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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상황

머시 |2012.01.02 09:44
조회 340 |추천 2
‘한계상황(Grenzsituation)’은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인데, 극한상황이라고도 합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변화시키거나 만들어가는 여러 가지 현실적 상황과 달리, 변화시킬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예를 들면 우리가 매일의 생활세계에서 겪는 꿈과 젊음의 좌절∙질병∙타인으로부터의 거절 등이 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야스퍼스는 사람들이 한계상황을 맞아 어쩔 수 없는 벽에 부딪쳐 좌절함으로써 진정한 자기 자신을 각성하고 초월에 닿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실존주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철학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겪기 전 까지 사람들은 인간의 합리성과 존엄성을 신뢰하여 인류가 계속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여 나갈 것으로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인간의 집단적인 광기와 야만성을 체험한 후 인류의 미래에 대한 그동안의 희망과 낙관이 무너지게 되었고 그에 대한 성찰에서 시작된 철학이 바로 실존주의 철학입니다.
 
 야스퍼스는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정권으로부터 유태계 출신인 아내와 헤어지라는 요구를 받았으나 이를 거절했기 때문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직을 박탈당했습니다. 반면 자신의 친구인 하이데거는 나치에 적극 협력하며 프라이부르크 대학의 총장으로까지 출세하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야스퍼스는 친구인 하이데거를 통해 ‘학자의 절개 혹은 변절’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상황’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실존의 과제’로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사람이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 즉 한계상황을 다음의 다섯 가지로 꼽습니다.
 
 첫째, 생로병사 -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다는 것, 사람인 이상 누구나 이 생로병사의 벽을 넘어 설 수 없습니다.
 
 둘째, 고독 - 인간은 누구나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해도 고독하고, 자식을 낳아 길러도 고독하고 또 그렇게 하지 않아도 고독합니다. 인간인 이상 고독감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셋째, 방황 - 실존주의에서는 끊임없는 방황도 인간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한계상황이라고 보았습니다.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거나 분명한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인간 내면의 모습을 지적한 것입니다. 한 가지에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이 방황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넷째, 투쟁 - 인간은 둘만 만나도 다툼이 일어나는데 그것도 한계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인류역사에서 그리고 이 지구상에서 전쟁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다섯째, 죄악 - 모든 사람은 죄를 짓고 삽니다. 인간은 숨을 쉬고 있는 한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성자처럼 산다고 하더라도 자신을 죄인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역시 인간이 갖고 있는 한계상황인 것이지요.
 
 칸트와 헤겔에 의하면 ‘이성’이 비록 시행착오를 반복하기는 하지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이성은 계속된 진보를 통해 완전에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야스퍼스는 “인간은 한계상황에서 비롯된 ‘좌절’을 통해서 비로소 이성의 진정한 한계를 자각하며, 그 좌절을 직시함으로써 ‘초월자의 세계’로 나아가 존재 실현의 길을 열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이 한계상황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가운데서도 초월자(절대자)를 향해 마음을 열고 나아감으로써 진정한 자기 존재를 실현할 수 있다고 본 것이지요.
 
 2011년을 마무리하고 2012년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북한의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북한이 이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직면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알려진 대로 북한은 2012년을 이미 “강성대국 진입의 해”로 선포해 놓고 있는데, 그 시간이 다가올수록 당국자들의 마음을 졸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평양 만수대지구에 3천 가구 규모의 고층 아파트 단지와 극장, 공원을 조성하는 등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의 얼굴이나 다름없는 평양시내에 이뤄지는 대규모 공사는 강성대국 진입을 대내외에 선전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지요.
 
 공사 진도가 늦어지자 김정일과 김정은이 함께 공사현장을 찾아 독려했고, 그 이후 각 기관별로 공사구간을 할당해 층수 경쟁을 유도하고, 녹지 조성을 위해 외국산 고급 수종을 물색하는가 하면 노후화된 가로등과 터널 조명등, 네온사인 등의 교체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평양 내 부유층을 겨냥한 최고급 상품 공급도 이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을 다녀온 중국인 사업가 등에 따르면 올해 2월 문을 연 보통강 백화점은 부유층 대상 수입품 전문매장인데, 중국 등지에서 수입한 의류, 가구, 식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북한 당국은 러시아의 대북 식량지원(5만 톤)에 힘입어 8월 중순 평양시민에게 4만 톤의 식량을 특별 배급했고, 김정일은 평양시의 식수∙난방∙전기 문제를 최우선으로 해결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김정일이 이처럼 평양 시민들에 대한 시혜 확대에 집착하는 것은 체제수호 핵심계층인 이들을 우대해 체제결속을 도모하고, 한편으로는 배급을 통해 시장기능을 억제함으로써 당국의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그러나 이런 미봉책으로 기아와 질병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을 해결할 수는 없지요. 이러한 쇼들이 김일성 생일 100주년을 맞이하여 강성대국 진입을 ‘흉내(imitation)’내면서 대대적인 경축 분위기를 조성하고 3대 세습의 공식화를 선언하려는 김정일의 시나리오라는 것을 북한 주민이라고 왜 모르겠습니까?
 
 내년까지 3천 가구를 짓겠다고 한 고층 아파트가 심각한 경제난 때문에 올 9월 말 까지 600여 가구 밖에 건립되지 못하면서 군인과 대학생들을 건설현장에 투입해 45층짜리 아파트 골조 공사를 3개월 만에 초스피드로 해치우는 등 목표달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날림공사∙부실공사가 태반이고 애당초 목표 달성도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각종 선전용 사업이 평양 위주로 전개되면서 평양과 지방 간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열악한 환경에서 소외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지방 주민들의 불만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말 21명의 북한 주민들이 목선을 타고 서해로 남하해 왔습니다. 올 들어서만 벌써 여섯 번째 해상 탈북이었습니다. 특히 지난 6월 서해로 목선을 타고 북한을 탈출해 온 주민들 중에는 군인도 두 명이 포함돼 있었다고 합니다. 그 군인들은 해안 경계 초병들이었는데, 탈북 주민들을 검거해야 할 그들이 탈북 가족을 발견하고는 자기들도 그 배를 같이 타고 왔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1년 국내 총생산량, 즉 GDP는 대략 260~270억 달러 정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1년 국방비와 비슷한 규모지만, 삼성전자 1년 매출액이 1,200억 달러, 수출액이 500억 달러라는 사실과 비교하면 북한 경제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한 회사 수출액의 절반 수준 밖에 되지 않는 경제규모에서 거의 20% 가까운 돈을 군대에 쏟아 부어야 하니 북한 경제가 살아날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경제가 살아나지 않으면 아무리 외부 지원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주민들의 기초적인 생활이 유지될 수 없는 것이지요.
 
 민생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철학공부’가 아닌가 싶습니다. 앞에서 얘기했던 실존주의 철학 말입니다.
 
 김정일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자신의 통치력이 한계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버지 김일성이 제시한 ‘민족해방 인민민주의 혁명’이라는 노선 선택이 잘못 되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선 남조선 해방’, ‘후 인민민주주의 건설’이라는 잘못된 방향 설정이 지난 60여 년간 북한을 전쟁준비에만 전력투구하는 집단으로 만들었고,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만들었으며, 북한 주민들을 헐벗고 굶주리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지금 같은 북한 체제로는 남조선 해방은 물론이고 북한 주민들의 먹는 문제조차 해결할 수 없다는 명확한 자각, 한계상황 앞에서의 처절한 ‘좌절’의 인식이 선행되어야 북한의 진정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2011년이 저물기 전에 김정일-김정은 부자가 철학 공부를 해서 제발 ‘철’ 좀 들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하 두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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