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처음 판을 쓰게되서 좀 쑥스럽네요.
제 이름은 최상연입니다. 나이는 21살 이구요.
제가 이렇게 판을 쓴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전 깡패입니다..
하지만 이런 깡패들의 생활도 고독하고, 때론 씁쓸하단걸 알리기 위해
늦은 새벽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전 부산에서 이름만 말하면 다 아는 나이트클럽을 맡고 있습니다.
운 좋게 어릴때부터 알고지내던 형님을 따라 부산으로 내려가,
작은 소일거리부터 시작해서, 어느세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자리까지 오기가 결코 순탄하거나 여유로웠던 것만은 아니였습니다.
학창시절 전 평범한학생 이였습니다. 초등학교때 동네 친구놈을 따라 시작한
축구가 적성에 맞아 어영부영 몇년동안 놓지 못하고 골키퍼 생활을 꽤 했습니다.
하지만, 나날이 실력이 늘어가는 친구놈과 저는 항상 비교의 대상이었죠.
그런 부분으로 인해서 갑작스런 슬럼프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채
방황의 길로 빠져버렸습니다.
축구를 시작하며 알게된 친구놈 하나가 있습니다. 물론 그 친구도 축구를 했었더랬죠. 아, 지금은 둘다 축구를 놓은 상태입니다
한창 사춘기 시절 그놈과 전 슬럼프로 인한 방황이 우리 인생을 송두리채
뒤흔들만한 계기가 될줄은 꿈에도 모른채, 합숙하고 있던 숙소에서
도망을 계획했습니다.
그렇게 밤이되고, 일전한푼 없던 우리는 그만 자고있던 동료들의 지갑에
손을 대고야 말았습니다.
다 모아보니 한 12만원쯤 되더군요. 늦은 밤 코치와 감독님이 자고 있는
틈을 타 재빠르게 학교에서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물론, 성공적이었죠. 그렇게 떠난 우리는 포항으로 갔습니다.
친구녀석이 포항에 아는지인이 있다고 해 따라간 포항엔 그리 좋은사람들만
있던게 아니더군요. 친구녀석을 따라 간곳은 작은 당구장이였습니다.
당장 숙식이 필요했던 우리는 그 형님의 말씀에 따라 당구장에서 먹고자며
잔잔한 심부름부터 차근차근 일을 배워갔습니다.
뭐 그때까지만 해도 저희는 어서 빨리 돈을모아 원룸이라도 구해 제대로된
숙면을 취하는게 저희 목표였었죠.
거기서 일하는 동안은 별탈없었습니다. 그냥 저희가 하는 일은 형님들 옆에서
시중이나 들고 잔심부름 및 청소나 가게를 지키는일 밖엔 없었으니까요.
그러던 어느날 자주오던 형님 한분이 계셨습니다.
그 형님은 포항시내를 주름잡고 계시고, 무서운 형님이란걸 대충 얘기는 들어서
저 역시 깍듯히 대했습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드셨던지 저한테 생활을 한번 해보지 않겠냐는
꿀같은 제안을 하시더군요.
그때까진 축구를 관둔지 얼마되지 않은상태라 몸도 봐줄만했고 등발도 있었으니
형님 눈엔 괜찮게보였었나봅니다.
그렇게 시작된 깡패생활은 절 점점 타락으로 이끌어가는 지름길이 되었습니다.
형님을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배우고, 다른형님들 만나시는 자리에서 저도
인사뵙고 하다가 꽤 지인들을 많이 알게됬습니다.
그렇게 겉멋만 들고 자신감에 차있던 저는 한때 포항시내를 휩쓸고 다녔었죠.
아 이런...벌써 3시가 넘었군요...2탄에서 뵙겠습니다...
------------------------------------------------(추가)
자려고 누으니 잠이 안오더군요. 작은 댓글이나마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그렇게 포항시내를 휩쓸고 다니며 검은색 그랜져XD를 타고, 지갑엔 항상
60만원씩은 꼭 들어있는 그런 부유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언제까지 이런 허송세월을 보내야 하나 싶어 친구와 급히 모든것을 정리하고
포항을 떠나 대구로 가게됩니다.
그때가 제 나이 19살때군요. 2년을 등지고 지내온 부모님과도 오랜 고민끝에
연락을 해보았습니다. 학교를 도망쳐나온 아이가 2년동안 깜깜무소식이니
부모님은 많은 걱정을 하다 실종신고도 해보고,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최대로 동원했지만 결국 못찾으셨다더군요.
2년동안 한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땐 축구라는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릴 지경이였거든요. 그래서 다시 전화를 하면 나를 데려가
그 감옥같던 학교에 다시 가둘것만 같아 막연한 두려움에 친구녀석과 저는
2년이란 시간동안 부모를 등지고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2년이란 세월을 내 영혼을 몸담고
정들었던 도시 포항을 떠나며, 그 새벽 옆에 곯아떨어진 친구녀석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던것 같습니다. 힘내자, 힘내서 이겨내고 성공하자.
그렇게 대구로 내려와 제일 먼저 시작한 일은 주유소 알바였습니다.
친구와 2년동안 모은돈이 꽤 됐었기에 그걸로 자그마한 투룸을 잡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참 사람 인연이라는게 놓고 싶어도 놓치 못하는 것이더군요.
그렇게 주유소 알바와 함께 아침에 운동이나 해보자 시작한 신문배달은
그리좋은 인연을 가져다 주지 못했습니다.
네, 마주쳤습니다. 축구부 감독님과요.
제 연락을 받은 부모님은 그길로 감독님과 통화를 끝내셨고,
대구로 내려간다는 제말을 토대로 우릴 찾아 방방곳곳 다니셨나봅니다.
그렇게 아침 신문배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만난 감독님은
마치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올라온 악마와도 같아 보였습니다.
손써볼 틈도 없이 그자리에 잡힌 전 온갖 욕설과 발버둥을 치며 그렇게
코치와 감독의 봉고차로 끌려가, 같이 도망친 친구놈은 어디서 뭘 하냐는
질문에 그대로 순순히 대답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렇게 친구와 같이 붙잡혀 울산에 있는 학교로 끌려가 3일동안 물 한모금
못마시고 체육실에 갇혀 울부짖음을 했었던것 같습니다.(그때 방학이라 학생도 없었구요)
붙잡혀 온뒤로 두 발 뻗고 제대로된 숙면을 취해본적이 없었습니다.
매일 심한 구타와 폭행으로 온몸은 상처투성이로 변해만가고
그전에 있던 동료들은, 저희가 어쩔수 없이 손을 대버린 돈에 대한
보복을 수없이 가하였습니다. 몇년이 지났는데도 말이죠.
원래 후배였던 녀석들도 저희를 깔보기 시작했고, 그 지옥에서는 제 맘대로
할수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너무 괴로웠어요. 그 지난 2년이 너무 그리울 만큼요.
결국, 심한 구타와 폭행으로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버린 전 세상이 미워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결심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학교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
하루에도 수십번씩 떠오르더군요.
그렇게 일은 진행됬습니다. 오늘도 체육실에 혼자 갇혀 있던 난 낮에 연습시간
에 몰래 경비 아저씨에게 공구통을 빌려 체육실 구석에 짱박아두곤
코치가 잠들었을 새벽에 창문을 땄습니다.(그때 창문이 방범창이였음)
바로 옆 체육실에 갇혀있던 친구도 방범창 쇠창살을 따고 자는애를
깨워 도망을 감행 했습니다.
이제 아주아주 걸리가서 다신 나를 찾지 못하게 할거라는 막연한 생각과 함께
친구녀석과 그 새벽을 죽도록 달렸던것 같습니다.
막상 터미널에 도착해서 어디든 떠나야 하는 우린 갈곳이 포항과 대구 뿐이였습니다
그렇게 다시 버스에 올라 도착한 대구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더군요.
원래 살고있던 집을 빼 이사를 하고, 새로운 일자리도 찾았습니다.
아, 부모님과는 아예 연락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바쁜 생활을 보내던 중 어릴적 그친구를 따라 축구를 시작하게 된
장본인.. 그 친구가 미니홈피로 연락을 취해왔습니다.
그 친구와 전 다른학교에서 운동을 하고 있어 잘 만나지 못했었죠.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내 우상이자 그립던 친구를 만나 술한잔 기울이며
지난 얘기를 했어요, 뭐하고 지냈냐 요샌 뭐하냐...
그러다 문득, 이 친구도 축구를 그만둘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어요.
그렇게 날아다니던 녀석인데...이녀석은 부모님이 안계시고 할머니랑 둘이
살고있어요. 집이 많이 가난한 탓에 할머니 혼자 축구하는 손자놈 뒷바라지를
하긴 너무 벅찬일이죠. 그걸 친구녀석이 평소에도 항상 마음에 걸려했는데,
이제 놓을때가 온것같다네요...친구같이 애인같이 항상 곁에있던 축구를
막상 놓을려고 하니 가슴이 먹먹하답니다. 전 축구하기가 더 싫은데 말이죠^^
휴 너무 늦었네여ㅎㅎ내일 또 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