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산] 충무공 이순신의 얼이 서려 있는 해미읍성.
해미읍성은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읍에 있는 성으로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116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시대 건축된 성 중에서는 보존 상태가 상당히 양호한 성으로, 서산시에서는 해미읍성을 이용한 축제와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있으며, 매년 6월에 해미읍성 역사체험 축제([서산해미읍성문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한국교회사에서는 약 3천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천주교 박해로 처형당한 천주교 순교 성지 중 한 곳이다.
이곳은 선조 12년(1578) 충무공 이순신이 병사영의 군관으로 부임하여 10개월간 근무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해미읍성은 원래 왜구의 출몰에 대응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건축되었다.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이 성에 주둔한 것도 그때문이다.
세조때에 군사 제도가 진관체제로 개편되면서도 이 역할은 여전하여 충청도 지역의 주요 군사거점으로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효종이 병마절도사를 청주로 이전한 뒤로는 해미읍성은 호서좌영으로서 지방 행정 중심지역할을 하게 된다.
해미읍성이란 명칭도 이때 개명된 것으로 본래는 해미내상성(內廂城)이었다.
고려 말부터 국정이 혼란한 틈을 타서 왜구가 해안지방에 침입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히는 바, 이를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하여 조선 태종17년(1417)부터 세종3년(1421) 사이에 당시 덕산(德山)에 있던 충청병마도절제사영(忠淸兵馬都節制使營)을 이 곳에 옮기고자 축성(築城)되었으며, 효종3년(1652)에 병마절도사영(兵馬節度使營)이 청주로 옮겨가기 전까지 230여 년간 군사권을 행사하던 성으로 있다가 병마절도사영이 청주로 이설되고 해미현의 관아가 이 성으로 옮겨졌으며, 1914년까지 겸영장(兼營將)이 배치되는 호서좌영으로서 내포지방의 군사권을 행사하던 곳이었다.
해발 130m인 북동쪽의 낮은 구릉에 넓은 평지를 포용하여 축조된 성으로서, 성벽의 아랫부분은 큰 석재를 사용하고 위로 오를수록 크기가 작은 석재를 사용하여 쌓았다.
성벽의 높이는 4.9m로서 안쪽은 흙으로 내탁되었으며 성벽 상부 폭은 2.1m 정도이다. 성문은 동·서·남·북 4곳에 있는데 네모지게 잘 다듬은 무사석(武砂石)으로 쌓았으며, 주 출입구인 남문은 아치모양의 홍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읍성에는 동헌을 비롯하여 아사(衙舍) 및 작청(作廳) 등의 건물들이 빼곡히 있었으며,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유적도 일부 남아 있다. 1974년에 동문·서문이 복원되었고, 1981년 성내 일부를 발굴한 결과 현재의 동헌 서쪽에서 객사와, 현재의 아문 서쪽 30m 지점에서 옛 아문지가 확인되었고, 관아외곽석장기지(官衙外廓石牆基址)가 발견되었다.
성의 둘레에는 적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탱자나무를 돌려 심어서 탱자성이라는 별칭이 있었다.
해미읍성은 입구에서 담으로 올라 담장을 걸으며 크게 한바퀴 돌 수 있어 좋다.
다양한 예전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어 자녀와의 방문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