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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미영은 떨리는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은 채,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다는 대화창의 글귀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 괴롭고, 무서운 날이었다.
하루종일 '죽어'라는 말에 시달렸고, 재수없게 회사에서는 사장에게까지 혼이 났다.
거기다 남자친구의 자살 소식을 들었고, 그의 형이 복수를 하겠다며 자신을 습격하기도 했다.
너무 놀라서 이젠 어떤 일이 생겨도 놀랍지 않을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런 미영에게 또 한 번 두려움이 찾아오고 있었다.
[김형석(죽어)님이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습니다.]
초조하게 메시지를 기다렸지만 좀처럼 대화창에 글이 입력되지 않고 있었다.
‘혹시, 메신저에 오류라도 난 건가? 사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을 리가 없잖아.’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 분명했다.
분명히 괴한은 미영의 컴퓨터를 이용해서 괴 메일과 쪽지를 보낸 것이었다.
그리고 미영이 귀가했을 때는 베란다에 숨어 있었다.
무선신호가 안 잡히기 때문에 노트북이 있어도 베란다에서 컴퓨터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미영이 메신저로 대화했던 사람은 괴한이 아니라는 얘기가 된 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두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가 있게 된다.
공범인 다른 사람이거나,
아니면 남자친구인 ‘형석’ 본인이거나.
[김형석(죽어)님이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입력 중이라는 표시뿐이다.
미영은 애 써 메신저의 오류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뚫어지게 모니터를 쳐다보던 미영이 손가락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ㅇ머래댜ㅓ랴ㅐ뫵뢪도려몽랴ㅐ매ㅑ어래ㅓ쟈ㅐㄷ괘몬ㅇ]
알아듣지 못 할 말.
미영은 메신저의 오류라는 자신의 추리를 입증하기 위해 손이 가는 데로 타자를 입력했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메러ㅑ더ㅑㅐㅓ먀ㅐㅓ랴ㅐ머랴ㅐㅓㅔㅁㅈㄷ개ㅑ데잼갸ㅗㅓ래ㅑ어론아]
또 한 번 입력했다.
확인사살이라고 할까.
이번에도 대답이 없으면 미영은 ‘오류’로 확정 짓고 메신저를 끌 생각이었다.
그래서인지 글을 입력하자마자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눌러,
‘프로그램 종료’에 커서를 대고 끌 준비를 하는 미영이었다.
그 상태로 시간은 흐르고 미영의 오른 손 검지손가락에도 조금씩 힘이 들어갈 때 쯤,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 ]
오류인줄 알았던 대화창에 글이 입력되었다.
미영의 몸이 다시금 떨리기 시작한다.
“어, 어... 어,, 어...대, 대체 뭐, 뭐야!!!”
심하게 더듬으며 소리를 지르는 미영.
더 이상 차분해지긴 무리였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너,,, 너,,, 대체 누구야!!]
떨리는 손으로 간신히 메시지를 입력한다.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 ]
아까 전과 똑같은 대화였다.
미영의 물음과는 상관없이 남자친구는 그저 ‘죽어’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당신 누구냐고! 당신도 형석이 가족 중 한 명이야? 나한테 복수하려고?]
괴한의 정체가 남자친구의 형이었으니,
다른 가족들이라고 미영에게 앙심을 품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그리고 이미 미영은 그들 중 한 명이 이런 몹쓸 장난을 하는 것이라 결론 짓고 있었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형석이가 저 때문에 자살했다고 생각하시면 정말 죄송해요. 하지만 저는 본심이 아니었어요.
헤어질 맘이 없었다고요. 이메일로 사과까지 했다고요.]
가족들 중 한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꽤나 공손한 말투였다.
하지만 역시,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 ]
대답은 동일했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정말 죄송해요. 제발, 제가 잘못했으니까 이제 그만하세요.
제가 싹싹 빌게요. 예? 제발요.]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 ]
미영은 생각했다.
어차피 이 사람들은 작심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것이니,
오히려 먼저 선수를 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을 말이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제가 그 쪽으로 갈게요. 제가 보시는 앞에서 무릎 꿇고, 주시는 벌 달게 받겠습니다.]
여전히 똑같은 대답이겠거니 생각하며 미영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침대 위에 널 부러져 있는 핸드폰을 집는다.
다시 한 번 IP추적을 의뢰할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같은 집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까처럼 위험한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열려진 베란다 때문인지 미영에게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뚜우우우우, 뚜우우우우우
시각은 어느새 밤 10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경찰들도 피곤할테지.
-뚜우우우우, 뚜우우우우우 딸칵,
수화기 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 사이버 수사대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기, 여보세요?
......
-여, 보, 세, 요. 장난 전화인가요?
......
-전화 끊습니다. 장난전화는 형사 고발 요인이 되니 주의하세요. 딸칵,
......
미영은 말이 없었다.
다만 하루 중 가장 크게 뜨지 않았나 싶은 눈으로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 김형석(죽어)님의 말 :
너
네
집]
처음으로 남자친구가 미영에게 ‘죽어’라는 말이 아닌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대답은 미영으로 하여금 극한의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죽어.jpeg (1.5M)
형석님이 파일을 보내려고 합니다. (승낙)]
남자친구가 메신저로 파일을 보내왔다.
미영의 머릿속은 이미 백지장처럼 하얗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마우스로 ‘승낙’을 클릭한다.
-딸칵
[죽어.jpeg (1.5M)
파일 전송을 완료했습니다. (보기)]
순식간에 다운로드를 완료하고 미영이 ‘보기’를 클릭한다.
-딸칵
연결 프로그램에 의해 사진이 송출된다.
사진치고는 용량이 크다 했더니 역시나 모니터 전체를 가득 채우는 크기의 사진이었다.
사진은 누군가의 방 안을 찍은 것이었다.
침대와 컴퓨터가 보인다.
컴퓨터 앞에는 어떤 여자가 일어선 채로 마우스를 잡고 시선을 모니터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열려 있는 베란다.
미영은 잠시 자신의 몸과 사진속의 여자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입고 있는 옷이 똑같았다.
미영이 이번에는 사진이 찍혀진 각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서 있는 곳에서 천장의 왼쪽 대각선 모퉁이에서 찍은 걸로 보였다.
미영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킨다.
그리고 서서히 고개를 돌려 방 천장 모퉁이를 쳐다보기 시작한다.
“꺄아아아아악!!!”
미영이 거의 조건반사로 비명을 지른다.
천장 모퉁이에는, 눈 코 입이 너덜너덜 하고, 물에 퉁퉁 부은 얼굴이 하나 보였는데,
얼굴 곳곳에 살이 파여서 희끗한 뼈가 보였고,
아래로 쭉 찢어진 입술 사이로는 누런 치아도 보였다.
정말 참혹한 시체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미영은 알 수 있었다.
적어도,
그 얼굴이 남자친구의 얼굴이란 것쯤은.
[完]
‘이건 꿈일거야, 꿈일거야.’
미영이 눈을 질끈 감고 주문을 외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바람과는 다르게 점점 스잔한 기운이 느껴진다.
온 몸에 소름이 돋고, 식은땀이 흘러내린다.
눈을 감는다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얼마나 도움이 안 되는지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 미영이 눈을 뜨기 시작한다.
“흡......”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공포.
눈을 뜨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어느새 미영의 코 앞으로 다가온 남자친구의 얼굴이었다.
역겨운 시취가 후각을 괴롭힌다.
“흐, 흡, 흐흐흐, 흐흡”
미영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얼굴은 점점 하얗게 질려가고, 입가에서는 침이 흐른다.
남자친구의 얼굴이 미영의 얼굴과 살짝 닿을 정도까지 접근을 해왔다.
살이 파인 곳으로 꾸물거리는 허연 구더기들도 생생하게 보인다.
“슈위우어.”
남자친구의 너덜너덜한 입술이 이상한 모양으로 움직이면서 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쥬위욱어.”
한 번 더 반복을 한다.
여전히 미영과 얼굴이 닿을락 말락하는 거리였다.
“죽어.”
세 번째 말했을 때, 그 괴상한 말이 정확한 의미로 들려왔다.
“더더더더더 너, 대대대대체 왜, 나나나나한테 이이이이러는 거거거야?”
미영이 몹시 떨리는 기색을 그대로 들어내며 말을 꺼냈다.
남자 친구는 아무 말 없이 미영을 바라보다가 슬쩍 눈동자를 모니터 쪽으로 돌린다.
공포에 떨던 미영도 따라서 눈동자를 돌렸다.
[김형석(죽어)님이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습니다.]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이게 꿈인 것 같지?]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지 않을 것 같지?]
모니터를 바라보는 미영의 눈동자가 떨린다.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
더욱 강렬한 냄새가 미영의 후각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후우...”
박경장이 담배 연기를 크게 내뿜는다.
몹시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걸 자살이라고 해야 되나요? 대체 왠...”
김순경이 바닥에 주저앉아 시체를 살피며 말했다.
냄새가 심한지 한 손으로 코를 막고 있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익사체인데. 방 안에서 익사를 했다는 게 말이나...으윽.”
시체를 건드린 김순경의 손에서 끈적끈적한 물기가 느껴졌다.
피부나, 체모 등이 섞여서 몹시 불쾌한 끈적임이었다.
박경장은 우두커니 선 채 말없이 시체를 쳐다보고 있었다.
특히 얼굴 부분을 중점으로 보고 있었다.
반쯤 빠져버린 긴 생머리와, 늘어진 입술, 그리고 얼굴 곳곳에 살점이 파인 곳으로 하얀뼈가 보였다.
아무리 봐도 물에 빠진지 며칠은 지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걸 뭐라고 보고해야 하나. 감식반 놈들이 보면 3일은 된 시체라고 할 텐데.”
“그러게요. 이거 괜히 우리만 덤탱이 쓰는 거 아닌지 몰라요.”
담배 하나를 다 핀 박경장이 바닥에 아무렇게나 꽁초를 던지고는,
한 손에 쥐고 있던 비닐장갑을 손에 끼기 시작했다.
“아흐... 이 냄새, 점점 심해지는 것 같지 않아요? 이 정도면 후각이 안 느껴질 법도 한데.”
역겨운 냄새 때문인지 표정을 몹시 찡그리며 말을 하는 김순경.
몸을 일으켜 베란다 쪽으로 다가가더니
고개를 들이 밀어 심호흡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고보니, 경장님. 그 새끼가 그 형석인지 현석인지, 피해자 전 애인의 형이 아니라고 했죠?”
“그래, 아니래. 전혀 연관 없는 사람이었어. 트럭 운전수라고 했나? 게다가 취조할 때는 자기는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고 그러더라고.”
박경장이 말을 하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가 마우스를 슬쩍 움직이자 시커먼 대기 화면에서, 순식간에 밝은 윈도우 화면으로 바뀐다.
“아까 데려갔었어야 했어요. 괜히 신경써주다가 우리만 곤란하게 됐네요. 휴...”
김순경이 여전히 베란다 밖으로 얼굴을 뺀 채 말했다.
“......”
하지만 대꾸가 없는 박경장.
“흠, 흠. 경장님 기분도 꿀꿀한데 오늘 순마 타고 바다나 보고 올까요?”
별다른 대꾸가 없자 민망했는지 김순경이 헛기침을 몇 번하며 말을 잇는다.
“......”
“음, 저 경장님?”
베란다에서 슬쩍 얼굴을 배는 김순경.
“아, 경장님 왜 갑자기 말이...”
뻘쭘한 표정으로 박경장에게 고개를 돌리던 김순경이 순간 말을 멈춘다.
모니터를 쳐다보는 박경장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진지하다기 보다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경장님? 경장님? 왜 그러세요?”
의아한 표정으로 김순경이 다가간다.
그리고 살짝 허리를 숙여 박경장의 어깨위로 고개를 내민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김순경도 경악에 휩싸인다.
“이, 이, 이게 대체?”
......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정말 죄송해요. 제발, 제가 잘못했으니까 이제 그만하세요. 제가 싹싹 빌게요. 예? 제발요.]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 ]
......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이게 꿈인 것 같지?]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지 않을 것 같지?]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
......
“저, 경장님. 수, 수배 내릴까요?”
김순경이 몹시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잠깐 기다려봐. 이, 이거 좀 이치에 안 맞잖아. 이 사람 자살했는데...”
“그야 뭐 다른 사람이 접속했을 수도 있죠. 지금 바로 수배...”
“기다려봐! 이사람 아직 접속 중이야.”
박경장이 침을 한 번 꿀꺽 삼킨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키보드 위에 손을 올린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당신 누구야?]
[김형석(죽어)님이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습니다.]
[ 김형석(죽어)님의 말 :
미영이 아니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유미영씨 죽었습니다. 당신 뭔가 알고 있나요?]
[김형석(죽어)님이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습니다.]
[ 김형석(죽어)님의 말 :
미영이 아니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경찰입니다. 수사에 협조 좀 해 주셔야겠습니다.]
[김형석(죽어)님이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습니다.]
[ 김형석(죽어)님의 말 :
미영이 아니네?]
“지금 저 새끼가 우리 갖고 장난 노나!!”
뒤에서 보던 김순경이 갑자기 버럭 소리를 지른다.
박경장도 짜증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 유미영(힘들다...)님의 말 :
당신 누구야. 함부로 남의 아이디 도용하면 범죄인거 몰라?]
[김형석(죽어)님이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습니다.]
[ 김형석(죽어)님의 말 :
미영이 아니네?]
“아 저 새끼랑 말 안 통합니다. 그냥 수배 내리고, 저 새끼 잡아다 족치죠. 예?”
“후... 그래. 어쩔 수 없지. 별 미친놈이 다 있네.”
김순경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빼 들었다.
그리고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한다.
“야, 야 잠깐만 끊어봐. 끊어봐!”
“에,,,예? 왜, 왜요?”
박경장이 모니터로 눈짓을 보낸다.
[김형석(죽어)님이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습니다.]
“아, 이거 보나마나 또 똑같은 말 쓰겠죠 뭐.”
“이번엔 내가 말을 건 게 아니잖아. 잠깐만 기다려봐”
......
[ 김형석(죽어)님의 말 :
너네도 죽어.]
......
순간 멍한 표정을 짓는 두 사람.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
그 사이 몇 마디가 더 전해져 온다.
먼저 입을 뗀 것은 박경장이었다.
“저, 전화해. 수배 내려. 이 새끼 뭔가 관련있어.”
“아... 아....”
김순경에게서 대답이 없었다.
나지막한 신음소리 뿐.
“왜 그래 김순경. 야! 김건호!”
박경장이 소리치며 김순경의 얼굴을 살폈다.
시선은 위쪽으로 향해 있었고, 몹시 공포에 질린 표정이었다.
박경장이 김순경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천장 왼쪽 모퉁이로 말이다.
......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지 않을 것 같지?]
......
[ 김형석(죽어)님의 말 :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