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 지나버린 이야기지만 그때 그 순간을 배경으로 둬야 뭔가 내가 말하고 싶은 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집은 그렇게 가난한 편도 그렇다고 확실히 잘사는 집도 아니었지만 아버지가 회사를 옮기고 나서부터 급격하게 가세가 기울었다. 지금은 솔직히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좀 좋아진 것 같다. 내가 막 서울에서 전학을 왔을 때 여긴 자동차도 쉽게 보기 힘들만큼 그냥 시골이었다. 논과 밭이 있는 그런 곳 말이다. 지금은 그냥 농으로 술자리에서나 꺼낼 법한 옛날이야기지만 그땐 교실마다 나무를 때는 난로가 있었다. 복도와 교실 바닥이 나무판으로 되어 있어서 왁스칠을 했던.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만 그때 당시 나는 너무도 어렸다. 나는 힘이 세지도 않았고 키가 크지도 않았고 그저 평범한 소년이었다. 아마 지금 스무살을 넘긴 친구들은 기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이웃나라 일본에서 넘어온 '왕따' 문화가 막 돌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마치 유행성 감기처럼 아주 독하게.
물론 첫 번째 타깃은 내가 아니었어. 다른 친구였는데 처음엔 왕따라는 게 신기한 장난인줄 알았다. 나도. 그래서 나도 처음 당한 그 친구를 괴롭히는데 동참했었다. 가해자였다. 수업시간에 뒷자리에 앉아 잠자리 지우개 뜯어서 머리를 향해 던지고 웃고, 집에 갈 때 보이면 다리 걸어서 넘어뜨리고 도망가고 집단으로 한명을 괴롭히는 게 이상하게 희열을 느끼게 하는 뭔가가 있긴 있는 모양이야. 친구들과 하나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그 친구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차례가 왔지.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는 순간이 찾아왔어.
나는 친구들이, 아니 애들이 가장 무섭다고 생각했던 게 그때였어. 잔인함. 밑도 끝도 없는 잔인함. 위험을 모르니까 남이 얼마나 힘들고 아파할지 모르니까. 정말 모르니까. 그래. 그땐 내가 좀 잘난 척이 심했고 '왕자병'이라는 정체불명의 병도 걸려있던 상태였지만.
고작 초등학생이 사는 게 지겹다고 무섭다고 느낀 세상이었다. 그게 내가 본 세상이었으니까. 온통 세상은 거울로 뒤덮인 것처럼 나밖에 보이지 않던 세상.
자살이라는 사전적 의미도 모르는 나이에 죽음을 먼저 떠올렸다. 학교가기 싫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났는데도 길을 돌아서 가다 보니 매일 지각하고 선생님한테 혼나고 부모님한테 혼나고. 그렇게 '왕따'라는 게 감기처럼 갑자기 찾아와 싹하고 사라졌을 때 이미 나는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있었다.
무슨 짓을 당했는지. 왜 주변사람들에게 말하지 않았는지.
앞에서도 말했지만 아이들은 몰라. 때리면서도 자신이 직접 맞아보면 얼마나 아플지. 솔직히 폭력은 견딜만했다. 애들 주먹이 세야 얼마나 세겠어. 교과서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책가방이 칼에 찢겨나가기도 하고 바닥 닦는 왁스를 머리에다 뭉치고 물벼락도 맞아봤지만 압정이나 커터칼날 이런 건 정말. 그리고 그런 것들 보다 더 힘들었던 건 같은 또래로서는 견디기 힘든 언어폭력과 무관심이었다. 진짜 세상에 혼자 동 떨어진 느낌. 누군가 나를 벼랑으로 밀어버린 느낌.
왜 주변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냐고? 겪어보면 별의별 생각이 다 난다. 부모님한테 말하려고 하니까 걱정할까봐, 마마보이라는 별명이 붙을까봐. 내가 꼴에 또 자존심은 무지 쎄거든요. 물벼락에 맞았을 때 나는 뒷산 공터에서 한번 몸을 굴렸어. 일부로. 흙으로 뒤덮인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또 흙장난쳤냐며 혼을 내셨지만 내가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걸 모르고 계셨지. 가방이 너덜너덜해졌을 때도 나무에 긁힌 것처럼 만들려고 학교가 끝나고 나뭇가지로 가방을 쑤시던 게 기억이나.
하루는 도저히 못 견디겠다 싶어서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어. 그땐 아파트도 공사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파트였기에 옥상이 항상 열려있었어. 진짜 그냥 죽을 생각을 하고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서 몇 시간동안 멍하게 서 있었지만 어린 나였기에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나서 살고 싶어서 다시 내려왔어. 그 이후부터 악착같이 버텼던 것 같아. 당한 것만큼 똑같이 되갚아 주려고 노력했어. 어떻게든. 그리고 이제 그 소년은 어머니의 키를 훌쩍 넘긴 청년이 됐지.
그래. 이제 나는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은 군인이야. 요즘 뉴스를 보면 가슴이 많이 아파.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자살을 해. 안타까워. 슬퍼. 그래. 나는 그때 어렸는지 몰라. 죽는 게 무서운 것보다 솔직히 엄마가 나 찾을까봐 무서웠나봐. 근데 한번 힘들고 나니까 그렇게 소문만 무성하던 군대도 어떻게든 버티게 되더라고. 죽을 만큼 괴로우면 그렇게 널 괴롭히는 상대랑 한번 한 쪽이 죽을 때까지 싸워봐. 제발. 그냥 죽지 말고.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