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랑하는 마눌, 잘 지내냐.
내 마눌 생각 안하려고 했는데 오늘도 이렇게 또 궁시렁대고 있단다.
매일 매일 생각 안하려는데, 오늘은 절대 신나는 일만 생각하려고 하는데 뜻대로 안되네. 왜 그럴까. 뭐 다 마눌 탓이지 뭐.
퇴근하는 전철에서 매너손을 가지런히 하고 눈을 감고 있으면 문득문득 마눌 생각난단다. 그러다가 눈물 한방울 맺히면 얼른 눈을 뜨고 다른 생각 한단다. 남자가 쪼잖하게 눈물 보이면 안되잖아. 그치.
싸랑하는 마눌, 요즘엔 왜 안오냐.
거기가 그렇게 좋냐. 뭐가 얼마나 좋길래 나한테는 찾아올 생각도 안하냐. 낮엔 내가 바쁘니까 마눌 얼굴 볼 새도 없겠지만 밤엔 가끔 한번씩 찾아와도 된단다.
사실 나두 마눌이 보고 싶단 말이야. 가영이와 대한이에게는 씩씩한 아빠인 척 하지만 나두 마눌이 보고 싶단 말이야. 낮엔 일에 쫓기고 윤팀장 눈치보느라고 또 장비 관리하느라구 바쁘단다. 그래서 마눌없어도 살겠는데 밤엔 애들 재우놓고 누워있으면 마눌이 보고 싶단 말이야. 마눌도 안다구, 못된 것 같으니라구.
마눌도 내가 보고 싶어서 찾아오지. 하지만 나 피곤할까봐 그냥 지켜만 보다가 가는 거지. 그러지 마. 그러지 말구 담부터는 왔다고 얼굴비치고 보고하고 가란말이야. 알겠지.
싸랑하는 마눌, 애들 보고 싶어서 어떻게 참냐.
오늘 퇴근했는데 가영이가 마눌인 줄 알았지 뭐냐. 녀석이 엄마 없다고 엄마 노릇 할라구 해. 빌라 앞마당에서 놀다가 먼지 뒤집어 쓰고, 모래를 머리에 잔뜩 이고 온 대한이를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했지 뭐냐. 여덟살 꼬마 숙녀인줄만 알았던 녀석이 이젠 제법 살림까지 하려고 해.
마눌이 가영이에게 모범을 잘 보였나봐. 대한이도 이젠 누나한테 그려려니 하더라구. 누나가 목욕 시켜주고 치카치카 시켜줘서 다 했다고 얘기하더라구. 그리고 아빠 기다렸다구.
그리고 가영이가 나한테 담배 끊으라고 마눌이 하던 잔소리까지 하고 있단다. 그래서 오늘 일주일째 담배를 안피고 있단다. 마눌한테 첨 얘기하는 거야. 나 담배끊는 중이라는 걸. 내가 담배 끊은 지 한달이 되면 그때 가영이에게 얘기하려고 해. 가영이에게 담배끊었다고 말하고 다시 담배피면 못난 아빠가 될 것 같아 말하고 싶지만 꾹 참고 있단다 . 나 잘하고 있는 거 맞지.
그리고 이젠 술도 전혀 안마셔. 회사에서두 아이들 핑계되고 그냥 빠져나와. 이젠 나하고 같이 마시자고 안해. 자기있을 때 술 담배 끊었으면 마눌한테도 사랑받았을 텐데. 그치. 쫌 아쉽긴 하다.
싸랑하는 마눌, 질투하지 마라.
가영이가 이젠 밥도 해놓고 나 기달릴 줄 안다. 질투나지 않냐. 나 오기 전에 밥 다해놓구 김치꺼내놓구 그래. 이쁘고 귀엽기만 한 줄 알았던 가영이가 너무 빨리 철 드는 게 미안하기는 해.
마눌, 뭐 그렇다고 가영이에게 다 시키겠냐. 그래도 내가 빨래도 하고 일주일에 청소도 한번 하고 아침에 애들 깨워서 밥 먹이는 것도 한다. 물론 내가 먼저 출근하니까 밥은 지들이 먹겠지만.
그냥 눈물 날라구 하네. 가영이 보면 마눌 생각나긴 해. 마눌이 데리고 다녔던 학교에 이젠 대한이 손잡고 씩씩하게 잘 가. 그리고 대한이 유치원도 보내고.
질투나지. 마눌없어도 가영이가 척척 해내니까 말이야.
싸랑하는 마눌, 심심하지는 않냐.
친구는 많이 사귔냐. 앤은 사귀지 마라. 나중에 내가 갔는데 마눌이 앤 있으면 내가 사실 뻘쭘하잖아. 나 보고 싶어두 조금만 참아라. 이십년만 아니.. 삼십년만. 알았지야.
이렇게 이쁜 마눌 같은 가영이와 듬직한 대한이가 있는데 그 정도는 기다려줄 수 있잖어.
싸랑하는 마눌, 나 요즘 외톨이 될까봐 걱정이란다.
요즘 들어 이 녀석들이 나 버리고 시집가고 장가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 걱정도 팔자지. 나중에 말이야. 나는 이 녀석들 시집 장가 못 보낼 거 같아. 내가 언제까지 끼고 살 거 같아.
마눌, 걱정되지. 이 녀석들 노총각 노처녀 만들까봐. 뭐 그런 걱정은 하고 있어라. 마눌이 먼저 갔으니까 걱정하나 쯤은 있어야 되지 않겄냐. 아무 걱정없으면 재미 없잖아. 그래도 좋은 대학 보내고 좋은 곳에 취직 잘 시켜서 마눌에게 자랑할 꺼리 하나 쯤은 만들어 놓을 테니까 큰 걱정은 말구. 암튼 내가 두 녀석들 꽉 끼고 있을 테니까 마눌은 좋은 곳에 중매나 서 봐라. 알겄지야. 그 때 쯤이면 나두 마눌보고 싶어서 마눌에게 갈 수 있을 테니까.
싸랑하는 마눌,
그래도 이렇게 마눌에게 조잘조잘 거리니까 기분은 좋다. 눈물도 쪼매 나지만.
이제 잘란다. 눈물이 자꾸 나올라구 해서 마눌하고 얘기못하겠다. 담에 신나는 얘기 있으면 또 할란다.
마눌 자라. 자다가 심심하면 나한테 와 주고 그래라. 얼굴 한 번 보자.
자주 놀러온다고 내가 잡아먹냐.
안녕, 잘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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