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응 따위 기다리지 않는 남자
사실 군화판에 쓴거라 큰 반응 기대한 것도 아니고
내가 경험한 것들 조금씩 풀어놓으려고 쓴거니까ㅋ
계속 이어서 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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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항상 그렇듯이 군에서의 의미없는 시간도 3주가 지났다.
우리 소대 30명은 다시 무사히 GOP 근무를 마치고
어떤 휴가에는 1일씩 더 붙일수 있는 휴가 연장권을 받았다.
그렇게 그 사건은 잊혀져 가는 듯 했다.
약 6개월 후...
우리 대대 500명 남짓한 인원은 8중대 홀에서 모두 집합했다.
금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명목은 항상 금요일날 하는 정신교육(이라하고 세뇌교육)
그날은 헌병대장이 직접와서 무언가를 얘기 한다고 했다.
그날의 주제는 1년전에도 했던 '자살'이었다.
한시간동안 의미없는 비디오를 보고, 의미없는 얘기를 들었다. 꾸벅꾸벅 잠까지 솓아졌다.
"너네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겨울에 3대대에서 한명 자살한 거 알고 있지?"
왜일까? 고개를 푹 숙이고 졸고있던 내 귓가에 그말만은 명확히 들어왔다. 그리고
그 뇌수가 비산하고 핏물이 눈 속을 파고들며 적시던 그때의 장면이 마치 수신이 안되는 옛 안테나 티비처럼 눈앞에 흐릿하게 퍼졌다.
그리고 이 이하는 헌병대장이 해준 이야기이다
2009년 9월 아무개 날
두명의 쌍둥이가 3대대로 전입을 왔다. 두명은 동반입대를 통해 같이 자대에 전입받았고, 여타 이등병들과 같이 힘든 군생활을 했었다.
그때 당시 우리 대대의 다른 중대들만해도, 구타는 정말 우스운 일이었다. 내가 자대전입을 받은 뒤 처음 밥을 먹으러 갔을때 타중대의 병장 하나가 식당의 식판 세척장 구석에서 이등병 하나를 군화발로 짖밟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먹었었다. 내 선임은 "우리중대는 저정도는 아니여서 정말 다행이야." 라고 한 말이 생생하다.
여하튼 그 둘은 자대배치를 받자마자 GOP에 투입했고, GOP경계근무를 섰다.
GOP는 야간에 중점적으로 서는 특성상 가글(야간투시경, 밤에 초록색으로 보이는 적외선 쌍안경)과 소대장이 순찰을 돌며 써야하는 일지, 그리고 각 초소에 맞는 장비 등을 들고 첫 투입을 하게 되있다.
또, 암구어(어두울때 적과 아군을 식별하는 암호)와 그날 중점적인 사항들을 외워야 한다.
군대라는 상하조직의 특성상, 이 모든 것들을 후임병들이 하게되고, 2인 1조인 만큼 두명중 더 후임인 사람이 전부다 챙겨갔다.
그러나 많은 이등병들이 가끔 하나씩 챙기지 못할때가 있다. 그것은 고스란히 선임병의 책임이 되고, 선임병은 소대장과 혹은 분대내 더 선임병에게 개쌍욕을 먹었다. 그러면 사수(선임병)은 부사수(후임병)을 갈구는 것이다.
갈굼은 다른 것이 없다. 예를들면 한 전교에 선생님 한명과 학생 30명밖에 없는 학교가 있다면, 선생님의 눈만 피하고, 아이들이 고자질을 안한다면 한아이를 괴롭히든 폭행하든 그 누구도 알수가 없다.
GOP도 마찬가지다. 욕과 폭설은 기본. 부모욕, 원산폭격(뒷짐을 지고 머리를 박은 엎드려뻗쳐) 후 배를 발로 가격당하는 것, 구석에서 린치, 하이바(군용 헬멧)으로 머리를 가격하는 것. 그 모든것이 가능했다.
2009년 11월 아무개 날
쌍둥이들 또한, 여타 이등병의 범주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느날 쌍둥이 중에 동생이 형에게 힘겹게 한마디를 뱉었다.
"형... 나 진짜 군생활 못할것 같아"
동생의 표정이 사뭇 진지했기에 형은 조금 걱정스러웠다.
"야. 갑자기 너 왜그래?"
"아니.. 나 요즘들어서 생각하는 건데.. 왜 군대에서 자살하는지 알것 같은 기분이 들어"
형은 마우 심각해졌다. 진짜 이러다 이놈 자살하진 않겠지? 않겠지? 이런생각 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야 임마. 너 왜그래? 시발.. 야 지금까지 잘 했잖아. 조카 참았잖아. 신발 너 진짜 그런소리하지마라"
형은 동생을 닦달하며 이후 투입하기전 준비를 했다. 그전에 동생의 분대장을 찾아가서 아까 동생과의 대화를 말한뒤 동생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분대장은 걱정하지 말라면서 등을 두드려줬다. 분대장은 즉시 소대장을 찾아가 동생의 상태를 보고했고, 밤에 근무를 같이 서서 격려를 할테니 허락해 달라고 했다.
2009년 12월 초 아무개 날
그 뒤로 동생은 조금 밝아졌다. 아무일도 없이 3주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동생과 형은 같이 담배를 피며 고향에 있는 어머니 얘기를 했다. 그러다 형의 표정이 자뭇 심각해졋다.
"동생아..."
"응?"
"나... 니가 왜 자살하는지 알것같다고 한말.. 왜그런지 알것 같다."
동생은 화들짝 놀랐다.
"형 뭔 개소리야? 조카 나한테는 그딴 소리 하지 말라고 해놓고 그따위로 말하는게 어딨어?"
"...."
동생은 그길로 형의 분대장을 찾아가 형이 자신을 위해 한 일과 똑같은 일을 했다. 형의 분대장은 소대장에게 보고를 했고, 동생의 조취와 똑같이 밤중 8시간의 근무를 서며 상담을 했다.
형의 상태도 점차 나아지는 것 같았다.
2009년 12월 18일 PM 7:XX
그날도 어김없이 야간 근무 투입이 진행되었다. 쌍둥이 형과 그리고 한명의 선임병은 항상 그러했듯 산을 올랐고, 초소에 투입을 해서 인터폰으로 투입보고를 했다.
"저... XXX 상병님"
"왜?"
"제가.. 순찰일지를 안가져 온것 같습니다."
선임병은 순간 화가 났다.
"뭐이 씹새끼야.. 같습니다?"
"안가져왓습니다."
"자랑이냐? 아.. 이 신발새낀 애미가 낳자마자 금붕어를 달여먹었나."
폭언, 욕설이 일방통행으로 질주햇다. 선임병을 머리에 열이 받은 듯 하이바(군용 헬멧)을 벗어서 하이바를 쓰고 있는 쌍둥이 형의 머리에 냅다 꽂았다
"돌대가리 새끼야"
그러나 그것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돌대가리 새끼야"
"이 신발 돌대가리 새끼야"
"돌대가리 새끼야"
선임병의 진술로는 약 20번 가량 내리쳤다고 한다.
쌍둥이형은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구겨지는 자존심, 나는 진짜 돌대가리 인가? 하는 자괴감.. 군생활의 자신이 없음이 계속 심장속과 머릿속을 파해쳤다.
선임병은 바로 인터폰을 걸어 다른 병사에게 조취를 취한뒤 수차례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다 이내 피곤한지 바닥에 앉았다.
"너 신발 나 좀 잘테니까. 순찰자 한테 걸리면 뒤진다. 순찰일지 오면 바로 받고, 다음 조 오면 바로 깨워"
"예 알겠습니다"
"똑바로 해라"
"예... 저 그전에 XXX상병님"
"왜?"
"저... 화장실좀 갔다오면 안되겠습니까?"
"신발 빨리갔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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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서 끊어야지~
반응 따위는 보지 않겠어
난 쿨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