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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를 기쁘게 합시다

오택만 |2011.11.07 23:15
조회 49 |추천 0

갈라디아서 6장 6절은 이렇게 명령합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갈라디아서 6:6

가르침을 받는 자란, 쉽게 표현하면, 학생을 의미하겠죠.

교회 안에서는 무언가 가르침을 받는 위치에 처한 모든 사람들을 뜻하는 것일 것입니다.

설교자-회중, 교사-학생...

성경을 보면, 가르치는 직책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고린도전서 12:28

이 말씀엔 가르치는 직책으로는 사도, 선지자, 교사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목회자’라는 직함이 아닌, “선지자”라는 직함을 갖고서 세계 곳곳을 다니며 사역하시는 사람들도 계십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해석하길, 좋은 것이란 복음을 의미하며,

복음을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았다는 사실 안에서 안주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복음에 직접 참여하라는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즉, 가르침을 받는 자도, 가르치는 자도 함께 하나님의 복음을 실재케하는 주체가 되라는 말씀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좋은 것이란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성경 안에서 찾아봅시다.

고린도전서 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 이는 윗 구절과 연결되는 구절입니다. 사랑장이라고 불리는 고린도전서 13장을 소개하기 위한 것으로서, 여기서 말씀하는 좋은 것은 사랑을 의미합니다.

시편 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잠언 16:20

“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시편 34: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데살로니가후서 2: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 이들은 문맥을 살펴보건데, 하나님께로부터의 은사를 뜻합니다. 즉,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로마서 10: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디도서 3:14

“또 우리 사람들도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좋은 일에 힘 쓰기를 배우게 하라”

누가복음 1:19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 이들을 살피건데, 하나님의 복음과 사역을 뜻합니다.

마가복음 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8: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마태복음 13:23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누가복음 10:42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디모데후서 2: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 이것을 살피건데, 내면의 것, 즉 좋은 마음, 좋은 영혼, 좋은 태도, 좋은 인격을 뜻합니다.

구약 성경을 잠시 살펴보죠. 요나서!

요나는 니느웨를 심판하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니느웨가 말씀을 듣고 회개할 경우, 하나님께서 심판을 거두시거나 더디하시고 인자와 자비를 베푸시리란 사실을 알고 있었죠.

하나님을 알고 있던 요나!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닮기엔 부족했던 모양인... 요나!

요나는 이방민족인 니느웨가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갑니다. 그러나, 그 배는 풍랑을 만나서 모두들 위험에 처하게 되고, 배에 탄 사람들끼리 제비뽑기를 해서 “누구 때문에 이 풍랑이 임했는지 알아보자”고 하죠. 제비뽑기는 옛 그 지역사람 입장에선 우리가 볼땐 우연과도 같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선 가장 정확하게 개입하실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요나가 제비에 뽑혔고, 요나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으로서, 그의 명령을 어기고 그 배를 탔노라고 고백하고서, 자신을 바다에 던지면 풍랑이 멈추리라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배의 모든 물건을 바다에 던지고 배를 살리려 노력했지만,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요나를 바다에 던집니다. 그 동시에 풍랑이 멎게 되고,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며 서원을 하고 제물을 드립니다.

요나는 바닷속 큰 물고기가 통째로 삼켜서, 그 뱃속에 거하면서 여호와께 회개와 기도를 올립니다. 여호와께서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삼일 만에 요나는 육지에 토해내져지지요.

이는 훗날 있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삼일 만에 부활하실 것에 대한 예표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아무튼, 요나는 다시금 하나님의 베푸신 기회를 얻어서, 사흘 동안 걸어다녀야 다 다닐수 있는 니느웨로 가서, 겨우 하루 동안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외칩니다.

그 말을 듣고, 니느웨 백성들은!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사 우리가 멸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요나3:5-9

철저하게 회개합니다!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니느웨 성 위로부터 아래까지 전체적으로 확실하게 이뤄졌습니다!

어찌 하나님이 진노를 돌이키시지 않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요나3:10

요나는 이 사실에 분개하며 하나님께 대듭니다.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원하건데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요나4:1...2...3...4

요나는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진노의 계획에 대한 정확한 말씀을 듣고서, 그 죄에서 돌이키도록 말씀을 선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는 참으로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이요, 하나님과 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만큼, 그는 어쩌면 하나님께 너무나 쉽게 불평하며 자기 속의 마음을 그대로 쏟아놓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도, 아버지 곁에서 늘 일하던 첫째는, 물려받은 아버지 재산을 탕진하고 방탕하게 살다가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한 잔치 앞에서 아버지께 불평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지낸다는 사람들은, 사실, 하나님께 어린아이처럼 불평하는 모습들이 있는가 봅니다. 그것도 매우 특별한 면에서 가치가 있는 믿음인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엔 어떤 면에선 요나도 귀엽지만, 어떤 면에선 역시나 성숙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엔 요나도 사랑스러웠겠죠.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 앉았더라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요나 4:5-8

하나님께서는 니느웨를 용서하셨고,

선지자 요나에게도 하나님의 마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 친절함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 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나4:10,11

윗 말씀이 요나서의 끝입니다.

여호와의 친절함! 그 사랑! 그리고,

인자하시고 자비하시사 회개하는 자들의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회개를 좋아하십니다.

목회자들도, 가르치는 자들도, 하나님의 마음과 닮았다면, 가르침을 받는 자가 회개하는 것을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르치는 말씀이나 선포되는 말씀은 정확한 말씀이로되, 회개하는 것을 기뻐하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당신도 성경 곳곳에서 찾아볼 수가 있고, 오늘날에도 경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나 선지자 때를 B.C. 8세기 경으로 보며, 나훔 선지자 때를 B.C. 612년으로 봅니다.

나훔은 니느웨를 향한 여호와의 진노와 심판을 선포합니다.

니느웨는 약 100년 후에, 잔혹함과 탐욕 때문에 심판받아 결국 멸망 받고 맙니다.

이렇게 볼때, 어떤 면에서는 니느웨를 향한 심판 선언을 요나에게 맡기신 것은,

어쩌면 “요나”라는 한 사람과 하나님께서 만나시고 설명하시며 행하시고자 한 바가 있었기 때문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니느웨 당대의 사람들도 회개함으로 심판받기를 미룰 수는 있었습니다.

성경은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고 합니다.

성경의 곳곳에서, 어느 ‘한 사람’ ‘한 선지자’ ‘한 용사’ ‘한 사도’를 통하여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시고, 역사를 진행하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있는 자는 더 얻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줄로 아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길 “한 달란트 감춰두었던 악하고 게으른 종에게서 그 한달란트를 빼앗아서 다섯달란트로 열달란트 남긴 착하고 충성된 종에게 주어라” 하셨습니다.

한 달란트 받고, 한 달란트 묻어 두었던 자.

다섯 달란트 받고, 다섯 달란트로 장사하여서 다섯 달란트를 더 벌어들인 자.

그 사이엔 두 달란트 받고, 두 달란트를 더 남긴 자도 있었지만, 그에게 주라 하지 아니하시고, 다섯 달란트 남긴 자에게 주라 하셨습니다.

왤까요? 아무도 모릅니다! 주님 뜻입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목회자들도 똑같습니다.

어느 목회자의 경우는, 소식을 전해오면,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크게 범죄한 사람들을 대신하여서 하나님께 용서해주십사 간구드려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목사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사람을 사하여 주시기도 합니다. 또, 임종 시에 어느 목사님의 기도 때문에, 천국천사와 지옥악마들 사이에서 영혼이 공포에 질린 상태에 믿음을 불어넣어주고, 악한 영들을 떠나보냄으로서 안도하며 천국으로 인도받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공의에 따라서 다스리시는 창조 세계입니다.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악하고 죄악에 눈이 가리워 있으면, 아무리 자기 입장에선 선하게 하려고 발버둥친다고 해도 너무나 잘못된 판단과 노력을 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어리석은 자기 판단과 자기 생각은 객관적으로 하나님을 똑바로 섬기는 사람들이 볼 때에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에 안타까운 모습일 뿐일수도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법칙을 따라서, 죄로 너무나 벽이 두껍게 되고, 멀어져버린, 그런 자들은 악마의 손아귀에서, 질병과 환난과 심판의 자리에서 도저히 온전히 은혜의 빛을 받아 사하심을 얻기에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론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의롭다 하심을 얻을 만한 기쁘게 해드릴만한 일도 없어서, 하나님의 들으심을 이끌어낼 의로움도 신뢰성도 없는 자들은,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에 처하여 있을 뿐인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목회자들게 감사를 담은 이메일이나 편지 보내길 좋아합니다.

이는 섬기는 일이나 도움을 드리는 일이라기 보다는 마땅히 해야할 감사의 도리를 표현하는 수준의 일일뿐이지만...

제가 단언코 말씀드리건데,

“하나님께서 진실로 기뻐하시는 증거가 있는 하나님의 사람에겐 두렵고 떨림과 감사과 즐거움으로 섬기기를 마다하지 마십시오!” 이는 당신 자신을 위해서 가장 좋은 일 중 하나일 것입니다.

십일조에 관하여서 생각해봅니다.

어떤 사람은 “지갑이 회개해야 진정한 회개다” 라고 합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은... “이것을 냄으로서 나중에 몇갑절로 축복을 받고 말테야”라는 생각이라면 내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어떤 댓가를 바라지 않고, 다시 내게 돌아오지 않을 돈으로 생각한다.”

“확실하게 내주는 것으로서 내주고서 깨끗하게 돌아서는 것이다 그리고 내는 것이 기쁘다”라는 생각이라면 십일조를 함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인색함이나 억지로 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선택에 대한 책임도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자,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에 관하여서 생각해 봅니다!

가르치는 자는 가르침을 받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하였고,

특별히 목회자를 기쁘게 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이렇게 말씀드린 가장 큰 성경적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히브리서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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