걍 몇자 적어요.
왜냐구요? 힘든데 말할데가 없으니 끄적거립니다.
지금부터 제가 쓰는 글들은 까놓고 말해 전부 푸념반, 자랑반 이구요,
다 사실입니다. 자작이라 오해마세요 ㅎㅎ 사실 뭐 그리 놀라운 사실도 아닐거에요
힘들지 않은 직장인은 거의 없을테니까요.
82년 개띠 31세 남자사람입니다.
속시원하게 다 까발릴래요. 오오오 약간 신나기 시작하네요.
저는 공장에 다닙니다. 네, 3D업종이에요. 그래도 열심히 하면
적어도 한명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직업이니, 무시하지 말아주세요.
인문계고등학교 졸업했어요, 대학은 못갔습니다. 등록금이 너무 쎄서.
IMF의 여파가 아직 우리집에 상당히 있었거든요.
피자헛에서 알바를 했어요 당시 한달 월급이 35~40만원 정도 였을겁니다.
뭐 그냥 얼레벌레 잉여짓거리 하다가 21살 2002년 11월 26일에 군대갔어요.
23살 다 보내고 2004년 12월 18일에 전역했네요.
할게 없네요. 뭐든 해볼려고 알아보다가, 2년제 직업훈련원 들어가서 기계과 졸업했네요.
공부? 걍 대강대강했어요. 29명 중에 13~15등할 정도였어요. 그냥 그랬죠 뭐.
26살 겨울, 졸업을 3개월 정도 앞두고 취업을 했죠. 인천남동공단,
열악한 환경의 5명?6명? 소기업이었어요. 3D 업종이라 하겠다는 사람이 없더라구요.
취업은 나름 쉽게 이루어졌습니다. 마냥 놀 순 없다는 생각에...하지만 현실은 달랐어요
너무 위험해서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았어요. 2달 다니고 관뒀네요. 말이 좋아 관둔거지
도망친겁니다. 네 저 현실도피했어요. 못난놈이죠. 게다가 장남인데. 이런 제길.
그 2달동안 여러번 감전당했는데(심한 감전은 아니구요 찌릿찌릿 한 정도)
덕분에 손톱과 손마디가 아직도 거뭇거뭇하네요.
뭐 나름 고생했다 이겁니다 저는 ㅎㅎ 아 그리고 그 회사 과장님 옆에 서있다가
불구될 뻔 했네요. 크레인에 매달려서 춤추던 쇳덩어리가 떨어질때
재빨리 피하는바람에 화는 면했습니다 ㅎㅎ
그 과장님은 발가락 4개 절단했습니다. 그리고 발등도 아마 좀 이상해졌을거에요
이래저래 2달동안 스트레스가 나름 장난 아니었어요.
역시나 3D업종이라 다시 취업하는데는 지장없이 잘 이루어졌어요.
경기도 화성시, 지하철역 병점역. 소품종 대량생산하는 회사에 입사했어요.
이 회사에서 1년 가량 생활했네요. 나름 괜찮은 회사였어요. 월급은 적었지만,
위험한일은 하나도 없었답니다. 대신 또다른 장애물이 있더군요 ㅎㅎ
2교대, 격주휴무. 1달에 2틀 쉽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소품종 대량생산입니다.
스타크래프트 SCV된 기분이었어요. 반복 반복 반복 반복. 반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의
밥그릇 싸움. 엄격한 선후배관계 1층은 회사 2층은 기숙사. 으악. ㅎㅎ
그래도 나름 베트남아저씨들이랑 같이 숙소 생활하면서
말도안되는 영어하면서 나름 즐겁게 지냈어요. ㅎㅎ
4개월간의 야간근무. 4개월동안 낮에 자고 밤에 일했어요. 아 정말 죽겠던데요. ㅎㅎㅎㅎ
인간이 할짓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어요. 다크써클이 점점 진해집니다~~ 야호~~
여자친구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게 되는 날이 점점 많아집니다~~야호~~
여자친구를 만나도, 돈은 있어요 하지만 졸려서 허구한날 여자친구네 집에서 잠만자면서
여자친구의 위로를 받으면 마음의 휴식을 취하는 나날이었어요
뭐 어느 회사를 가던 그런사람이 꼭 있듯이 그 양반은 점점 나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아이고 이를 어째 도저히 승질나서 못해먹겠다~ 에라모르겠다 때려치자~유후~~
결과는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하.지.만. 다신 이 계통에 취업하고 싶지 않았어요.
따라서 6개월 정도의 백수생활이 시작됩니다. 오잉. 돈이 없네 돈이 없으니
꼴에 자존심이라고 삐딱해지기 시작합니다. 여자친구를 밀어내기 시작합니다~
여자친구맘이 어땠을까요. 남친이라고 하나 있는것이 철없이 땡깡만 부리니
정말 정나미 떨어졌을거에요. 저의 진상짓거리는 점점 심해집니다.(저의 진상짓거리를
모두 기억하진 못해요 참 책임감 없는 놈이죠
하지만 제가 뭔가 엄청 심한 행동과 말을한것은 알겠네요)
여자친구가 헤어지고 싶다고 하네요. 질질 매달렸어요. 안받아주던데요.
제가 한 짓이 보통은 아니었나봅니다 착하고 맘 넒은아이라서 웬만하면 다 받아줬는데 말이죠.
어쩌겠어요 이런 못난놈 떠나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첫사랑이에요. 많이 좋아했어요 ㅎㅎ
그녀에게 받은 편지 향수 가방 그리고 마지막이 될 밤새 제가 쓴 빠이빠이 편지를 써서
바리바리 챙겨 그녀의 직장앞에 무작정 기다리기 시작했어요
아. 저는 강원도 춘천사람이에요 그녀는 부산사람인데 서울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예고없이 혼자 서울로 올라가 2시간정도 기다린것 같아요 그녀가 나옵니다.
눈이 마주쳤죠. 나를 외면하는 그녀를 보며 맘이 아팠어요. 양팔에 그녀가 준 선물 보따리를 들고
내 앞을 지나가는 그녀를 멍하니 쳐다봤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좀 뒤에 그녀의 직장동료이자 친구가 뒤따라 나옵니다. 그 친구에게 모든걸 전달하고
홀로 지하철을 타고. 이태원 역에서 암사역까지 갑니다. 암사역엔 나와 쿵짝이 잘 맛는
사촌형이 살거든요. 사촌형과 소주를 때려넣기 시작합니다~~~ 아으 취한다
사촌형의 위로가 계속되고 비틀대면서 형네집에 들어갑니다. 사촌형 동생이 저를 반겨줍니다.
저한텐 사촌동생이죠. 오빠 내가 뭐 해주까? 엉? 까불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술안주를 만들어 줍니다. 형이랑 식탁에서 또 한잔 빨아제껴버립니다 아흥~
위로받으니 기분이 좋네 아힝힝힝~~ 무심코 손목시계를 봅니다
익숙해진 탓인지 마저 건네주지 못했군요 그녀가 사준거네요. 200일 기념으로 말이죠. 시계를 풀어봅니다
가죽으로 된 때탄 손목끈이 우리추억을 대변하듯 그녀를 보고싶어하면서 살며시 잠이 들었죠.
다음날 집에 옵니다.
취업을 하겠노라 다짐합니다. 어라. 맘처럼 쉽지 않네요. 일자리 구하기가 약간 힘들어졌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포기하지 않으면 월급을 받게 될 날이 올거에요. 오잉? 경상도 창원에
일자리가 생겼어요. 창원에 갑니다. 원룸을 알아보고 회사를 5개월 정도 다녔어요.
아는 사람 하나없는 낮선곳이었지만 퇴근하면 컴퓨터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요.
어라, 세계적으로 금융위기가 터지네요 이런 망할~~~ 전직원 해고하네요. 저만해고한거 아니에요 어쩔 수 있나요
다시 춘천으로.....왔죠.... 엄마 아빠가 위로합니다. 직장 다시 구하면 되는거라고.
그래요 맞는 말이에요 다시 구하면 되죠 뭐 까지꺼 ㅎㅎㅎ
그.래.서.
28살 1월 다시 직장을 구합니다. 서울시 구로구에.....
연봉 1800만원, 기숙사 있구요. 점심, 저녁 다 먹여줍니다.
기숙사에서 회사, 걸어서 5분거리네요. 선택의 여지가 없네요 이 회사에 입사를 합니다.
아침 8시 30분부터 밤 11시까지 일했어요. 아~~ 힘들어요~~ 철판으로 제작된 안전화가
3개월이면 작살이 나네요~~~ 아힝 뭐 어때요 아직 젊어요 우후훗~~
그렇게 1년을 살았네요 그리고 어느덧 입사 2년차~~~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왜냐면 연봉이 아주 조금 올랐어요. 이대로는 힘들어요 40살에도 장가 못갈거에요
방법은 하나에요 더 열심히 해서 조금이라도 연봉을 많이 올리는것!!! 으아~~ 새벽2시에 퇴근하기
시작합니다~~~ 우왕 졸려요~~~ 정신이 가물가물 아힝 ~~~ 또 1년이 지났어요
역.시.
노력은 배신을 안해요. 연봉이 우리팀에서 가장 많이 올랐어요. 300만원이나 올라갔어요
이제 제 연봉은 2400만원이네요. 한달에 170만원씩 받아서 120만원은 적금을 하고 20만원은
때 늦은 청약을 시작합니다 윗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었어요.
뚜둥~~ 어느날 갑자기.... 상무님께서 호출을 하십니다.
(참고로 저희 회사는 나름 큰 회사에요 직원수 300명 정도 규모의 회사에요)
자네, 해외 파견근무 생각 없나? 라고 하십니다.
오잉, 이게 웬떡. 연봉 천만원이 훌쩍 오른다는 해외노동자?
내보내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연봉인상 천만원이 뙇!!!!!! 아흥 기분좋아 태어나서 처음 해외나가는터라
여권도 만들고~ 국제운전면허 발급도 받고~ 베트남아저씨들이랑 콩글리쉬했던
기억을 되살려 나름 책도 보고~ 출국절차엔 뭐가있나 네이버검색도 해보고~
미국대사관가서 인터뷰도 하고~~~ 아오 실감난다 아오 씐난다~~~~ 뚜둥. 비행기 뜬다. 이코노미라도 행복해~ 큰 꿈을 가지고 출발하죠 나중에 맞벌이를 하더라도(장가갈수 있으려나 ㅎㄷㄷ;;;) 대출없이 혼자힘으로 출발하겠노라는 다짐을 하며...... 캘리포니아생활. 벌써 1년이 아니, 14개월이 흘렀네요. 1년간 모은 적금통장을 보며 적은 돈이지만 마음만은 부자가 되어 긍정마인드를 키우고 있답니다. 하지만 나의 힘듦은 멈추지 않더라구요 ㅎㅎㅎ 설날, 추석, 너무나 감사한 키워주신 엄마생신 아빠생신 추수감사절, (한국명절이라고 해도 여기선 그냥 평일 입니다. 일해야죠 ㅎㅎ) 각종기념일 등등 이럴때면 정말 남모르게 눈물이 찔끔흐릅니다. ㅎㅎㅎㅎ 30살 넘은 다 큰 남자도 우는구나 라는걸 새삼 느낍니다. 말도 안통하고, 친구도 없고, 친구는 커녕 마음통하는 사람하나 없고 제일 조심해야 할건 한국인. 둘째는 인종차별하는 백인들... 셋째는 험악한 흑형들 힘들지만, 그때 그때 악으로 버팁니다. 앞으로 3년은 더 버티고 귀국할겁니다. 암. 꼭 그렇게 해야만 합니다. 개인적인 바램. 우리 모두 웃자구요 다들 힘들잖아요. 얼마전에 상당히 몸이 아팠습니다. 슬램덩크 북산처럼 여긴 선수층이 얇아요. 아파도 출근해야하고 쓰러져도 회사에서 쓰러져야 합니다. 병원비도 각자 알아서 부담해야하구요. 절대 회사에서 책임져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게 맞는것이구요. 누구도 제 인생을 책임 질 수 있는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저는 사회적 약자 입니다. 그리고 강자가 되고 싶지도 않습니다. 약자위치에서 강자를 보고있자면, 전 한가지가 떠오릅니다. 경마장의 경주마. 옆을 볼수 없고 오로지 앞만보고 달려가죠. 하지만 누구도 그런 경주마의 인생을 나무랄 순 없는거라 생각해요.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옆사람에게 배려하나 할 줄 모르는 높은신 분들은 높으신 인생을 살다가 저세상에 가겠죠. 뭐 걍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장례식장에 몇명이나 올런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런 부자는 되고싶지 않습니다. 그냥 약자로서 제 능력안에서 제 행복을 기준을 정하여 열심히 살면 언젠간 좋은 날이 오겠죠 좋은 날이 오면 더 좋은날도 올것이구요. 우리 직장인들 다들 힘드신데. 스트레스 잘 푸시구요. 무엇보다 몸과 마음이 다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아직 생각이 짧지만요. 대한민국 1%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쓰레기라고 알고있습니다. 그 약간의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놀림아닌 놀림을 당하고 있지만, 언젠간 패가 바뀌는 날이 오겠죠. 이렇게 한참 시원하게 써내려가니 전 속이 좀 시원해지네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한직장인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