책에는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등장인물도 생소하다. 그러니 아이는 한 장면 한 장면 상상하기도 바쁘다. 결국 아이가 정독을 못하게 되는 것은 부모의 욕심 때문인 경우가 많다. 엄마가 너무 빠른 속도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아이는 엄마가 읽어주는 소리를 듣고 그림을 보면서 내용을 이해하게 되므로 이 경우 아이는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해 내용 이해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물론 다양한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좋고 중요하다. 문제는 부모들이 책을 많이 읽기를 강조한 나머지 자신의 아이가 책을 얼마나 이해하고 지식을 습득했는지, 감정이 풍요로워졌는지에 대한 관심은 소홀하고 오로지 책을 읽는 양에만 집중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도 질적인 독서를 하기보다 보여주기 위한 독서를 할 위험이 커진다.
무조건 책을 많이 읽는다고 좋은 건 아니다. 글의 표현이나 의미에 중점을 두면서 읽는 게 아니라 줄거리만 기억하는 방식으로 읽어나간다면 창의성이나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필자는 2007년 서울 한 초등학교의 2학년, 4학년, 6학년 어린이 286명을 대상으로 ‘학년별 독서방식이 어린이의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자기주도적 학습능력 특성검사지 결과와 독서방식 질문지를 사용해 분석한 결과, 2학년(저학년)의 경우에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통독’(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차적으로 읽는 방식)이, 4학년(중학년)과 6학년(고학년)의 경우에는 ‘정독’(많이 읽지 않아도 꼼꼼히 읽는 방식)이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에 가장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학년은 지식 체계가 아직 정립되지 않은 상태라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습관을 먼저 들여줘야 한다. 3학년부터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책 내용과 연결시키면서 정독해야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키울 수 있다.
흥미로운 건 모든 학년에서 가장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으로 꼽힌 것이 ‘다독’(깊이 읽지 않으면서 많이 읽는 방식)과 ‘발췌독’(원하는 부분을 골라서 읽는 방식)이었다는 점이다. 많은 학교에서 책을 많이 읽는 아이들에게 상을 주는데 이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다. 칭찬을 받으려고 드러내기 위한 독서를 하기 때문이다. 한 권이라도 아이가 집중해 즐겁게 읽는 것이 중요하다.
책은 몇 권을 읽었느냐보다 책의 내용을 얼마나 이해하고 흡수했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책의 내용에 대해서 질문하고, 아이의 질문에 대답하고, 알기 쉬운 말로 바꾸어 말해보고, 이야기의 사건들을 설명하고,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하고 설명해주어야 한다.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가 새로운 낱말이나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아이가 경험한 일과 연결시켜 이야기를 해주고, 관련된 낱말들을 설명해주면서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중요하다. 가정에서의 책 읽어주기는 아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아이의 능력에 맞춤으로써 아이의 언어발달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미국의 교육학자 헤쓰는 부모가 책을 규칙적으로 읽어주면서 아이와 대화를 하거나 독서 관련 활동에 참여해본 아이들이 초등학생이 되어서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성장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부모가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아이가 읽어준 책에 대한 내용을 확실히 이해했다는 확신이 들 정도로 부모와 상호작용을 한 아이들은 전 학년에 걸쳐 독서에 능숙한 아이로 성장했다. 하지만 아이가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부모와 상호작용이나 독서활동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은 저학년 때에는 독서에 능숙한 것처럼 보이지만 고학년이 되면 독서능력이 부족한 아이로 변했다. 물론 읽을 책을 제공받지도 않고, 규칙적으로 책을 읽어주는 경험을 받지 못한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독서능력이 매우 부족한 아이가 되어버렸다.

이처럼 한 권을 읽더라도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인지할 수 있는 정독 습관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독하는 습관이 생기면 내용 이해가 빨라져 자연스레 속독을 하고 많은 양의 독서를 하게 된다. 이것이 학습에도 영향을 준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과정에서 이해력과 어휘력 등이 점진적으로 발달하기 때문인데, 처음에는 글만 읽지만 다시 읽으며 문장과 주인공의 행동, 교훈까지 생각을 넓혀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는 행간을 읽으면서 의미를 추출하고 상상도 하면서 그 안에서 재미를 느껴야 하는데 책을 많이 읽게 하려는 엄마의 성급함이 아이가 이 단계에 오르기 전에 차단하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게 된다. 정독을 시킨 아이들은 모르는 단어가 몇 개 있어도 문맥 중에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속독을 하는 아이들은 그럴 수가 없다. 문장 내에서 의미를 확장시킬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주의집중은 친숙한 것과 신기한 것이 서로 연결될 때 흥미와 함께 효과가 커진다. 특히 유아의 경우 관심대상이 자꾸 바뀌기 때문에 장난감 책이나 다양한 형태의 책, 만지면 동물털 같은 느낌이 드는 책, 소리 나는 책, 팝업북 등으로 흥미를 자극하는 것이 필요하다.
책을 읽어줄 때에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세심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내 아이에게 맞는 독서를 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악기가 그려진 그림책을 보면서 개성적이고 창의적인 독서를 하도록 유도하는 식이다. 아이가 책 읽는 소리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연령에 맞는 적절한 자극도 필요하다. 손짓과 발짓을 써가면서 때로는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열심히 책을 읽어주면 아이가 활짝 웃으며 반응할 것이다.

<그림 보림(『책 읽어주는 고릴라』) 제공>
매일 똑같은 반찬에 식사를 하면 쉽게 질리는 것처럼 한 가지 종류의 책만 읽히면 독서가 지루해진다. 아이가 책에 대해 흥미가 없다면 먼저 좋아하는 주제의 책을 읽게 한다. 재미있는 책은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같은 동화라도 창작동화, 전래동화, 수학동화, 과학동화 같은 이야기책만 읽히는 것이 아니라 경제, 예술, 환경, 애완동물 기르기 등의 다양한 지식책을 읽도록 하는 것이 좋다. 팝업북 등 다양한 입체책을 주면 독서가 즐거운 두뇌훈련이 될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감이 없을 때 집중하기 어려우므로 부모의 관심과 칭찬이 필요하다. 책을 읽어줄 때도 “영진이는 책 읽어주면 참 잘 듣지” “영진이는 오늘 정말 집중을 잘했구나. 엄마는 이런 영진이가 참 예뻐” 하는 식으로 칭찬을 하면서 안아주고 뽀뽀를 해주는 것이다.
아이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도록 어렸을 때부터 규칙적으로 책을 읽어주고 베갯머리 책읽기를 습관화하고 아이가 책을 가까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 아이가 질문하면 구체적으로 대답해주고 아이를 존중하는 생활태도를 갖도록 하자. 아이가 책을 많이 읽었다고 칭찬할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고 읽고 그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평소에 이야기해주자.
올바른 독서습관은 강요에 위한 독서가 아니라 즐거움을 느끼는 독서활동이 되어야 한다. 또한 부모는 아이에게 매일 규칙적으로 책을 읽어주거나 읽도록 한다. 부모의 자녀 베갯머리 책읽기는 아이가 한글을 떼어도,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도 계속되어야 한다.
조미아_경기대 교육대학원 사서교육전공 교수,『창의성 키우는 독서학교』저자 /
--책둥이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