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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천재vs천재

커니 |2012.05.04 06:08
조회 604 |추천 1


★ 김웅용 ★


1963년 충북 출생

 

- 4세 때 한양중학교 6개월 마스터

- 5~8세 한양대학교 교육과정 수료

- 1974년 12세 때 미국 NASA 선임연구원으로 발탁

- NASA에서 근무하면서 대학원과정 공부

- NASA에서 연구개발에 참여하지 못하고 사춘기의 기복으로 인하여 무작정 한국으로 돌아옴

   (당시 NASA에서 수치분석에 엄청난 재능을 보인 그를 단순업무에만 활용했었다)

- 17세 때 5개 국어 정복


엄청난 천재였던 김웅용씨에 얽힌 에피소드는 정규과정을 거치지 못했기에
노천명의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의 답을 "사슴"이라 적지 않고 "기린"이라 적은 일화도 있다.


2006년 국제인명센터 선정 토목, 환경공학분야 국제교육자

2006년 마르퀴즈 후즈 후 23판 등재

2006년 미국인명연구소 선정 21세기 위대한 지성인

2006년 국제인명센터 선정 20세기 가장 우수한 과학자


김웅용의 공식 아이큐는 17세 때 기록된 200이다.

그는 생후 80일에 걸어다닐 수 있었고, 생후 100일에는 19개의 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때 "엄마"라는 단어를 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생후 6개월이 지났을 때는 간단한 문장을 말할 수 있었다.

3세가 되자 그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2세 때 한글을 마스터한 것이다.

김웅용은 4세 때 구구단을 마스터한 후 7개월만에 미적분을 풀었다.


지금 김웅용선생님께서는 충북개발공사에 계시다고하네요

인재를 썩히는게 너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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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휘소 ★

1935년 1월 1일 서울 출생 - 1977년 6월 16일 사망

- 펜실베니아대학교 대학원 입자물리학 박사 
- 2006년 한국과학기술한림원 2005년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정 
- 미국 시카고대학교 교수 
- 1972 페르미가속기연구소 이론물리학 연구부장 
- 1966 미국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학 교수

 - 대한민국이 배출한 역대 가장 유명한 이론 물리학자

이휘소는 대한민국 역대 물리학자들 중 가장 뛰어났고,
노벨물리학상 수상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유일한 대한민국의 과학자였다.


그가 제시한 게이지 이론의 재규격화는 소립자 물리학의 표준모형을 확립시켰으며

그의 연구결과는 다른 여러 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어 와인버그, 살람(1979년), 트후프트,
벨트만(1999년), 그로쓰, 윌첵, 폴리터(2004년) 등이 노벨상을 수상하게 했다.


1974년 그는 참 쿼크의 존재와 관현해 'Search gor Charm'이라는 획기적 논문을 발표하여

참 쿼크가 존재할 경우 이들이 결합할 때 나타나는 입자들의 성질을 규명헀고
그해 11월 제이/프사이 입자를 발견한 리히터와 팅이 1976년 노벨상을 받게 했다.

그의 가장 큰 학문적 업적인 게이지 양자장론에서 재규격화 문제의 해결과 참 입자의 
탐색에 관한 연구이다

[출처]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천재(김웅용,이휘소)|작성자 신념의마력

핵의 베타붕괴 소립자의 악상호작용에 관한 페르미 이론은
1950년대 후반 공간반전 대칭의 깨짐이 알려져 큰 변혁을 가져왔다.

그 후 전자기작용과 약상호작용을 총합하려는 이론들이 생겨났지만
악작용과 관련되는 게이지장의 재규격화가 걸림돌이었다.


이휘소는 게이지 대칭이라는 이론을 이용해 자연계의 네 가지 상호작용 가운데

전기적 상호작용과 약한 상호작용을 통합하여 기술하려는 전기약작용 이론에서
문제화 되었던 재규격화의 해결책을 제시하여 소립자 물리학의 표준모형을 확립했다.

이휘소가 사망한 뒤 게이지 이론은 표준이론이 되어 '전기'와 '자기'현상을
통합설명하는 Maxwell이론에 버금가는 물리학 이론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이휘소는 이 방면에서 세계적으로 역대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물리학자로 꼽힌다.

또한 그는 비론 이론 물리학자이지만 실험물리학에도 비범함을 나타내
'참 입자의 탐색'과 같은 그의 현상론적 논문은 실험물리 학자들에게 좋은 지침서가 된다.


그가 생존 당시 세계 최고 이론물리학연구소인 페르미랩의 소장으로 재직했고

1978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와 공동연구를 수행한 몇 안되는
정상급 입자물리학자였음은 분명하지만 어쨌든 그는 아인슈타인 만큼
과학사의 패러다임을 뒤집을 만한 연구업적은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 살아서 약한 상호작용력의 게이지이론을 완성했으면

아인슈타인이 이루지 못한 대통일장이론의 수립도 가능했을 수 있다.


"내 밑에 아인슈타인도 있었지만 이휘소의 능력은 이미 그 위에 있었다.

이휘소는 까다롭고 지루한 계산을 끝까지 파고드는 유일한 학자이다.

그는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이며 핵과학자로서 아인슈타인이나 페르미보다 
이미 앞서있는 창조적 지도자다"


- 오펜하이머 -


"이휘소에게는 1960년대 중반에 이미 노벨물리학상을 주었어야 했다."


- 양전닝 (1957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


"그와 같이 6개월간 생활하며 나는 도리어 그에게 많은 것을 배웠다."


- 겔만 (196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


"이휘소는 현대물리학을 10년 이상 앞당긴 천재이다.

나는 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이 부끄럽다."


- 살람 (197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


참고로 김진명씨의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서의 이휘소박사님의

죽음중에 타살되셧다는건 허구라고 하네요


사진이 없다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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