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87일째 되던 날 헤어졌을것이다.
그때 나는 고등학생이었고, 그녀는 지금 수능을 친 학생이었다.
곧 성인이 되는 그녀를 나는 좋아했다.
아니, 사랑했다.
우리들은 그녀의 친구. 나에게는 아는 누님이라고 해야겠다.
그 누님덕분에 우리들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내가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 누님이 고맙고도 밉다.
가까이 살던 그 누님의 권유로 당시, 잠깐 놀러왔던 그녀를 소개받았다.
나는 첫 만남부터 그녀가 좋았다.
그녀의 눈 웃음도 좋았고.
그녀가 한 말까지 좋았고.
그녀의 모든 것이 좋았다.
그게 첫 사랑이었기 때문도 있지만, 이런 좋은 기회를 날리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첫 만남때의 우리들은 엄청 어색했다.
물을 몇 잔이나 마셨는지도 모를 정도로 많이 마셨던것 같다.
덕분에 물로 배를 거의 다 채워버리는 불상사가 생겼고, 메인요리는 다 먹지도 못했다.
난 그래도 대화가 될 정도의 말을 하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그녀는 말을 잘 꺼내지 않았다.
난 그때만해도 쑥스러워서 그런가보다..
좀 어색해서 그렇겠지 뭐.
이정도로 가볍게 생각해 넘어갔다.
아무튼, 우선 이게 우리의 첫 만남이다.
그 후, 3일 정도는 만났지 싶다.
둘째날까지는 그녀와 나.
나는 몇 마디를 던지긴 했지만, 그녀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내성적인 성격때문인지 우리들은 (그녀도 내성적이다) 각자 표현을 하지 못했다.
그래도 난 좋았다.
그리고 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니까.
그때는 짧게 만났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곤, 그 누님을 호출했으니까 말이다.
그 누님이 없었다면 우리들도 이렇게 가지 못했던거 같다.
누님은 우리들과 다르게 활발한 성격이었다.
나는 누님의 그 성격이 부럽기도 했다.
뭐, 누님덕분에 그렇게 어색하지 않고 재밌게 놀았던거같다.
그녀가 떠나가버린 날 부터해서 우리들의 원거리 연애가 시작이었다.
우리들은 그때까지 휴대폰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대답했다.
아무튼, 학생이다 보니까 만나지를 못했다.
그래도 웃으며 괜찮다고 하던 그녀였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그녀에게 아주 잘 해줬다.
말투도 그녀에게만은 상냥하게 해주었고,
무슨 일이 있으면 먼저 물어보았고,
매번 먼저 그녀에게 전화나 문자를 했던걸로 기억난다.
그땐 정말 한 여자밖에 모르는 바보였는지 모르겠다.
또, 난 그녀를 포기하고싶지 않은 이유도 있는거 같다.
나는 어느날 그녀에게 방학때 놀러가겠다고 말했다.
그녀는 처음 나의 말을 들었을때 좀 놀라는 눈치였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 다음날 누님이 그녀랑 만나기로 했냐 라면서 나에게 물어왔다.
나는 망설임없이 그렇다고 했다.
사실이니까.
추가로 그녀에게 들었냐면서 물었다.
누님은 숨길필요도 없으니까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학생신분으로 두 세달 남짓한 기간에 얼마나 많은 돈은 모을까.
용돈으로 모으기에는 많이 부족했다.
매일 안쓰고 살수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 후로 나는 알바를 하기로 결심했다.
우선, 돈을 적지않게 모아야했으니까.
그녀와 재밌게 놀아야 했고, 그녀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줘야 했으니까.
나는 알바를 구하기 위해 학교를 마치고 이리저리 해매고 다녔다.
간간히 전화로도 알바 구하냐고 물었다.
알바 구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다들 알바 구하는게 어렵다는 걸 알것이다.
다 알바를 구했다 하고, 안 구한 곳은 나이가 걸렸다.
이쯤되면 다들 내 나이가 대충 짐작이 갈것으로 생각된다.
학교 생활을 하면서 동시에 알바를 구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나의 귀찮은 성향도 약간 있어서인지, 어떤때는 다음에 구하지 뭐, 이렇게 대충 넘어간 적도 있다.
그녀에게는 미안한 일이었다.
바보같지만, 지금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언젠가 내가 누님에게 그녀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다.
뭘 물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기 때문에 적지는 못하겠다.
나는 누님에게 그녀에 대해서 약간이나마 안거같았다.
내 생각이지만, 그녀는 뭔가 복잡한 과거가 있는 듯 싶다.
말 못할 비밀? 그정도는 아니지만, 말 하기에도 뭣한 그런거다.
누님의 말로는 그녀의 성격도 그때부터 약간 변했다고 한다.
나에게는 무슨 사건인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능날이 가까워 지고 있었다.
그녀는 벌써 대학 합격을 했다고 수능은 상관없다고 했던걸로 기억이난다.
그녀에겐 정말 수능은 망쳐도 상관없다. 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반응이 이상하다는 것을 나는 느꼈다.
기분탓이겠지 라며 며칠간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는걸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별로냐고 물어버렸다.
그녀는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곤 그녀가 하는 말.
사실 너가 남자로 느껴지지 않고 동생같아. 미안.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녀도 내가 왜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난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나를 사랑한다고 믿었다.
믿고 싶었다.
왜?
사랑하니까.
왜?
그녀니까.
왜?
...
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에게 다가오는 수 많은 의문들이 나를 혼란스럽게했다.
나는 중심을 잃은 채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녀와 헤어지지 않기를 빌고 또 빌었다.
나는 그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그녀에게 더 집착한듯싶다.
내 마음은 아주 혼란스러웠다.
나는 그녀를 사랑하는데.
그녀는 내가 동생으로 느껴지나 보다.
나는 그녀에게 왜 그런 느낌이 들까 하고 물었지만,
그녀의 대답은 모르겠다 라고 할 뿐이었다.
그렇게 그 날은 그녀와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 전에 그녀와 나는 생각을 해보자며 서로 동의를 했다.
그 다음날이었다.
나는 평소대로 그녀와 얘기를 했다.
나의 불안한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갑자기 어제의 일을 꺼내는것이었다.
제발…. 그 소리는 하지 말아주길….
나 자신에게 말하고 또 끝없이 기도했다.
생각해봤는데, 우리 그냥 누나 동생으로 지내면 안될까?
너가 그냥 남자가 아닌 동생으로 느껴져.
동생으로선 좋아하는데
남자로선 안 좋아하는거 같아.
그녀가 한 말은 그 당시 나에겐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바보같이 눈가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남자답지 못하게….
그렇다고 울고 싶다고 생각한건 아니었다.
나도모르게 약간의 눈물이 고였다.
나는 그녀에게 다시 생각해 보면 안되냐고 했다.
그녀는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내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럼, 내가 좋아질때까지 쉬는거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무런 망설임없이 말해버렸다.
목소리도 떨리는 기색 없이.
나에게 또박또박 말하는 것이었다.
미안, 안 좋아하는데 좋아질리가 없잖아.
예전엔 막 좋았는데 지금은 아닌거 같아.
미안..
참으로 매정하다.
저렇게 차가운지 몰랐다.
잠깐의 생각을 끝으로
그렇게 나는 그녀를 놓아주었다.
쿨하게 놓아줬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늦게나마 후회한다
그렇다고 해도 난 당시에 그녀를 잡지 못했을거 같다.
표현에 서툰 남자니까.
소심한 남자니까.
처음 사랑이란걸 해버린 남자니까.
바보같이.
그리곤 헤어진지 3일째.
지금은 서로 연락을 하지않는다.
왜?
나도 모르겠다.
난 쑥맥이었고
흔남에다가
바보같이 착한남자였으니까.
아프지 않게 그때 거절하는거였는데.
바보같이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거였는데.
그녀에게 집착하지 않는거였는데.
잘해주는게 아니었는데.
후회할거면 만나지 않는거였는데.
이렇게 아플거면 애초에….
바보같이….
끝도 없이 나 자신에게 욕을 했다.
만약, 하느님이 있으시다면
이제는 그녀를 만나지 않을 수 있게 용기를 주실 수 있을까요?
이제는 그녀를 미워할 수 있게 용기를 주실 수 있을까요?
이제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게 용기를 주실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그녀를 지울 수 있게 제 부탁을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아직도 사랑해.
근데 누난 없잖아?
나 참 바보네.
누나가 매번 나 바보라고 놀렸는데.
이렇게 불리네?
아직도 사랑해.
이런 생각을 해도 그녀는 내게 없다.
난 첫 사랑을 지우지 못하는 바보다.
안 지우는게 아니라 못 지우는.
지우고 싶어도 그렇게 못하는.
그리고
난
첫 사랑을 아프게 끝내버린 바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