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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 해방 공식선포‥곳곳 내분 조짐도

대모달 |2011.10.24 10:20
조회 30 |추천 0

[연합뉴스 2011-10-23]

리비아 과도정부가 23일(현지시간) 해방을 공식 선포하고 새 국가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곳곳에서 내분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이 같은 분열 양상은 카다피 시신 처리 과정에서 가장 극명하게 표출됐다.

과도정부를 대표하는 국가과도위원회(NTC)는 애초 카다피의 장례를 숨진 바로 다음 날인 지난 21일 비공개로 치를 방침이었다.

그러나 사망 당일인 지난 20일 고향 시르테에서 해안도시 미스라타로 옮겨진 카다피의 시신은 사흘이 지난 이날 현재까지 한 쇼핑센터의 냉동창고에 보관된 채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이는 NTC의 애초 방침은 물론 통상 죽은 지 하루 안에 매장하는 전통 이슬람 장례 문화에도 배치되는 것이다.

이런 배경을 둘러싸고 과도정부 내부에서는 '정확한 사망 경위 조사를 위해서'라거나 '매장지 선정 협의를 위해서'라는 엇갈린 설명이 나왔다.

실제 중동 현지 언론들은 매장 장소와 장례 방식을 둘러싼 과도정부 내부의 분열로 카다피의 장례가 지연되고 있다고 전했다.

카다피 시신의 부검 여부에 대해서도 진술이 엇갈리기는 마찬가지다.

미스라타 시민군 대변인 파티 바샤그하는 전날 카다피 시신의 부검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리비아 법의학자들이 전날 밤부터 이날 아침까지 카다피의 시신을 부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에서는 미스라타 시민군이 NTC와 협의 없이 독자적으로 카다피 사살과 시신 운구 조치를 취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카다피를 생포해 법정에 세우는 게 좋았을 것이라는 마무드 지브릴 NTC 총리의 영국 BBC 방송 인터뷰 발언이 주목을 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공식적인 리비아 해방 선포가 수도 트리폴리가 아닌 동부 벵가지에서 이뤄진 것도 과도정부 내부 분열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지적도 있다.

애초 카다피 사망 당일로 예상됐던 해방 선포가 21일에서 22일, 다시 이날로 연기된 것도 같은 이유라는 분석이다.

리비아 과도정부 안의 분열 가능성은 사실 오래전부터 예견됐다.

NTC 내부에서 카다피 세력과의 전투 과정에서 분란이 많았고, 반군 간에 무력 충돌이 빚어진 적도 있었다.

특히 동·서 간 지역 갈등과 140여 개 가문, 500여 개 부족으로 분화된 리비아 내 각 분파 간 이권 다툼은 '포스트 카다피' 체제가 극복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로 꼽혀 왔다.

트리폴리 함락 후 NTC가 여태껏 벵가지에 머문 것이나 수차례에 걸쳐 새 내각 구성 발표를 미룬 것도 이런 지적에 무게를 싣고 있다.

리비아를 바라보는 걱정 어린 시선과 관심, 각종 논란이 교차하는 가운데 과도정부는 이날 42년간 카다피의 압제에서 공식적으로 해방됐음을 선포했다.

NTC가 '포스트 카다피'에 대비해 마련한 로드맵(정치 일정)인 입헌선언문은 '리비아는 민주독립국가이고 국민이 주권의 원천이다. 수도는 트리폴리, 국교는 이슬람으로 정하고,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토대로 입법이 이뤄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무스타파 압델 잘릴 NTC 위원장은 이날 해방 선포식에서 "새 리비아는 이슬람 국가로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토대로 입법이 이뤄질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로드맵에는 또 새 정부가 한 달 내에 총리를 임명하고 두 달 안에 새 헌법 초안을 마련, 8개월 내로 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를 치르는 것으로 돼 있다.

첫 대통령 선거 이전 임시 정부 구성과 헌법 제정이 8개월 이내 선거로 구성될 의회의 주요 임무라고 한 지브릴 총리의 발언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포스트 카다피' 시대의 리비아가 지역·종파 간 갈등은 물론 여러 혼란상을 극복하고 순항할 수 있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연합뉴스 마스라타 한상용 유영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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