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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有)진심 못믿을 나의 이십대사건들

김형석 |2012.04.04 22:52
조회 375,264 |추천 498

병원에서 우울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심심하기도 해서 글을 그적거려봤는데,,

ㅎㅎ 베스트 글이 됫네요.^^

밑에 댓글 님들 복받으실꺼에요.ㅎㅎ

이참에 저의 비루한 싸이 공개합니다.

너무 조용한 곳이니 오셔서 쫌 시끄럽게 해주세요.ㅋㅋㅋ

http://www.cyworld.com/lovep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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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맨날 눈팅만 하다가 잠이 오질 않아 이렇게 글을 씁니다.

제가 하는 이야기를 톡커님들이 믿지 않을수도 있어요.

전 정말 굿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랍니다.

에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할지,

나도 톡커님들 따라서 여친도 음슴 재수도 음슴으로 음슴체를 쓰겠슴

 

이제부터는 쫌 우울함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우선 시작은 군대 제대할 무렵부터임

본인이 제대할 쯤 어릴적부터 촌수는 멀지만 친한 친척형이 있었음

증조할머니께서 살아계셨기에 먼친척까지 왕래하는 사이였음

어린시절부터 증조할머니가 있는곳에서 많은 친척들이 모였는데.

그나마 나이차가 많이 나지 않는 내가 "아재"라 칭하는 친척형이 있었음.

촌수로는 삼촌뻘

그형은 포항에서 바이크 수리소를 했는데 바이크를 다 고치고 난뒤, 수리가 잘 됫나 싶어.

뻥 뚫린 도로로 나가게됨 포항에 그때 새로이 만들어진 도로였음.

평소에 바이크를 잘타던 형이었던지라 헬멧을 안쓰고 나가심.

봉고차가 불법유턴해서 사고가 났는데 뇌손상이 심하셔서 2일만에 하늘나라로 가심.

그당시 결혼을 약속한 말로만 듣던 여성분이 계셨는데, 오열하는 모습을 보며..

너무 안타깝고 안타까웠음.

 

그뒤 학교를 복학 후  시간이 흘러

2007년쯤 본인 아버지께서 심근경색이 오심

다행히 급성은 아닌지라 병원에서 응급수술을 하셔서 평생 조심하고 사셔야되고, 심장이 일반사람 20-30%정도 기능이라 평균수명또한 짧아진다는 소식을 듣게됨.

날벼락이었음..........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8년 4월쯤 우리아버지의 형 그러니까 큰아버지 아들이 있음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우리집안 장손임

어린시절 몸이 좋지 않아서 군대를 가지 못함.

내가 사는곳이 부산인데, 부산 금강공원이라는 곳에서 공익생활을 함.

금강공원쪽에서 산불예방이나 청소나 작업등을 하는 일을 했음.

본인은 그때 대학교를 다니며 학비벌려고 수학학원에서 강사로 시간강사 뛰는 일을 하고 있었음

아침에 큰어머니께 전화를 받았는데, 큰어머니는 일을 하고 계신데, 금강공원에서 전화가 와서

아들이 많이 다쳤다는 연락을 받음. 큰아버지는 지방에서 일하시기에 병원에 어떻게 가야할지 몰라서

차가 있는 우리집으로 연락을 했음.

난 바로 어디서 전화왔는지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그쪽으로 전화를 걸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그근처 조금큰 종합병원으로 간다고 해서 거기로 갈려했는데, 다시 연락와서 부산대학병원으로 간다고 함.

그때, 느낌이 옴.

대학병원 갈정도면 정말...하......

아니나 다를까 큰어머니와 우리집 가족이 갔을때는 심장만 뛰게 만드는 약 투입하고, 뇌사상태였음.

그때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듯한 기분밖에 안느낌.

그 아이는 이제 21살인데, 정말 너무 마음이 아팠음.

그전날에 그아이 동생이 본인 학원에서 수학을 배웠기에 학원 마치고 집에 데려다주며 배가 고파서 큰집에 들어갔다가 밥먹으며 나도 별거 없는 사람인데,

본인이 그래도 윗사람이고 선생이라는 직업에... 공부해라 복학준비해라 뭐하고 살꺼냐 그렇게 의미없이 시간 보내면 안된다느니...

뭐 이딴 소리를 지껄였었음.

그전날에.........

사고 나기전날에............

정말 눈물밖에 나질 않음

잘해줄껄

이렇게 갈꺼였으면 잘해줄껄...

후회밖에 없었음

정신좀 차리고 사건경위를 들어보니 어이가 없었음.

사고날게 아니였음.

1톤 포터 트럭뒤에 작업마치고 밥먹을 시간이라 공익들이 트럭뒤에 짐 싣는곳에 철로된 막아놓는그 판떼가 같은거 사방으로 내려놓고 8명쯤 앉거나 서있었음.

걸어내려가도 되는건데 귀찮았는지, 여튼 그 트럭뒤에 전부 다탔는데, 그때 포터가 출발할때, 맨뒤에 내 사촌동생이랑 한명더 서있었음. 그때 바로 기우뚱해서 바로 도로위에 머리를 부딪히게 되고, 하루뒤 하늘나라로 가게된거임.

3일장 상주를 본인이 했는데,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음.

그렇게 시간이 2달쯤 흘렀나?

외할아버지께서 몸이 좋질 않아 병원에서 검사를 받으셨는데, 폐암 3-4기 셨음.

하루하루가 먹먹하게 흘러갈 무렵, 7월말쯤 시험기간이 끝나고 서울시립병원에 입원해 계셔서 올라감

내가 올라간뒤, 하루뒤 하늘나라로 가심.

내 앞에서 내 손위에서 돌아가심.

처음 돌아가실때, 부모님 삼촌 이모등은 지방에서 일하시느라 바쁘시고, 할머니께서 옆에 계셨는데

내가 와서 할머니랑 교대로 식사를 했음. 그시간에 할머니 식사시간이었음.

나혼자 너무...

무섭기도 하고 슬프기도하고 멍하기도 하고

어떻게 설명하기 힘든 기분이었음.

그때 3일장도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멍한 기분이었음.

화장을 마치고 부산을 내려오는 길에 조금은 실감이 났고 1달 2달 시간이 흐를때,

문득문득 할아버지나 사촌동생과 있었던 추억이 생각나 우울한 시간을 보냈음.

할아버지 생전에 어머니께서 용돈을 주셨는데, 손자 놀러갔다고 그돈 그대로 나에게 주며,

엄마한테 말하지 말라며, 그러면 난또 철없게 말도 안하고 군것질이나 하며 돈을 써버리고,

별다른 수입도 없으신 농사짓는 할아버지셨는데, 내가 한번도 용돈 한번 드린적없는데ㅜㅜ

눈물밖에 나질 않음.

사촌동생은 어린시절 2층엔 큰집 1층엔 우리집해서 같이 살았기에

어린시절 추억은 공유하고 있음.

지금도 그집에만 가면 생각이남ㅜㅜ

 

에휴

 

이게 끝이 아님.

 

 

이제 본인이야기임.

 

그런 힘든일을 겪고난뒤 1년정도는 아무런 일이없었음.

정확히 날짜 시간까지 기억함.

2010 5 23 am 9 :40

학교에 10시 수업이었는데, 본인이 학원강사하며 과외한다고 마티즈 차량을 몰고 다녔음.

학교 경사길에 차를 세워놓고 그 차뒤에서 후배한명을 기다림.

그때 팅~하는 소리가 들렸음.

어이없게 사이드 브레이크 풀리는소리.

난 어떻게 해볼수도 없이 바로 깔려버렸고, 다행히도 근처 사람들이 많아서

내 마티즈를 들어서 나를 꺼냄.

한 10-20초정도 였을꺼임.

난 내다리가 차에 깔려 뼈가 다 으스러 지는 소리를 듣고 느끼고 있었음.

그 짧은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긴시간이었던거 같음.

처음 병원에 가서 너무 붓기가 심해 바로 수술을 하지 못하고 무릎쪽에 구멍을 뚫어

뼈를 붙지 못하게 땡겨놓음.

그날 저녁은 지옥의 밤이었던것으로 흐릿하게 기억이남.

7시간 수술뒤 2-3일이 지나고 내가 어떻게 다쳤는지 내눈으로 직접보게됨.

 

왼쪽 발목 으스러짐.

우리 몸에서 제일 단단하다던 허벅지 뼈 반이상 으스러짐.

의사한테 수술경과가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보통사람처럼 되긴 힘들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음.

난 무너져 내림.

 

거기다가 우리 증조할머니께서도 이기간에 하늘나라로 가시게됨ㅠ

다리가 온전치 않고 입원중이라 포항에 찾아뵙지도 못하고.ㅠ

정말 미추어버리는 줄 암ㅠㅠ

 

하루하루가 짜증이었고

미쳐버리는 나날들이었음.

이때 왜 사람들이 자살하는가.. 이해했음.

절실히 이해했고

진심으로 이해했음...

한 3-4달이 흘렀나?

어느날 1리터 눈물인가? 누군가 이책을 쥐여줌.

정말 미친듯이 울다가 재활훈련에 미침.

약간은 오바지만 보통사람처럼 걸을 수 있을 정도는 됨.

자세히 봐도 티가 잘 나지 않는..

그치만 뛰진 못하는 상태가 됨.

나중에 2년정도 뒤에 핀제거 수술하면 보통사람으로 돌아갈수 있다는 의사소견을 받아냄

이때 당한 사고로 난 월드컵도 병원에서 부산 국제영화제도, 광안리 불꽃축제도 병원에서

소식을 듣게됨

그땐 우울의 극치를 달리고 있을때라 티비도 제대로 보지 않음.

부산사시는 분이라면 내가 얼마의 시간동안 병원에 있었는지 아실꺼임

필사적인 재활로 어느정도 돌아왔지만

대학교 4학년이던 나는

어떻게 해야될지를 몰랐음

아무것도 준비된것도 없었고

 

마냥 놀수만도 없어서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수학학원에서 강의하던걸 밑천삼아

구직활동에 나섬

운 좋게 그래도 좀 큰 학원에서 수학선생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일을 시작하기전에 1년 반쯤 뒤에 핀제거 수술을 받는다고 말씀드림.

 

그 수술날짜가 올해 2012년 4월 24일

검사도 다 받고

수술날짜만 기다리며

보통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으로

열심히 아이들 가르치며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었음.

 

근데

얼마전이였음.

 

학원이 2-3층임

2층은 과학관

3층은 수학관

 

난 수학선생이라 3층에서 마지막타임 수업을 끝내고 2층에 내려가는 길이었음.

그때 4층에 쫌 뭐랄까

집주인은 아닌데 가끔 마주치면 항상 짜증이 섞인 말투에 얼굴에 그런사람이 세들어 사는데

평소에도 주차문제나 이런거 때매 1층에 아웃도어 매장이 있는데 그쪽이랑 싸우고 뭐 그런사람이었음

 

내가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그사람은 3층에서 4층으로 올라가는길이었음.

그때 술이 됫는지

 

마치고 돌아가는 학생들에게 위협하고 욕을 하는거임

그래서 왜그러시냐고,

그냥 올라가시라고 했더니

암말 없길래 난 내려 갈려 했음

근데 뒤에서 냅따 발로 차버림

난 양쪽 발에 핀이 있는 상황이라 어찌 해보지도 못하고 바로 계단으로 구름

근데 이미친새X가 쓰러져있는 내 머리를 차버림

 

코뼈는 내려앉았고

갈비뼈는 금이가고

학원은 아수라장이되고,

 

 

내가 오랜 세월을 살지 않았지만

 

정말 울화통이 터져 미쳐버리겠음.

 

 

내가 세상에 무슨 그렇게 큰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일을 겪는지..

난 도대체 왜이런지...

 

햐...

 

오늘은  코수술을 했는데

코 안쪽을 지혈하느라 전부 다 막아버려서 숨도 제대로 못쉬고,

입으로 숨쉬는게 익숙하지 않으니 자다가 숨이 안쉬어져서 깨고,

입맛도 없고...

숨참고 먹으면 맛도 제대로 안느껴지는거 아심?

 

사진 투척하겠어요(이런 상황이지만 이건 쫌 따라해 보고 싶었음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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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효 이만 줄일게요

짜증이 나서 심장이 다시 급격하게 뛰네요..

 

그 뒷이야기는 나중에 쓰겠음

 

 

 

 

 

 

 

 

수정하는김에 다치기전 사진도 투척~!ㅎ

 

 

 

 

 

 

 

추천수498
반대수25
베플하루|2012.04.05 03:37
안좋을껀 이제 다오신듯 이제 좋은일만 오시길 빕니다~
베플KDH|2012.04.05 11:22
진심 눈물 그렁그렁 지금컴퓨터시간인데 딴짓하느라 보내는 시간이아깝다 하루 하루 열심이 살아야겠어요. 힘내세요 글쓴이 파란만장한 30대 기대해봅니다
베플이제|2012.04.05 16:38
힘들었던시간만큼 행복한시간이 올껍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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