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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위대하다.

꼼지락 |2011.12.21 21:50
조회 72 |추천 0

20대의 막바지에 놓인 평범한 자영업자입니다.

조만간 한판을 가득 채울 30대를 앞두고 있으니..문득 옛 기억에 잠시 회상모드'~'a

 

톡? 글쓰기는 처음이네요. 말주변이 별로라 눈팅만..

다들 잘 사용하시는 '음-슴체'?? 전 개인적으로 적응이 안되서..그냥 Blah_Blah~할께요 ㅋ.ㅋ

 

먼저, 고향을 지키시는 저희 부모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물론..부모님 연세가 있으셔서...'톡'은 안보시겠지만요'~';;마음으로..글로...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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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공감(?)하시지 않을까.?'해서 많은 에피소드 中 하나..슬~~~~쩍 써내려가보렵니다.

 

 

제목을 '엄마는 위대하다.'라고 붙혀봤어요.

어린시절 저에게 있어 엄마는 절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자식 '농사꾼'이며,

제게 힘든 일이 있을 때면 든든한 '지원군 겸 해결사'로 나서주셨지요.

 

(스토리를 거꾸로 가고 싶네요..'메멘토'라는 영화처럼..'~'a)

현재 자영업을 하며 '한해_한해'시간이 갈수록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에서 아버지가 보이고,

핏줄 하나 없는 서울이라는 곳에서..나홀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김치찌게'를 볼 때면..회상하게 됩니다.

여름철 비지땀을 흘리며 가스렌지 앞에 서계시는 어머니의 뒷 모습.

겨울철 옥상에 있는 장독대에서 얼음장같은 김치를 꺼내시던 어머니의 뒷 모습을요.

 

군입대 할때 축쳐진 아버지의 뒷 모습..글썽이는 어머니의 얼굴..그 모습들이 2년이라는 시간을 견디게 해주었고 조금이나마 더 큰 그릇이 되어 나라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회구성원'을 만들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나홀로 '서울 유학길(?)'에 오르고 나서야 부모님의 울타리가 크게 와닿더군요.

 

고등학교를 올라가서는 갑자기 눈에 뭐가 씌엿던지 '판소리'를 한다고 난리를 쳤고,

자식이기는 부모있나요.? 신나게 판소리를 배우러 다녔죠+_+

 

중학교는 아버지께서 나오신 모교로 진학을 했죠. 지금 돌이켜보면 그 학교에서 조금 더 열심히 공부할 걸 그랬나봐요. 그때는 왜 '아버지 모교'라는..멋진 타이틀에 끌리지 않았나..

 

초등학교때는 마른체형에 연약한.......男子였죠. 쬐끄만한게 고집만 있었죠. 알맹이 없는 철부지.

싸움도 못하면서 친구들간에 자존심부리다 흙투성이가 되어 들어가기도 했구요.

그때도 아마 부모님께서 걱정할거라는 생각은 했나봅니다. 이래저래 둘러댔던 기억이..

 

유치원때는 그냥 '겁쟁이 꼬맹이'였답니다. 소풍가선 '인디언 분장'을 한 선생님을 보고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화장실가고 싶단 얘기를 못 꺼내서 햇님반에서 '응가'를 한적도..그런 내성적인 아이였죠.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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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여섯살쯤부터 기억이 있는데..유일하게 네살때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이제야 제가 말 하려던 에피소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ㅜ_ㅜ

 

 

제가 네살 될 무렵..대구의 따쓰한 봄날이였죠.

 

추위가 한풀 꺾이면서 동네는 이내 꼬마들에게 점령당했습니다. 차가 많이다니는 길목이 아니였기에^~^;;

지금 생각해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군요. 숨바꼭질..얼음땡...아.....+_+'얼음땡'이 왜이리 재밌었는지..

조그마한 동네를 이리뛰고 저리뛰다보면 금세 땀벅벅이 되고 그 땀이 마르면서 감기에 걸리던 저였죠.

 

그래서였을까요.? 사촌형과 구슬치기를 하기로 한 날..만나기로 한 시간이 지났는데..

(그때도 나름 스케쥴대로 소화해냈나봅니다'~'v)

 

기여코 엄마는 쫄쫄이(?)에 내복..면바지..골뎅바지까지..심지어 양말 두켤레를 입히셨죠.

놀 시간이 빼앗겨 서러웠던걸까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표정을 하고 집을 나섰던거 같네요.

사촌형을 만나서 구슬치기를 했죠. 어리고 조그마한체구의 제가 초등학생인 사촌형을 이길리가 만무했죠.

허나 그땐 엄마 원망을 했었던 거 같습니다. "지금 옷을 둔하게 입어서 그렇지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고 내일 다시 한판붙자!!"...뭐 이런 멘트가 오고갔죠. (나름 구슬치기라는 도박에 중독'_';;)

 

짜증이 머리 끝까지 뻗혀서는 앞도 보지않고 '구슬이 몇개남았나.?'부스럭부스럭 갯수를 세어나가다 구슬하나를 손에서 놓쳤습니다. '데구르르르르르..' 5미터 남짓되는 길 건너편으로 굴러갔죠.

5미터.......참 짧은 길인데 말이죠. 좌우를 살피고 구슬을 따라 뛰었습니다.

 

 

그 순간...

 

엄청난 무게가 제 왼쪽다리를 눌렀고, 무섭게 공회전하는 커다란 바퀴의 소음이 제 목소리마저 삼켰죠.

1분..1초가 굉장한 고통이였죠. 어린나이에 죽음이라는 문턱을 실감한다는 게..

잠시 후 왼쪽다리에 감각이 둔해지고 실신지경에 이르러서야..운전기사님께서 '뭐가 걸린건가.?'하고 나오셔서 절 발견했습니다. 살짝(?) 끼여있던 다리를 빼기위해 후진할때의 그 고통'~';;

사고 난 곳 바로 앞(정말 코앞..2초거리..)이 정형외과였기에 바로 실려갔습니다.

병원에 들어서자 분주해진 의사선생님과 간호사 아줌마..어린 저는 그 분위기가 더 겁이 났었나 봅니다.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오르더군요..네살에;;(뭘 알았다고.....-_-;;)

 

차가운 수술용 침대에 절 눕히고 껴입었던 옷을 하나씩 잘라내는데..

 

다급하신 의사 선생님 曰 '어라;; 몇 겹이고.?'

덩달아 급해지신 간호사아줌마 曰 '잠시만요..' .........................-_-;;

(그걸 또 정말 세어보는 간호사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운전기사님의 걱정어린 말들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도 당연한것이 3톤트럭으로 4살베기 꼬마를 치었으니..수명이 10년은 줄으셨을 거다.

 

옷을 다 잘라내신 의사선생님 曰 '참말로 운 좋다. 괘않타~피부한겹 벗겨내면 금세 낫는다'

아직도 다급한 간호사 아줌마는 소독용 알콜과 여전히 이리저리 분주했다.

 

피부한겹........................?'_' 피부를 벗겨........?-_-;; 뱀이 허물벗는 거 처럼?..............아니지?

미소띄며 .............한겹 벗겨내면.........이라고 말하는 의사선생님이..갑자기 두려워졌나보다..

 

또 다시 전 '죽음의 문턱'앞에 와있는 듯한 공포를 느꼈고..그 날 치료를 받으면서 눈물 한방울 흘리지않고 의사선생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철저히 지켜봤습니다.

 

간단한(?) 치료가 끝날 때즈음 아버지와 엄마가 부랴부랴 놀란가슴 부여잡으시고 오셨지요.

의사선생님과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고 운전기사분을 돌려보내더군요. 아마도 지금 생각해보면 바로 병원에 데리고 와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지 않았을까.? 아직도 여쭤보진 못했네요.

 

해질대로 해진 그 옷을 한참이나 버리지 못했었죠. 고마워서요...

 

따스한 봄날..왜 엄마는 몇겹이나되는 옷들을 제게 입혔는지.....이제는 알거같습니다.

저희 엄마는 슈퍼우먼이니까요. 그러니까 제게 다가올 사고도 막아주신게 아닐까요.?

 

지금까지 너무나도 건강한 제 왼쪽다리를 볼때면 그때가 생각납니다.

아버지, 어머니. 제게있어 슈퍼맨, 슈퍼우먼입니다.

감사해요. 엄마..아버지^~^ 사랑합니다.

 

 

톡커님들두 이런 유사한 경험있지 않으세요.?

 

 

 

소소한 추억얘기라..

재미없는 애기라..

그래두 혹시나 읽어주시고 함께 추억해주는 분들이계시다면..감사합니다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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