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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배타고 간 제주> 2. 마라도. 엉또폭포. 이중섭 거주지. 이중섭미술관

박교빈 |2011.11.21 23:28
조회 180 |추천 0

 

모슬포항. 마라도행 티켓과 마라도 정기여객선

 

 

제주항에 내렸다.

제주공항에 내리면 공항 앞의 야자수들이 ‘여기가 제주에요’ 하는 것 같은데 제주항은 내가 제주에 온 건지, 아니면 어디 다른 섬이나 나라에라도 온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라면 청년(혹시라도 이 글을 본다면 양해해 주길. 좀 친근하지 않은가?)과 공항에 들러 렌트카를 얻어 탔다.

마라도행 배를 타기 위해 제주 시내를 지나 서귀포 하모리에 들어서니 지난 3월 초, 장염을 뒤로하고 홀로 찬바람, 허기와 싸우며 10코스를 걸은 게 어제 일처럼 생각났다.

여기가 올레 10코스 종점인 모슬포항이다. 보말 쑥칼국수를 맛있게 먹었던 그 때 그 식당도 그대로 있다. 이 곳 제주 모슬포항에 내 기억의 장면들이 그대로 있다는 게 신기했다.

 

마라도 정기여객선은 내가 오늘 아침 하선했던 세창해운(코델리아호) 승선권이 있으면 20% 할인을 해준다. 마라도 왕복 배삯 14,000원에 해상공원 입장료 1,500원을 더하니 15,500이고 20% 할인을 받아 12,400원을 지불했다.

시간이 임박해 11시 마라도행 배를 겨우 탔다.

 

 

 

승무원이 배멀미를 주의하라는 말을 하는데 말을 참 재미있게 한다.

멀미 봉투 3개를 가득 채워오면 한라봉 한 상자를 준단다.

 

 

 

여객선에서 본 바다.

멀리 산방산이 보인다

수학여행 온 학생들

 

 

 

마라도가 눈 앞에 놓여있다

 

 

 

 선착장 주변에는,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에 깎여 만들어진 해식터널과 해식동굴이 있어 뛰어난 절경을

  보여주며 마라도가 신의 작품임을 말해준다.

 

 

 

마라도 자리덕 선착장. 해식 터널

 

 

 

 마라도 선착장은 2곳인데 그날 그날의 해상 여건에 따라 배가 접안한다 .

 내가 내린 곳은 자리덕 선착장이다.

 

 

배에서 내려 마라도에 오른 첫인상은, 흐린 날씨 탓인지 특별히 아름답지는 않다는 것.

 

오른쪽으로는 대한민국 최남단 기념비가 서 있다.

아침도 굶고 배가 너무 고파 이 곳을 지나쳐,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는 짜장면 가게로 향했다. 맛있는 짜장면을 먹기 위해 원조라 씌여있는 집에 들어갔다.

 

 

 

 

짜장면 5,000원 해물짬뽕 10,000원.

맛은 짜장면 맛, 아니 2%? 20%? 부족한 느낌이었다.

‘시장이 밥’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간절히 배가 고플 때 위장을 채운 탓인지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이 짜장면만 떠올려면 짜장면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저녁을 먹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순간에도.

 

 

 

수학여행 온 학생들의 단체 식사

 

 

제주도는 어딜가나 생수병은 삼다수 병만 보인다

 

 

 

마라분교.

뒤로는 자장면 시키신 분 원조,란 글자가 씌어진, 내가 짜장면 먹은 가게 

 

 

마라분교를 지나니 무한도전에 나왔던 짜장면 집, 인간극장에 나왔던 짜장면 집 등 짜장면 집이 즐비하다. 40분이면 한 바퀴를 돌아볼 수 있는 섬에 짜장면 집만 잔뜩 몰려 있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마라도에도 커피 파는 가게가 있다.

에스프레소가 들어간 것이 아니라 기계에서 나오는 인스턴트이다.

 

 

 

마라도 성당

바람이 너무 세서 카메라를 든 손이 절로 흔들려 사진 찍기가 힘들었다

 

 

마라도 성당(정확하게 말하면 경당이다).  

모양은 예뻤지만 보여주기 위한 성당 보다는 볼품 없어도 어떤 이야기나 역사를 담고 있는 성당이 좋은데.

 

이 성당도 시간이 훨씬 더 지나면 많은 이야기나 역사를 갖게 되겠지.

 

 

 

잠시나마 기도를 하고 싶었는데 배를 탈 시간이 촉박하여 성수를 바르고 성호경만 긋고 나왔다.

 

 

 

 

 

1915년 처음 불을 밝힌 마라도등대는 섬 자체보다 더 유명하다.

 

 

 

날씨가 흐리지 않았다면 어디든 카메라만 들이대면 작품이었을 텐데.

그렇다 하더라도 바다와 어우러진 이 풍성한 억새 물결은 장관이다.

 

 

 

 

* 마라도 정기여객선이 제공하는 마라도 지도는 잘못 돼 있다.

 이상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다 <수년째 거꾸로 방치된 마라도 관광지도>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982756 란 뉴스를 찾았다. 우리가 보는 거의 모든 마라도 지도가 틀렸다.

 

 

●모슬포항↔마라도

모슬포항에서 삼영해운(064-794-5490)의 21삼영호와 모슬포호가 하루 8회(09:00~16:00 매시 정각) 출항한다. 그리고 30분 뒤 마라도에서 출항한다. 송악산 아래 산이수동선착장에서도 마라도행 유람선이 출항한다.

 

 

 

배타고 간 제주도에서 두 번째로 간 곳은 엉또폭포.

KBS 1박2일 폭포 특집에서 은지원이 간 폭포이다.

 

제주도 방언으로 ‘엉’은 큰 웅덩이를, ‘또’는 입구를 뜻하는 '도'의 발음상 차이로 엉또폭포는 ‘큰 웅덩이’라는 뜻을 가진 폭포란다.

 

 

 

길이 공사를 하고 있어 차에서 내려 폭포를 향해 걷는 길에도 제주도답게 귤밭이 즐비하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 듯 나도 “생” 귤이 하나 먹고 싶었다.

 

나는 괜히 귤나무만 빽빽이 들어찬 귤밭에 대고

 

“아저씨, 아저씨~!”

 

하고 불러 보았다.

당연히(?) 대답이 없다.

 

“아저씨, 귤 하나만 따 먹을게요~!”

 

아저씨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귤밭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귤 하나를 땄다.

나도 별 수 없는 ‘서울 사람은 거지와 도둑 뿐’이라는 축에 끼게 되었다(비밀 엄수 ㅡ.ㅡ;).

 

 

 

엉또폭포는 기암절벽과 천연 난대림에 둘러싸여 있어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

 

 

 

 

절벽 가운데가 폭포수가 쏟아지는 길이다

 

 

엉또폭포는 비가 오거나 장마철이 되어야 웅장하게 폭포수가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산간 지방에 비가 70㎜이상 내려야 볼 수 있는 폭포이다.

 

 

그 다음 간 곳은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이다.

라면 청년은 동호회 사람들들로부터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에 가서 사진을 찍어 오라는 지령을 갖고 있었다.

 

한국야구 명예의 전당은 야구인 이광환 씨가 1995년, 한국 스포츠 문화의 발전을 위해 국내외 각지에서 야구에 관련된 다양한 자료와 용품을 모아 야구박물관을 개관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세계 야구 역사 기록 사진과 유니폼, 글러브, 배트 등 야구용품들의 변천 모습, 국내 주요 경기 영상물, 세계 유명 선수들이 사용했던 배트와 사인볼, 기념메달, 수상 트로피, 그리고 모두에게 익숙한 이름인 박찬호, 선동열, 이종범, 이상훈 선수들이 사용했던 유니폼, 신발, 배트, 사인볼 등이 전시되어 있단다.

 

안타깝게도 나는 야구의 ‘야’자도 몰라 입장료 1,000원을 내고 들어간 라면 청년을 기다리며 화장실도 다녀오고 잠깐 앉아 기다렸더니 ‘다 봤다, 가자’ 하더라.

 

 

라면 청년은 나를 이중섭 미술관에 내려주고 서귀포 잠수함으로 갔다.

 

 

이중섭 거주지, 미술관 들어가는 길

왼쪽의 팽나무는 이중섭의 쉼터 역할을 했던 나무로

 <섶섬이 보이는 풍경>의 소재가 되기도 했단다

 

 

 

 

 

 

 

이중섭 가족의 방은 초가의 오른쪽 끝 1.3평짜리 단칸방이다

 

 

오늘은 제주올레걷기축제가 6코스에서 열렸는데 마침 올레꾼을 위한 이벤트가 이중섭 거주지 마당에서 열리던 참이었다.

 

예지영 씨의 첼로, 김성민 씨의 오보에 연주회가 열렸다.

나는 특히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 No.1. prelude’ 라는 첼로 연주곡이 정말 좋았다. 묵직하게 때로는 중저음으로 사람의 마음을 울리며 사로잡는 첼로 소리가 좋은 건지, 아니면 바흐의 서곡이 훌륭한 건지, 잔뜩 흐린 오후의 이중섭 거주지 분위기 탓인지 아니면 여행객 특유의 처량함인지 모를 이 모든 것들이 합해져 No.1. prelude는 내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으로 들렸다. 나모 모르게 슬며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이 순간이 참 행복했다.

 

 

연주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두 예술가.

가운데는 올레 자원봉사자

 

 

연주회가 끝나고 이중섭 거주지를 둘러보았다.

 

 

작은 부엌이 딸린 단칸방

 

 

 

 

 

1951년 1월부터 12월까지, 이중섭은 이곳에서 일본인 아내와 두 아들을 키우며 힘든 피란생활을 했다.

방은 두 사람이 눕기에도 비좁아 보였다.

 

이 초가에는 당시부터 살아온 주인집 며느리가 지금도 살고 있다.

 

 

 

<섶섬이 보이는 풍경>, 1951년, 이중섭미술관 소장.

 

이중섭은 이 곳에서 <서귀포의 환상>, 두 점의 <섶섬이 보이는 풍경>, <바닷가와 아이들> 등을 그리며 약 1년여를 보내고 12월에 부산으로 갔다.

 

 

 

 

이중섭 거주지 뒷 편에 있는 이중섭미술관에는 이중섭의 작품과 아내(이남덕·마사코)와 주고받은 편지 등이 전시돼 있다. 이중섭이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는 참으로 참으로 애틋했다.

 

 

 

이중섭미술관 마당의 조각상

 

 

 

미술관을 둘러본 후 3층 옥상에 오르면, 60여 년 전 이중섭이 본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이중섭미술관 옥상에서 바라본 서귀포 앞바다 풍경

비바람이 거세 휴대전화로 겨우 찍었다

 

 

 

미술관에서 나와 작가의 산책길을 잠깐 걸어 보았다.

 

작가의 산책길은 이중섭 미술관에서 시작해 동아리창작공간~기당미술관~칠십리시공원~자구리해안~

서복전시관~정방폭포~소라의성~소암기념관에서 끝나는, 총 4.9km에 이르는 길이다.

 

 

다시 제주를 찾는다면, 자연의 아름다움이 문화와 잘 어울린 이 산책길을 오롯이 걸으며 갤러리 카페와 식당도 훑고 싶다.

 

 

 

이중섭의 작품으로 장식된 이중섭 거리는 저녁 조명이 더해지면 훨씬 더 운치 있다.

 

 

 

날씨는 짓궂게도 비바람이다.

신고 있던 런닝화와 양말 앞쪽이 젖었다.

 

라면 청년을 다시 만나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을 돌다가 헤어졌다.

라면 청년은 렌트카 반납을 위해 공항 근처 숙소로 간다고 했다.

 나는 오늘 밤 잘 모텔을 찾아 구 서귀포시외버스 터미널 부근을 걸었다.

 

어둑하고 비바람이 거센 낯선 곳을 홀로 걸으니 참 처량했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서도 한국에서는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비싸 보이지 않는 추풍령모텔 앞에서 전화를 걸어 방 값을 물으니 25,000원이라고 하여 2만원에 해달라고 하고 들어갔다.

 

방에 짐을 내려 놓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구 서귀포시외버스 터미널 바로 근처에 있는 진국옹기설렁탕 집에서 전복돌솥밥을 먹고 터미널 옆에 있는 맞짱김밥에 갔다. 지난 3월 한라산에 올랐을 때도 아침에 이곳에 들러 김밥을 샀었다.

 

주인 아주머니와 지난 한라산 등반 이야기를 하고, 내일 아침에도 여기에서 김밥을 사서 한라산에 갈 것이며 짐 가방을 맡겼다가(비용1,500원) 다시 들를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젊은 아주머니는 여전히 친절하고 여유가 느껴진다.

 

근처 파리바게뜨와 편의점에 들러 내일 산행에 필요한 간식을 샀다.

  

춥고 쓸쓸한 밤이었다.

 

201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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