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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있었다.
미영의 남자친구 ‘형석’이 메신저에 접속해 있었다.
잠시 멈칫하던 미영이 남자친구의 대화명을 클릭한다.
-딸칵, 딸칵
[ 김형석(고달픈 내 인생ㅡㅡ;) 님과의 대화.]
대화창이 열리고, 미영의 손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대화 중의 금전 거래, 개인정보 교환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김형석!!! 이 나쁜새끼야!! 너 그것밖에 안 돼? ]
타자를 친 후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본다.
어떤 말이든 좋으니, 남자친구의 답신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좀처럼 대답이 없는 남자친구,
미영은 초조함에 다시 자판을 두들긴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야! 입 있으면, 아니 손 있으면 말 좀 해봐! 뭐야 너!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야 대답 하라고!! 내가 그렇게 우스워? ]
하지만 여전히 대답 없는 남자친구.
얼마간 시간을 더 보내던 미영이,
그만 포기하고 쪽지를 보내려는 마음으로 마우스를 짚는 순간,
[김형석(죽어)님이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습니다.]
대화창 하단에서 남자친구가 메시지를 넣는다는 정보가 눈에 들어왔다.
어느새 대화명도 바꾼 채로였다.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 ]
미영으로선 예상했던 반응이라고 해야 할까?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지만 역시나의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게 더욱 더 미영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너 나한테 왜 이러니 정말. 내가 메일 보낸 게 그렇게 거슬렸니?
그런 거면 내가 사과할게. 이제 그만하자. 이런 유치한 장난도 그만하고 싶고,
너랑도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아. 우리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자. 이제 그만해줘 제발.]
최소한 자신의 메시지는 보고 있다는 확신으로 긴 글을 입력한다.
이정도로 했으면 이제 인격적으로 나와야 정상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대답은 한결같기만 하다.
[김형석(죽어) 님의 말 :
죽어 ]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왜 자꾸 죽어, 죽어 이딴 말만 하는 거야!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 ]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야 이 강아지야!!]
미영은 화가 나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 보니, 남자친구는 이 상황을 일부러 즐기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렇게까지 자신에게 짓궂게 대할 리가 없었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너, 그나마 옛정을 생각해서 참는 거야.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경찰에 신고할지도 몰라.]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
미영의 협박에도 남자친구는 여전했다.
더 이상, 미영의 눈에 남자친구는 자신과 사랑을 나눴던 연인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괴롭히는 정신이상자에 불과했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그래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이 미친놈. 어디 두고 보자.]
두고 보자는 말을 끝으로 미영이 의자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아까 던졌던 핸드폰을 집어서는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뚜우우... 뚜우우... 딸칵, 예 112입니다.
전화를 건 곳은 112였다.
미영 나름대로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한 방법이었다.
수화기 너머 차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떤 정신병자가 계속 저를 협박해요. 도와주세요!”
-지금 그 사람과 같이 있는 건가요?
“그건 아닌데요, 주로 인터넷을 통해 당하고 있어요.”
-아, 그러시면 제가 사이버수사대 팀으로 연결을 해 드릴게요. 끊지 말고 기다리세요.
“예...”
딸칵 소리와 함께 잠시 기다려 달라는 안내멘트와 음악이 나온다.
기다리는 동안 미영은 다시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어느새 남자친구가 도배한, 그 지긋지긋한 ‘죽어’라는 말만 눈에 들어온다.
미영의 표정에서 남자친구를 향한 연민은 이제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을만큼 싸늘했다.
-예 사이버수사대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 신고 좀 하려고요.”
-예, 무슨 종류인가요?
“예?”
-아, 뭐 해킹이나, 사기, 협박, 개인정보 등등 이런 종류요.
“아아. 음, 협박이에요. 이메일과 미니홈피 쪽지 등으로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해서 보내옵니다.”
-어떤 말인지 알 수 있을까요?
“예, ‘죽어’ 라는 말, 단 두 글자만 계속 보내고 있어요.”
-언제부터 그랬죠?
“어제 밤 부터였어요. 저 정말 이것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하고 정말 죽겠어요.”
-신속한 처리를 위해서, 받으신 이메일과 쪽지를 캡처해서 이쪽으로 보내주시겠습니까?
“예? 아 예, 그렇게 할게요. 어디로 보내면 되나요?”
-바로 문자메시지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메일 받으면 10분 내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예. 그렇게 할게요. 고마워요.”
전화를 끊은 미영이 다시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이번엔 약간 실소까지 머금은 상태였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신고했다. 분명히 내가 경고했었지? 이렇게 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너가 초래한 거야.]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
변함없는 대답.
그 때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syberXX@112.com
지금 넣어주세요. ]
이메일 주소였다.
미영은 일단 대화창을 최소화 시키고 아까 들었던 캡쳐 작업을 시작했다.
메일 개수, 똑같은 제목과 똑같은 내용, 그리고 미니홈피의 쪽지 등,
최대한 자신이 당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캡쳐한 사진만 수 십장에 달했다.
익숙한 솜씨로 파일을 압축하고 ‘메일쓰기’를 클릭한다.
[발송이 완료되었습니다.]
“후우....”
신고를 마무리한 미영이 작은 한숨을 쉰다.
마음이 편해진 건지, 오히려 마음이 더 불편해진 건지 모를 그런 한숨이었다.
최소화 한 대화창에서는 계속해서 주황색 불 빛이 깜빡 거리고 있었다.
상대방이 메시지를 쓰고 있다는 뜻이었다.
“10분 내로 전화가 온댔지. 그래. 그 때까지 맘껏 지껄여봐라.”
미영이 대화창을 다시 원 상태로 돌렸다.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김형석 (죽어) 님의 말 :
죽어]
그저 죽으란 말 뿐.
살면서 이렇게 죽으란 말을 많이 들은 적이 있던가.
더군다나 흔히 친구들끼리 장난하는
‘너 죽어~’라는 말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런 생각이 미치자,
가뜩이나 혼자 사는 미영에게 조금씩 공포감이 엄습하고 있었다.
하지만 10분이면 된다.
늦어도 10분 이내에는 무언가 방도가 생길 것이다.
마냥 기다리기 뭐 했던지 미영이 핸드폰을 들어 어딘가로 다시 전화를 한다.
익숙한 컬러링이 들려온다.
“어? 여보세요? 나래야, 나야.”
-어? 유미영? 지지배가 전화 되게 오랜만에 하네.
중학교 때부터 만난 친구 ‘나래’였다.
그리고 미영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해 준 장본인이기도 했다.
“어.. 사실 너한텐 좀 미안한 일도 있고, 최근에 힘들기도 했고 좀 그랬잖아.”
-뭐.. 그랬지. 그런데 너 알고는 있는 거야?
“응? 뭘 말이야?”
-뭐냐니. 형석이 말이야 형석이.
“미안한테 그 새끼 이름은 꺼내지 말아줘. 하루 종일 얼마나 시달렸는지... 이제 치가 떨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시달리다니?
“내가 메일을 보냈는데, 글자 하나 틀렸다고 그걸 꼬투리 잡아서 날 얼마나 괴롭히는지. 지금도 네이트에
서 계속 그러고 있다. 이런 앤지 몰랐어. 끔직해 정말.”
-지금 네이트에 형석이가 있어?
“어. 내가 대화 저장해서 보내줄까? 너도 이런 애랑 빨리 모르고 지내는 게 좋을 것 같다 야.”
-너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야?
“응? 뭘 자꾸 모르냐는 거야?”
잠시 정적이 흐른다.
몇 초 동안 나래로부터 대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나래야?”
-응... 잘 들어.
“어? 무슨 일이야 뜸 들이지 말고 말 해.”
-형석이 죽었어.
순간 미영의 눈이 파르르 떨린다.
뭔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
하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말을 꺼낸다.
“하, 하하하. 이 년이 갑자기 왜 장난을 치고 그래. 형석이 지금 네이트에서 나랑 대화중이라니까.”
-장난을 치는 건 너 아니야? 형석이가 누구 때문에 죽었는지 아니?
나래의 음성에 장난 끼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진지한 모습은 처음일 정도였다.
“야.. 너 왜 그래. 정말 나랑 대화중이라니까. 의심나면 접속해 봐.”
-됐어. 다른 사람인가보지. 너랑 헤어지고 형석이 자살했어. 한강에서 뛰어 내렸다고.
미영의 온 몸이 바들바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어, 언제? 대, 대체 언제?”
-너랑 헤어진 바로 다음날.
“아아아아악! 거짓말 하지마!!!!!”
미영이 날카롭게 소리 지르며 핸드폰을 던져 버린다.
벽에 부딪힌 핸드폰이 둔탁한 소리를 내고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미영은 이성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형석이가 죽었다니.
대체 그럼 누가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인가?
떨리는 온 몸을 부여잡고 미영이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너... 너... 누구야!! 너 형석이 아니지!?]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 ]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너 누구냐고!! 너 어디야 대체. 어디서 이런 장난을 하고 있는 거야!!]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 ]
“뭐야.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미영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모든 게 꿈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휘젓는다.
바로 그 때,
-드르르르. 드르르르.
핸드폰 진동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멈칫 하던 미영이 뭔가 떠올랐다는 듯이 냅다 몸을 던진다.
“여, 여보세요? 사이버 수사대에요?”
미영이 의지할 곳은 이제 이곳 밖에 없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미영이 전화를 받는다.
-예, 맞습니다. 보내신 파일 확인 했고요. 아이피 추적도 완료 했습니다.
“예예. 어떻게 됐나요?”
-죄송한데요. 지금 그 쪽 주소가 영등포구 당산동 푸른지오 아파트 208동 1309호가 맞나요?
“예예. 맞아요 맞아요.”
-정말 맞아요?
“예, 맞다니까요!”
-이런 큰일이네. 어서 집을 나오세요!
갑자기 상대편이 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절박함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예? 무슨... 말?”
-아이피 추적한 결과, 주소가 당신 집으로 나왔어요! 어서 나와요!
“.... 예!?”
-그 자식이 지금 거기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미영은 할 말을 잃었다.
대체 지금 무슨 상황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남자친구는 죽었다.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힌 사람은 남자친구를 사칭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바로 여기에 있다?
미영이 다급하게 집안 곳곳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심장은 한없이 쿵쾅거리고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그러던 중,
미영의 시선이 한 곳에서 멈춘다.
그 곳은 베란다였다.
경악에 찬 미영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닫힌 베란다 창문으로, 낯선 검은색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똑,똑,똑
.......
-유미영씨! 어서 밖으로 나가요!
......
[4]
아주 약간,
베란다 문 틈새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 약간의 틈새로 검은색 야구모자가 보인다.
미영은 이미 사고가 정지 되어 있는 상태였다.
지금 당장 도망가야 된다는 생각조차 머릿속에 떠올리지 못 했다.
“후우욱, 훅, 후욱”
불규칙한 호흡.
그리고 흘러내리는 식은 땀.
두 눈에는 언제 흘러도 이상할 게 없는 방울들이 맺혀있다.
그리고,
-터억!
갈려진 문 틈 사이로 하얀 장갑에 덮인 손이 하나 걸쳐진다.
-끼이이이
미영을 희롱하기라도 하듯, 느린 속도로 문이 열려진다.
그리고 보이기 시작한다.
검은 점퍼, 검은 바지, 그리고 하얀 마스크.
미영의 가슴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한다.
-끼익, 덜컥!
문이 모두 열렸다.
미영의 시선이 괴한의 오른 손에 들려진 팔뚝 길이만한 칼에 박힌다.
“아, 아, 아아, 아아아... 꺄아아아악!!!”
비로써 사고가 회복된 미영.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베란다에 서 있는 온통 시커먼 차림의 괴한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찰나의 순간,
미영의 머릿속이 바쁘게 회전하기 시작한다.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미영이 현관 쪽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곳은 미영이 창고로 쓰는 작은 방이었다.
괴한과 미영의 거리 차이는 불과 6걸음 남짓인데,
이중으로 잠가놓은 현관을 열고 나가기는 시간이 촉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현관을 향해 뛰던 미영이 급하게 몸을 틀기 시작했다.
-쿵쾅 쿵쾅
괴한의 묵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온다.
미영이 다급하게 손잡이를 잡고 돌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미영의 세 걸음 앞으로 다가온 괴한이 칼을 든 오른손을 치켜들기 시작한다.
“꺄아악!! 꺄아악!!!”
-쿠웅!
소리를 지르며 문을 열어젖히는 미영.
황급히 몸을 집어넣고 문을 밀기 시작한다.
그런데,
-덜컥!
문이 다 닫히지 않는다.
살짝 문을 떼고 다시 한 번 문을 미는 미영.
-덜컥!
하지만 또 다시 문은 끝까지 닫히지 않았다.
미영은 공포감에 동그라진 눈으로 문틈을 쳐다보았다.
-덜컥덜컥, 덜컥덜컥
칼이었다.
괴한이 문틈으로 칼을 찔러 넣었던 것이다.
미영은 이제 서 있을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예고된 눈물이 왈칵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큭큭큭큭, 이 년아. 그러게 신고는 뭐 하러 했니. 안 그랬으면 조금 더 살 수도 있었잖아. 멍청한 년.”
문 밖에서 괴한의 소리가 들려온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였지만 젊은 남자의 톤이었다.
“누, 누구세요! 대, 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에요!!”
미영이 말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창고로 쓰고 있으니 분명히 무언가 집을 만한 게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누구냐고? 누군지 알면 뭐가 달라질 것 같아서? 큭큭.”
조금씩 미는 힘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미영은 다급했다.
최대한 몸을 기울여 문을 닫고는 있지만 이대로는 오래 버티기 힘들 것 같았다.
어떻게든 문틈으로 찔러 넣은 칼을 빼고 문을 잠가야만했다.
-콰앙!
괴한이 문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어찌나 힘이 센지, 문 쪽에 몸을 붙이고 있던 미영의 몸이 순간 팍 하고 튕긴다.
다행히 붙잡은 손잡이는 놓치지 않았지만 몇 번 반복이 되면 견딜 수 없을 게 뻔했다.
-콰앙! 콰앙!
“아악! 그만해요! 형석이, 형석이 때문인가요? 형석이가 자살해서?”
울부짖듯 외치는 미영의 말이 끝나자, 괴한의 발길질도 덩달아 멈췄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미영으로선 한 숨 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니까짓 년 때문에 형석이가 죽었다는 게 제일 열 받는다. 한번만 더 그 아가리에서 형석이 이름이 나오
면..."
괴한이 잠깐 말을 멈추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말을 잇는다.
“신발, 어떻게 죽여야 될지 모르겠네. 쉽게 죽진 못 할 거야 이것만 알아둬라.”
미영은 정신없이 고개를 움직였다.
안 쓰는 식기 세트, 덩치 큰 가구 및 선반과, 액자 등등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대각선으로 오른 쪽 구석에는 쇠 봉 같이 무기가 될 만한 것들도 보였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문에서 몸을 떼야만 했다.
결국,
쓸 만한 물건들이 있어도, 미영이 문에 몸을 붙인 채 잡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지금 손에 닿는 물건들은 미덥지 못한 물건들임에 분명했다.
-콰앙!
괴한이 다시 문을 발로 차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더 강한 힘이었는지 미영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미영이 급한대로 손을 뻗고 무언가를 잡았다.
손의 감촉으로 봐서는 무언가의 손잡이.
미영이 재빨리 그곳을 쳐다보았다.
역시나 작은 선반의 손잡이였다.
미영은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그리고 생각났다.
이 안에는,
-벌컥!
“있다! 있어!!!”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낸 미영, 문 밖에서 조소가 들려온다.
“큭큭크큭, 미친년. 아직 여유가 있나보지?”
선반 안에는 놀랍게도 각 종 향신료와 양념들이 각 종류마다 작은 통에 들어있었다.
미영은 퍼뜩 떠오르는 무슨 생각이 있었는지 손을 뻗어 그 중 두 개를 빼낸다.
그것들은 바로 고춧가루와, 후추였다.
-콰앙!
“아아악!!”
허리 쪽에 강렬한 충격을 느끼는 미영,
정말로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었다.
미영은 다급하게 후추통과 고춧가루 통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왼 손에 고춧가루와 후춧가루를 부어 한 손이 꽉 차게 움켜쥐었다.
손에 쥔 이 가루들이 미영에겐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어떻게든 생각을 추슬러야 했다.
-콰앙!!
“크크크큭, 내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아니?”
-콰앙!!
“너한테 그 성기같은 메일 하나 받고 바로 출발했단다. 쳐 자고 있을 때 배때지를 쑤셔 버릴까 하다가 그렇
게 쉽게 죽으면 우리 형석이만 억울한 것 같아서 말이지.”
-콰앙!!
“형석이 메일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 크크큭, 유서에 다 써져 있더라고.”
-콰앙!!!
“유서에다 뭐 그딴 걸 썼냐고? 유서가 거의 20장은 되더라. 그런데 씨팔 네 년 얘기만 열 장이 넘어. 가족
들한테는 미안하니 어쩐다니 시시껄렁한 몇 줄 적어놓고, 네 년 보고 싶다는 얘기만 주절 주절이더라
고.”
-콰앙!!
“야마가 돌겠니, 안돌겠니? 뭐, 맞아. 내 동생이 쪼다지. 등신새끼가 여자 하나 때문에 자살을 쳐 하고.
신발 뭐 다 좋다 이거야. 그런데 죽은 동생 바지 주머니에 집 열쇠가 하나 있더라. 거기에 분홍색 포스트
잇이 붙어 있었는데 뭐라고 쓰여 있었는지 아냐?”
-콰앙!!
“형, 이거 미영이한테 꼭 돌려줘, 라고 쓰여 있더라. 신발.”
미영은 몇 번이나 문에서 튕겨나갈 위기를 맞았지만, 간신히 손잡이를 붙잡아 버티고 있었다.
이제는 잠자코 듣는데도 한계가 있었다.
“저기요. 대충 누군지 짐작이 돼서 그러는데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
발길질이 멈췄다.
“크크크큭, 용서? 너가 바라는 용서가 뭔데? 사는 거? 아니면 편하게 죽는 거? 후자라면 들어줄 수도 있
다. 단, 지금 문을 열면!”
미영이 굳은 표정으로 이빨을 한 번 꽉 깨물고는 다시 입을 연다.
“좋아요. 그렇게 할게요. 더 이상은 무섭고, 힘들고, 아파서 견딜 수가 없어요. 차라리 문을 열게요.”
미영이 왼 손에 점점 힘을 주면서 조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손잡이를 잡은 오른손도 뗀 다음, 몸을 돌려 문을 바라보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벌컥!
거칠게 문이 열렸다. 그리고 시커먼 괴한이 칼을 든 채로 문 앞에 서 있는 게 보인다.
옆으로 쭉 찢어진 눈매가 가늘게 떨리고 있는 걸로 보아,
마스크에 가려져 있지만 웃고 있는 게 분명했다.
미영은 움켜쥔 왼손을 살그머니 허리 뒤쪽으로 숨겼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미영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괴한이 말을 꺼낸다.
“씨팔, 이딴 년이 뭐가 좋다고... 마음이 바뀌었어. 너 그냥 산 채로 찢어 죽일래.”
말을 내뱉은 괴한이 한걸음을 성큼 내딛어 문틀을 밟았다.
미영에겐 이제 더 이상의 시간이 없었다.
“저, 저, 저, 어, 얼굴 한 번만 보, 보여주세요. 제, 제발 부탁이에요.”
절대적인 공포를 간신히 억누르고 미영이 말을 내 뱉었다.
하지만 미영에겐 좌절감만이 가득했다.
상대방에게 무언가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 밖에 안 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괴한이 살짝 고개를 갸웃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크, 크큭 그래, 뭐 혹시, 내가 형석이는 아닐까, 뭐 그런 마음으로 한 말인가 보군. 죽기 전에 한 번
보여주마 내 얼굴, 크큭”
괴한이 한 쪽 손을 귓가로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걸쳐 있는 마스크 끈을 빼냈다.
-쓰윽,
마스크가 한 쪽으로 쏠리면서 드디어 얼굴이 드러난다.
물론 형석이가 아니었고, 미영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단지, 미영에겐 놓칠수 없는 기회가 찾아온 것은 확실했다.
“고맙다. 이 미친새끼야!!”
소리를 내 지르며,
숨기고 있던 왼손을 들어 온 힘을 다해 괴한의 얼굴로 휘둘렀다.
-퍼억!
순식간에 괴한의 얼굴이 고춧가루와 후추로 범벅이 된다.
한 손 가득이 움켜쥐었던 터라 양또한 적지 않았다.
“끄아아악!! 푸, 푸엣취!!”
고춧가루와 후추의 효과는 미영의 기대 이상이었다.
마치 최루탄에 맞은 것처럼 괴한은 고통에 몸부림치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이 순간,
미영으로선 다시 한 번 선택의 기로였다.
당장 쇠 봉을 들고 괴한을 물리칠지,
아니면 문을 닫고 잠가버릴지.
“아아아악! 이 미친년!! 신발. 신발!!!!!”
미영이 선택이 후자 쪽으로 기울어졌다.
왜냐하면 괴한이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칼을 허공에 휘둘러 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콰앙!!, 철컥
문을 닫았다.
이번에야말로 완전하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손잡이 중앙을 꾹 눌러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
“후우...”
짧게 한숨을 내쉬며 문을 등진 채 주저 않는 미영.
“흐..흑, 흐흑... 흐흑흑...”
그리고 하염없는 눈물을 쏟기 시작한다.
[5]
열어!!!!! 씨팔 열어!!!!”
-콰앙!!
“열라고!!!!”
-콰앙!!
격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 그리고 괴한의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혹시 몰라 수납장을 문에 끌어다 놓고는
한 손으로 쇠 봉을 꼭 쥐고 있는 미영.
흐르는 눈물을 나머지 손으로 연신 닦아 내느라 바쁘다.
-쾅! 쾅! 쨍그랑!
새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문을 여는 것은 포기한 모양이었다.
대신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부셔 놓을 생각인 것 같았다.
“죽어! 죽어! 죽어!! 씨팔!”
깨지는 소리, 부셔지는 소리, 찌그러지는 소리,
그리고 고함 소리 등이 섞여 요란한 소음을 만들어 내고 있다.
미영은 그저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떠는 수밖에 없었다.
악몽같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콰앙!!
갑자기 문 쪽에서 큰 소리가 들려온다.
괴한이 문을 발로 찬 모양이었다.
깜짝 놀란 미영이 몸을 더욱더 움츠린다.
“...내일 보자.”
아까까지와 다르게 차분하고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괴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영은 오히려 그게 더 소름 끼쳤다.
-철컥, 끼이익
곧 있어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린다.
괴한이 집을 나가는 모양이었다.
-끼이익 쾅!
문이 닫혔다.
그리고 방금까지의 소음들이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사방이 고요하다.
“......”
한동안 적막이 흐르고, 미영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다.
거기다 입도 뻥긋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문을 여는 순간 괴한이 바로 앞에 서 있는 건 아닐까.
밖에 나간 척 하면서 또 다시 베란다에 숨어 있지는 않을까.
-째깍, 째깍
적막 속에서 시계 초침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
-끼이이익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적막을 깨고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도, 돌아왔나?’
미영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느슨하게 잡고 있던 쇠 봉도 다시금 힘을 주어 잡는다.
-저...
다른 소리.
한 글자뿐이었지만 분명히 그 괴한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미영이 황급히 몸을 일으켜 문에 귀를 붙인다.
“유미영씨! 유미영씨 계신가요? 계시면 나와 보세요!”
순간 미영의 눈에서 왈칵하고 눈물이 쏟아진다.
“유미영씨 안 계신가요? 그 놈이라면 잡았습니다. 유미영씨!!”
“지엿. 역히 익...써효.”
미영은 ‘저 여기 있어요’라고 말 하고 싶었는데,
어찌나 목이 메는지 이상한 말이 나온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아 계셨군요. 그 놈 잡았습니다. 나오셔도 됩니다.”
문 밖에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
미영은 선뜻 문을 열지 못했다.
아직은 두려웠기 때문이다.
“누, 누구신가요?”
“예? 아, 제가 누군지도 말을 안 했네요. 경찰입니다.”
-끼이이익, 저벅 저벅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문 밖으로 부산한 소리가 들려왔다.
현관 쪽에 누군가 또 들어온 모양이었다.
“아, 경장님 오셨어요? 그 놈은 어떻게 됐습니까?”
발걸음 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아, 말도 마. 정두식이는 팔에 칼 맞고, 이민섭이는 얼굴에 제대로 한 방 맞아서 쌍코피 터지고...”
“아 그래요? 두식이 팔 괜찮아요?”
“아니 뭐 그렇게 심하게 찔린 건 아닌데, 아무튼 위험한 놈이었어. 진땀 뺐네 아휴.”
미영은 귀를 쫑긋 세우고 문 밖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대화로 미루어 보아 경찰이 맞는 것 같았다.
“저기요.”
문 손잡이를 잡고 미영이 힘겹게 말을 꺼냈다.
“어, 예? 어 안에 계셔? 예, 예 말씀 하세요.”
나중에 온 굵은 목소리의 남자가 약간 놀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 사람... 여기 없죠?”
“예, 예. 저희가 잘 체포했습니다. 지금쯤 서 앞에 도착했겠네요.”
말을 들은 미영이 비로소 손잡이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철컥, 끼이이익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문 앞에서 정복을 입고 서 있는 두 명의 남자 경찰들이었다.
한 사람은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다부진 체격의 젊은 사람이었고,
한 사람은 듬성듬성한 머리숱에 삼십 대 중반 정도의 사람으로 보였다.
그 다음으로 보인 것은 처참하게 변한 거실의 모습이었다.
온통 깨지고 부서진 물건들로 바닥은 어지러웠고,
형광등 또한 껌뻑 껌뻑 거리며 밝지 않은 빛을 내고 있었다.
비교적 멀쩡한 싱크대 옆으로,
냉장고의 문 이음쇠가 박살이 났는지 잘 닫히지 않은 채 기우뚱하게 열려 있었고,
나무로 된 식탁의 다리 하나가 부러져 한 쪽으로 주저앉은 모습이 보였다.
싱크대 위에 위치한 선반은 모두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그 안에는 미영이 모아놓은 접시나 컵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바닥 아래에 깨진 채로 널려있는 것들이 그것들인 모양이었다.
“아, 괜찮으세요? 김순경, 부축 좀 해 드려.”
김순경이라고 불린 젊은 사람이 미영에게 다가온다.
“아, 저는 괜찮....으음”
괜찮다는 말을 하려는 데 민망하게 다리가 풀려 버린다.
어쩔 수 없이 김순경의 어깨에 몸을 맡기는 미영.
“음. 이거 완전 난장판이라 어디 앉기도 힘들겠네요. 음... 아, 저기 방 쪽은 괜찮아 보이네요.”
김순경이 미영을 부축하며 미영의 방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박경장님. 저 방으로 가시죠.”
박경장이라고 불린 삼십 대 중반의 남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따랐다.
능숙한 솜씨로 미영을 침대에 앉히고 자신은 컴퓨터 앞 의자에 앉는 김순경.
그리고 뒤 따라온 박경장은 문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
“괜찮으시겠어요? 일단 경위서 작성을 위해서 서까지 가주셔야 합니다만, 지금 상태로는 조금 힘들 것 같
네요.”
김순경이 미영의 얼굴 이곳저곳을 살피며 말 했다.
“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미영이 몹시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네? 어떤...”
“그러니까. 어떻게 우리 집에서 나한테 보낼 수 있었죠? 메일 같은 것들 말이에요.”
김순경이 도통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박경장을 쳐다보았다.
“아, 그건 제가 설명 드리겠습니다.”
문 앞에 서 있던 박경장이 미영 쪽으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말을 잇는다.
“음, 미영씨가 맨 처음 받았던 메일을 빼고는 모두가 여기서 보낸 겁니다.”
“대체... 어떻게 보낸 거죠? 노트북이라도 쓴 걸까요?”
“그건 아니에요. 여긴 무선 인터넷 신호도 안 잡힌다고 그러더라고요.”
“예? 그럼 어떻게...”
“미영씨 컴퓨터로 보낸 겁니다. 미영씨 잘 때, 이 집에 몰래 들어와서는 대담하게 자는 미영씨 옆에서 컴
퓨터를 두드린 거죠.”
그게 과연 대담한 걸까?
그는 어차피 미영을 죽이러 온 것이었다.
만약에 그 때 미영이 눈을 떴다면 그 자리에서 죽였을 게 뻔했다.
그러니, 대담한 것과 상관없이 단지 그 상황을 즐겼을 것이라고 미영은 생각했다.
메일을 보낸 후 괴한은 베란다로 몸을 숨긴 채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 미영이 나간 다음 미영의 컴퓨터를 이용해서 메일과 쪽지 등을 보낸 것이다.
거기에 소름끼치는 포스트잇 장난도 곁들이고 말이다.
대충 상황이 정리되자 미영에게 또 다시 공포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자신이 살아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표정이 많이 안 좋으시네요. 한 가지만 여쭤 봐도 될까요?”
“...예”
미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혹시, 피의자와 무슨 관계라도 있으신건지...해서요.”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박경장.
“형석이, 그러니까 제 예전 남자친구의 형인 것 같아요.”
미영이 의외로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
“아... 이거 이해가 안 되는데요. 남자친구의 형이라는 사람이 대체 왜...”
“자살했거든요. 형석이.”
“아......”
박경장이 짧은 탄식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리고 잠시 묵직한 공기와 침묵이 흐른다.
“어험, 험”
영문을 모른 채 눈치만 보던 김순경이 짧게 헛기침을 하더니 몸을 일으킨다.
박경장이 그런 김순경을 힐끗 쳐다보고는 미영을 향해 말을 꺼낸다.
“일단 여기서 쉬고 계시죠. 어차피 오늘 밤엔 그 놈이랑 한 바탕하느라 정신없을 것 같습니다. 필요할 때
저희가 데리러 오든지 하겠습니다.”
“아... 네...”
미영의 대답을 듣고 박경장이 고개를 몇 번 끄덕 거리고는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김순경과 함께 문 쪽으로 몸을 움직인다.
“아 참, 이따가 현장 감식반 올 지도 모르니까요. 그 때 꼭 문 열어주셔야 합니다.”
“네, 그럴게요.”
그 대화를 끝으로 경찰들은 문 밖으로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미영은 그들이 다 나간 후에도 계속 문 쪽을 쳐다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
어찌 됐건 사건의 진모도 밝혀졌고 잘 해결도 됐건만,
미영의 마음 한 구석에는 무언가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사랑했던 남자친구의 자살 때문인가 생각해 보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무언가 이치에 안 맞는 것으로 인한 찝찝함이었다.
‘분명히 내가 나간 틈을 타서 컴퓨터를 이용했고, 내가 들어온 후에는 베란다에 숨어 있었단 말이지.’
잠시 생각에 잠기던 미영의 눈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메일을 확인하고......’
미영의 머릿속에 점점 그 찝찝함의 정체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미영이 몸을 일으키더니 천천히 컴퓨터 앞으로 걸어간다.
머릿속에 박경장이 했던 말이 울리기 시작한다.
......
“여긴 무선 인터넷 신호도 안 잡힌다고 그러더라고요.”
“여긴 무선 인터넷 신호도 안 잡힌다고 그러더라고요.”
“여긴 무선 인터넷 신호도 안 잡힌다고 그러더라고요.”
......
-딸칵
[김형석(죽어)님이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