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인도에 유학하다>
지금까지 예수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BC 5년 12월에서 AD 30년 4월까지 만 33세 4개월의 일생 중,
탄생부터 12세까지와 30세부터 33세에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만 알려져 있을 뿐,
12세부터 29세까지 17년 사이에는 예수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는 이 기간에 과연 무엇을 하고 지냈을까.
아버지 요셉의 목수 일을 돕기만 하고 지냈을까.
설사 그렇게 목수 일만 거들면서 30세까지 지내왔다 하더라도
그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목수 일만 했기 때문에 별로 기록할 거리가 없어서 그랬을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17년이란 긴 세월을 그냥 비워두고
아무 언급이 없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석연치 않다.
그리고 예수가 사랑을 제창하고 신의 아들로서 자처하며,
병을 고치는 의술이라든가 기적을 일으키는 비법 같은 것,
그리고 또 그만한 인격과 신념을 갖게 된 데에는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납득할만한 배경이 있었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아버지의 목수 일만 거들었을 뿐만으로는
아무리 특출한 자질을 타고 태어났다고 할지라도
그렇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설사 유대인은 구약성서를 읽고,
그들 민족의 전통 교훈을 배운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로만으로는 기껏 율법학자가 되거나,
좀 더 나아간다면 제사장, 아니면 예언자 정도면 모를까,
그리스도로서의 역할을 할 정도로 위대한 인물이 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된 배경이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런 식견, 그런 신념과 사상, 그런 성인으로서의 인격,
그리고 기독교를 창시한 신앙이 어떻게 형성됐을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이유의 대부분이 17년간의 감추어진 시기 속에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예수가 그리스도라 하는 능력자가 되게 된 것이
17년간의 비밀에 싸인 시기 중에 있다면,
왜 그것을 기록해서 17년의 공백을 메우지 않았느냐,
왜 그런 좋은 사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태여 감춰야만 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에는 무슨 중대한 곡절이 숨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곡절을 푸는 열쇠는 곧 17년간의 예수의 행적을
알아내는 데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이 의문을 풀 수 없다고 단념하고,
이것은 우리 인간으로는 알 수 없는 신의 뜻이므로
‘비밀’ 속에 간직돼 있는 것이라고 말해버린다.
그렇다고 인류의 위대한 스승의 생애를 그렇게 비과학적으로
얼버무려도 되는 것인가. 이성적 인간의 지성이 그런 수수께끼를
그냥 두고 넘기지 못한다. 어떻게든 이것을 풀려고 한다.
사실 유럽의 학자들은 오랜 연구를 거듭해 왔고,
언젠가는 풀릴 때가 올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헌데 이야기를 바꾸어서, 석가모니가 활동했던 기원전 5세기 경,
그리고 예수가 활동했던 기원 전후의 시기까지
당시 인도에는 지역이 넓은 탓에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를 비롯해
상당히 많은 언어들이 유통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불교의 세계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마가다(Magadha)제국의 제3왕조 마우리아왕조(Maurya dynasty)의
제3대왕인 아소카왕(Ashoka, 阿育王, 재위 BC 265~238 경)은
인도를 통일한 후, 인도의 북부 지방까지 영토를 넓혀
지금의 파키스탄, 아프칸, 그리고 그 훨씬 북쪽까지 점령했다.
불교에서 전륜성왕(轉輪聖王;불교에서 이상으로 칭송하는 왕)이라고
칭송받는 아소카왕은 자신의 통치영역을 표시하고,
통치원칙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점령지 곳곳에
많은 석주(石柱/돌기둥)와 비를 세웠다.
그런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인도 북쪽에서 발견되는 석주 중에는
아람어로 새겨진 것도 있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은
이 아람어가 예수시대 에루살렘에서도 사용한 언어라는 것이다.
※아람어(Aramaic language)는 나중에 페르시아제국의 공용어가 됐고,
히브리어 대신 유대인의 언어가 되기도 했다.
구약성서〉의 〈다니엘〉과 〈에즈라〉는 아람어로 씌어 있고,
유대 율법과 주해를 집대성한 책 〈탈무드〉 역시 아람어로 씌었으며,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이 언어를 사용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같이 같은 언어권에 있었다는 사실은
몇 백 년의 간격이 있기는 하지만,
예수가 석가모니라는 인물과 사상에 대해
알았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개연성이 있다.
더욱이 아프칸 가까운 티베트불교에서는 ‘이사(Issa)’라는 법명의
뛰어난 수행자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신기하게도 이슬람권에서도 통상적으로 예수를 ‘이사’라고 부른다.
신약성서에는 없으나 예수가 12~29세 사이에
인도에 유학했다는 설은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 돼 왔다.
게다가 교회에서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니
그 궁금증이 증폭되기도 했다.
그런데 교회에서 복음서로 정식으로 채택은 안 하지만
예수의 말씀을 기록한 문서들이 있다.
이런 복음서를 ‘외경(外經)’이라고 하는데,
1947년 2월 사해(死海) 서안 쿰란(Qumran)지역 11개의 동굴들에서
구약성서 사본 및 유대교 관련 문서(흔히 사해문서라 부른다)들이 발견된 이후, 외경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
사해문서(死海文書 ; Dead Sea Scrolls)는 무려 2000여 년 전
작성된 성경의 사본과 주석서들로
기독교는 물론 인류 역사의 귀중한 문헌이다.
사해사본 이외의 외경들 중에는
4대 복음서의 내용을 뒷받침해 주는 내용도 있지만
이미 고착화된 현재의 기독교로는 받아들이기 곤란한 문서도 상당히 많다.
그리고 외경은 아니지만 먼 훗날 외경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을지 모르는
보병궁복음서(성약성서/The Aquarian Gospel of Jesus the Christ)라는 복음서가 있다. 이 보병궁복음서(寶?宮福音書)는 예수의 젊은 시절(12세~29세)의
구도를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수, 인도 유학길에 오르다>
예수가 생존했다고 전해지는 AD 1세기 전후는
페르시아 상인을 비롯한 여러 상단들이
중국이나 인도 등과 로마 그리스까지도 연결해 다녔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그 무역 경로 중 하나는 실크 로드였고,
또 하나는 바다였던 것도 정확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 당시 지중해 지역은 강력한 로마제국에 의한 팍스 로마나(Pax Romana)가 구축돼 평화가 유지돼 있었으며,
중동은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질서가 확립돼 있어서
이들 무역로가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었고,
그만큼 통행이 자유롭고 안전해 무역이 활발했다.
그럴 즈음에 어린 예수는 목수인 아버지 요셉의 일을 도우며,
때로는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이 때 남부 인도의 오릿사주(州) 왕족인 「라 반나」가
유대 나라의 제례(祭禮)에 참석하러 왔던 차에
성전에서 토론하고 있는 예수의 총명함에 반해,
예수의 부모를 찾아가서 인도 유학을 주선했다. (성약성서 21:1~20)
예수도 무척 공부하고 싶어 하고 있었으므로
그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도 승낙을 해서
해 뜨는 방향을 향해 떠난 12세의 예수는 오릿사 지방의 브라만교(힌두교) 계통인 쟈간나스 사원에 제자로 들어가 수행의 길을 걸었다.
이 때 예수는 브라만교 거장들에게
베다(Veda)와 우파니샤드(Upanisad) 등 브라만교 성전과 철학을 배우는 한편, 불교 승려인 라마스와도 깊은 우정을 나눴다.
그런데 당시 갠지스 강변의 마을 베나레스는 브라만교의 성지이면서
불교도 매우 성한 곳이고, 문화와 학술이 고도로 발달된
매우 자유스러운 곳이었다.
그리하여 14세 때 예수는 인도 의술(醫術)을 배우기 위해
베나레스로 가서 아리아인들 속에 정착해
당시 인도 최고의 의원이었던 우도라카의 제자가 됐다.
유명한 의사 우도라카의 가르침의 요지는 이러하다.
―자연의 법칙은 건강의 법칙이다. 이 법칙대로 살면 결코 병에 걸리는 일이 없다. 이 법칙을 어기는 것은 죄이며, 죄를 범하면 병에 걸린다. (성약성서 23:5~6)
―한편 자연계의 물상(物象)은 모름지기 인간의 요구에 응할 수 있게 돼 있으므로, 모두 의료의 비약(秘藥)이 된다. (성약성서 23:10)
―인간의 의지는 최고의 의약이니까 … 따라서 스스로의 힘으로 병을 고칠 수 가 있다. (성약성서 23:12)
한편 예수는 이 무렵 카스트제도를 주장하는 브라만교에 실망을 느끼고,
친구 라마스와 함께 갠지스강 주변 마을의
노예와 농부들과 함께 기거하기도 하면서,
그들에게 인류는 한 동포이며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리고 만인의 해탈 가능성과 평등사상을 주장하는 불교에 매료돼
불교도들 틈에 들어가 불교의 성지인 부다가야, 녹야원 등지에서
6년간 불교의 교리를 배우며,
인도의 성자 피차파치(비자빠찌/Vidyapati)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수도 생활도 했다. 당시 인도에서 예수의 불교식 이름 역시 ‘이사(Issa)’였고,
오늘날에도 인도에서는 예수를 이사라 부르고 있다.
예수는 인간의 절대 평등을 주장하며,
브라만의 사성계급인 불평등한 카스트제도를 비판한 나머지
인도 사회의 신분제도(카스트)를 파괴한다고 브라만교도의 미움을 받았다.
그리하여 브라만교도들이 그를 정죄하려 하고,
목숨까지 위협했으므로 친구 라마스의 도움을 받아
북쪽 지금의 네팔 지방으로 피신했다.
그리고 피차파치에게 배울 때 그 배운 사본이
티베트 랏사에 있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그것을 직접 보기를 원했다.
<보경궁복음서 36장 1~4절 중>
티베트의 랏사에는 구도자를 위한 사원이 있었고,
수많은 고전의 필사본이 소장돼 있었다.
예수는 그들이 포함하고 있는 많은 비밀의 교훈을 직접 읽기를 원했다.
한편 멀리 동방 지역의 최고가는 성자 멘구스테가 이 사원에 있었다.
에모두스 고원을 횡단하는 길은 험난했으므로 길을 떠나려는 예수를 위해
피차파치(비자빠찌)는 믿음직한 안내자 한 사람을 딸려 보내며,
멘구스테에게 그 유대 성자를 잘 맞이해 달라는 서신을 보냈다.
며칠 후, 그 안내자와 예수는 사원에 도착했고,
멘구스테와 모든 사원의 승려들과 선생들은 히브리의 성자를 맞이했다.
예수는 현자(賢者) 멘구스테의 도움을 받아
성스런 고대의 필사본을 모조리 탐독했다.
또 심지어 영계(靈界)의 힘을 빌려 기적을 일으키는 비법까지 터득하게 됐다.
멘구스테는 예수와 더불어 장차 올 시대에 대해 종종 말했으며,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가장 알맞은
신성한 예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랏사에서 예수는 가르치지 않았고,
사원의 학교에서의 불교 공부를 모두 끝마쳤을 때,
서쪽으로 길을 떠났고, 많은 마을에서 잠시 머물러 가르침을 주었다.
라다크 지방(지금의 인도 카슈미르 동부 지역)에 있는
레흐라는 마을에 도착해 수도승, 상인 및 천민들로부터 환영을 받으며,
수도원에 머물며 가르치고 시장터의 대중들을 찾아가서 가르치기도 했다.
멀지 않은 곳에 어린 자식이 죽을병에 걸린 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 여인은 예수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스승이란 말을 듣고
아이를 끌어안고 예수에게 왔다.
예수는 그 여인을 보고 하늘로 눈을 돌려 말했다.
“나의 아버지 하느님, 저에게 거룩하신 하느님의 권능을 주시어
이 어린아이에게 성령의 기운을 쏟아 넣어 살아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그는 대중의 면전에서 손을 어린아이 위에 얹고 말했다.
“착한 부인이여, 그대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의 아들을 고쳤습니다.”
그렇게 하자 그 아이는 나았다. 사람들은 깜짝 놀라서 말했다.
“이 사람은 확실히 하느님이 보내신 분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힘만으로는 그와 같이 열병을 꾸짖고
어린아이를 죽음으로부터 구할 수 없을 테니까.”
많은 사람들이 환자를 데리고 왔고, 예수는 말씀으로 그들을 고쳤다.
예수는 라다크인들 사이에서 며칠 동안 병을 치료하는 방법과
죄를 씻어내는 방법과 지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다.
---(중략)---
예수는 카슈미르 골짜기에서 라흐르라는 도시로 가는 도중인
한 떼의 대상을 만났다. 상인들은 예수를 알아보았고,
레흐에서 그의 권능을 보았기에 무척 반갑게 여겼다.
예수는 라흐르에 가서 신드강을 건너 페르시아를 통해서
더 멀리 서쪽으로 가려 했고, 그들은 그에게 낙타를 한 마리 주었다.
예수는 그들과 동행하다가 라흐르에 도착하자
이미 와 있던 아자이닌과 몇몇 승려들이 환대했다.
아자이닌은 상인들로부터 그 유대 청년의 지혜에 대한 말을 전해 듣고,
그 청년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라흐르에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는 아자이닌의 손님이 돼 많은 것을 가르치고,
병 치료술의 비의(秘醫)도 전해주었다.
그는 공기 ? 물 ? 불 ? 땅의 영을 지배하는 방법을 가르쳤고,
죄 사함의 비의와 죄를 씻어 없애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이곳을 떠나 고향으로 향하는 도중에 페르시아에 들려서
24년 전에 자신이 태어났을 때 찾아준 동방박사 3인을 만나기도 했다.
인도 및 티베트 등지에서 예수에게 심령치료의 비법을 전수해준
밀교계 고승인 우도라카와 멘구스테 등 스승들은
예수에게 의술과 비술을 이타적으로 쓰되 남용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
예수는 라흐르를 거쳐 귀국하는 동안 석가모니의 모범을 따라
병자를 고쳐가며 설법도 했다.
그렇게 해서 인도 유학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가기까지 17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귀국 후 예수는 유일신교인 유태고파들에게
모든 인간의 절대 신성을 부르짖었으며, 여러 가지 초월적 이적을 행하고,
군중을 모아 사랑과 평등사상을 전파했다.
이러다가 결국 유대교 성직자들의 질시와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매달린 채 처형된다.
헌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제자 요한에게 마리아를 부탁한 뒤,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Eli Eli Lama Sabachthani ; 기독교에서는 ‘하느님 왜 저를 버리시나이까’로 번역함)”라고 외친다.
예수가 외친 이 마지막 말은 티베트 불교의 진언(眞言)인
“엘리엘리 라마 삼먁삼보리(Eli Eli Lama Sammach San Bori)”라는
다라니(Dharani=呪文)였다고 한다.
즉 예수는 극도로 탈진해 생사를 가늠하는 마지막 순간의 가사 상태에서
평소 즐겨 외던, 모든 장애를 벗어나 한량없는 복덕(福德)을 얻게 되는
권능이 있다고 전해지는 라마불교의 주문(다라니)을 암송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예수의 제자들은 이 주문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때문에 예수가 죽은 뒤 40~50년 후 예수님의 말씀을 정리하기 시작했을 때,
마지막 말씀의 의미가 잘못 기록되고 또 잘못 번역돼 후세에 전해진 것이란다.
예수가 죽음을 바로 앞두고 라마불교의 진언을 암송했다는
이 충격적인 사실은 예수의 인도와 티베트에서의 구도생활을 밝혀 주는
결정적 증거의 하나이다.
? 참고문헌 ?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고려원, 홀거 케르스텐)
성약성서(대원출판, 리바이 도우링)
신약외경(성인사, 일본 성서학 연구소)
성서의 뿌리(산방, 민희식)
예수의 잃어버린 세월(동국출판, 엘리자베스 C 프로펫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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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병궁복음서(寶?宮福音書=成約聖書)란>
기독교 제삼의 성경으로 알려진 복음서이다.
즉 기독교에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가 있는데,
그 외에 기독교의 정수를 전하고 있는 제3의 경전이 바로 성약성서(成約聖書),
즉 보병궁복음서이다. 보병궁복음서에는 지금의 인류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고, 어떤 시대가 다가오며, 그때의 구원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보병궁(寶甁宮)’이란 말의 유래는 서양의 고대 천문학에서 비롯된 것으로,
고대 천문학에 의하면,
우리의 태양계는 멀리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중심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으며,
한 번 도는 기간(일주기간)은 약 2만 6천년이라고 한다.
그리고 태양이 도는 궤도, 이것을 황도대(黃道帶)라고 하는데,
이는 12궁(宮)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태양계가 12궁의 한 자리를 지나는 시간은 약 2100년 조금 넘는다고 한다.
이 시간대가 천도섭리(天道攝理) 측정의 한 시대가 된다.
이러한 시대 구분에 따르면 약 6000년 전 아담이 살던 시대는
태양이 금우궁(金牛宮)에 들어갔을 때이며,
약 4000년 전의 아브라함의 시대는 백양궁(白羊宮)시대,
로마제국의 등장, 즉 예수가 탄생한 때는 쌍어궁(雙魚宮)시대이고,
지금은 쌍어궁시대를 마감하고 보병궁시대로 들어가려는 대전환기라고 한다.
따라서 <보병궁복음서>는 미래 보병궁시대의 복음서라는 뜻이다.
그 내용은 신약성서 4대 복음서 내용을 대부분 포함하고 있으며,
여기에 빠져 있는 예수의 12세부터 29세까지의 성장과정과 구도과정이
자세하게 기록돼 있어 예수가 전한 가르침의 진수를 알 수 있다.
이 보병궁복음서가 성약성서(成約聖書=말씀이 이루어지는 시대의 복음서)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판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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