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작한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4년 반의 긴 여정 끝에 이명박 대통령이 14개 부수법안에 서명함으로써 발효만 남겨놓게 되었다. 한국과 미국 간에 발효협상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큰 문제없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협상이 잘 되면 내년 1월 1일부터 발효되고, 협상이 길어지면 약간 지연된다고 보면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29일 부수법안에 서명하며 “한미 FTA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시장을 여는 것”이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 경제와 수출 전망이 어렵지만 한미 FTA를 잘 활용해서 극복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또 “개방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부분은 철저히 준비하고 대비해서 경쟁력 강화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미FTA는 참으로 길고 힘든 여정이었다. 성격이 극과 극인 두 정부, 두 대통령이 관여했다. 많은 시민사회단체도 관련돼 있다. 반미 정권에서 시작돼 친미 정권에서 마무리 되었다. 남북한 간의 관계를 빼고는 해방 이후 한미FTA처럼 오랫동안 갈등을 겪은 현안도 없을 것이다. 정치권의 갈등, 시민사회단체의 갈등이 대단했다.
한미FTA는 말 그대로 파란만장이었다. 노무현 정부 협상시작 - 공식서명 - 추가협상 - 여야 갈등 - 강기갑 CCTV 가리기- FTA 괴담유포 - 끝장 토론 - 한나라당 기습처리 - 김선동 최루액 살포 - 한미FTA 무효화 시위 - 경찰 물대포 발사 - 종로경찰서장 폭행 - 정동영 등 청와대 앞 피켓시위 - 이명박 대통령 부수법안 서명이라는 힘든 여정이었다.
정치권의 말 바꾸기와 입장 뒤집기는 한미FTA의 큰 오점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FTA를 추진하자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이를 반대했다. 홍준표 현 한나라당 대표의 반대는 강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이번에는 노무현 정부에서 한미FTA 전도사였던 민주당의 정동영 최고위원 등이 반대의 선봉에 섰다. 아군과 적군이 수시로 바뀌었다.
잇따라 터진 폭력과 시위도 오점이다. 민노당 강기갑 의원이 동료의원의 어깨를 밟고 올라가 회의장의 CCTV를 신문지로 가리는 모습은 꼴불견이었다. 결론도 없는 여야의 끝장토론은 국민들을 짜증나게 했다. 김선동 의원이 FTA 국회통과를 저지하며 최루탄을 터뜨려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 22일 오후 한미 FTA 국회비준동의안을 처리하기 위해 한나라당이 기습적으로 국회 본회의를 개회한 가운데 정의화 국회부의장이 한미 FTA 국회비준동의안을 야당의원들의 항의속에 처리하고 있다. ⓒ데일리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이 시위 현장에서 시위대에게 폭행을 당해 입고 있던 제복의 계급장이 뜯겨 나가고, 전치 3주의 상처로 치료를 받기도 했다. 폭행이 있기 며칠 전에는 경찰이 시위에게 물대포를 쏘아 말썽이 되기도 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 물대포를 쐈다는 비난이 일었다.
괴담도 대단했다. 약값이 3배 오르고, 위 내시경이 100만원, 맹장수술이 900만원이 된다는 괴담이 떠돌았다. 건강보험이 붕괴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한미 FTA는 불평등 협정이며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는 경제 주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이라고 했다. FTA는 반 서민, 반 복지 정책이라는 말까지 떠다녔다. 근거 없는 것들이었다.
돌아보면 이런 일련의 과정은 한미FTA라는 ‘옥동자’를 낳기 위한 아픔이었다. 이제 우리는 한·미FTA로 인한 갈등과 충돌을 끝내야 한다. 이 대통령이 부수법안에 서명한 마당에 더 이상 반대할 것도 없고, 시위를 할 것도 없다. FTA가 잘 발효되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갈등을 청산해야 한다. 대통령이 서명을 했는데도 무효화를 주장하며 거리로 나서는 것은 국민들이 해야 할 도리가 아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한미FTA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은 ISD는 이 대통령이 미국과 재협상을 한다고 했으니 믿고 기다리면 된다. 발효협상은 정부가 알아서 마무리 지으면 된다. 후속 처리 문제는 정부에 100% 일임하되 혹 정부가 잘 못하거나 미비한 게 있으면 잘 하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게 성숙된 시민의식이다.
한미FTA는 우리에게 득이 되는 것도 있고 실이 되는 것도 분명히 있다. 자동차, 전기·전자와 섬유 등은 인구 3억의 넓은 시장에서 활보할 것이다. 반대로 농축산물은 수입이 늘어난다. 약값이 오를 수도 있다. 서비스 분야의 개방 압력이 커질 수도 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을 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장을 담아 놓고 구더기를 하나씩 잡아내는 게 옳다는 얘기다.
한미FTA로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는 대책을 세워 피해가 없거나, 피해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대통령이 “개방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부분은 철저히 준비하고 대비해서 경쟁력 강화의 계기로 삼자”고 한 말을 교훈으로 삼자는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보다는 어떻게 하면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미FTA를 반대했거나 시위의 선봉에 선 것은 지난 일로 묻어두자. 설령 한미FTA를 반대하고 시위를 했어도 부수법안이 서명된 이상 지난 과거는 깨끗하게 묻고 앞으로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찬성했다 반대한 사람, 반대했다 찬성한 사람의 이름을 들먹일 것도 없다. 다 잊으면 된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한미FTA를 활용해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고, 국내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데 온 힘을 모으는 것이다. 한미FTA로 농산물 피해가 우려된다면 여당은 물론 야당과 시민사회단체가 농촌으로 찾아가 어려움이 무엇인지, 도울 것은 없는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것이다.
정치인과 시민사회단체가 이런 ‘착한’ 마음을 갖는다면 한미FTA는 우리 경제를 도약시키는 발판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무역의 중심에 서는데 일등공신이 될 것이다. 도약의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적절한 때에 갈등과 반대, 충돌과 시위를 끝내는 ‘끝냄의 미학’을 통해 기회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기회가 지금 우리 앞에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