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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길의 지역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20년, 6전 7기의 도전..

쇼생크 |2012.02.12 20:33
조회 196 |추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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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길은 80년대 야당 정치인으로 군사정부에 맞서면서 정치에 입문하였다.


1981년에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낙선하는 등 2번의 낙선을 경험하였다.


그리고 1985년  대한민국 선거 역사상 최고의 카피라고 할 수 있는 1985년 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온 "아빠는 박찬종 엄마는 김정길"이라는 카피로 인하여 당시 부산 중동영도구에서 3위로 탈락이 예상되었던 김정길 후보를 1위로 당선시키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당시 관제야당인 민한당의 공천을 받았지만 실질적으로는 비제도권의 야권의 지원을 받으면서 당선되어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 당시에는 중대선거구로 2위까지 당선시키는 선거제도로 국회의원을 선출하였다. 당시 여당 후보 민정당 윤석순 후보를 누르고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김정길 후보는 초선 1985년 12대 국회의원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1988년 13대 총선에는 소선거구제로 바뀌면서 노무현 후보도 정치에 입문하게 되는 데 당시 김정길 후보는 영도에서 출마하여 당선되고 노무현 후보도 동구에서 출마하여 허삼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노무현 의원은 화려하게 정계에 데뷔하였고 김정길도 승승장구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하지만 ........



노태우 정권은 여소야대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이른바 '보수대연합'을 비밀리에 추진하여 민주정의당은 통일민주당과 보수성향의 신민주공화당에 합당제의를 하게 되었다. 김영삼 총재는 평민당 김대중 총재에 대해 상당한 경쟁심을 가지고 있었던데다 현재의 구도대로 간다면 대통령이 되기 어려울것이라 판단, 민정당과 합당하여 여당의 지위를 얻고 자신의 조직을 총동원하여 차기 대권을 잡는다는 구상을 가졌다. 결국 3당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탄생하였고, 당시 통일민주당 국회의원 59명 중에 2명(김정길, 노무현)만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지 않았다.


실제로 당시 통일민주당 의원 59명, 그러니까 지역구 46석, 전국구 13석중에서 노무현과 김정길 단 두명을 제외한 나머지 57명은 김영삼과 노태우간에 벌어진 야합의 결과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그대로 따라가서 여당의원노릇을 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비열한 배신행위가 전통 야도이며 부마항쟁의 중심지였던 부산 시민들에게 받아들여 졌는가에 대해서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현실은 꿋꿋이 버티며 남아있던 두 정치인, 즉 노무현과 김정길에 대한 가혹한 낙선의 연속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정길은 이러한 가혹한 응징을 버티며 노무현과 함께 가시밭길을 가기 시작하게 된다. 결국 1992년에 실시된 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정길 후보는 민자당 김형오 후보에게 패배하고, 노무현 후보는 동구에서 리턴매치로 열린 민자당 허삼수 후보에게 패배하면서 민자당 후보들에게 결국 낙선하였다. 3당합당 이후 1번째 낙선...


 



 


그후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취임 이후에 열린 보궐선거에서 김정길 후보는 사하지역구에 출마하였다. 그때도  정치신인이면서 김영삼 대통령의 측근인 박종웅 후보에 밀려 2위로 낙선하게 된다. 3당합당 이후 2번째 낙선이었다.



 


 


 


 


그리고 1995년은 첫 지방선거가 실시되었다. 그 해 노무현은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하였다. 하지만 민자당의 지역주의에 밀려 결국 또다시 낙선하였다. 노무현의 2번째 낙선... 



 


결국 노무현은 1995년 지방선거의 패배로 인하여 부산에서 정치생활을 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하여 1996년에 실시된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서울 종로 지역으로 지역구를 옮기게 된다. 그러면서 노무현의 서울로 가게 될 명분을 찾게 되었는데, 김정길 후보가 그 명분을 주기 위해 자신의 지역구인 영도구를 떠나고 중ㆍ동구에 출마하게 되었다. 그게 노무현이 김정길에 진 빚 중에 하나 였다. 결국 중ㆍ동구에서 김정길 후보는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의 공천을 받은 정의화 후보와 당시 현역의원이던 허삼수 후보에 밀려 3등으로 또다시 낙선하였다. 김정길의 3당 합당 이후 3번째 낙선...


 



 


 1998년에는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김정길 후보는 '국민의 정부'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2000년에 실시되었던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본래 지역구인 영도구에 출마하였지만 당시 부산의 반DJ정서를 이기지 못하고 또다시 낙선하였다.


김정길의 3당합당 이후 4번째 낙선..



 


 2004년 실시된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김정길 후보는 영도구에서 출마를 했지만 2,500표 차이로 패배했다. 처음엔 노 대통령 탄핵으로 두 배로 이겼는데 정동영씨의 노인 폄훼 발언 나오고서 2-3% 차이로 좁혀졌다. 이게 조사할 때마다 떨어지더니 선거 직전엔 박빙이 되었다.


 출구조사에선 김정길 후보가 이겼다고 나왔는데 결과는 2,500표 차의 패배였다.


김형오 후보(전 국회의장)가 당시 선거 직전 사무총장으로 발탁되고 박근혜 전 대표는 영도에 3번 다녀갔던 것이 패배의 요인이었다. 당시 탄핵으로 인하여 유리한 선거였는데 박근혜 바람(朴風)이 불었고 정동영의 노인폄훼 발언으로 인하여 패배한 것이다. 김정길의 3당 합당이후 5번째 낙선..


 





이후 김정길 후보는 참여정부의 장관 직도 거부하였고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주요 당직도 거부하였고, 선출직인 대한체육회장을 하면서 정치계를 은퇴할 준비를 하였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환경은 MB정부의 실정과, 민주주의 후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큰 과제를 남기게 되었다.



 



 


 그래서 정치적 친구이자 동지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2010년 지방선거에서 김정길 후보는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선언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경상남도 김두관 후보는 과거에 이미 2차례 경남 도지사로 출마했고 오래전부터 2010년 지방선거 출마준비를 하면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이 되었지만 김정길 후보는 사실 부산시장 출마 준비를 너무 늦게 시작하였고, 야권단일후보 선정방식이 마찰이 많아지면서 이길수 있는 여건은 아니었다. 그런 여건에서도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지지율은 김정길 후보로 올라가고 있었다. 맹추격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 2010년 지방선거 부산시장 후보로 나온 결과는 또다시 패배하였다. 3당 합당 뒤 6번째 낙선이었다. 주위에서는 패배의 슬픔이 있었어도 축하인사를 받게 되는 일이 생겼다.



 


 부산은 여전히 한나라당이 강세지역임이 분명하였다. 하지만 부산시장 선거에서 마의 40% 벽을 깬 것이 분명하였다. 이는 김정길 후보의 힘이기도 하지만 야권연대의 위력이기도 하였다.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권이 후보단일화만 제대로 하게 되면 한나라당을 이길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2011년 12월 김정길 후보는 부산진(을)에 출마선언을 하였다.


 



 


 6전 7기의 도전. 지난 20년 간 ‘바보’ 노무현의 정치적 동지이자 평생의 벗이었던 정치인 김정길의 항로는 험난했다. 지난 90년대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에 반대하면서부터 그의 정치인생은 낙선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지난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후보에 출마해 야권 사상 최초로 44.6%라는 의미 있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사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서 이렇게 모든 정치인생을 살아온 사람은 없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도 1996년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종로에서 출마하였고, 1998년 재보궐선거에서도 종로에서 출마하면서 당선되었다. 그리고 나서 2000년에 부산 북ㆍ강서을에 출마하여 낙선하면서 지역주의 극복에 도전하면서 패배한 '바보 노무현'으로 불리면서 노사모가 창설되었다. 하지만 김정길 후보는 모두 부산에서만 민주당(열린우리당 포함) 후보로 출마하였고 낙선하였다. 솔직히 국회의원 관직을 어떻게든 얻고 싶은 마음에 지역주의 바람을 이용해서 당선하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볼 때 모든 인생을 부산에서만 출마하면서 패배한 김정길 후보는 '왕바보 김정길'이라 불리어도 마땅하다.


 


 이번에도 김정길 후보는 쉬운 길로 가지 않았다. 민주통합당 당헌당규 상으로 비례대표 상위 순번을 받을 수 있음에도 비례대표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그동안 야당 정치인으로 평생 다져온 지역구인 영도구를 내어놓았다. 그리고 다시 부산의 중심인 부산진구에서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의 아성을 무너뜨릴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6전 7기의 도전이 남았다. 사실상 그의 정치인생 마지막 도전이 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2012년 4월 11일(수)에 그 결과를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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