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한권 쓴 기분이에요...다 읽는 님이 챔피언입니당..ㅋㅋ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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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박 22일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 >
차례
#1. 해남 땅 끝에서 파주 임진각까지 내 발로 걷는다! - 2p
#2. 자신감을 키워볼래. - 3p
#3. 살아가는 데 있어 정작 필요한 건 몇 가지 없다. - 3p
#4. 3일 째, 국토대장정 승패가 뒤바뀔 뻔했던 운명의 날 - 4p
#5. 그동안 난 왜 이렇게 이기적이었던 걸까? - 5p
#6. 고마워요. 청년 4조! - 6p
#7. 독한 사람이 너무 많아. 난 우물 안 개구리였어. - 7p
#8. 양로원 봉사활동 - 8p
#9. 김제 물리치료사 '바비 킴'의 손길 잊지 못해 - 9p
#10. 걷다보니 노하우 생겨 - 10p
#11. 잊을 수 없었던 추위!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웠던 한빛 축전 - 10p
#12. 감사하며 살아야지. - 11p
#13. 초코파이가 이렇게 맛있는 걸 줄은! - 12p
#14. 완주의 감격, 눈물이 그렁그렁 - 12p
#15. 2년이라고 뭐, 난 너네보다 더 뛰어나게 될 거야. - 14p
맺는말 - 15p
언젠간 내발로 직접 우리나라 땅을 밟아가며 그 아름다움을 몸소 느낄 수 있는 국토대장정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왔었다. 한창 취업준비로 분주할 때이지만 20대가 아니면 언제 해볼 수 있을까하는 마음에 신청하게 되었다. 이 수료 과정을 밟으면서 한 단계를 넘어 두 세 단계씩이나 더 발돋움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인생 전체로 보면 20박 21일은 매우 짧다. 일상에서 쳇바퀴 돌아가듯 빙글빙글 살면서 느끼는 것보다 이런 국토 여행 프로그램을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낯선 곳에서 새로운 일들을 시도해보면서 터득하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국토대장정도 여러 종류가 있는 데 내가 참여한 프로그램은 YGK(Youth of Great Korea 위대한 대한의 청년) 이다. 소개를 간략히 하자면 다음과 같다.
슬로건
깨어나라 젊음이여, 도전하라 열정으로!
교육
리더쉽 하드트레이닝 과정
대원
하계: 2000명 동계: 800여명
스텝
하계: 450명 동계: 100명
대원 워크샵
1박 2일(장비분출+건강검진포함)
일정
하계: 23박 24일 동계: 21박 22일
마크
태극기 +위대한 대한의 청년 심볼
루트
해남(3박 4일)-영암-나주-광주-담양-순창-정읍-김제-익산-논산-공주-조치원-천안-평택-수원-서울-일산(2박3일)-파주
금액
하계:47만원
동계:59만원
축전
청년희망 대축전
장비
모든 장비 직접운영
보급장비
22종
걷는거리
570여 KM
기상
오전 4시
행진 시작
오전 5시
숙영
교회, 체육관, 텐트, 찜질방
미션데이
1박 2일
기록증
리더쉽 하드트레이닝 코스 수료증
대장정 목표
사회공헌/ 인성개발/ 나라사랑캠페인/ 리더쉽 캠프/ 공동체정신 함양 등
( 참고 사이트: http://cafe.naver.com/ygkhope.cafe )
YGK 동계 국토 대장정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씀으로써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하여 새내기가 된 설렘을 안고 온 후배님들이 국토대장정의 의미와 가치를 알고 도전해 볼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으면 한다. 꿈이 있는 사람은 가난하지 않듯이 항상 꿈을 가지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놀기도 열심히 하는 열성적이고 기운 넘치는 대학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한 앞에서 잘 이끌어주시는 교수님들과 동문 선배님들이 있으니 지적인이 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믿고 따라와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0박 21일 동계 국토 대장정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
10학번 이 소 민
#1. 해남 땅 끝 마을에서 파주 임진각까지 내 발로 걷는다!
한반도의 시작점인 해남 땅 끝 마을에서 발대식 을 하고 첫 출정 길에 올랐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내가 정말 꿈에 그리던 국토대장정을 하게 되다니!’ 처음 시작은 무척 설레고 떨렸다.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아주 신이 났다. 200여명의 대열이 도로를 가로질러 가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차를 이루어내가 그 차를 운전하는 것 같은 기분과 함께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가는 청년들의 마차에 올라타 나도 그 반열에 들어선 것 같아 짜릿하고 황홀했다.
졸업을 앞둔 마지막 방학인 만큼 누구보다도 알찬 방학을 보내고 싶다는 마음이 컸고 내 평생에 터닝 포인트가 되도록 큰 추억과 경험을 쌓고 갈 것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그런데 작년 성공률이 59%라는 말에 의아했다. ‘조금 많이 걷는 것일 뿐인데 왜 이렇게 성공률이 낮지? 사람들이 많이 나약하군. 나는 실패할 일이 절대 없어!’하고 생각했다. 평상시 두세 시간이상 걷는 것은 생활화되어있었고 국토대장정 가기 전에 연습할 겸 사람들과 등산을 몇 번 다녀왔었는데 다섯 시간 이상 등산을 했는데도 힘들지 않게 잘 해서 사람들이 강철 체력이라고 불렀다. 때문에 내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첫 날은 땅 끝 마을에서 해남 송지초등학교까지 워밍업으로 10km 걸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연습할 때는 몰랐는데 실전에서는 계속 무거운 가방을 메고 걸으니 어깨가 너무 아프고 발바닥도 찢어질 것 같았다. 앞으로 매일같이 20km이상은 걸을 텐데 10km 걸 었다고 벌써부터 이렇다는 게 충격 먹었고 내가 과연 할 수 있을 지 겁이 나기 시작했다.
숙소인 송지초등학교 체육관에 도착했을 때 관장님과 보건선생님이 우릴 맞이해 주었다. 레크레이션이 시작되고 무슨 일 지원자를 뽑는다기에 “저요!” 하고 재빠르게 번쩍 손을 들었다. 장기자랑 도와주는 건 줄 알고 지원했는데 조원들 땀에 젖은 내피 손빨래하는 게 당첨. 눈물 잠깐 닦고 다들 레크레이션 할 때 내피들 가지고 손빨래 하러 화장실에 갔다. 따뜻한 물이 나오질 않아 찬 물로 고무장갑도 없이 빨래를 하다가 워크샵 때 취사 팀이 부족하다 해서 지원했었는데 그 때 마침 취사 준비한다고 나를 찾기에 빨래도 다 못하고 조원에게 맡기고 정신없이 저녁 취사 준비하러 갔다.
식재료들을 씻고 계란 두 판을 풀었는데 날씨가 추워서 계란이 얼어 있었다. 맨 손으로 계란 까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언 계란들 녹이기 위해 거품기로 오랜 시간을 공들여서 휘저었다. 힘들었지만 이렇게 밖에서 취사 준비하는 것도 처음이여서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그러던 사이에 레크레이션이 끝나버렸다. 하지만 우리 조가 구호 잘 지어서 컵라면을 한 박스 탔다니 기분이 좋았다. 저녁을 먹고 취침 준비를 분주히 했다. 인원이 워낙 많고 화장실은 적고 시간도 부족해서 혼났다. 7시 30분. 어서 취침준비를 하라고 외치는 스텝들 소리에 양치질도 못하고 서둘러 침낭을 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창 정신 말똥말똥한 시간에 자려고 누우니 잠이 오질 않았다. 하지만 행동 느려터진 내가 기상시간이 4시라면 3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애써 잠을 청했다.
#2. 자신감을 키워볼래.
이틀 째. 북일중앙교회까지 22km. 3시 일어나서 발에 물집 생기지 않으려고 근육테이프로 칭칭 감아 테이핑을 하고 양쪽 어깨에 파스 딱 붙이고 기합 단단히 넣고 출정했다. 이런저런 생각하면서 걷다보니 어느 새 점심 식사 휴식지에 도착했다.
점심을 기다리면서 레크레이션을 했는데 앞에 나가서 ‘독도는 우리 땅’ 노래를 불렀다. 앞에 나가서 부르는 게 좀 어색하고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곳까지 와서 쑥스러움타려고 온 것도 아니고 가만히 앉아서 구경하는 것보다 적극적인 게 훨씬 좋다고 생각했다. (사실 국토대장정 가기 전에 앞에 가서 노래 부를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독도는 우리 땅’ 연습하고 갔다.)
덕분에 단체상점을 받았다! 헤헤. 역시 무엇이든 결과는 나중에 생각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시도해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YGK 노래 외우기’ 시간을 가졌다. 노래 가사 중에 “Final Fire~" 하고 배에 힘주고 부르는 부분이 있는데 같은 방 쓰는 조사람들 모두 아주 목이 터져라 열창했다. 그래서 배식 1등으로 먹게 되었다. 오예! 저녁을 먹고 나에게 쓰는 편지’
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마지막 완주했을 때 다시 받아보게 되는 편지. 다시 받아보았을 땐 기분이 어떨까? 좀 더 강해지고 성장해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하며 꼭 다시 받아보게 되리라는 염원을 담아 정성껏 적었다.
#3. 살아가는 데 있어 정작 필요한 건 몇 가지 없다.
8kg 나가는 배낭을 메고 장시간 행군을 하니 발도 아프고 어깨도 천근만근 무거워져서 버티려면 배낭 무게를 줄여야했다. 가기 전날 최대한 간추려서 가져왔다고 생각했는데 행군하면서 다 버렸다. 옷도 버리고 미쳤다고 가져온 화장품도 수건도 버리고 어차피 못 빨기에 빨래비누 반조각도 버렸다. (찜질방에 가면 비누가 다 있기에.) 또 수통에 물 받으면 물도 반 버리고 양쪽 어깨 무게균형도 맞추기 위해서도 신경썼다. 장시간 행군할 때는 100g도 엄청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에 작은 무게에도 민감했다.
다음 날 해남에서 강진까지 최초로 30km 이상 걷는다는 말에 지레 겁을 먹고 모두들 배낭 무게 줄이기에 바빴다. 각종 화장품, 책, 옷, 수건, 기타 잡동사니 등 다 버리고 심지어 배급 물품도 몰래 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내 긴 머리카락도 거추장스러웠다. 힘들어 죽겠는데 입에 자꾸 들어가니까 짜증이 났다. 싹 다 잘라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국토대장정을 하기 전에는 몰랐다. 속옷도 양말도 갈아입을 것 두 개만 있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씻을 수 없으니 수건도 필요치 않고 ‘화장은 절대 포기할 수 없어!’ 했던 생각은 이틀 째 되던 날 깡그리 사라져버려 화장품도 필요하지 않았다. 마실 것도 가방이 무거워지기 때문에 받기를 거부했다.
국토대장정을 마치고 집에 와서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한번 입고 만 옷과 화장품, 물건들이 수두룩했다. 잘 쓰지도 않는 물건들이 집안 곳곳을 차지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방이 항상 좁다고 여겼었는데 난 그동안 사기만 하고 버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또 주위사람들로부터 돈 씀씀이가 헤프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난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들을 샀을 뿐인데 왜들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아 불만이었다.
국토대장정을 통해서 난 그동안 내가 욕심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아가는 데 있어 정작 필요한 건 몇 가지 없는 데 말이다. 이제는 버리는 것도 예전보다 쉬워지고 물건을 살 때 정말 필요한 것인지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사는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되었다.
#4. 3일 째, 국토대장정 승패가 뒤바뀔 뻔했던 운명의 날
3일 째, 해남에서 강진 31km 이 날은 정말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나에게 있어 최고의 고비였다. 걷다가 앞을 보면 남은 거리가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걸음도 너무 빠르고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사막 속에서 오아시스 찾아 헤매는 기분.
휴식이 절실하지만 중간에 잘 쉬지도 않고 빠르게 계속 갔다. 중도 포기 자들이 속출했다. 행진 중에는 화장실에 갈 수 없기에 물을 소량으로 섭취하는데 너무 적게 마셨나. 이 날 신기한 경험을 했다. 걷다가 앞이 흐물흐물하면서 회전을 했다. ‘안돼. 정신력이 부족해서야. 정신차려라 정신차려!’ 속으로 외쳐도 말을 듣지 않았다. 짜증이 밀려왔다. 가고 싶은데 왜 이렇게 포기하고자 하는 마음이 솟구치는 지 열 받아서 정신 차릴 때까지 뺨을 사정없이 치면서 갔다. 한 20대 때렸나. 옆에서 조원 광성이가 나보고 “드디어 정신줄 놓았어.” 하고 놀려댔지만 난 심각했다.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누군가를 의지해서라도 다리를 붙잡고서라도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같이 걷는 광성이 팔을 늘어지게 붙잡고 힘겹게 물어봤다. “언제 휴식지 도착하는 거야?” "거의 다 왔어. 다 왔어. 힘을 내." 그 말을 믿고 한걸음 한걸음씩 어렵게 내딛었다. 기적같이 휴식지에 도착했을 때 바닥에 앉자마자 물통을 받침삼아 머리를 쿵하고 박았다. 그런데 아직도 두 시간이나 더 가야된다는 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휴식지도 죽을 똥 살똥하면서 겨우 왔는데 아직도 그렇게 많이 남았다고? 난 더 이상 못 간다구. 흑 ’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그러다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이는 사람마다 물이랑 간식 달라고 해서 물 벌컥벌컥 다 마시고 당분을 취해야 한다는 생각해 간식도 흡입했다. 뻔뻔했겠지만 정말이지 죽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정신 놓고 다 먹으니 나아졌다.
다시 출발했다. 후송차량이 환자들을 위해 1대 있지만 많은 인원을 수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정말 죽을 것 같은 사람만 태운다. 그 차가 지나갈 때마다 난 이런 생각하곤 했다. ‘저 차는 약한 사람들이 타는 거야. 난 절대로 타지 않을 거야!’ 그런데 이때만큼은 그런 마음 언제 먹었는지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리고 후송차량에 실려 가고 싶은 심정이 절실했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옆에 있는 광성이에게 부탁했다. “스텝에게 알려줘. 나 지금 정신을 못 차린다고. 후송차량 태워야 된다고.” 그리고 광성이 팔을 붙잡고 머리를 박은 채 비틀비틀 걸으면서 갔다. 광성이가 내가 힘들어하는 걸 알았는지 스텝에게 그렇게 말을 했는데 스텝이 나에게 물어봤다. “포기하겠습니까?” 그건 정말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요 속으로 말하며 나는 그대로 고개를 푹 숙인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랬더니 스텝이 “자, 모두 외칩시다. 이소민 파이팅!” 말하고 걷는 대원들 모두 “이소민 파이팅!”을 외치면서 갔다. 정신 차리려고 애쓰면서 계속 가다 보니 말도 안 되게 목적지가 눈앞에 보이 기 시작했다.
첫 빵빠레가 우리를 반겨준다. 스텝들과 남아있던 대원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로 우 리를 맞아줬다. 첫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이 날 가장 많이들 포기했었고 일부러 더 힘들게 했다고 한다. 더 힘든 날도 많기 에. 아직도 나는 내가 이날 온 것만 생각하면 어떻게 왔는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이 날 조원들, 스텝들 도움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정말 내 국토대장정의 승패가 뒤바뀔만한 운명의 날이었다.
#5. 그동안 난 왜 이렇게 이기적이었던 걸까?
‘다른 사람 상관없어. 나와 관계없으니까.’, ‘나만 잘되면 돼. 내 주위사람만 잘되면 돼.’
나는 그동안 성공하려면 남들과 달라야한다는 생각이 컸고 학점에 민감하여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친구들에게 알려주는 것이 손해 보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과 친구들 간에 사이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친한 친구들과도 시험기간일 때는 거리를 두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같은 과 친구들을 동료보다는 경쟁자라는 생각이 컸고 함께 하기보다는 혼자서 뭐든 하려고 했다. 물론 열심히 한 만큼 성적부분에서는 만족스럽지만 다른 한 쪽에서는 마음이 허전하고 쓰리다.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2년 대학생활을 성적과 자격증에만 치중했지 다른 외적인 부분에서는 소홀히 한 것 같아 고개가 수그러진다. 전국에서 모이는 국토대장정에서도 알고 보니 누가 누구의 먼 친척이고 지인이고 초등학교 동창도 만나고 지역들이 다 다른 데도 그렇게 연결고리가 있다는 게 신기하고 놀라웠다.
새삼 사람은 정말 죄짓고 살면 안 된다는 것과 국토대장정 가서도 그렇게 다 연결되어있는데 하물며 같은 대학, 같은 과로 오게 된 건 얼마나 큰 인연일까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왜 바로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인연을 소중히 이어갈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인지 왜 그렇게나 이기적으로 살았던 건지 후회스럽기 짝이 없다.
국토 대장정을 하게 된 계기는 나의 성취욕과 스펙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스스로를 단련시키려는 이유가 컸다. 물론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도전해보겠다는 여러 의미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과 모두 함께 완주하기보다는 일단 나라도 꼭 완주하자는 생각이 앞섰다. 행군 할 때에는 너무 힘이 드니까 주위사람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앞사람, 옆 사람이 뒤쳐지기라도 하면 짜증이 나고 아프거나 힘들다고 말하면 귀찮고 거치적거린다고만 여기고 별로 대응해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막상 내가 너무 힘들고 지쳐 눈물이 나고 포기하고 싶을 때 옆 사람이 자기도 힘들면서 손잡고 끌어주고 끝까지 가자며 격려해주고 뒷사람은 뒤에서 밀어주고 조원들 모두 내 이름 외치면서 힘내라고 응원해줄 때 없던 힘이 생기면서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처음에 나는 조원 수가 많아서 좀 떨어져 나가길 바랐고 혼자서만 살아남으려고만 했지 누구를 도와서 같이 가려는 마음을 가진 적은 없었는데 너무 내 생각만 한 것이 부끄럽고 미안했다.
하루는 이런 내 자신이 너무 싫어서 취침시간에 몰래 울었다. 달라지고 싶고 너무 미안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몸부림을 쳤다. ‘여기 사람들은 별나라에서 온 사람들일까?’, ‘자기 몸은 아낄 줄 모르고 어떻게 타인에게 이렇게 잘 해 줄 수가 있는 거지?’, ‘ 자기 아파서 먹을 약 하나밖에 없는데 더 아파보인다고 줘버리고, 자기 양도 안 찰 간식을 여러 등분해서 나눠먹고 간식 생기면 어디 먹겠니?’, ‘잠은 안자? 취사조도 아니면서 자원해서 도와주러 나온 거야?’, ‘힘들고 거친 일 서로 하겠다고 하는 건 무슨 상황이야? 남들은 조금이라도 편한 일, 등 기댈 수 있는 일 찾는 데!’ ‘여기 사람들은 정말 별나라에서 온 게 분명해!’ 모두들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해댔다. 여기 사람들의 행동이 유별나게 이타적인 건지 아니면 내가 삭막하게 살아왔던 건지 회의감에 휩싸였다.
#6. 고마워요. 청년 4조!
나는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조원들에게 또 단장님과 대장님, 스텝들 모두에게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도움을 받았고 끝난 지 3주가 지난 아직까지도 고마운 기억들이 넘실거린다.
아마 평생 못 잊을 것이다. 서로 배려해주고 아껴주고 가족이라고 여겨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 내가 파주 임진각까지 완 주할 수있었던 건 1% 의 나의 의지와 99% 조원들의 뒷받침이다. 국토대장정을 통해서 얻 은 가장 값진 것은 정말 눈물 나게 고마운 우리 청년4조 조원들이다.
국토대장정을 무엇보다도 강력히 추천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귀중한 사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과연 몇 명의 진실 된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초∙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 친구들도 좋지만 나는 한 달 여 시간동안 그 힘든 시간들을 참고 이겨내면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친구들이 내 ‘평생인연’이지 않을 까 싶다. 내게 이런 소중한 사람들과 더 큰 꿈을 꿀 이유를 만들어주었다는 것이 너무나 감사하다.
#7. 독한 사람이 너무 많아. 난 우물 안 개구리였어.
5일 째. 영암에서 나주 동신대학교까지 29km 거리였다. 이 날도 끝이 없을 것만 같았다. ‘저기만 돌면 도착하겠지. 저 코스만 돌면 도착할거야.’ 곧 도착한다는 믿음 아래 안간 힘을 써서 걸었는데 1시간 30분가량 걸었는데도 도무지 쉴 틈도 주질 않고 갈 길은 멀게만 느껴졌다. ‘꼭 이래도 포기 안 해? 힘들면 포기해~ 집에서 쉬면되잖아.’ 하고 약을 올리는 기분이었다. 분한 마음이 들다가도 승부욕을 자극해서 노래를 힘껏 부르고 구호도 열심히 외치면서 힘들기는 커녕 신바람 난다는 듯 웃으면서 걸어갔다.
그러다 잠깐 휴식지에 도착해서 신발을 벗으니 발뒤꿈 치 피가 터진 것이다. 전 날 살짝 까졌었는데 계속 걸으 니까 더 벌어졌나보다. 사실 큰
부상은 아닌데 피가 신 발과 발목보호대 뒤쪽을 범벅으로 만들어놔서 크게 다친 것처럼 보였다. 모두들 나한테 집중이 쏠려서 아픈 것도 느껴지지 않고 관심과 시선이 부담스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후송차량에 갔더니 이미 사람이 너무 많아서 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반창고 붙이고 붕대로 감고 계속 걸어서 숙영지에 도착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내 자신에 대해 스스로 감탄했다.
6 일 째. 나주-광주 27.5km 에 갈 때 도통 쉬지도 않고 발이 너무 아파서 절뚝거리면서 갔다. 벌어진 상처가 더 커져서 어제보다 피가 많이 나면 어떡하지 무서웠다. 발이 부은 상태에서 걸으면 발이 커져서 내게 맞던 신발도 꽉 조여서 더 아프다. 한 사이즈 크고 넉넉한 신발을 신고 와야 했는데 그걸 몰랐다. 쉬지 않고 걷다보니 고통이 무뎌졌는데 휴식할 때 무뎠던 고통이 배가 되어 느껴져서 큰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한 살 어린 조원 진실이도 나와 같은 발 부상자였다. 그래서 휴식지에 도착하자마자 의료팀에게 서둘러 같이 갔다.
진실이가 상처를 보여주자 나와 의료팀에서는 벌어지는 입을 닫을 수가 없었다. 발뒤꿈치 살이 거의 벗겨져서 하얗게 변색됐다. 의료팀에서는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됐는데 왜 알리지 않고 계속 걸었냐면서 화를 냈다. 내 발 상태를 확인한 후 나는 진실이 앞에서 상처를 들이밀기도 부끄러웠다. 발 껍질이 다 벗겨지도록 내색 않고 계속 걸었던 진실이가 안쓰럽고 존경스러웠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데 이런 강한 의지가 숨어 있다는 게 대단하고 놀라웠다. 만약 내가 이렇게 됐더라면 난 아프다고 큰 호들갑을 떨고 내 상처에 놀라 포기했을 것 같다.
정말 이 세상엔 대단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발목이 퉁퉁 부어도 발톱이 뽑혀도500원 크기만 한 물집이 생겨도 다리가 휘청 휘청거리고 정신이 몽롱해도 인대가 늘어나 의사가 더 이상 걸을 수 없다 했는데도 모두 이대로 낙오할 수는 없다며 버티는 사람들이 나를 한없이 작아지게 만들고 자극시켰다.
이 사람들은 마음속에 무엇을 담고 있기에 그럴 수 있는 것일까? 대단한 끈기와 집념 그리고 악과 깡을 가진 이 사람들은 훗날 어떤 시련이 닥쳐도 그것을 물리칠 것임이 분명하다. 힘든 건 다들 마찬가진데 조금 다쳤다고 조금 힘들다고 엄살 부리지 말자고 다짐했다.
#8. 양로원 봉사활동
국토대장정 8일째. 담양에서 순창까지 15.8km.짧다고 안심하는 건 노우! 도로 대신 산을 탔다.이 날도 행진하면서 어김없이 아파서 포기하자하고 하는 마음이 수십 번 들락날락거렸다. ‘도착하면 내 꼭 병원에 가리라.’ 마음먹고 이를 악물고
갔다. 숙영지에 도착하고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가려 선착 순으로 양로원 봉사활동 10명을 뽑는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착순이라는 말에 이를 놓칠 리 없는 나는 다리 아픈 것도 잊고 총알같이 뛰어나갔다. 그리고 상점 1점을 획득했다. 아싸, 히히!
스텝들과 한솔오빠랑 나영이, 다른 조 대원들과 양로원으로 봉사활동을 갔다. 병원보다 봉사활동 가는 것이 훨씬 더 의미 있는 일이니까 다리는 아프긴 했지만 잘 풀어주고 푹 자면 괜찮아지겠거니 했다.
양로원에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말벗이 되어드렸다. 내친 김에 나영이와 ‘독도는 우리땅’ 노래도 불렀다. 그런데 영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춤을 안 춰서 그런가? 좀 더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불렀어야 했는데. 이런 날을 위해 전국노래자랑 같은 프로그램 좀 많이 봐둘걸 후회가 됐다.
이 곳 양로원에는 100세에 가까운 고연령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으셔서 놀랐다. “할머니, 100세 맞으세요? 피부가 왜 이렇게 좋으세요?” 했더니 처음엔 점잖게 얘기하시던 할머니께서 크게 함박웃음을 터뜨리면서 나를 때렸다. “아이구, 얘는 아니야.” 하면서 계속 웃으신다. 이런 격한 반응까진 기대한 것은 아닌데 역시 나이가 들수록 피부가 좋다는 칭찬은 최고인 것 같다. 그리고는 자식자랑과 손주 자랑을 길게 늘어놓으신다.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우리 할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벌써 찾아뵙지 못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연락한번 제대로 못해드려서 미안한 마음이 생겨났다. 직접 키운 손녀가 한 번도 얼굴 안 들이밀고 연락도 안하니 얼마나 섭섭하실까. 국토대장정이 끝나면 당장 할머니 뵈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잘 가란 인사를 받으면서 봉사활동을 마치고 숙영지로 돌아왔다. 양로원 가길 잘했어. 다음엔 더 의미 있는 봉사활동을 해봐야지!
#9. 김제 물리치료사 ‘바비 킴’의 손길 잊지 못해
10일 째. 정읍에서 김제까지 30km 걸었다. 발뒤꿈치를 다친 이후 반대쪽 발로만 걸으니 체중이 쏠려서 나중에는 양 발이 다 아프고 종아리, 허벅지, 골반 까지 하체 전체가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이 날도 어떻게 도착했는지 신기하다. 김제에 도착하자마자 스텝 지시 아래 곧바로 병원에 갈 환자들끼리 모여 외출을 했다. 시간이 2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아 빠듯했다.
서둘러 김제 어느 정형외과에 도착. 갑자기 몰려든 환자들 때문에 작은 병원이 분주해졌다. 그 곳에서의 시간은 정말 꿀 같았다. 물리치료를 받기위해 침대에 눕고 초죽음 상태에 있는 나를 치료해주기 위해 ‘바비 킴’을 닮은 물리치료사가 왔다. 특히 아킬레스건이 몹시 아픈 상태여서 그 부위를 ‘바비 킴’이 마사지 해주었는데 시원했지만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질렀다. “아킬레스 건염이네요. 자주 움직여 줘야 해요.” 종아리와 발목 마사지를 받고 물리치료를 받으니 그제야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다른 곳도 치료를 받고 싶었지만 제한시간을 넘긴 상태여서 가야만 했다. 환자 수는 많고 물리치료사는 1명뿐이어서 ‘바비 킴’은 바쁘게 날아다녔다. 모두들 바비킴의 치료를 받고 어느 정도 괜찮아짐을 느끼고 우리는 황급히 숙소로 돌아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물리치료사가 직접 마사지 해주는 곳도 없을뿐더러 전기치료도 하루에 1군데밖에 못 받는다고 한다. 물리치료사 ‘바비 킴’ 의 정성어린 진료가 우리를 감동케 했다 이 날 물리치료와 마사지, 측은함과 따뜻함이 섞인 조언과 격려, 손길이 없었더라면 다음 날 어떻게 걸었을 지 아직도 오싹오싹하다. 그리고 또 하나. 담양에서부터 김제, 익산, 천안 등 병원 대장정이라고 할 만큼 지역별로 병원에 자주 갔는데 그 때 느낀 것이 있다.
밑에 지방일수록 병원 직원과 의사가 친절하고 정이 많다는 것. 경기도를 올라오면서부터 직원들과 의사의 태도가 쌀쌀맞고 차가움이 베여있다. 그리고 시간에 쫓기는 게 확연히 느껴지고 표정이나 말투도 사무적이다. 꼭 서울이라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최고는 역시 김제 물리치료사 ‘바비 킴!’ 이 은혜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나도 ‘바비 킴’처럼 누군가에게 큰 고마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호호
#10. 걷다보니 노하우 생겨
11일 째. 김제에서 익산 23km이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을 넘기고 나니 이제는 행진을 잘 할 수 있는 나름 노하우가 생겨났다.
첫 째, 힘들 때는 발밑을 보고 걷거나 가까운 곳 을 보고 걷는다. 멀리보고 걸으면 길이 끝이 없는 것 같아 더 지친다.
둘 째, 옆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다. 원래 는 안 되지만 이야기에 집중 하다보면 힘든 지 못 느
끼고 어느 새 도착해있다.
셋 째, 너무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다. 생각이 많 으면 그만큼 걷는 시간도 길게 느껴진다. 단순하게 생각하거나 멍하게 걷는 것도 효과가 있다.
넷 째, 내가 혹시 밀어줄 사람이 없는 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없는 지 살피면서 간다. 내가 지켜 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책임감이 생겨나 더 힘 이난다. 다섯 째, 힘들 때일수록 소리를 크게 지른 다. 구호를 열심히 외치고 악도 질러보고 노래를 한다. 계속적으로 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자기암시를 한다. 여섯 째, 반대로 지금 포기한다면 벌어질 일 암담한 일들을 생각한다. 나 자신에 대한 가혹한 평가와 주위사람들의 실망감, 질타 등을 생각하면 더욱 포기할 수 없어진다. 일곱 째, 숙영지에 도착했을 때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면서 달랜다. 여덟 째, 완주했을 때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서 걷는다.
아홉 번째, 거리계산은 될 수 있으면 하지 않는다. 거리가 많이 남으면 실망감이 커진다. 모르고 걷는 게 상책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누군가 알려준다. 100m 남았다고. 열 번째, 스텝들을 상대로 누가 이기나 해보자 승부욕을 불태워서 걷는다. 스텝들도 사람인데 지치겠지. 스텝들은 강해야 한다지만 이겨 보이겠다는 생각으로 걷는 것도 힘이 나는 하나의 방법이다.
#11. 잊을 수 없었던 추위! 그리고 너무나 아름다웠던 한빛 축전
국토대장정 16일 째. 천안에서 평택 하나농장야영장까지 24km이다. 경기도 권에 진입한 후로 걷는 속도가 거의 뛰어가는 수준이 되었다. 항상 하루를 마감하는 날이면 다음 날 열외를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내겐 고비였고 무사히 마친 것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이 날도 꿈같이 숙영지 도착. 국토대장정의 꽃이라 불리는 ‘한빛축전’과 각기 루트를 달리해서 갔던 1루트, 2루트가 합쳐지는 날
이다. 그런데 날씨는 영하 20도를 넘나들어서 보온병에 넣어 둔 물은 얼어서 나오질 않고 눈물을 흘리면 얼까봐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혹독한 추위였다.
추워서 꼼짝도 안하고 파세코(난로) 옆에만 있고 싶은데 이놈의 파세코는 작동이 됐다 안됐다 말썽부려서 손을 녹여주지는 못할망정 속까 지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런 날씨에 텐트 야외 취침을 한다니 ‘하나님 맙소사. 엄마, 아빠 살려주세요!’ 집에 무척이나 가고 싶었다.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1루트 대 2루트가 모든 간식을 걸고 족구시합을 했다. 결과는 우리 2루트가 우승했지만 추워서 제대로 응원할 수도 즐길 수도 없었다. 날씨가 조금만 더 따뜻했더라면 게임도 많이 하고 훨씬 재밌었 을 텐데 그렇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그다음 처음으로 대형 텐트 치는 방법을 배우고 설치했다. 일반 텐트도 안쳐본 나로서는 텐트 치는 것이 낯설기도 하고 어려웠다. 삼겹살 파티를 하고 YGK 가수 ‘신자유’씨가 오셔서 노래를 부르며 우리들의 한빛 축전을 축하해주었다. 정말 말이 필요 없던 한빛 축전이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멋있는 축전은 난생 처음이었다.
불꽃이 밤하늘을 화려하게 장식할 때, 반짝이는 많은 별들 사이로 소원을 써넣은 풍등을 날려서 높이 올려 보낼 때, 모두들 한마음이 되어 서로 어깨를 맞잡고 춤을 출 때 이 순간만큼은 시간이 정지해 버렸으면
싶었다. 그동안의 일들이 너무 힘들어서 괜히 사서 고생하나 싶었는데 이 한빛축전으로 YGK 국토대장정을 신청한 것이 갑자기 무척이나 잘한 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12. 감사하며 살아야지.
그러나 다시 희비가 엇갈리는 취침 시간. 텐트 안은 얼음장 같고 오리털 침낭도 제 기능을 발휘 못했다
. 추위에 벌벌 떨며 죽는 구나하고 누워있을 때 날 살린 것은 핫팩이었다. 핫팩의 열기가 차디찬 발과 손, 등 중요한 부위를 따뜻하게 해주었다. 춥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이 날 핫팩 없었으면 동사했을 지도 모 른다. 평상시엔 핫팩도 무거워서 짐짝처럼 여겼었는데 이날만 큼은 그 가치가 억만금이었다.
항상 필요한 순간에 없으면 그제야 그것의 귀중함과 가치를 깨닫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늘 옆에 있기에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리고 소중함을 잊어버린다. 얼마나 뒤늦은 후회일지. 나중에 후회하기 전에 평소에 내 옆에 있는 친구들, 가족들, 지인들에게 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늘 옆에 있기에 잊기 쉬운 것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것들. 그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기에 더더욱 값진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니 편안할 때보다 악조건일 때 느낄 수 있다는 건 역시 사람에겐 적절한 고통과 허기, 궁핍이 필요악인 듯하다.
피부 탄다고 태양을 피하다가도 겨울에 매서운 한기 속에서 행군을 할 때면 어머니 품에 안긴 듯 포근함과 따뜻함을 주는 햇볕이 고맙다. 자갈밭처럼 울퉁불퉁한 길을 행군할 때면 아까 걸었던 평평한 도로가 고맙다. 꼬불꼬불한 길로 오래 걸을 때면 길었지만 빨리 갈 수 있었던 고속도로가 고맙다. 절벽이었다면 나중에는 길이 있다는 것도 행복한 것이겠지? 어떤 친구는 걷고 싶어도 다리나 발이 심하게 다쳐서 걷지 못했지만 나는 그 정도가 아닌 것에 튼실하게 움직여주는 다리가 고마웠다. 그 밖에도 고마운 것 나열하면 100가지도 넘을 것이다. 평상시에 고마움 잊지 않고 살아야지!
#13. 초코파이가 이렇게 맛있는 걸 줄은!
과자는 먹으면 살찌니까 얼굴에 트러블도 생기고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초코파이는 쳐다보지도 않는 과자였다. 그런데 국토대장정을 하던 도중 ‘국토대장정을 마치고 나서 해보고 싶은것’ 목록을 적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아침 점심 저녁 초코파이 쌓아놓고 원 없이 먹기’ 이었다. 난 내가 이렇게 초코파이에 미칠 줄은 몰랐다. 행진 중 간식으로 받은 살짝 언 듯 한 초코파이가 어찌나 그렇게 달고 맛있었는지 모른다. 가슴 속 주머니에 넣어놓아서 따뜻해진 초코파이도 씹으면 초코가 바로 녹아서 정말 부드럽고 맛있었다.
장시간 행진하면 배가 무척 고픈데 점심시간은 멀게만 느껴지고 배급 간식은 항상 부족하기만 하다. 쉬는 시간에 누가 귀한 초코파이를 반 나눠 주면 고마워서 눈물이 날 것 같고 ‘아, 얘가 나 좋아하나?’ 생각도 들 정도이다. 초코파이 하나를 위해 게임에서 이기려고 목숨 걸고 달려들고 목이 터져라 구호 외치고 초코파이에 대한 에피소드도 많고 추억이 흘러넘친다. 국토대장정이 끝나고 그때가 생각나서 슈퍼에 가서 한 번 사먹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때 그 초코파이 맛이 나지 않는다. 국토대장정을 하는 동안엔 두 번은 못할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끝난 지금은 허전하고 그 때가 너무 그립다. 오랜만에 사람들끼리 모이면 이산가족 만난 듯 반갑고 할 얘기가 어찌나 많은지 밤새 시간가는 줄 모르고 떠든다. 또 우스갯소리 반 진담 반으로 하계 국토대장정 같이 가자는 소리도 나온다. (무서운 사람들이여...)
#14. 완주의 감격, 눈물이 그렁그렁
국토대장정 20일 째. 일산에서 파주까지 25km 걸었다. 끝날 날이 가까워오니 지난날이 떠올려진다. 처음에는 30km 걷는다는 소리에 벌벌 떨었는데 나중에는 40km 대가 아닌 것에 감사하고 20km는 코웃음을 치고 여유로웠다.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그게 내일이라니. 당장 코앞이라는 소리에 내 귀가 의심스럽고 믿기지 않았다.
우리 조가 운이 좋게도 임진각 가는 마지막 날 아침 취사를 준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게 그 날의 목표였는데 어느새 이 날이 오게 되다니 얼떨떨했다. 아침 취사 준비를 하면서 갑자기 퍽 슬퍼 졌다. 한 달여 시간동안 동고동락해오던 조원들 , 모든 스텝, 대원들과 헤어진다는 것, 어느새 정이 들고 익숙해져버린 생활들이 끝이라는 것이 얼굴에 서 뜨거운 게 올라왔다. 그렇게나 언제 집에 갈 수 있을까 바랐었는데 막상 끝날 때가 되니 국토대장정 의 연장선이 있었으면 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또다시 분주히 출정준비를 했 다. 마지막 날은 파주에서 파주 임진각까지 20km 남짓한 거리였다. ‘마지막 날이니까 오순도순 이야 기하면서 슬슬 가겠지?’ 생각했지만 완전 잘못 짚었 다. 제일 힘들었다. 마지막이라고 방심하다간 큰 코 다칠 거라는 교훈을 톡톡히 일러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다시피해서 갔다. 마라톤 대장 정인가 불만의 목소리가 턱까지 올라왔다. 2루트가 출발을 늦게 해서 1루트 따라잡으려고 기를 쓰고 행군했다. 죽는 줄 알았다. 마지막인데 이날도 어김없이 포기해버릴까 눈물이 찔끔 나왔다. 어느 순간 통일공원에 도착하고 임진각이 1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그 때는 힘들어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라 감격의 눈물이 났다.
국토대장정을 완주하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발대식을 하고 첫 출정을 시작해 지금의 순간이 오기까지 수많은 나와의 지독한 싸움이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고비의 문턱을 넘어섰다는 게 내가 버텨내었다는 게 내 자신이 너무 대견스럽고 감격스럽고 꿈같았다. 어쩌면 나는 국토대장정을 하는 기분 좋은 꿈을 꾸었고 이 모든 것이 꿈이고 곧 깨어지지 않을까, 일어나면 방 안이지 않을까 이런 상상도 해봤다. 완주메달을 목에 걸어줄 때 도착했다면서 모두들 축하한다고 말하며 박수칠 때 정말 실감이 났다. 그 자리에서 조원 모두가 눈시울이 붉어지면서 펑펑 소리내서 울기
도 했다. 대원, 스텝 모두들 감격에 겨워했고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완주의 기쁨을 잠시 뒤로 한 채 철조망 사이로 북한이 보였다. “저기가
북한이구나. 이렇게 가까이 있다니.” 신기해서 철조망 붙잡고 잠깐 동안 계속 쳐다봤다. 연평도 사건이 생각나서 한편으는 무섭기도 했지만 언제 통일 되서 북한 땅 밟아볼 수 있을까 과연 오기는 하는 걸까. 나 살아있을 때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마지막 해단 식을 하고 수료증을 받았을 때 그 기쁨 또한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이 국토대장정 수료증을받기 위해 그토록 노력 했으니 참 말도 못하게 값진 수료증이다. 평생의 보물로 간직해야겠다.
#15. 2년이라고 뭐, 난 너네보다 더 뛰어나게 될 거야.
사실 국토대장정에 가는 게 망설여지는 이유가 있다면 전문대라는 꼬리표가 부끄러워서일까. 대외활동을 하고 싶어 대학봉사동아리라던가
취미 동아리를 찾아보면 IN서울 4년제가 대다수고 대부분 4년제다. 그래서 많은 친구들이 국토대장정 같은 거 하고 싶어도 자신이 없어서 포기하는 친구들도 있을 것 같다.짜증난다. 하고 싶은데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으니 그것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기는 너무 싫었다. 편입을 하라고? 이 짧은 청춘 시기에 편입에 열을 올리고 편입할 때까지 모든 하고 싶은 걸 참고 또 편입하면 학과공부며 취직준비며 남자들은 군대도 가지 그러면 내가 정작 하고 싶은 거는 30대 돼서 하란 말이야? 직장 묶여있으면 한 달 휴가내주는 회사가 어디일까? 안타깝게도 나이제한은 만 29세까지다.
국토대장정에 가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이니까 성별도 나이도 지역도 각양각색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성격들이 다들 활발하고 외향적이다. 도전하고 모험하는 것을 좋아하고 활동적이며 적극적이다. 출신배경도 다양해서 해외에서 거주하는 사람도 많고 외국 사람도 있지만 영어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나와 봤자 오케이정도? 모국어 사랑이 흘러넘친다. 그런데 가기를 꺼려하는 이유가 뭘까. 뭐 영어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고 출신학교로 사람 가르려고 온 것도 아니고 다들 국토대장정 온 이유가 다양하겠지만 새로운 사람들 사귀면서 친해지고 우리 영토를 직접 발로 걸어보고 싶다는 꿈을 안고 넓은 안목을 키우고 싶어서 온 사람들인데 왜 그렇게 몸을 움츠리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서 사는지 모르겠다. 이러니까 잘난 사람들은 더 잘나지고 못난 사람들은 더 못나지는 수밖에.
한국이 학벌 위주 사회이기에 물론 나도 움츠러들 때도 있고 전혀 피해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난 학교 물어보면 명지전문대학에서 왔다고 당당히 말한다. 출신대학으로 사람을 받아드리고 평가한다면 그 사람은 내 밑인 것이다. 학벌에 지배당하고 있는 눈 먼 아기 새로서 난 받아드리고 평가한다. 학력 높이려고 수능공부, 토익공부 할 시간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 내가 꿈꾸던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훨씬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소양을 갖추고 능력을 기른다면 그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다. 아직도 대학 간판에 위축되고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면 당장 그 마인드를 휴지통에 집어넣고 밖으로 뛰쳐나왔으면 좋겠다. 학력도 중요하지만 자격증이나 영어점수처럼 취업을 위한 관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 자체가 최종목표가 되버리는 일 없이 후배님들이 소중한 대학생활을 의미 있게 잘 보냈으면 좋겠다.
맺는 말
국토대장정을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자격증 준비며, 토익 등 취업준비로 초조하고 분주하다. 이 글을 쓰면서 잠시나마 취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울적함을 달래면서 마음의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국토대장정을 해본 사람만이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값진 것을 얻어갈 수 있는지 체감할 수 있다. 한 달여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1년을 보내고 온 기분이다. 이번 국토대장정을 통해서 살면서 반드시 필요한 인간의 덕목은 모조리 다 배우고 온 것 같은 기분이다. 단체생활을 하면서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닌 행동으로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태도, 사람에 대한 믿음의 중요성, 함께의 가치, 나눔, 희생,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한 인내와 끈기의 정도, 겸손, 절제, 의식주의 소중함, 가족의 소중함, 사람의 가치, 시간의 유한성 등 처음 국토대장정을 시작할 때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만큼 큰 경험을 하고 올 것이라고 다짐했었던 것처럼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을 얻어갈 수 있었다.
대장정 중 잠자리에 들면서 다음 날도 잘 걸을 수 있게 내게 주문을 걸면서 썼던 일기가 있는데 그 일기를 다시 펼쳐보니 이런 문구를 써놓았다.
“여기서 이겨내면 분명 엄청난 일이 벌어질 거야. 그러니 절대 포기하지 마. 네가 원하는 모든 일을 다 이룰 수 있을 거야.”
2012년 첫 1월을 내가 원하던 대로 멋지게 장식했다. 앞으로 해보고 싶고 이루고 싶은 많은 일들이 있다.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다가 힘든 난관에 부딪힐 때면 ‘국토대장정도 했는데 이 것 하나 못하랴!’ 하면서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더큰 무대 위로 뛰어 들어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났다.
다칠까봐 많이 걱정해주고 힘낼 수 있도록 저를 응원해준 가족들, 교수님들, 친구들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우리 명지전문대 지적과 에서 제 2,3의 국토대장정에 참여할 자신감 넘치는 후배님들이 많이 나타나 명지를 빛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동문에서도 훌륭하신 선배님들이 후배님들을 위해 아낌없는 성원과 지지를 보내주기를 희망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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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읽어주신건가요? ㅜㅜ 님짱
으으 아침이 밝아왔어...으으 좋은하루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