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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나이 26세.

|2012.05.26 05:49
조회 6,585 |추천 37

내나이 26세.

 

쓰기전부터 웃음이 막 나오네.

내가 진짜 26년이나 산 건가. 하는 생각이 막 든다.

딱히 해놓은 것도 없고 해보고 싶은 것도 없는 암울한 인생같지만,

그래도 투정부릴 나이는 지났으니까.

 

 

26살. 참 애매한 나이지.

아직 학교를 다니는 입장으로서, 뭐 내년이면 졸업이지만.

학교에 가면 냄새나는 복학생 아저씨지만,

사회에 나가면 인큐베이터 안의 신생아들 같은, 그런 입장이겠지.

 

 

딱히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릴 때 약간 막나가던 때만 빼면. 그것도 뭐 살다보면 한번쯤은 다들 겪는 일이니까.

그렇다고 내가 뭐 요즘 애들처럼 누굴 죽인다던지 하던 짓은 안했으니까. 아니 그런 마음조차도 갖지 않았고.

되려 그런때가 있었음이 더 다행이란 생각이 드네.

현장소장으로 계시던 아버지가 작업복 입고 다니던 학원까지 찾아오셨을 때,

친구들 앞이라 그게 너무 부끄러워서 대답도 안하고 멀찍이 도망가던 나.

그날 아버지는 술을 엄청나게 드시고 곤죽이 되셔서 주무셨다고... 나중에 얘기를 들었지.

나중에 그 일을 알고 얼마나 죄송스럽고 눈물이 나던지...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사춘기가 끝나던 시점이.

아무튼 그렇게 큰 말썽없이 초,중,고 나오고, 대학 가고, 군대 갔다오고.

대학이란 곳도 막상 가보니깐 별거 없더라.

그저 고등학생 때까지 못하던 것들, 20살이 되고 성인이 되니 마음껏 뭐든 할 수 있다는 것.

그거 하나만 빼면 아무것도 없었지. 되려 그게 지겨워지면 고등학교 시절이 더 그리워지고.

 

 

그래도 처음 하는것들, 처음 보는것들, 신기하고 계속 해보고 싶잖아?

미친듯이 놀았지. 공부라곤 이제 아예 손을 놔버리고.

우리학교는 물론, 다른 대학가들 찾아다니면서 술 마시고, 놀고, 여자들 꼬셔서 같이 놀아보고...

그리되니 성적은 당연히 밑바닥을 치지.

총 7개 강의중에 F가 4개.

집으론 학사경고가 날아오고.. 오랜만에 아버지한테 한소리 듣고 거의 얻어맞기 직전까지 갔었지.

이대론 안되겠다 싶더라고. 어차피 다음학기 다닌다 쳐도 이버릇 못고칠거 같고.

거진 반억지로 1학기만 마친채 휴학. 그리고 8월에 군대를 갔지. 거의 도망가듯이.

 

 

처음으로 306 보충대에 입소했을 때, 그냥 멍- 하고 막막한 느낌밖에 들진 않더라.

이제 여기서 못 나가는건가, 와 난 진짜 새됐구나, 부모님한테 더 잘해드릴 걸...

밥도 안 넘어가고, 잠도 안 오고... 갑자기 환경이 바뀐 탓도 있겠지만,

너무도 갑자기 내 일상과 단절이 되니깐 사람이 바보가 된다는 느낌밖에 없더라고.

그렇게 3일내내 키재고 몸무게재고 피뽑히고 시력검사하고 혈압재고 온갖 지랄들 다 받다가,

사단 신병교육대대로 끌려가서 본격적인 군생활을 하기 시작했지.

훈련소 생활은 별다른 추억이랄 것도 없었지.

밥 먹으라면 먹고, 옷갈아 입으라면 입고, 바느질하라면 하고, 자라면 자고...

소위 '까라면 까라' 는 식의 생활을 배우는 단계랄까. 아니지, 배우는게 아니라 세뇌라고 하는게 맞겠다.

뭐 군대가 다 그렇지 않나? 가르치는 느낌이라기 보단 주입시키는 거지.

아무튼, 그래도 사람사는 곳이라 많은걸 배우기도 했고.

처음보는 인간들이랑 하루만에 그리도 친해질 줄은 상상도 못 했거니와,

참 그 안에서 별의별 인간들을 다 봤다.

나이트 삐끼부터 초등학교 교사, 나같은 휴학생들, 다단계하다 도망온놈들, 소위 '호빠' 들까지...

심지어 내 동기중엔 게이도 있었드랜다. ㅅㅂ.

 

 

그렇게 5주간의 신병교육대 생활을 마치고 수료식 하는 날.

훈련병들한테는 딱 그 수료식날에 면회 한번 할 기회가 있거든.

난 아버지는 못 오시고 어머니가 여동생이랑 같이 오셨더라.

어머니 얼굴 보는데 왜그렇게 눈물이 나던지...

진짜 병신같이 웃는얼굴에 눈물 흘려가면서 어머니랑 면회하고...

그 짧은 면회 마치고 난 배치받은 부대로 트럭에 실려갔지.

그리고 그때부터 진정한 지옥이었지. 약 3개월 동안.

너무 디테일하게 쓰면 글이 너무 길어지니깐 패스.

솔직히 별로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른채 갔으니 그나마 그 기간 버텨냈지.. 알고 가면 절대 생활 못한다.

휴가나가도 이등병 군기가 확 잡혀있으니 집에서도 똑같이 생활하고...

아버지 티비보시는데 가면서 "지나가겠습니다"

아버지 말씀하시는거 못 알아들으면 "잘 못 들었습니다"

심지어 밥먹는 것도 식사속도 맞추면서 먹고 다 먹고 일어나면 밥그릇이랑 반찬그릇 다 챙겨서 갖다넣고..

지금 생각하면 진짜 헛웃음 나오지만.

그래도 아버지가 많이 뿌듯해하셨다더라. 저놈이 진짜 군인같다고.

 

 

그렇게 점점 나도 짬 먹어가고...

내 시간이 많아지면서 점점 전역 후에 할 일들이 생각나더라.

학교를 다시 가야하나, 이 머리로 또 공부를 해야되나...

사회경험이라곤 아르바이트 한번 안해본 몸인데 내가 뭐라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고민들 하다보니 밤엔 잠도 잘 못자고...

그래도 안에서 생각을 많이 하다보니 계획이 잡히긴 하더라.

일단은 뭐라도 도전을 해보자. 학교 복학은 1년만 미루자, 하는.

그렇게 난 죽어라 시간 죽이다가 얼렁뚱땅 전역을 하고...

1달 정도 집에서 쉬다가 이제 피부도 좀 하얘지고 머리도 길고 하니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군대까지 갔다와서 용돈 타 쓰기도 좀 죄송하고 해서.

그렇게 오만가지 일을 다 해봤지.

공사장 막노동부터 에이컨 수리공, 호프집 정직원, 신문배달, 조선소 용접보조공까지...

1년동안 짧게 많은 일들을 해보니까 좀 알겠더라고.

돈이란게 누워서 땡 하고 그냥 나오는게 아니라는 걸.

그리고 사회에선 내가 일한 만큼의 댓가, 딱 그것만 주어진다는 걸.

스무살 때 흥청망청 보낸 시간들이 얼마나 아까웠는지까지.

그만큼 경험하고 나니 이젠 공부가 하고 싶어지더라... 나도 못 믿을만큼.

그렇게 다시 난 2009년에 복학생 티 팍팍 내면서 1학년.... 으로 복학을 했고.

2012년 지금, 난 졸업을 앞둔 4학년 학생이지.

말이 4학년이지 옘병... 1학년 때 빵꾸낸 학점 메꾸느라 수업듣는 건 1,2학년들이랑 별반 차이가 없다.

 

 

 

내나이 26세.

 

 

글이 길고 난잡해졌지만, 쓰다보니 참 옛날생각 많이 나네.

결코 길게 살았다고 하긴 어렵고, 많은 경험을 한 것도 아니고.

그렇지만 내가 한 가지 확실하게 배운 점이 있다면,

인생이란 게 결코 만만치 않다는 거.

사실 말은 여기저기서 다들 많이 들어봤을거야.

그렇지만, 직접 부딪혀보지 않는 이상은 이 말을 체감할 수 없어, 절대로.

 

 

내가 이 글을 쓰는 건,

비록 여기 남깊판엔 나보다 더 오래 살고 많은 경험 하신 형님들 많이 계시겠지만,

그래도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읽고 나 같은 인생은 살지 말란 의미다.

특히 어린친구들은 이런저런 고민이 한참 많겠지.

놀고는 싶고, 집에선 태클 들어오고, 놀면서도 미래에 대한 걱정이 마음 한 구석엔 숨어있고.

그런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놀아. 놀아도 돼.

다만, 너희들 미래에 해를 끼치지 않을 선에서 놀아.

사람 죽이고, 마약 하고, 이런 인간들은 여기 없는 걸로 안다는 전제를 둘게.

사실 젊을 때 놀아야 된다는 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나중에 성공해서 여유로운 인생 사는게 더 좋다는 말도 있지만,

젊을 때 노는거랑 늙어서 노후를 보내는 건 분명한 차이가 있거든.

아무리 성공한 인생이라도 환갑잔치를 홍대클럽에서 하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아?

 

술, 마셔. 다만 개랑 친구먹을 정도로 먹고 주위에 안좋은 소리 들리게 하지는 말아.

여자, 만나봐. 다만 많은 여자들 만나서 정신없이 놀아도 사랑은 딱 한사람이랑만, 모든걸 바쳐서.

알바, 해봐. 노가다든, 서빙이든, 뭐든지 해봐. 그게 나중에 사회생활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거야.

공부, 무조건 해놔. 사회나가서 쓸데없다고 무시하지 말고. 하나의 인내심테스트라고 생각해.

공부가 가장 쉬운건데, 그마저도 제대로 못 하면서 뭘 제대로 할 수 있을거 같아?

 

 

그리고 요즘 남깊판에 연애글이 너무 자주 보이는 것 같네.

그만큼 어린 친구들이 조언을 얻고 싶다는 의미겠지. 물론 나도 이해는 해.

나 역시 나이가 나이니만큼, 결코 여자를 만나본 횟수는 적지 않아.

솔직히 까자면, 사귄 여자들보단 가볍게 만나서 하루 놀고 헤어진 여자들이 더 많지.

어떤 의미에선 나쁘지만, 그렇다고 욕을 처먹을 정도로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 개인적으론.

가볍게 만난 여자들에게 너무 큰 비중을 두지마. 여자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야. 너희들 역시 그녀들에겐 그저 잠깐 만났다가 거쳐간 남자들에 지나지 않지.

그렇게 노는것도 20대 초반, 그때가 끝이야. 내나이에 그런짓 하면 나이값 못한다고 욕이나 뒤지게 먹겠지.

그렇게 놀아봐. 잠깐의 즐거움이나 성적인 쾌락은 얻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게 끝이야. 그 뒤엔 허무함밖에 없어.

내가 이 짧은 걸 위해서 그만큼 돈을 쓰고 많은걸 포기해야 했나, 하는 생각들.

그런 마음들을 먹어가면서 한단계 커가는거지. 단순한 성장통이라 생각해.

어차피 너희가 바라는 순수하고 너만 바라볼 여자들은 클럽이나 술집에 없어.

너도 모르는 어딘가에서 우연하게 만날 뿐이지, 결코 그녀들은 아니야.

 

 

말이 좀 많이 엇나갔구나.

어쨌건, 10대, 그리고 20대 초반에는 연애와 군대가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을거야.

모두가 한번쯤은 겪는 일들이고, 그렇기에 고민하는 것도 당연한거지.

다만, 연애에 관해서 너무 남들 눈을 의식하진 마. 너무 조언대로 하려고 하지도 말고.

적어도 너희의 연애는 너희만의 일이지, 우리들의 일은 아니잖니, 솔직한 말로.

연애엔 비슷한 종류의 고민들은 있어도 절대 같은 전개는 있을 수 없어.

그 전개는 너희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각자 전혀 다른 길로 가게 되는거고.

뭐든지 직접 해보는거야. 연애 역시 다르지 않아.

니 옆의 사람에 대한 문제부터 남에게 기대려 들면, 그게 버릇이 되버리는 거야.

나중에 군대가서도 힘들면 엄마한테 전화해서 '엄마, 이거 어떻게 해야돼?'

아니면 여기에 글올려서 '형들, 이거 어떻게 하는거야?' 이럴래?

나이가 들면서 더욱 더 많고 큰 경험들을 하게 될 텐데, 적어도 성인에게는 자세한 튜토리얼 따윈 없어.

뭐든지 눈치껏, 알아서 잘 하는게 정답이지.

그게 틀리다한들, 욕 좀 먹고 혼자 자책좀 하면 되는거야.

그리고 그 실수들을 교훈삼으면 되는거지. 나중에 비슷하거나 같은 일을 마주하면 적어도 '아 이렇게는 하지 말아야겠구나' 라는.

쉽진 않지.. 물론. 그렇지만 사람 살면서 부딪히는 일 중에 쉬운건 별로 없어.

특히나 자기가 겪는 일이면 더더욱이.

그렇지만 너희가 더 살면서 더 어린 친구들을 맞닥뜨리게 되면, '아 그때 내가 저랬구나' 하는걸 느끼게 되지.

그리고 자연스럽게 같은 말로 충고해줄 수 있게 되는거고.

나도 몇년 살아보진 못해서 더이상 뭐라고 해줄 수가 없구나... 사실 자격도 없지만서도.

 

 

 

어쨌건, 힘든 일은 나누면 좋겠지만,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건 최대한 혼자 해보려고 노력해봐.

작은 문제부터 혼자 힘으로 눈치껏 해나가는 게 여기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의 시작이니까.

그리고, 자기가 너무 못났다고 자책하진 마.

못생겨서, 돈이 없어서, 키가 작아서 여자를 못 만나겠다...

이따위 생각들은 하지도 마.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주눅들어버리면 그 순간부터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어.

소심하게 뭐 하나 건드려놓고 잘못될까봐 안절부절,

실수하면 '내가 그럼 그렇지... 병신' 하면서 자책하고.

그런 생각 갖고있는 사람들, 정신차리고 자기 부모님 얼굴부터 한번 봐.

그리고 생각해. 저분들이 얼마나 나를 자랑스러워 하고 계실지.

아무리 못난 외모라도 부모님에겐 너희들이 원빈이고 장동건이야.

그따위 마음 갖고 살기 싫다고 하는게 제일의 불효란 것도 조금은 생각해보고.

 

 

 

미친, 혼자 씨부리다 보니 해가 떠버렸다.

어차피 학교는 안 가지만... 아 이런 3일동안 연휴구나.

난 이만 자러가야겠구나. 잠을 안자고 있으니깐 술이 해독이 안된다.

어쨌건 남깊판 형제님들, 한번 잘 살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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