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이정기 라는 이름에 대해 아시나요??
776년 어느날.. 당 황실은 고민에 빠집니다. 이정기가 당황실의 명령을 어기고 다시금 세력 확장을 시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정기.. 한국사에는 익숙치 않으나 중국 구당서 신당서를 비롯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그.. 그는 과연 누구 일까요..?? 얼마나 두려운 존재기에 세력확장을 막기위해 당나라 황족에게만 준다는 군왕의 칭호.. 그리고 동중서문하평장사라는 당 조정 최고의 관직까지 제수하며 황제 다음 권력을 가진 자리까지 제수했던 것일까요..?
그는 원래 고구려 유민으로 태어나 아버지는 영주쪽에서 고구려 유민출신 당나라 군인입니다. 당시 고구려 유민들은 군인이 되는 길이 노예가 되지 않는 유일한 길이 었고, 그래서 많은 고구려 유민들이 군인이 되었습니다. 이정기 또 한 그러한 인물중에 하나 였습니다.
이정기는 당나라를 흔든 안록산과 사사명의 난을 당 황제의 편에 서서 이를 진압하면서 그 이름이 등장합니다, 그는 여러 공로를 인정받아 중국의 청주인 치정에 제 2서열인 병마사로 가게되는데요.
그는 병마사로서 위엄과 또 다른 인정으로 그 지역의 백성과 군인들에게 추앙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지역 절도사는 이정기를 두려워 하며 반역의 죄를 씌어 투옥 시킵니다
'이정기는 억울 했지만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유양잡조>
그런 그를 풀어 준건 당 황실도 아닌 그를 따르는 청주의 군부대였습니다. 군부대가 쿠데타를 일으켜 그를 빼내고 절도사를 쫒아 낸 후 그를 절도사로 추대한것이죠. 당시 절도사는 당 황제가 임명하는 것이었지만 그 지역의 절대적 지지를 나타내는 이정기를 당황실도 어쩌지 못하고 인정하고 그를 절도사로 삼았습니다. 이후 이정기는 당나라의 절도사가 아닌 그지역의 왕과 같이 군림 합니다, 그는 카리스마와 인간미로 그 지역 사람들은 사로 잡았고 점차 세력을 확대 해 나갔습니다, 그에 대한 당대의 기록에는 그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이정기의 치청 번진이 하는 일은 당 조정의 근본을 위협했다' <산동통사>
주변 절도사였던 전승사는 이정기희 초상화를 걸고 향을 피웠다. 이는 황제에 대한 예법이었다
< 자치통감 >
이후 이정기는 당의 중요한 운하인 용교를 차지하고 당과의 대치국면을 더 욱더 치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용교의 차지가 갖는 것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남북으로 통하는 뱃길이 모두 막히게 되자 민심이 공포에 떨었다
-<자치통감>-
이는 당연한 것으로 운송선이 당으로 들어가지 못하자 당 낙양과 장안에는 물가가 치솟앗고 이로 말미암아 민심이 흉흉해졌으며 이정기가 정복한 등주 지역은 중국 소금의 50%의 산지가 있고 철과 동도 풍부하여 살기 좋은 이정기의 나라라고 소문까지 날 정도 였다고 합니다. 이런 파죽지세를 보이던 이정기는 운주로 천도하여 당나라 본토를 위협하기 시작했지만 10만 대군의 위엄으로 당나라 낙양 근처 중요운하 근처인 제음벌판에서 대치 하지만 그의 나이 49세에 세상을 뜨게 됩니다.
악성종양으로 죽었는데 이정기의 나이 49세였다
<구당서>
그의 죽음이 있은후 그의 아들 이납이 그를 계승하여 2대 왕으로서 나라이름을 제라 칭하며 독립국임을 선포 합니다. 그 후에 3대왕 이사도대에 이르러 819년 내부반란으로 망국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알고있던 대제국 발해보다 더욱더 당나라 황실을 위협했던 존재로서 있었으며 제나라가 망하자 당황실은 이미 항복한 군사까지 끔찍하게 몰살시키며 제2의 이정기 출현을 막았다고 합니다. 그 학살에 대한 기록을 보면
죽은 병사들의 피가 흘러 강을 이뤘다. 붉은 안개의 높이가 한장(약 3미터)이나 되었다. 이 안개는
오래 지나서야 비로소 흩어졌다
<자치통감>
이렇게 우리 한국사에는 단 한줄의 기록 최남선의 <국민조선역사> 중국내 광활한 대륙을 총괄했던 고구려유민 이라는 짧은 한줄의 기록 이지만 중국 역사서인 <자치통감>, <구당서>, <신당서> 등 많은 역사서에 고구려 유민으로 기록되며 고구려 악습에 물든 고구려유민으로 또 당시 3분의1의 지역내 고구려 유민을 이끈 사람으로 기록된 이정기.
이정기라는 이름을 다시 금 우리 한국사 내에 편입시켜여 할것이다.
역사는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한 죽지 않으며, 강대국 고구려의 계승국은 발해뿐 아닌 이정기의 나라 제국 또한 우리나라의 한 역사로서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 하여야 할것이다.
출처 - 한국사월드 by W히스토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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