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안녕하세요? 저는 얼마 전에 영양실조로 친구 1명을 잃은 한 학생입니다.
억울하여 이 글을 올립니다. 글을 쓰기에 앞서 그 친구를 A라 하겠습니다.
너무 진지해서 궁서체로 쓰겠습니다.
(중간에 대화 내용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기본적인 틀은 잡아놓고 허구적인 면을 덪붙였습니다.)
A와는 유치원 때 부터 쭉 같이 자라온 우린 죽마고우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A는 어릴 때부터 남 안부러운 부모님과 뛰어난 영어실력으로 대회에서 입상까지 하기도 했습니다.
별 탈 없이 초등학교 까지 각종 경시대회를 휩쓸며 학년 1등도 뺴먹지 않고 매번 1학기 반장을 하던 친구 였습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초특급 엄친아라 할 수 있는데.. 중학교 들어와서 A의 부모님이 아마도 부부싸움이 잦았던걸로 저희 부모님과 이웃분들은 말하고 계십니다. A는 공부를 하려해도 부모님 싸우는 소리 때문에 제대로 집중을 할 수가 없었고 잠을 잘때도 너무 시끄러워 잠을 잘 청하지 못한다고 학교에서 저에게 울분을 토하곤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참았는데 사건은 중3때 터졌을 겁니다. 결국 A의 부모님은 합의 이혼을 하셨고 양육권 때문에 법정까지 갔습니다. 결국 어머니가 승소했고 A는 어머니의 친정 즉, 외갓집에서 생활하기시작했습니다.
공부할 환경도 됐고 잠도 잘 잘수있겠다고 생각했던 A는 마냥 신이나서 저에게 막 자랑을 하더군요. 웬만한 얘는 부모님이 이혼을 한걸 숨기려고 하는데 A는 다르더군요.. 거의 10년 가까이 지내온 친구지만 그런 모습은 처음이였습니다. 우리가 고1이 되던 해이었습니다.
3월달에 학력평가(중3수준 테스트하는 시험)을 보고 A랑 같이 A의 외갓집에 놀러갔습니다. A가 신발이 벗겨져서 다시 신는 동안 제가 먼저가서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당시 상황은 참혹했습니다. 불과 5초였지만 저에게는 100만가지의 생각이 지나갔습니다.
한 서류를 들고 옛 된 중년 남성이 거실에 떡 하니 앉아있었습니다. 자세히보니 A의 친부 였습니다. 저는 뒤에 오는 A를 우리집에 가서 놀자고 핑계를 대며 억지로 끌어갔습니다. 웬 영문인지도 모르는 A는 끌려가면서 뒤를 돌아보며 "야, ○○○ 저기 우리 아빠차있어.. "라며 제 손을 뿌리치며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저도 어쩔수없이 뒤따라 갔는데 A와 제가 들어갈 때 A의 친부가 A를 잡고 무작정 차에 태우고 가버렸습니다. A의 어머니, 외할머니와 저는 택시를 타고 그 차를 뒤쫓았습니다. 다행히 A의 친부는 몇년전까지 3명이 같이 살았던 아파트로 데려가 A를 보내곤 사라졌습니다.
A의 외할머니가 A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 어디 다친 데는 없고?"라며 묻자 A는 굳은 표정으로 "아..아ㅂ..ㅃ.빠가 갔어"라며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습니다. A의 어머니가 "뭔 소린데?"라고 묻자
A는 "아빠 더 이상 못 볼것 같애.. 내 뒷자석에 휘발유가 있었고 아빠 주머니에는 담배랑 라이터가 있언..근데 나보고 '씩씩하게 살아' 라고 하곤 아까 간.." 이라며 울음을 터트리며 A의 어머니를 보며 "아빠 불러.. 부르라고!!!!!!!!!!!!!!!!!!!"라고 탄식을 토해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저는 어찌할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월요일날 등굣길에 A가 안보였습니다.
아침에 명상시간에도 오지 않아 문자로 '야, A 어제 갠찬??ㅋㅋㅋㅋ 빨랑 와' 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1교시 시작해도 답장이 안 오자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들어가서 전화를 해봤습니다. 들려오는 소리는 '전화기가 꺼져있어 소리샘으로 연결되오니....' 뿐.... 학교가 끝나고 A의 외갓집으로 가보았습니다. 저는 '이 새끼 어제 울어대서 눈 부어서 학교 안온 건가' '혹시 아빠랑 엄마랑 뜬거 아냐' 라는 온갖 추측은 다했습니다. A(단독주택에 살고있었음)의 집 마당에 들어서자 A의 외할머니가 제가 온것을 눈치라도 채듯 문을 열고 저에게 이런말을 하더군요 "아이구 ○○야, 우리 A 어떡하니? 지금 병원에 입원했어.." 라며 말씀을 하셧습니다.
제가 "왜요..? 왜요?"라고 여쭈자 "거식증이라나 뭐라나.. 밥을 안먹는 병이라는데 우리 A 어떡하니..흑.."라며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청천벽력이라는 말을 처음 느낄때입니다. 저는 저희 부모님이랑 같이 병문안을 갔죠.. 가는 도중 "별 거 아닐걸?"이라는 저희 부모님에 말씀이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신호는 오늘 따라 왜이리 막히는지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시간은 매우 길게 느껴졌습니다. 병원에 도착했을때 저희는 로비에 "혹시 A 환자 몇 번 실에 잇나요?"라고 묻고 답을 듣는 순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투명 엘리베이터라그런지 야밤의 도시가 굉장히 밝게 보였습니다.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는 시간이었죠. **실에 들어가고 A는 부쩍 말라있었습니다. 하루 거의 24시간만에 보는데 도저히 수긍을 할수가없었습니다. 마침 교복을 가져와서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여기서 학교에 간다고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A와 담소를 나누려 햇습니다.
근데 A가 입을 열지를 않더군요..저희 어머니가 싸온 죽도 손을 저으며 안먹겟다고 하는데 저는 그때 거식증의 무서움을 실감하던 순간이었습니다. A가 대.소변을 누러갈때도 같이 가주며 A가 말하는 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저는 학교에 가서 수업을 받고 다시 병원으로 왔습니다. 병원에와서 가방을 풀고 A가 좋아하던 삼각김밥을 2개 사갔습니다. 하지만 A는 역시 거절했고 저의 기대는 수포로 돌아갓습니다. 주치의는 "신경성 스트레스와 충혈증세가 가라 앉으면 상태가 호전될수있습니다."라는데 도저히 호전될꺼같아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1달이 지나고 A의 소식이 학교로 전해졌습니다. 저도 그날 여느때와다름없이 병원에 가는 날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 조회시간에 "A가 저 편안한 곳으로 갔어.."라며 눈물을 훔치곤 창밖 하늘을 가리켰습니다. 얘들이 웅성대기 시작햇고 저도 순간 눈물이 핑돌았습니다. A의 발인이 끝나고 저는 집에서 이불을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어댔습니다.
1달전 A와 문자했던 내용 "네톤(네이트온) 들어와 "이 마지막 문자였는데 그문자가 어찌나 서럽던지 지금도 이글을 쓰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네요....a의 아버지는 소식이 없고 이제 A의 어머니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ㅠ.ㅠ
어느 한 학생의 이야기라 보시지만 이거는 사회의 문제입니다.
한 부부의 싸움이 한 학생을 죽음으로 몰고가게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이혼율이 최고입니다. 부끄럽습니다. 한 생명을 탄생시켰으면 책임지고 키워야할꺼아닙니까? 저도 지금 부모님 그늘 아래 자라고 있고 아직도 우리는 보호가 필요합니다. 가족이란 울타리안에서 생활해야한다는 거죠.. 대한민국 지금 이순간 만큼은 부끄럽습니다.
천국에서도 나 잊지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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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보니까 여러 오해섞인 말들이 나와 해명을 하려합니다.
택시는 당시 콜택시로 기억되구요. 홈피를 공개한다는것은... 망자인 A의 다이어리를 공개한다는 것이고 제가 2일 만에 사망했다했나요 1달입니다. 1달이란 시간이 A에겐 그렇게 짧았나요?? 여러 오해의 빌미를 가져온 저에게 잘못이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진지해서 궁서체로 씁니다 라고 한부분은 재차 진실하고 진지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만, 그 문장이 불쾌하고 장난처럼 보였다면 사죄드립니다.
이건 제 친구의 이야기고 저의 이야기 입니다. 그냥 봐주셨으면 합니다. 글쓴이와 A군은 남학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