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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대 : 과메기의 꿈 님 >
16화-돌아오다
우리가 있던 골목엔 좀비들이 거의 없었단 얘기는 굳이 반복할 필요가 없을 거다.
덕분에 우리는 출발에 대한 별 부담없이 편의점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었다.
기막힌 행운으로 우린 편의점 현관용 스페어 열쇠를 사무실에서 획득할수 있었는데,
무지능인 좀비들 상대로 문을 잠그는 것이 도움이 될 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린 그걸 정문을 곱게 열고 나오는 데에 쓸 수가 있었다.
현관을 망가뜨리는 것이 싫어서 안쪽까지 힘들게 들어왔는데 나갈때 현관을 부수고 나갈 정도로
우린 바보가 아니니까(그럴 정도의 저능아였더라면 우리들은 벌써 죽었을 거다).
우리 수색조가 우리 집에서 나오면서 챙긴 배낭은 둘.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내용물은 거의 같다.
비상식량, 식수통, 서바이벌 나이프(내가 체육관에서 가져온 것. 보조무기라던가 쓸데가 많다),
휴지, 의약품같은 필수품들. 우리는 편의점까지 오면서 사용했었던 배낭의 내용물들을 편의점 안에서
도로 보충할 수 있었다.
덤으로 간식이라는 사치품까지.
..아니, 사실 이런 극한상황에서 간식이란건 사치가 아니다.
어찌보면 필수라고도 할 수 있다.
장거리 등산같은 것을 할 때엔 단 음식을 꼭 가져가서 활력보충을 해주는데(초콜릿, 꿀에 절인 레몬 같은 걸
휴식중에 먹어주면 기력이 회복되는 걸 느낄 정도다) 내가 간식을 챙긴 것도 대충 그런 식으로 보면
될 것 같았다. 자기위로 비슷한 거지만 도움이 되는 건 확실하니까.
이건 우리가 편의점으로 오면서도 느낀 거지만..
새삼스레 다시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바로 좀비의 수가 줄어들었다는 것.
적어도 어제 아침에 비하면 말이다.
편의점을 나오고 대충 우리 집까지의 거리의 반 정도를 걸어오며 우리가 죽인 좀비의 수는 자그마치 제로.
날이 슬슬 어두워지고 있어서 우리가 빨리 이동한 것도 있지만 확실히 좀비의 수가 줄어든 것도 같았다.
"10억.. 아니 15억 4천짜리 우리 집을 날려먹었으니 그정도 값은 해야지.. 중얼중얼.."
"어? 뭐라고 했어?"
"아냐. 아무것도."
내가 등짝이 뜯어져 나간 우리 집의 뒷쪽을 상상하며 투덜거리고 있는데 태완이가 내게 묻자
나는 손을 흔들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했다.
내가 이 동네에서 '일반적인' 생활을 하고 있을때 이 거리를 자주 지나다녔는데,
그때 우리집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지표로 머릿속에 자주 그리던 큰 차도가 우리 눈앞에 들어왔다.
우리는 각자 무기를 쥐고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보이는 좀비는 오른쪽 아주 먼 곳에서 걸어다니는
녀석 한 마리뿐. 저 정도면 무시해도 된다.
"사태가 커질 수도 있겠어."
태완이가 한마디를 툭 던지며 길을 건너기 시작하자 내가 따라붙으면서 물었다.
"뭔 소리야? 대한민국이 좀비민국이 됐는데 뭐가 더 커져?"
나는 태완이에게 핀잔을 주면서도 차가 있는지 살피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았다.
죄다 꽁무니를 빼느라 차들을 타고 어디론가 갔는지 이런 저런 차들로 넘쳐나던 도로엔
단 하나의 차량도 보이지 않았다.
저편에 배를 보이고 자빠져 있는 고물 스쿠터가 하나 보였지만 저걸론 엿도 안 바꿔줄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흔들며 무시해 버렸다.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단 거야."
태완이가 내게 대답하자 아름이가 말했다.
"무슨 소리예요? 좀비들이 수영을 해서 가거나 하진 않을 거 아녜요?"
"동물들에게도 감염된다고 했었잖아? 만의 하나의 이야기이지만, 이런 가정을 해 보자구."
태완이는 손가락을 하나씩 펴며 예를 들기 시작했다.
"사람이 좀비가 된다. 그 좀비가 죽고, 그 시체를 떠돌이 개가 뜯어먹는다. 그 개는 좀비가 되고, 그 좀비견이
어떤 이유로 인해 죽는다. 그리고 그 시체를 새들이 파먹는다."
"그건 아까전에 했었던 말 아니야?"
수정형이 묻자 태완이가 수정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런데 그 새들이 철새였다."
"아!"
아름이는 그제야 알았다는 듯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왜이래, 수재 소리 듣는 놈이. 너는 감염된 택시기사가 자기 택시에 사람이 타면 직업정신을 그대로 가지고
'우어어~ 어디로 가실 건데요?' 그럴 것 같냐? 그냥 뜯어먹어버리지. 그건 철새같이 대륙간을 이동하는
동물들에게도 적용돼. 말인즉슨, 바이러스에 감염되어서 폭식성을 띄게 되면 그자리에서 먹이를 찾아다니지
자기네 습성대로 바람따라 세월따라 날아다니진 않을 거란 말씀이야."
태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나의 가정을 세운 것일 뿐이야. 아직 우리는 그 바이러스가 어떻게 생겨난 건지도 모르고, 또 내가 세운
가정들의 그 마지막 과정이 어떤 식으로 바뀌게 되어 해외로 바이러스가 유출될지도 모른다는 뜻이었어."
"나는 다르게 생각해."
옆에서 수정형이 거들자 우리는 하나같이 수정형을 바라보았다.
"이미 10개국의 연합군이 달성되었다고 했잖아? 그 말은 그만큼 이 사태에 대해 해외에서의 관심이 크단 것과
같은 소리야. 그런데 그 똑똑한 해외의 헤드쿼터들이 우리 정도의 가정도 세우지 못할 거라고는 생각치 않아."
"그것도 그렇네요."
태완이는 그제야 안심하는 기색으로 말했다. 나는 수정형을 거들듯 말했다.
"사실 그런 일이 발생한다 해도, 요즘 세계의 군시설로 요 코딱지만한 나라의 제공권 하나 제어하는 건 일도
아닐걸?"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낄낄 웃었지만 사실 속마음은 그리 편하지만도 않았다.
영화같은데서 보면 아주 작고 사소한 일로 인해서 거대한 사건이 발생되곤 하니까.
그런 현상을 나비효과라고 했었나?
뭐, 그런 일은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길 빌 수밖에 없다.
인생의 반도 안 살아온 우리들이 이러쿵저러쿵 토론해봤자 병아리들 짹짹대는 것 이상의 의미도 없으니까.
정말이지 우리들의 힘이 너무도 미약하다는 걸 너무도 뼈저리게 느낀다.
우리가 뭐 무전기 한번으로 전투기를 부를 수 있기를 하나, 국방부 HQ에 의견을 제시할 수 있기를 하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하나, 살기위해 죽어라 발버둥치는 것일 뿐이다.
"어.. 차가 와요!"
"넌 또 뭔 소리야.."
아름이가 마치 일반적인 날에 무단횡단을 하다 달려오는 차를 발견했을 때 처럼 말하자
나는 한숨을 쉬며 아름이가 말한 쪽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정말로 버스 한 대가 우리 쪽으로 마구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마치 음주운전을 하듯 곡선을 그리며.
"차.. 차다. 진짜로. 아직도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었어!"
"근데 좀.. 위험해 보이지 않아?"
내가 반가워서 외치는데 태완이가 그 차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확실히 저 버스의 속도는 위험할 정도였다.
마구 곡선을 그리면서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버스는 마치 음주운전을 하는
기사가 몰고 있는 버스처럼 보였다.
우리는 황급히 길을 건넌 뒤 가드레일에서 좀 떨어져 그 버스가 우리 근처로 오기까지를 기다렸다.
끼이익- 끼익-
버스가 가까워져오자, 도로변에서 한 번쯤 들었을 법한 고무 타이어가 아스팔트에 비벼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마구 흔들면서 우리 쪽으로 다가온 버스가 드디어 시야에 제대로 들어오자
나는 혹시라도 말려들까봐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도록 가방과 무기를 내려놔 몸을 가볍게 한 뒤
도로 쪽으로 다가가 가드레일에 몸을 기대고 외쳤다.
"어이! 사람이 있으면.."
그 순간, 내 눈에 들어온 버스의 앞유리창엔 피로 찍힌 무수한 손자국들과
온몸이 처참하게 물어뜯겨진 채 유리창 앞을 뚫고 나와있는 시체였다.
나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굳어버리고 말았다.
버스가 내 눈앞으로 가까이 다가옴에 따라 그 안쪽이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의 안은..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발버둥치며 좀비와 함께 뒹굴고 있는..
끼기이익- 끼익-
버스가 내 앞에서 방향을 돌리자 차체의 옆면이 보였다.
좀비에게 물어뜯겨 죽은 사람들의 손들이 버스의 수많은 옆창문들로 삐져나와 흡사 거대한 벌레의 다리처럼
보이는 기괴한 모습을 연출해내었다. 내가 버스가 이쪽으로 달려올까봐 주춤하는 사이 버스의 회전력은
최대에 달했고, 순간 와장창 하며 버스의 뒷창문을 뚫고 피투성이가 된 시체들이 밖으로 후두두둑 떨어져나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아스팔트에 굴렀다.
나보다 비교적 뒤쪽에 있던 친구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버스 뒤꽁무니에서 시체들이 쏟아져나오자
비명을 지르며 내 쪽으로 뛰어왔다.
"뭐.. 뭐야 저거!"
"진환아 뭐해! 빨리 뒤로 빼!"
콰과아아앙
내가 친구들의 말을 듣고 바깥쪽으로 떨어지기 무섭게 내 건너편 도로를 바라보고 회전을 하던 버스는
운전대를 쥐고 있던 사람인지 좀비인지가 떨어져나왔는지 더이상 방향을 틀지 못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건너편 건물의 벽을 들이박으며 움직임을 멈추었다.
"진환아 저거 뭐야? 사람들이.."
"버.. 버스가.. 버스 안쪽이.."
퍼어어엉
내가 어버버거리면서 머릿속에 남아있는 지옥열차의 풍경 때문에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순간 퍼어엉 하면서 버스에서 2차 폭발이 일어났다. 저녁노을에 어두워지고 있던 우리들의 근처가 한순간에
밝아지며 우리들이 있는 곳의 건너편은 삽시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뭐.. 뭐야 저 차?"
수정형이 어이없는 얼굴로 폭발한 버스를 바라보고 있자 내가 말했다.
"안에서.. 사람들이랑 좀비들이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어요."
"나도 이제 알겠어."
태완이가 손가락으로 버스의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태완이의 손가락을 따라가보자 아까 시체들이 튀어나왔던 버스 뒷창의 구멍에서 불에 타고 있는
좀비들이 꾸역꾸역 기어나오고 있었다.
"히이익!"
그야말로 지옥도였다.
아름이의 비명과 함께 우리 넷은 마치 앞에서 일렁거리고 있는 화염에 홀린 듯 길
건너의 난장판을 쳐다보고 있었다.
수정형에게 어깨를 붙들린 채 멍하니 저쪽을 쳐다보고 있던 나는,
시야의 바깥쪽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걸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아까 버스 뒤쪽으로 튀어나왔던 시체들 중 몇몇이 자리에서 비척비척 일어나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는 수정형의 손을 어깨에서 뗀 뒤 태완이와 아름이의 머리를 한번 툭 치고,
아까 내가 내려놓은 짐 쪽으로 달려가 짐을 챙기며 말했다.
"빨리 뜨죠. 여기 있어봤자 좋을 거 하나 없으니까."
"어, 응."
수정형은 내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떼었다.
일렁거리는 불꽃을 등에 지고 우리는 반 전력으로 예전 아지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무슨 오멘(Omen)인가.. 정말로 기분나쁜 일이다.
나는 뛰어가면서 버스 안에서 있었을 일을 상상했다. 아마 저 버스는 어떤 생존자 그룹의 이동수단이었고..
어딘가로 이동하는 도중 안에 있던 부상자가 감염자였겠지.
그 자가 죽으면서 좀비가 되고.. 다음은..
얼마쯤 달렸을까, 그 거리에서 상당히 떨어진 우리는 헉헉거리면서 걸음을 늦췄다.
이제 우리집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뭘까, 아까 차는."
수정형이 말하자 태완이가 뒤를 흘낏 돌아보며 말했다.
"내 생각엔, 차를 구해서 위쪽으로 피난가려던 사람들중에 감염자가 있었던 것 같아요."
아까부터 계속 안에서 있었을 일을 생각하고 있다가 태완이의 말을 듣자 나는 내 상상에 대해 확신을 하며,
다음 순간 재복이를 구할 때의 일이 생각나 얼굴을 찡그렸다.
멍청한 인간들! 필시 하잘데기 없는 동정심으로 가망없는 인간을 억지를 부려 태운 뒤에 저렇게 된 거겠지.
"병신같은 새끼들.. 그냥 죽여버리란 말야, 감염자는!"
내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중얼거리자 수정형이 말했다.
"진환아, 그 말은 심하잖아."
"맞아요 오빠. 그 사람들도 이유가 있었을 텐데.."
"시끄러!"
내가 전에없이 소리를 지르자 두 사람은 깜짝 놀라 뒤로 한발짝 물러났다.
"둘 다 잘 들어요.. 앞으로 우리 그룹에서 감염자가 생기면 난 그자리에서 죽여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물론 내가 감염된다면 난 즉시 자살할거야."
"김진환! 갑자기 왜 그래!"
태완이가 외치자 나는 손가락을 쳐들고 씩씩거리다가 입술을 깨물고 잠깐 숨을 돌린 뒤 나지막하게 말했다.
"넌 사람을 안 죽여봐서 몰라."
"뭐?"
그때 나와 두 사람 말고는 서점을 죄다 뛰쳐나갔었다.
물론 태완이는 밖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었으니 내가 안에서 무슨 짓을 했었는지 모르겠지.
"이런 상황에서.. 동정하고 주저하는 건 죽음을 재촉할 뿐이야."
내가 눈을 치켜뜨며 앞으로 걸어나가자 세 사람은 영문모를 내 행동에 어깨를 으쓱하며 내 뒤를 따라왔다.
나는 빠른걸음을 하면서 그 냄새맡는 변종좀비..
그러니까 라디오에서 말한 '스니퍼'에게 뜯겨나간 귀를 만지작거렸다.
설마 이 상처로 내가 감염된 건 아니겠지.
알고 있었던 사람이 내 눈앞에서 다시 죽어간다면 난 정말 견딜 수 없을 것이다.
허나 내 눈앞에서 친구가 좀비로 변한다면 나는..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얼마 걷지 않아 우리들은 우리 집에 도달했다.
집으로 들어오는 골목 앞에 서서 쳐다보니, 마당 안쪽에서 가느다란 연기 한 줄기가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알아보는 순간 내 코에 고기 굽는 냄새가 느껴졌다.
아니, 걸지게 고기를 굽는 냄새라기보단.. 뭐랄까, 고기는 고긴데 말린 고기를 굽는.. 그런 냄새.
나는 킁킁거리면서 냄새를 맡다가 문득 스니퍼가 생각나 얼른 집으로 뛰쳐들어갔다.
이 멍청한 새끼들이 냄새맡는 좀비가 있는데 아지트 마당에서 육포를 구워먹고 앉았어!
"야! 문열어!"
내가 쾅쾅거리면서 대문을 두드리자 문이 얼른 열렸다. 문을 연건 재복이었다.
"여어! 어땠.."
나는 재복이의 말을 듣지도 않고 안으로 달려들어가,
내 예상대로 육포를 굽고 있는 작은 모닥불에 다가가 마구 발로 흙을 뿌렸다.
바로 옆에서 육포를 굽고 있던 윤호가 기겁하며 내가 뿌리는 흙에서 육포를 치우며 외쳤다.
"뭐해 병신아! 고기 굽는거 안보여? 너네 맛있는거 먹여줄려고 이 형님이.."
"너야말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런 짓 하지 마!"
"뭐?"
윤호가 뭔소리 하냐는 듯 나를 쳐다보자 나는 사그라든 불을 발로 바구 밟으며 말했다.
"냄새를 맡는 변종좀비가 있단 말이다, 돼지야. 그놈들이 어디 있을지 알아서 이런 짓을 해?"
"뭐, 진짜?"
재복이 옆에 서 있던 서영이가 외쳤다.
내가 한숨을 쉬면서 짐을 내려놓자 열린 문으로 다른 셋이 들어왔다.
재복이는 우리들이 모두 들어온 걸 확인한 뒤 대문 밖으로 고개를 빼 이리저리 살펴본 뒤
문을 조용히 닫고 빗장을 걸었다.
나는 뒤따라 들어온 셋을 확인한 뒤 짐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윤호에게 손을 뻗었다.
"이왕 구운거 먹자구. 내놔봐."
"자. 니가 흙 뿌린거다."
윤호가 킬킬거리면서 내게 구운 육포 하나를 내밀었다.
나는 코를 찡그린 뒤 육포를 집어들고 훅훅 불어서 위에 앉은 흙먼지를 털어낸 뒤 입에 집어넣고
잘근잘근 씹었다. 입에서 자연스레 침이 질질 흘러나왔다.
육포가 생각보다 쉽게 끊어지지 않자 나는 육포를 입에서 끄집어내고 흘러내린 침을 닦으면서 말했다.
"이재복, 그리고 서영이랑 에.. 나영누님. 윤호한테서 여러가지 들었어요?"
"어 뭐."
재복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윤호는 남은 육포들을 태완이, 수정형, 아름이에게 나눠주고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얘기보다 너네 얘기부터 해봐. 뭐가 어떻게 된 건지, 그리고 그.. 냄새맡는 좀비? 그건 뭐야?"
"아 그렇지.. 그게 낫겠다."
"냄새맡는 놈 뿐만이 아냐. 듣는 놈도 있어."
내가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육포를 다시 입에 집어넣자 태완이가 윤호 앞으로 불쑥 나서며 말했다.
나는 육포를 큼지막하게 떼어먹은 뒤 우리가 겪인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혜누나가 죽은 것부터 시작해 총을 얻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고개를 넘어가기 직전의 주홍빛 햇살이
한가닥 마당으로 내려와 내 눈을 찔렀다.
나는 눈을 찡그리며 손바닥으로 커튼을 만들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제길, 이사할 생각을 하니 깜깜하군.
17화-그날 밤
집으로 돌아온 뒤 수색조의 이야기와 정보전달이 끝나자 어느샌가 밤이 되어버려,
결국 바로 이사를 할 생각이었던 우리는 그 계획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세 가지나 되는 변종좀비,
그리고 감염된 동물 등의 위험이 있어 무리하지 않고 내일 출발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가 아지트 안에 있다고 해도 위험요소는 넘쳐날 만큼 많다.
우리는 여자들을 제외한 남자 다섯이 순서를 정해 망을 봐가면서 잠을 청하기로 했다.
당번은 둘. 이층에 서서 벽 바깥을 볼 사람 하나와 무너진 집 뒤쪽을 볼 사람 하나.
망을 볼 때의 순번으로 제일은 단연 제일 첫번째와 제일 마지막이다.
단잠을 자고 있는데 누가 도중에 깨우면 누구라도 짜증나는 것이 당연하니까 말이다.
그렇게 당번을 선 다음 잠을 자려고 하면 잠을 설치는 건 당연지사.
이걸 알고 있는 건 나뿐인지 망보기 순번을 뽑을 때 제일먼저 손을 든 건 나뿐이었다.
남은 녀석들은 가위바위보를 해서, 결국 나는 이층 망 보기, 가위바위보에 진 수정형이
집 안쪽으로 들어가 뒤를 보기로 했다.
찌리릭 찌리릭
"익.. 귀뚜라미."
나는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벌레라던가 더러운 것에 대한 면역력이 높았다.
바퀴벌레도 그냥 잡아서 내칠 정도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천적이 있었으니, 바로 거미와 귀뚜라미. 거미는 그냥 무섭고, 귀뚜라미는 그 뭐랄까..
바스락거리는 게 싫달까.
언젠가 손으로 귀뚜라미를 잡아죽인 적이 있는데, 그때 와사삭 으스러지면서 속에 있는 게 손바닥으로..
큭, 더 생각하기 싫다.
하여튼 그게 트라우마가 된 것 같았다.
나는 귀뚜라미를 발로 툭 쳐서 밀어내고 계단에 주저앉았다.
일단 좀비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 시야 바로 바깥에서 얼쩡대고 있을 놈들이 있을지 모를 일이고,
변종 좀비들이 나타난다면 사태는 순식간에 악화된다.
나는 침을 한 번 뱉고 양 볼을 짝짝 때렸다. 정신차려야지.
옛날엔 자주 여기에 걸터앉아서 시간을 때우곤 했는데 지금은 목숨을 건 정찰을 하고 있다니..
세상 참 모를 일이다. 나는 고개를 들어서 밤하늘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미국 가신 부모님과 동생은 잘 지내고 있을까?
밖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려는 사람들은 어떤 취급을 당하고 있을까?
"별은 하~ 나도 안 보이고.. 달도 거무튀튀한게 진짜 음산하구만."
나는 주머니에서 편의점에서 간식으로 가져온 초코바를 하나 꺼내 깨물어 먹었다.
한참 단맛에 빠져 침을 질질 흘리면서 간식을 먹고 있는데 계단 밑에서 누군가가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이 위쪽까지 올라오자 집 바깥의 가로등 빛이 얼굴에 비춰지면서 나는 그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름이와 나영 누님이었다.
"오오, 그래 남녀차별은 없어야지. 둘이 망좀 봐요. 나는 좀 자게."
내가 과장된 몸짓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뻗어 내가 앉았던 자리를 가리키자
둘은 킥킥 웃으면서 내 아래쪽에 걸터앉았다.
나는 진심이었는데 말이지.
우리가 정찰할 장소를 정하고 순서를 정하고 하는 동안 여자들은 마당 깊은 곳에 자리잡고
이미 잠을 청하고 있었다.
조금 일찍 잠이 든 탓인지 어째서인지 둘은 이미 잠이 깨어버린 듯 했다.
"너희들은 대단해."
나영 누나가 계단에 걸터앉으면서 말했다. 나는 초코바를 한 입 더 깨물어 먹으면서 말했다.
"..어가요(뭐가요)?"
"그렇잖아? 저 괴물들이 저렇게 돌아다니고 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바깥에 나갔다 들어오지를 않나, 또
밤에는 알아서 망을 본다고 하질 않나.. 나 같으면 엄두도 못 낼거야."
"맞아요. 진환오빠랑 다들 정말 대단해요."
"너도 같이 나갔다 왔잖니? 너도 대단해. 정말 대견해.. 같은 여자로서."
나영 누나가 자기 아래쪽에 앉아있던 아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아름이는 기분이 좋은지 누나의 손에 맞춰 고개를 흔들면서 배시시 웃었다.
"둘은 수정형이 도망쳐나오는 길에 만났다고 했죠?"
"응."
누나가 대답하자 나는 남은 초코바를 입에 털어넣어 버리고 말을 이어갔다.
"그럼 누나 사정을 들려줄래요?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아름이 이야기는 아까 들어서 아는데."
"으응.."
누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지 말끝을 흐리면서 고개를 숙였다.
난리통에 더러워진 검은 블라우스가 더욱 초라해 보였다. 나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 말하기 싫으면 말하지 마요."
"아냐. 괜찮아."
나영누나는 손가락으로 블라우스 끝자락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나는 남친이랑 데이트중이었어. 키도 크고 잘생긴.. 좋은 사람이었지."
나는 키가 작으니까 좋은 사람이 아닌가?
나는 괜히 다리춤을 만지작거리면서 이야기를 경청했다.
"대학로 아래쪽 골목에서였어. 길을 빠져나오고 있는데 더러운 몰골을 한 사람이 걸어나왔지. 물론 우리는 그
사람이 좀비였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 우리에게로 다가오는 그 사람에게, 남친은 나를
보호한답시고 그 사람에게 달려들어서 제압하려고 했지. 유도가 3단이거든, 그 사람."
누나는 손을 모아 코와 입을 가리면서 말했다.
"서서히 다가오는 그 사람을 내 남친이 몇 번 밀어냈는데도 계속 다가오니까, 화가 난 남친이 아예 들어서
메쳐버렸어.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에 좀비가.. 물어뜯었지."
나영누님의 이야기를 듣자 나는 퍼뜩 수정형과 다른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피신해 들어왔을 때,
한 사람이 '내 남친이 그것들에게..' 라고 하며 울부짖었던 것이 기억났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누군지 기억하지도 못했었는데.. 이 사람이었군.
누나는 파르르 떨면서도 침착하게 말했다.
"피가 마구 솟구쳤어. 한 순간에.. 그 사람은 나를 위해서, 목덜미를 물어뜯기고 있는데도 좀비를 마구
밀어냈지. 그리고 다시 물어뜯기면서 내게 외쳤어.. 도망가라고.. 도망가라고.."
누나는 감정이 북받혔는지 흐느끼기 시작했다.
아름이가 누나 옆으로 다가가 조용히 누나의 어깨를 감싸주자 누나는 울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나는 그 사람에게 아무것도 못 해 주었어.. 마지막까지 옆에 있어주지도 못 했어.. 그저 겁에 질려서,
도망가라고 그 사람이 소리치는 순간에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갔어.. 흑흑.. 훈씨.. 나 어떻게 해.."
이름이 '훈'인가 보다. 눈앞에서 자신과 친한 사람이 죽는 것을 본 사람에게는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까.
나는 착잡한 표정으로 누나를 내려다보았다.
누나는 몸을 숙이고 흐느껴 울고 있었고, 아름이는 누나의 등을 만져주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름이는 한참 누나를 어루만져주고 있다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럼 오빠는요..?"
아름이도 누나에게서 감정이 옮겨갔는지 눈시울이 붉었다. 나는 아름이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놀라서 말했다.
"뭐? 뭐가?"
"오빠는 어떻게 된 거냐구요."
나영 누님도 흥미가 일었는지 훌쩍거리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괜시리 뻘쭘해져서 말했다.
"나는.. 별거 없어. 운좋게도 가족들이 다 미국에 가 있어서 별로 손 갈 일도 없고. 나는 그, 체육관에 다니거든?
저 뒤에 있는데.. 거기서 운동하다가, 뉴스를 보고 알아차렸지. 그래서 근처에 있던 친구놈들.. 그러니까 윤호랑
태완이."
나는 거기까지 말한 뒤 잠깐 뜸을 들이고 계단 밑을 한 번 쳐다보았다.
윤호와 태완이는 모포를 뒤집어쓰고 잘 자고 있었다.
나는 녀석들을 보고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녀석들을 불러모아 집에 틀어박혀서 뻐팅기고 있던 중에 너희들이 들이닥친거야. 그리고 이렇게 됐지."
"이렇게 됐다니.."
나영누나는 내 얘기를 듣더니 피식 웃으면서 눈물을 닦았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구나. 이런 때에."
"이런 때일수록 밝게 나가야 살아남는 거라구요, 누님."
내가 낄낄 웃으면서 대꾸하자 둘은 실소를 터뜨렸다. 아름이가 내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저기, 그럼 다른 친구들은요?"
"다른 친구들? 으음.. 뭐 아직 많지. 하지만 난 보다시피 휴대폰도 없고, 있어서 연락이 된다 한들 녀석들을
하나하나 다 구하러 갈 수는 없는 일이잖냐. 뭐 마음같아선 다들 잘 있는지 알아보고 싶지만, 지금으로선
우리들이 안전해지는게 먼저야."
나는 옆에 늘어뜨린 식칼창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지금 우리 그룹은 나와 윤호, 태완이를 중심으로 뭉쳐져 있어. 그리고 이 아지트는 내 집. 최고 중심은 나야.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간지럽다만.. 그래도, 그렇게 팀의 가운데에 있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보고 싶다고
철없게 날뛴다면 우린 죽어. 백 퍼센트. 그래서 참고 있는거야. 믿고."
나는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그만큼, 알고 있는 녀석들과의 친분은 남다르다.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서부터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녀석들이 한 둘이 아니지만,
지금 우리들의 그룹이 이렇게나 불어난 이상 녀석들을 찾기 위해 무작정 달려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적어도 차만 있었어도..
나는 태완이가 말한 계획을 되뇌이며 이를 꽉 물었다.
그래, 지금의 우리에겐 이동수단이 절실하다.
잠깐 화제가 끊겨버렸다. 머쓱한 침묵을 지키고 있던 나는 나영누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영누나."
"응?"
누나는 아직도 눈시울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저도.. 이태까지 버티면서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봐 왔어요. 누나의 남친.. 그러니까 훈 형은 분명 좋은 곳에
가셨을 거예요. 자기 애인을 위해 목숨을 내던진 사람이니까 틀림없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돼요. 적어도, 누나를 위해 목숨을 내던진 형의 목적을 이루어 준 거니까."
다시 한번 애인 생각이 났는지 누나의 볼에서 눈물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하지만 내 말을 듣고 조금 기운이 났는지, 누나는 눈을 한 번 질끈 감고 눈물을 닦아낸 뒤 살짝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천만에요."
누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둘다, 날 위로해줘서 고마워. 난 그만 다시 자러 갈게. 울었더니 피곤해."
"그러세요. 깊게 자는 게 좋을거예요. 내일 힘들테니까."
"응."
누나는 조용히 아래로 내려갔다. 누나가 내려가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는 아름이에게 내가 말했다.
"넌 안 내려가? 너도 자 둬."
"저기.. 오빠."
아름이가 내게 말하며 엉덩이로 계단을 하나 올라와 앉았다. 나는 손으로 턱받침을 하며 말했다.
"또 뭐?"
"이런 얘기 자꾸 해서 죄송한데요.."
아름이는 잠깐 뜸을 들이더니 말했다.
"저희.. 아니, 우리나라, 괜찮은 거겠죠? 벌써 세계가 멸망했다던가, 그런 건 아니겠죠?"
나는 얘가 갑자기 뭔 소리야 하는 얼굴로 녀석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녀석은 진심으로 보였다.
나는 한숨을 쉰 뒤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을 거야. 아니, 적어도 우리는. 세상이 멸망해도 살아남을테니까, 넌 그렇게만 알아 두고 잘 따라오면 돼."
"정말요?"
"정말이야. 태완이가 말했었지? 앞으로 우린 하나라고. 절대 살아남는다. 우린."
내가 정색하며 말하자 아름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역시, 오빠는 믿음직해요."
"세상에 믿음직한 사람 다 죽었겠다."
내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아름이는 그 말을 듣고도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저도 내려갈게요."
"오야."
아름이는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나를 다시 돌아보며 말했다.
"저기.."
"하아.. 뭐 또."
"조심해요. 오빠."
"너야말로 내려가다가 넘어지지나 말거라."
아름이는 내 대답을 듣고 아래로 내려가 여자들이 눕는 곳으로 들어갔다.
다시 혼자인가..
나는 근처에 두었던 무기들을 점검한 뒤 다리를 꼬고 고개를 올려 다시 밤하늘을 쳐다보았다.
이럴 때 담배라도 있었으면 뽀대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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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아아아앙-
부산의 어느 해변.
밤 공기에 녹아들기라도 한 듯한 검은색의 보트 한 척이 빠르게 해변으로 가로질러왔다.
때는 한여름이나 지금 한국 전체에 퍼진 경보발령으로 인해 이런 피서지에 사람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보트는 해변가로 다가와 멈추었다.
멈춘 보트에선,
역시 검은색의 옷을 입은 두 백인 사내가 길다란 검은 백 하나를 짊어지고 해변가로 내려오고 있었다.
"Dude, do we have to do this? This is too much, man.(이봐, 우리 이 짓을 진짜 해야 하는 거야?
너무하잖아.)"
"Shut up and just throw this thing out.. We'll get paid, that's all I care.(입닥치고 그냥 이걸 내리기나 해..
돈을 받으니까. 난 그것만이 중요해.)"
그들은 해변의 가운데까지 다가와, 아직도 세워져 있는 어느 파라솔 앞까지 다가와
그들이 짊어지고 있던 검은색 백을 내려놓았다.
그들은 그 백의 지퍼를 끝까지 연 뒤, 그것을 내버려두고 부리나케 그들이 타고 온 보트로 돌아갔다.
부아아앙-
요란한 소리를 내며 보트가 해변에서 사라진 뒤, 해변엔 정적만이 감돌았다.
그리고 10분이 채 안 되었을 때였다.
조용한 해변가에 사람이 셋 나타났다. 건장한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가벼운 복장으로 슬리퍼를 질질 끌며 모래밭을 걸어왔다.
"야.. 통금 났는데 이래도 돼냐?"
"통금은 개뿔! 무슨 좀비네 어쩌네 하는데 웃기지도 않는다 야. 우리 동네엔 그딴거 코빼기도 안 보여. 어저께도
보니까 어떤 꼬맹이가 문방구 앞에 앉아서 오락하고 있더라. 백프로 안전하니까 걱정마셔."
"아~ 그나저나 그 난리통에 해변가에 사람이 하나도 없어졌잖아. 이때쯤 깔치를 하나 껴야 무더운 여름은 더욱
뜨겁게 보낼 수 있을텐데 말이지."
셋은 키득거리면서 해변을 걸었다.
아마 근방의 젊은이들인 모양이었다.
그들은 천천히 밤바다를 걷다가 아까 보트에서 이름모를 두 사람이 내려놓은 검은 백 근처에 도달했다.
그들 중 한 명이 그것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야 저거 뭐냐?"
"어?"
그들은 파라솔 아래로 다가갔다.
그들이 채 그곳까지 가기 전에 갑자기 그 검은 백 안에서 사람이 한 명 부스스 일어났다.
"어어?"
"사람이다. 그럼 저거 침낭인가봐. 여행하는 사람인가? 이런 때에."
그들은 호기심에 그 사람에게 다가갔다.
검은 백 안에서 일어난 사람은, 그들이 다가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날 따름이었다.
"어이 아저씨! 요즘 이런데서 자면 잡혀요."
"우리집 민박하는데 와서 자죠? 싸게 해줄게."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 사람은, 천천히 세 청년들에게 다가갔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그 사람에게 이유모를 두려움을 느낀 셋은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어.. 어이 앗씨! 뭐예요 지금? 우리 게이 아니예요!"
"야 좀 이상한데.."
"아 신발 뭐 어때! 저런새끼 하나 못이길까봐? 어이! 깝치면 뒤져!"
셋 중 조금 기가 세 보이는 청년 한 명이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뒤쪽에 있던 청년 둘의 얼굴에 검붉은 액체가 튀며 해변가에선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끄아아아악!!"
점점, 사태는 악화되고 있다.
최후의 생존까지, 이제 29일-
..혹은, 3일!
**외전2**
김 진환
나이 - 19세
키 - 172cm
체중 - 57kg
취미 - 게임, 격투기(수련, 관전), 만화보기(책으로만)
특기 - 나이프 던지기, 그림그리기
좋아하는 것 - 볶음밥류, 김 빠진 콜라
싫어하는 것 - 귀찮은 것, 귀뚜라미
소중한 것 - 딱히 없음. 가족?
무기 - 손도끼, 자작 식칼창, 스로잉 나이프
주인공입니다.
속을 알 수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 조금 특이한 녀석이죠.
빈둥거리길 좋아하는 귀차니스트지만 격투기를 좋아하는 등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변하는 마이페이스.
별탈없는 학생시절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갈 예정이었으나 예정일을 앞두고 좀비사태에 발목이 잡혀
동네에서 농성중.. 이라는 설정이죠.
웬만한 일에는 별로 놀라지 않는 침착형입니다.
글중에선 밝히지 않은 사실이지만 미대지망생입니다.
김 빠진 콜라를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김이 찬 콜라를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라고 본인이 말하네요. 하하..
김 윤호
나이 - 19세
키 - 175cm
체중 - 81kg
취미 - 게임(주로 진환과 맞춰서 함), 인터넷 서핑
특기 - 유(流)계 무술(유도, 합기도 등), 수학(다른 과목은 젬병)
좋아하는 것 - 라면, 동네에서 파는 5500원짜리 치킨
싫어하는 것 - 싸움, 더러운 것
소중한 것 - 여자친구
무기 - 쇠빳다
주인공 진환의 몸이 통통한 베스트 프렌드입니다.
대학에서 갈라지기 전까진 서로 떨어져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을 정도로 친한 사이죠.
엄청난 낙천가로 우울함에 빠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여자에겐 쑥맥이라 맞선보기 전까지는 여자 근처에도 못 갈 놈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어쩐 일인지 여자친구를 get! 여친과 사귀고 1년이 되는 해 좀비사태를 맞이했다는 불행한 스토리가..
소중한 사람들과 모두 연락이 끊어져 속으로는 대단히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말이죠. 유도, 합기도 유단자지만 싸움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좀비는 퍽퍽 잘만 죽이면서.
김 태완
나이 - 19세
키 - 165cm
체중 - 49kg
취미 - 검도, 독서, 영화감상
특기 - 검술, 공부
좋아하는 것 - 정크푸드, 초밥
싫어하는 것 - 범죄자
소중한 것 - 자신의 랩탑, 애도(愛刀) 진검 정도(正道)
무기 - 검, 목검
일반적으론 그저 체구가 작은 범생이..
허나 속은 철학이 있는 검도가! 진환, 윤호와는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와 절친한 사이입니다.
공부에선 엘리트가도를 달려 순조롭게 S대에 들어갔죠.
대학에서 딱딱한 친구들과 만나다가 질려 옛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좀비사태에 걸려
진환의 집에서 피신중이라는 설정입니다.
집에 자신의 보물들을 두고 와 매우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참모형.
이 수정
나이 - 22세
키 - 179cm
체중 - 79kg
취미 - 음악감상(주로 팝), 기타치기, 레이싱 관전
특기 - 정물화 그리기, 사격
좋아하는 것 - 돈까스, 필라프
싫어하는 것 - 피가 난자하는 고어한 영화 혹은 게임 등
소중한 것 - 고등학생때 장만한 스쿠터(이름은 제리)
무기 - 권총 등
생존자 그룹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수정형님입니다.
처음 등장할 때 찌질하게 굴어서 몇몇 독자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죠-_-;
지금은 꽤 믿음직해졌으리라 믿습니다.
첫 스토리 구상 때에는 불량한 이미지였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착한 형이 되어버렸네요.
H대 미대에 재학중이고 늦게 군대에 가려다 좀비사태 때문에 못 가게 되었습니다.
무기제작이나 운전 등 특기가 많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론 조금 겁쟁이.
자기 애마가 있고 레이싱 감상을 주로 하는 기계류에 관심이 많은 청년입니다.
미대쪽이 틀어지면 공대로 가려는 생각도 있다는데..
제리를 애인 이상으로 아끼는지라 구하러 가지 못해 무시 슬퍼하고 있습니다.
김 아름
나이 - 17세
키 - 155cm
체중 - 44kg
스리사이즈 - B 76 / W 53 / H 80
취미 - 만화보기(주로 일본 애니), 뎃셍
특기 - 정물 뎃셍, 만화그리기
좋아하는 것 - 떡볶이(치즈가 들어간 것), 아이스크림
싫어하는 것 - 공포에 관련된 것, 성범죄자
소중한 것 - 어렸을때부터 써 온 몽당연필들을 모아 붙혀놓은 것(본인은 연필울타리라 부르고 있다)
무기 - 타정총, 기타 잡동사니(확실한 건 미정)
네. 압니다.
갑자기 웬 스리사이즈냐고-_-;;
하지만 여자의 프로필을 하는 이상으로선 필수불가결 요소죠..
그냥 평범한 여고생입니다.
일본 애니메를 좋아하고 길거리음식을 좋아하는 미대입시생..
'평범함의 이상' 에 다가서 있는 여자아이.
겁이 굉장히 많아서 팀에 짐이 될 정도이지만 살려는 의지가 있으니 어떻게든 되겠죠.
얘를 장거리로 살릴까 근거리로 살릴까 고민중입니다.
진환이나 수정형님보다 정물화 등 정통미술은 딸리지만 만화는 잘 그립니다.
이 재복
나이 - 19세
키 - 175cm
체중 - 70kg
취미 - 온라인 RPG 게임, 소설읽기(주로 판타지)
특기 - 만렙찍기
좋아하는 것 - 꽁치 김치찌개
싫어하는 것 - 인터넷이 끊어지는 일(?)
소중한 것 - 여자친구, 게임아이템들
무기 - 미정
재복이입니다.
주인공 일행과 절친한 사이로, 이놈을 구하려고 주인공 일행이 죽다 살아났건만
아직까지 별 활약이 없는 녀석. 여자친구를 달고 있어서 그런지 더욱 작가를 귀찮게 합니다..
만 유니크한 설정이므로 조만간 큰일을 맡을 녀석이죠.
이제 이사하고 다들 활동이 활발해지면 이놈도 뭔가 하겠죠.
보시는대로 게임쟁이입니다.
학생때도 PC방에서 살다시피 한 녀석..
지금은 대학 재학중이라 좀 덜합니다. 자제중이죠.
여친도 있고. 프로필에는 안 적혀있으나 복싱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나름 체력이 있죠.
이 녀석이 아직 활약을 하기 전이라 무기란에는 편의상 미정이라 적어놓았습니다.
사실은 정해져 있어요.
신 서영
나이 - 19세
키 - 158cm
체중 - 44kg
스리사이즈 - B 80 / W 54 / H 83
취미 - 개그쇼 녹화해놓기
특기 - 성대모사
좋아하는 것 - 씨리얼(말린 과일이 들어간 것)
싫어하는 것 - 바퀴벌레, 쥐
소중한 것 - 남자친구, MP3
무기 - 미정
재복이의 여자친구입니다.
활달한 성격의 여자아이죠.
첫인상은 조금 건방지다는 느낌이 들수도 있지만 남자친구에게 음식도 잘 해주는 등 자상한 면이 있습니다.
뭐 역시 평범하죠.
씨리얼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정말 하루에 한 끼는 반드시 씨리얼을 먹는다나 뭐라나..
새 MP3를 사서 하늘로 날아갈 정도로 행복해하고 있었는데 난리통에 잃어먹었습니다-_-;
비하인드 스토리랄까.
얘 역시 아직 활약을 하지 않아서 너무 주절주절 늘어놓다가는 재미가 반감되니
그냥 일반적인 이야기만 하고 접어두겠습니다.
고 나영
나이 - 23세
키 - 166cm
체중 - 48.5kg
스리사이즈 - B 84 / W 55 / H 88
취미 - 커피에 관한 것(종류별 원산지 조사, 만들기, 마시기, 숨겨진 가게 조사..)
특기 - 지점토 공작
좋아하는 것 - 에스프레소와 베이글
싫어하는 것 - 인삼맛 사탕
소중한 것 - 직접 마련한 3가지의 커피 블렌더
무기 - 미정
살아남은 누님입니다.
나이가 제일 많죠..
뭐 수정형님과 1살차이이지만 많은 건 많은 거니까.
보시는 대로 커피매니아고, 몸매가 죽입(퍽).. 멋집니다.
얼굴도 B+급! 여자치곤 키도 꽤 큰 편이죠.
H대 미대 조형과에 재학중이고 꽤 유망한 학생이었습니다.
본편에서 나온대로 멋진 남친도 있었찌만 좀비사태중에 결별..
아직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될까요.
하하. 만약 일반적인 소설에서 나왔다면 멋진 누님 역할을 맡을만큼의 스펙입니다.
젠장, 근처에 이런 누님 한 명 있다면 대시해볼텐데.
일단 여기까지가 현재 생존자 그룹의 프로필입니다.
차후 다시 업뎃될 예정이구요. 뭐 무기라던가..
한가지 밝혀둘 것이 있는데, 등장인물들 중 대부분은 작가와 실제로 아는 사이의 실존인물들입니다.
친구들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죠.
프로필도 거의 사실에 기초를 두어 만들었습니다.
물론 어느정도 과장을 하거나 사실이 아닌 능력들도 집어넣어 주었습니다.
소설에 써먹어야 하니까요.. 하하.
앞으로도 꽤 늘어날텐데, 확실히 말해두지만 주인공급 등장인물에 대한 의견은 받지 않을 겁니다.
이미 다 정해져 있거든요..
다만 저번처럼 외전에 쓴다던가 엑스트라로 쓴다던가 할 수는 있으니 너무 부담갖지는 마시길.
제일 환영인 아이디어는 무기입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주인공들의 무기가 정해져있으나 좋은 의견이 있다면 바뀔수도 있죠!
하나 말해두자면 주인공 단짝 윤호의 무기가 엄청난 것으로 바뀝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핫핫핫.
에에, 다음은 뒷배경 이야기로군요.
시대적 배경은 현대입니다.
뭐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보다 조금 전.. 그러니까 약 2003년 정도.
하지만 뭐, 헷갈릴수도 있으니 너무 태클걸지는 마시길. 소설이잖습니까. 즐기자구요. 헛헛..
글중에 나오는 지역들은 다 실제를 바탕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나오는 지명이라던가, 동네 이름이라던가, 어떤 일들의 배경으로 나오는 건물들의 모습까지도.
마포구 사시는 분들께선 흥미 있으시다면 가보시길.
서교동 TGI FRIDAY 정면 건너편 블록 카센터 골목 안에 정면의 집입니다.
힌트는 오리구이집 골목 안쪽.. 참고로 철대문은 수년전에 없앴습니다. 이층집입니다.
18화-다짐
"안돼!!"
온 힘을 다해 무기를 휘두르며 손을 뻗는다. 하지만 닿지 않는다.
콰지지직
내 바로 눈앞에서, 목이 없는 윤호와 태완이의 몸이 쓰러진다.
그리고 녀석들의 시체 밑에는 다른 이들의 처참한 시체가 깔려있다.
지킬 수 없다.
그저, 바라만 볼 뿐.
"아아아아악!!"
나는 무기를 내팽겨치고 뒤로 도망가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앞은 막혔다. 뒤도 막혔다. 양 옆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으.. 으아아! 저리가! 저리.. 끄아아악!!"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목덜미가 뜯겨져나가는 걸 느끼며.. 나는 온몸이 썩은 시체들에게 둘러쌓여 쓰러진다.
다리를 몇 차례 떨고.. 코와 귀와 입에서 피를 흘리고.. 눈이 돌아가고.. 그리고.. 떨던 몸을 멈춘다.
그래.
나조차도..
먹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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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나는 숨을 삼키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간 확 하며 차가운 새벽녘의 공기가 느껴지자 나는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미친듯이 둘러보았다.
나는 아까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어지러워하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모포를 덮고
조용히 자고 있는 태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정신을 차렸다.
꿈이다.
"하아.. 하아.."
나는 숨을 몰아쉬면서 손을 땅에 대고 몸에서 힘을 뺐다.
얼굴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그대로 조금 쉬고 있다보니 몸이 살짝 떨리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손을 얼굴 앞으로 들어서 쳐다보며 떨림이 멎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몸의 떨림은 그리 쉽게 가시지 않았다.
나는 그 손으로 주먹을 꾹 쥐었다.
젠장맞을 꿈이군.
여름이지만 새벽공기가 꽤 차가웠다.
잠이 싹 달아난 나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끼며 모포를 걷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계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햇볕이 살짝 저편의 구름에 비치는 걸 보니 대략 새벽 4시 반 정도나 5시쯤 된 것 같았다.
늦게 잠들었기에 더 오래 자야 피곤이 풀릴 거라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아까의 꿈 생각을 하니
다시 자리에 누울 엄두가 나질 않았다.
엉거주춤하게 일어난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위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깼냐?"
"..어."
보나마나 김윤호다.
태완와 재복이가 중간에 일어나서 망을 봤고, 아침까지 아무 일이 없으면 윤호 혼자서 망을 보기로 했으니..
나는 기지개를 편 뒤 내 모포를 태완이 위에 덮어버리고 다리를 털며 몸을 풀었다.
"아무 일도 없지?"
"없으니까 니 목이 붙어있지."
"새끼.."
나는 자연스레 무기를 집어들었다.
어디 전쟁에 나갔던 군인도 아니면서, 요 사나흘간의 처절한 경험은 이미 내 몸을 이렇게까지나
길들여놓고 있었다.
나는 식칼창과 손도끼를 덜걱거리며 위로 올라가 윤호가 앉아있는 곳 아래에 걸터앉았다.
내가 녀석에게 말을 걸려는 순간 윤호가 나를 불렀다.
"야."
"뭠마."
내가 바로 대꾸하자 윤호는 발끝을 깔짝거리더니 말했다.
"뭐 먹고 싶냐?"
윤호는 뭔가 심각한 말이 있을 때 항상 뭐 먹고 싶냐라는 물음을 던지곤 했다. 나는 별 생각없이 말했다.
"뼈해장국. 우거지 졸라 많이 넣고 들깨가루 한 바케스 쏟아서."
"나는 순대국. 밥 두공기랑 옆에 간 한접시 두고."
"..."
"..."
서로 그렇게 말을 교환한 뒤 잠시 우리는 침묵을 고수했다.
잠시 뒤, 윤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중간고사 기말고사 끝나고 맨날 피시방 갔잖아."
"어."
"끝나면 길에서 튀김먹고."
"1000원어치. 니랑나랑 500원씩. 가끔 지열이 껴서."
"그리고 집에 갔다가도.. 몇시간 있다가 다시 모여서 순대국 먹고."
"가끔 주인할머니 오면 소주 먹고."
나는 윤호가 한 말에 하나하나 덤을 붙혀주었다.
윤호는 거기서 말을 끊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뒤통수에 녀석의 한숨이 느껴졌다.
"씨바."
윤호가 욕을 내뱉었다. 언제나같은 욕 한 마디였지만, 그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살고 싶어."
윤호의 나지막한 한 마디를 듣자 아까 꾼 꿈이 기억나 순간 섬찟한 느낌을 받고 나는 녀석을 올려다보았다.
녀석은 몸을 축 늘어뜨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내가 쳐다보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이 그대로 입을 열었다.
"우리 괜찮겠지."
나는 녀석을 쳐다보던 고개를 도로 돌리고 벽 너머로 보이는 길을 쳐다보았다.
한순간 머릿속에 머리가 잡아뜯겨 내 앞에 떨어진 뒤 좀비들에게 뜯어먹히는
윤호와 태완이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이를 악물었다.
"괜찮아야지."
내 말은 확신이 아니었다.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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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다 쌌지?"
"어."
멍하니 계단에 앉아있던 윤호와 나는, 어느샌가 잠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싸기 시작하는 일행들 사이에
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과 몇시간 전에 그런 꿈을 꾼지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며 이리저리 움직이는 일행들을 보니
그렇게 안심이 될 수가 없었다.
그래, 꿈은 현실과 반대라는 말도 있다.
꽁하고 있어봤자 혼자 수명만 줄일 뿐이다.
"진환아, 무슨 일 있어?"
내가 가방을 매지 않은 채 멍하니 있자 나영누님이 옆에 와서 말했다.
나는 퍼뜩 놀라 가방을 들쳐멘 뒤 웃으며 말했다.
"암것도 아녜요."
"흐응.. 그러면 됐어. 오늘 이사하는 거, 너희들만 믿을게."
누나는 그렇게 말하고 손을 흔들며 내게서 멀어졌다.
"자~ 준비됐으면 가자구! 모두들 무기 점검해."
대문에서 태완이가 팔을 흔들며 모두에게 말했다.
나는 무기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식칼창과 손도끼를 손으로 더듬었다.
혹시라도 저번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까 해서 이번엔 비도까지 확실하게 준비해 두었다.
윤호와 태완이, 수정형은 언제나처럼 각자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
새로이 밖으로 나가는 재복이와 서영이는 각자 나와 윤호, 태완이가 우리 도장에 갔었을 때 만든
간이 나이프 창을 들고 있었고, 재복이는 특별히 목도를 가방에 끼워두고 있었다.
아름이 역시 내가 외출시 빌려주었던 식칼창을 대용할 간이 나이프 창을 들고 있었고,
나영누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좀비를 견제하기엔 그만한 무기가 없다고 윤호가 누누히 말한 덕에 모두들 자발적으로
무기를 만들어 자기에 맞게 조정한 것이다.
"다시 한 번 대열 체크! 어제 말한대로, 남자들이 앞뒤와 옆을 막고, 여자들이 안쪽에 서는 거야! 그리고
여자분들, 물품은 중요하지만 생명이 위급할 땐 가차없이 버리도록 해요!"
어저께 상의하에 정한 대열은 방금 태완이가 말한대로 최선두에 나와 태완이, 뒤로 재복이,
그 뒤로 여자들 셋이 주요 물품들을 운반하고, 윤호와 수정형이 뒤.
일행이 더 많다면 옆을 커버할 사람도 있었겠지만, 뭐 어떠냐.
들판을 가는 것도 아니고 골목길에선 이정도라도 벅차다.
사실 나와 태완이 뒤에 서는 재복이가 왔다갔다 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별로 상관은 없지만.
"저기.."
내가 대문 근처에 서서 입을 열자 모두들 나를 쳐다보았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다들 잘 버틸 수 있을거야. 어제 우리가 말한 내용에선 좀비사태가 실제로 무리가 되어
북상을 하고 있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건 나중 일이고.. 지금의 우리로선 길거리에서 만나는 한두마리로도
벅차니까 말야."
나는 우리 집을 올려다보며 말을 계속했다.
"뭐 말이 길어졌는데, 내가 하고싶은말은.. 죽지 말자는 거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손을 내밀었다.
대부분이 내가 내민 손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데 윤호가 훌쩍 앞으로 뛰어나오며
내 손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그깟 좀비새끼들, 저능아 병신들이지."
내 옆에 서 있던 태완이도 그 위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살아남자."
태완이가 말하기가 무섭게 다들 내 주위로 모여 각자의 손과 손을 곂치며 한마디씩을 던졌다.
"엄마아빠를 다시 볼 날 까지."
"제리를 볼 날 까지."
"무슨 소리예요?"
"서영이와 영원히."
"재복이랑 영원히!"
그리고 잠시 조용해지자 우리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손을 위로 뿌리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는 대신 우리 집을 다시 한 번 올려다보았다.
다시 볼 날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군.
"자.."
나는 대문을 열고 나가며 말했다.
"살기위해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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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장님. 이거.."
"뭔가."
"위성사진입니다."
수많은 기계들이 돌아가고 있는 어느 방의 구석.
두꺼운 헤드폰을 거꾸로 쓰고 한 손은 기계에, 한 손은 귀에 댄 채 여기저기를 만지는 사람들이
가득한 계기판으로 만들어진 이 방은, 영락없는 한 나라 군대의 정보부의 어떤 방임에 틀림없었다.
일반인들은 평생가도 보기 힘든 '별' 을 달고 있는 한 떡대좋은 남자는 부하가 들고 온 사진 몇 장을
차례대로 넘기며 훑어보더니 안색이 창백해지며 말했다.
"어딘가. 이건."
"부산입니다."
"뭐? 이런 망할!"
콰앙
그는 품위있어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험한 말을 내뱉으며 벽에 주먹을 내질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모르겠습니다."
"빌어먹을.. 이 나라 방위시스템은 어떻게 되어 처먹은 거야. 국내에서 이런 일이 자연스레 발생할 리가 없단
말이다!"
그는 사진들을 바닥에 던져버린 뒤 뒤쪽 벽으로 다가갔다.
뒤쪽엔 남한의 확대지도가 걸려 있었다.
그는 품속에서 지휘봉을 꺼내 부산을 가리켰다.
"부산.."
그리고 그는 그걸 그대로 죽 그어 경상남도까지 연결하는 듯한 동작을 취했다.
"경상남도."
그리고 그는 살짝 지휘봉을 뗀 뒤 인천과 서울 중앙을 찍었다.
"수도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돼."
그는 투덜거리면서 자기가 던진 사진들을 주워모으고 있던 부하에게 말했다.
"정 하사. 그 사진 제출하고, 부산 해역대에 무인카메라나 위성사진을 조사해 보게. 빠짐없이."
"알겠습니다!"
이곳은 군대의 중앙부.
하극상이나 말대꾸는 허용되지 않는다.
정 하사라고 불린 군인은 경례를 붙인 뒤 저벅거리는 군화소리를 내며 방을 빠져나갔다.
준장은 지휘봉을 품에 집어넣고 아까 자기가 지도에 대고 그렸던 선을 다시금 손가락으로 그려본 뒤 말했다.
"절대 내륙에서부터는 아니다. 해안에서 새로운 감염이 시작되었다는 건데.. 지금 수도권 외 감염지역의 경비
태세는 완벽하다."
그는 잠시 턱에 손을 대고 생각하더니 말했다.
"육군만으로는 안 되겠군."
최후의 생존까지, 29일-
..혹은, 사흘!
19화-불청객
쿠르르릉
멀리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
거대한 도시의 한복판도 아니건만 뭔가 거대한 빌딩이 무너질때나 날 법한 소리에 우리들은 모두 긴장했다.
그룹 사이에 긴장의 끈이 팽팽하게 조여지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정도로.
필시 어딘가의 건물이 저번 폭격에 의해 망가져 있다가 풍화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졌으리라.
"무슨 우리동네가 북두의 권에 나오는 세기말 도시도 아니고.."
나는 궁시렁거리며 식칼을 앞으로 드리운 채 발을 옮겼다.
하지만 다른 녀석들은 농을 던질 여유가 없는지 묵묵부답 내 뒤를 따라올 뿐이었다.
우리가 집에서 나온 지 약 10분정도가 지났다.
혼자서라던가 두세명이었더라면 벌써 편의점까지 반은 왔겠지만 일행이 많은데다
경계에 경계를 거듭하고 있는 상태다보니 우리의 움직임은 더딜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우리들은 여기까지 오면서 단 한마리의 좀비와도 싸우지 않았다.
다만 마주쳐도 피해갔을 뿐..
녀석들이 우리의 시야에 들어올 때 마다 그룹 가운데의 여자들이 심하게 동요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직 좀비에게 단 한번도 무기를 휘둘러본 적이 없는 재복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후, 후우우.."
깊게 심호흡을 하는 소리와 함께, 재복이가 들고 있는 쇠파이프가 덜덜 떨리는 것이 곁눈으로 보였다.
내가 그 쇠파이프를 손으로 꽉 쥐자 재복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정신 바짝 차려. 적어도 서영이는 니가 지켜야지."
"그.. 그래."
재복이는 온 몸에 잔뜩 열이 올랐는지 거의 눈에 핏발이 선 것이 보일 정도였다.
하기야 엄청난 부담일 것이다.
첫 싸움이 모두를 지키는 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
나는 우리가 집밖으로 처음 나섰을 때 겨우 한 마리의 좀비에게 몰살당할 뻔했던 일을 떠올리며 입을 삐죽였다.
뭐 나라고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다른 이들보다 아주 조금 더 두렵지 않을 뿐.
그건 나뿐만이 아니라 윤호, 태완이, 수정형도 모두 같을 것이다.
녀석들은 우리를 확실히 죽일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좀비다."
나와 나란히 선두에서 걷고 있던 태완이가 나지막히 말했다.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곳은 양 쪽이 집과 벽으로 둘러쌓여 있는 골목의 큰길.
빠질 길은 없지만 그렇다고 녀석을 꼭 죽여야 하는 것도 아니다.
기척을 내지 않은 채 피해 갈 수만 있다면.
나는 시야를 조금 넓혀 놈의 뒤를 보았다.
금방 골목을 빠져나가는 길이 보였고 그 앞엔 큰길이 보였다.
십자의 교차로였다.
"어쩔까?"
"돌을 던져서, 달리는 놈이면 카운터로 박살. 찌질이면 가서 죽인다."
그냥 지나치기엔 위험부담이 조금 크다.
장거리 무기가 있어서 한방에 끝낸다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수정형은 지금 총을 봉인한 상태고,
또 이런 놈 하나를 상대로 귀한 총알을 낭비할 수도 없는 일.
그렇다고 타정총을 쓰기엔 거리가 좀 애매하다.
확실히 처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
그냥 우리가 나서서 확실히 제거하는 수 밖에.
나는 돌을 집어들며 말했다.
"다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긴장풀지 마."
내 말을 들은 모두가 척 하며 여차할 때 일어날 사태에 대비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 느껴졌다.
나는 간결한 동작으로 돌을 녀석의 가슴팍에 던졌다.
탁
놈은 뒤로 살짝 비틀 하더니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으음, 이래서는 잘 모르겠는데.
"직접 가서 봐야하나.. 썅."
나는 혀를 차면서 식칼창을 꽉 움켜쥐었다.
태완이와 내가 움찔움찔 하며 놈에게 다가가고 있는데 갑자기 웬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아!!"
"어?"
"사람이다!"
소리도 소리지만 더 놀란 건 우리들이었다.
눈앞의 좀비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가 갑자기 들려온 어떤 여자의 비명소리에
우리들은 순식간에 우왕좌왕거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가 아까 주시했던 건너편의 교차로에서 분명히 한 꼬마가 마구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런너 한마리가 녀석을 미친듯이 쫓아가고 있었다.
중간에 한 번 넘어졌는지 놈은 스스로의 몸을 가누지 못하고 굴렀다 넘어졌다 기었다 달렸다 하며
꼬마의 뒤를 쫓고 있었다.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어이! 여기로 와!"
나는 내 불과 몇걸음 앞에 좀비가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흔들며 녀석을 소리높여 불렀지만
그 애는 들리지 않는지 앞의 차도에서 마구 맴돌며 좀비를 떨쳐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에에이, 답답해!"
퍼까앙
순간, 내 옆으로 뭔가가 확 지나가더니 홈런을 칠 때나 들었을 법한 요란한 소리가 울러퍼졌다.
윤호가 앞으로 달려나가 멍하니 있던 좀비를 쇠빳다로 날려버린 것이다.
윤호녀석이 흥분했던 탓인지 머리를 제대로 부수지 못한 듯, 윤호에게 얻어맞은 좀비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제길! 너란 놈은!"
"우오오!"
퍽퍽퍽퍽
그 광경으로 보고 바로 앞으로 달려나간 나와,
주저하지 않고 마무리를 지으려 방망이를 휘두른 윤호의 협공에 그 좀비는 누더기가 되어 땅에 널브러졌다.
사방에 피가 튀어 난장판이 되자 뒤에 있던 친구들 중 몇몇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않고 바로 앞으로 뛰쳐나갔다.
"뭐해! 저 꼬마 죽겠어!"
"맞아! 다들 뛰어!"
"씨바, 죽기 아님 까무러치기다!"
금방까지만 해도 조용히 이동했던 우리는 억눌려있던 두려움을 떨쳐내기라도 하듯 정신없이
소리를 치며 각자 무기를 치켜들고 짐을 진 채 차도로 뛰어나갔다.
우리의 엄청난 기세에 더 민감하게 반응을 한 건지 그 좀비가 마악 잡기 직전이었던
꼬마를 뒤로하고 우리에게 달려왔다.
"께아아아아아악!!"
몇 번을 보아도 엄청난 박력이다.
놈은 머리를 마구 흔들면서 입을 직각 이상으로 벌리고 피가 섞인 침을 마구 흘리면서 우리에게 달려왔다.
순간 그 박력에 기선을 제압당한 우리들은 언제 달려나왔냐는 듯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제길, 쫄면 어쩌자는 거야!
나는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저 새끼가 런너라는 놈이야! 첨보는 사람 손!"
"손들 여유가 어딨냐!"
"다들 조심해요!"
다들 움찔하는 새 앞으로 나선 건 역시 나와 윤호, 태완이.
이렇게 넓은 곳에서 정면으로 런너를 상대해 본 적이 있는 건 우리들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이들은 말을 하지 않아도 뒤로 물러서며 서로를 추스렸다.
"이재복, 쇠파이프!"
나는 재복이가 차마 대답을 하기도 전에 녀석에게 달려가 쇠파이프를 뺏어들고,
곧바로 몸을 돌려 있는 힘을 다해 런너 좀비를 향해 그것을 집어던졌다.
파이프는 빙빙 돌면서 직선을 그리며 날아가 놈의 어깨를 강타했다.
곧게 달려오고 있던 놈은 힘이 작용하는 방향이 무너지자 요란한 포즈로 땅에 자빠졌다.
허나 놈은 곧바로 굴러 일어나려고 했다.
그걸 가만히 둘 리가 있나, 신발!
"오우라아아아!!"
나는 언젠가 봤던 만화의 주인공이 외치는 기합소리와 함께 젖먹던 힘까지 짜내어
놈을 아래에서부터 쳐올렸다.
뻐억 하는 소리가 나며 내가 휘두른 쇠파이프가 찌그러졌고, 놈의 상반신이 심하게 젖혀졌다.
힘의 반작용을 이기지 못해 잠깐 멈춘 내 위로 윤호가 뛰어들며 외쳤다.
"빠세!!"
퍼까아앙
무시무시한 소리가 울려퍼지며 다시 한번 작렬한 윤호의 홈런.
목 언저리를 얻어맞은 좀비는 만(卍)자를 한 채 땅에서 빙글빙글 돌며 저편으로 굴러갔다.
태완이는 주저없이 그 놈을 따라가 얼굴에 칼집을 내 주었다.
"후우.."
"한마리 정도아 밥이지."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다행이다.
나는 한숨을 쉬고 어깨를 빙글빙글 돌린 뒤 찌그러진 쇠파이프를 쳐다보았다. 내 손이 안 다친 게 다행이군.
"흑, 흑.."
각자 안도에 빠져 긴장을 풀고 있는데 그 조용한 틈새로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그 여자아이였다.
녀석은 가장 앞으로 나간 태완이에게서 열 발자국쯤 떨어진 곳에서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
우리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짐을 내려놓고 근처에서 혹시나 몰려올 좀비를 위해 방어태세를 취했다.
꼬마는 긴 생머리에 리본을 달고 비싸보이는 원피스를 입고 있는,
딱 보기에도 꽤 있는 집의 아이처럼 보이는 녀석이었다.
덩치로 봐서는 많아야 열 살 정도 되어 보였다.
나는 무기를 내려놓고 그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괜찮아?"
"만지지 마!"
타악
내가 손을 얹기가 무섭게 녀석은 소리를 빽 치더니 내 손을 쳐냈다.
나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어안이 벙벙해 아무 말도 못하고 녀석을 쳐다보았다.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꼬마는 벌개진 얼굴로 씩씩거리더니 발딱 일어나며 외쳤다.
"흑.. 너네들 누구야? 흑! 아까 나한테 달려온 그 아저씨는 누구야! 왜 날 만져? 변태! 엄마- 어딨어! 으아아아앙
- 어제부터 어디 있는거야! 엄마아-"
"..."
"..."
뭥미..?
나와 일행은 황당한 얼굴로 녀석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아직 이 나라가 어떻게 된 건지를 모르는 모양이었다.
부모님을 잃어버린 건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녀석은 당치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며
자리에 주저앉아 떼를 쓰고 있었다.
내가 굉장히, 굉장히, 굉장히 싫어하는 종류의 인간이다.
꼬마든, 어른이든.. 나는 실룩거리는 얼굴을 애써 참으며 말했다.
"어이, 꼬맹아. 일단.."
"꼬맹이라고 부르지 마! 그럼 나도 너 변태라고 부를거야!"
"..."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별로 관대하진 않다.
나는 아수라백작처럼 양쪽 얼굴이 다른 표정을 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 하. 그.. 그럼 니 리음.. 아니, 이.. 이름이 뭐냐..? 이 망하.. 아니, 버릇이 좋지 않은 새.. 아이야."
"참아라, 김진환."
내가 분노를 겨우 억누르며 횡설수설하고 있는데 태완이가 내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 꼬마는 눈물을 닦더니 나를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말해줄 이유 없어! 니가 뭔데?"
"..."
진짜 대책이 없는 녀석이다.
이대로 이 녀석과 계속 이야기를 하면 아동 살인범이 될 것 같아 나는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무나 이 녀석이랑 얘기좀 해봐요."
"내가 할게."
서영이었다.
하기사 여자들끼리가 더 잘 통할지도 모르지.
서영이가 꼬마에게 다가오는 걸 보며 나는 무기를 집어들고 밖으로 빠졌다.
녀석은 여자가 상대라 그런지 조금 수그러진 것 같았다.
서영이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녀석 옆에 쭈그려앉으며 말했다.
"저기.. 이름이 뭐니?"
녀석은 가만히 서영이를 쳐다보더니 다른 곳을 보며 말했다.
"이나라."
"이름이 나라구나. 부모님은 어디 계셔?"
"몰라."
꼴을 딱 보니까 난리통에 부모님과 헤어진 온실속의 화초로군. 이건 또 엄청난 물건을 맡게 되었구만.
내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차는데 수정형이 다가와 말했다.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생각하긴요. 부모님이랑 헤어진 쥐뿔도 모르는 꼬맹이죠."
필시 엄청난 일을 겪었을 것이다.
뭐 멀쩡하게 뛰어다니고 소리치는 걸 보니 눈앞에서 부모님이 죽었다던가 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앞날이 걱정되는군.
내 말을 들은 수정형이 뭔가를 말하려는데 서영이와 나라라는 꼬맹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살았어?"
"합정동에.."
"몇 살이야?"
"아홉 살."
녀석은 저래보여도 꽤나 고달프고 외로웠는지, 대답을 하기 시작하더니 다음부턴 술술이었다.
서영이는 이제 다 됐다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녀석에게 재차 물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어?"
"엄마랑 아빠랑 다른 사람들이랑 막 버스타는데, 나 잠깐 화장실 다녀온다고 그러고 내렸어. 근데 버스가
가버려서.. 막 쫓아갔는데 못 따라갔어. 분명히 화장실 잠깐만 갔다온다고 했는데.."
"저런."
"쯧."
여기저기서 안타깝다는 듯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거 참, 엿같은 상황이구만.
가만.. 버스?
나는 어제 우리 집으로 돌아오다가 본 지옥버스를 떠올렸다.
분명 그 차가 온 곳은 합정동 방면이다.
게다가 이런 세상에 저런 꼬맹이가 혼자서 며칠을 살아남을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면..
나는 순간 뭔가가 치밀어올라 욱하는 마음에 녀석에게 거의 사실일 내 추측을 말하려다가 꾹 눌러 참았다.
혹시나 아닐수도 있고, 만약 그렇지 않다 한들 녀석에게 말해서 좋을 건 하나도 없지.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살아가는데에
큰 힘을 줄 때가 있으니까.
하지만.. 슬프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배고파서 슈퍼 들어갔는데, 주인아줌마도 없고.. 나쁜 짓이지만 너무 배고파서 과자도 먹고,
걸어오고 그래서 여기로 왔어."
"그래.. 힘들었겠구나."
우리는 방금전 녀석의 안하무인이었던 태도를 그새 잊어버리고 녀석을 동정했다.
하지만 나는 동정에 앞서 녀석이 앞으로 알게 될 너무도 처참한 현실에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버스란 건 내가 봤던 그것일 수 밖에 없다.
나는 당시에 나와 함께 있었던 태완이, 수정형, 아름이를 쳐다보았지만 거기까지 도달한 건 나뿐인 것 같았다.
뭐..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말자. 지금은 안전한 곳으로 피하는 게 순서다.
"어이 꼬맹.. 나라야."
나는 말을 꺼내다 황급히 대사를 수정하며 녀석에게 말을 걸었다.
녀석은 한바탕 쏟아내고 난 뒤라 조금 기분이 풀린 듯 했다.
아까처럼 퉁명스럽게 말대꾸를 하지 않는 걸 보니.
나는 혹시라도 녀석을 더 삐뚤어지게 만들까 두려워 조심스레 말했다.
"우린 지금 안전한 곳으로 가고 있어. 아까 널 따라온 변태 아저씨 있지? 그런 사람들이 지금 우리 동네에
가득하거든."
"진짜?"
"응. 그래서 말인데, 우리랑 같이 갈래?"
녀석에게 있어선 뜬금없는 제안이겠지만, 우리에겐 별다른 선택권이 없다.
살아남겠다고 모였으면서 이런 좀비들로 들끓는 곳에 꼬마를 홀로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니까.
더군다나 부모님도 없는.
"으음.."
녀석은 고민을 하는 듯 했다.
역시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우리를 따라나서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는 것을.
녀석은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우리들을 차례대로 둘러보더니 마음을 굳힌 듯 했다.
녀석은 대답을 하려다 말고 내가 어깨에 있는 식칼창을 보더니 움찔 하며 말했다.
"그건 뭐야?"
"어? 아아.. 그 변태 아저씨들을 쫓아낼 무기야. 이걸로 지켜줄게."
"정말?"
"정말."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옆에서 서영이가 나를 거들었다.
"나라야. 우리가 지금 가는데는 편의점이야. 컵라면도 있고 아이스크림도 있어."
그 얘기를 듣자 녀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응! 갈래!"
니가 간다고 안 하면 어쩌겠니.
싫다고 해도 우리가 데려갈텐데.
나는 조금 복잡한 의미를 품고 있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라도 나를 따라 일어나 다리를 탁탁 털더니 말했다.
"대신 조건이 하나 있어."
쪼만한 게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내가 선뜻 대답을 하지 않고 있는데 내 뒤에서 수정형이 말했다.
"뭔데?"
"우리 엄마랑 아빠를 찾아줘."
나는 그 말을 듣고 움찔했다. 당연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어쩔 도리가 없으니..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이걸 어째야 돼냐' 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만을 쳐다보는 다른 이들을 대변해 내가 말했다.
"알았어. 노력해볼게."
"와! 엄마한테 새 옷 사달라고 해야 되는데 잘됐다!"
녀석은 기운이 좀 났는지 팔짝팔짝 뛰며 우리에게 빨리 가자고 재촉을 해대었다.
예상치도 못한 타이밍에 예상치도 못하게 일행을 불리게 된 우리는,
이 녀석이 앞으로 우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줄지 무겁게 만들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나는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주의인데 말이지."
"뭐?"
"아니야."
내 혼잣말을 들은 윤호가 묻자 나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뭐가 어쨌건 또 한명이 늘었군.
만약, 저승이란 것이 있다면, 이 아이의 부모님이 우리를 조금이라도 도와주길 빌 수밖에.
최후의 생존까지, 29일-
..혹은, 3일!
20화-더러워
편의점으로 이사를 하던 도중 공교롭게도 싸가지 없는 꼬맹이를 하나 떠맡게 된 우리들은
더더욱 발걸음을 늦출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우리가 편의점이 있는 골목까지 오면서 소비한 시간은 대략 한시간 하고도 반.
정말이지 한 명의 희생자도 안 나온 것에 대해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멤버인 꼬맹이는 생각보다 얌전했다.
아니 얌전했다기보단 힘이 다 빠졌다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제아무리 건장한 청년일지라도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사태에 빠지면 순식간에
스태미나를 소모하게 되는 법인데,
하물며 이런 꼬맹이가 런너에게서 그정도로 버틴 뒤 우리를 따라 걸어오다니..
그것만으로도 용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어.."
나와 태완이의 뒤에 꼬맹이를 두고 뒤에서 가운데를 지키며 걷고 있던 재복이가 짧게 탄성을 질렀다.
뒤를 돌아보자 나라가 선 채로 꾸벅거리며 비틀비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나는 손을 들어서 일행을 멈춘 뒤 녀석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야 꼬맹아. 괜찮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꼬맹이라고 부르면 역성을 냈을 녀석이,
이젠 의식이 날아가버리기 직전인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에에..?"
"안 되겠다. 이녀석 체력게이지가 0으로 떨어진 것 같아."
"0이면 죽은거잖아. 1이겠지. 삐꼬- 삐꼬- 거리면서 빨간색으로 번쩍거리겠는데."
듣고보니 그렇군..
이 아니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나는 손바닥으로 녀석의 볼을 아주 약하게 톡톡 치면서 물었다.
"어이 야! 나라야! 여기서 자면 감기걸려! 정신차려!"
감기만 걸리면 얼마나 좋게. 죽지.
"우웅.."
녀석은 흔들거리던 몸을 멈춘 뒤 신음소리를 내면서 눈을 비비적거리다가,
녀석을 붙잡고 있는 내 손을 지지대로 하면서 땅에 무너져내린 뒤 반쯤 주저앉아버린
상태로 잠에 빠져들어버렸다.
내가 엉덩이를 빼고 손을 내민 채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라 굳어있는데 뒤에서 태완이가 말했다.
"어지간히도 피곤했던 모양이네."
그래, 이 나이때의 애들은 가끔 걸어가면서 졸기도 한다.
실제로 내 동생은 4학년땐가 졸면서 길을 가다가 돌벽에 이마를 부딫혀 병원에 가서 꼬맨 적도 있을 정도니까.
나는 자세를 바꿔서 녀석을 곱게 앉힌 뒤 뒤에서 녀석을 받혀들고 말했다.
"아무나 얘좀 업어. 편의점은 바로 앞이니까 빨리 가자구."
"으음.."
내 말을 들은 수정형이 일행을 죽 둘러보았다.
'변태' 라는 말을 알고 있는 녀석이니 남자가 업고 있으면 도중에 깨어났을 시
어떤 난동을 부릴지 모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여자가 좋겠지만,
공교롭게도 여자들은 모두 등에 짐을 지고 있는 상태.
남자들 역시 모두 손에 무기를 하나씩 들고 있는 상태다.
각자 포지션도 있고.
가만, 포지션이라고 한다면.. 재복이가 서포트니까 녀석을 쓰면 되겠군.
"재.."
"그냥 니가 들어라."
내가 재복이를 부르려는데 윤호가 말했다. 그러자 모두가 불시에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그래. 뭐 다들 역할들이 있으니까 그냥 니가 업어."
"말 나온김에 그냥 니가 해라."
다들 아까 녀석의 드센 모습을 보고 별로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훗, 하지만 나는 선두에 선다는 중요한 임무가 있다는 말씀.
"난 선두.."
"선두엔 내가 설게. 니가 앞에서 열심히 싸웠으니까 나랑 교대해."
내가 입을 열기가 무섭게 재복이가 말했다.
녀석은 내가 응 이라고 하지도 않았건만 내 식칼창을 뺏어들고 태완이 옆에 서 버렸다.
허허.. 이용하려 한 이에게 당하다니.
인과응보라는 것인가? 나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업는다 그래. 거 피곤한 꼬맹이 하나 업어주는 선한 역할이건만 다들 왜 이런대?"
"어.. 난 나쁜 뜻은 없었는데. 싫으면 내가 할까?"
"됐어."
재복이가 머쓱하게 말하며 내게 다가오자 나는 손을 흔든 뒤 나라를 업어들었다.
녀석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나는 한 손으로 녀석의 엉덩이를 재탱하며 다른 손으로 왼쪽 허벅지춤에 달아놓은 손도끼를 살짝 밀어서
녀석의 다리에 닿지 않게 만든 뒤, 왼쪽 어깨에 녀석의 턱을 기대었다.
내 오른쪽 귀가 다친 상태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픈걸 떠나서 꼬질꼬질한 붕대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그쪽에 머리를 대고 있으면
꽤나 괴로울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럼 가자. 뭐 요앞이니까.."
"좀비다."
진짜 타이밍 끝내준다.
내가 몸을 추스리고 녀석을 들쳐업은 뒤 영차 하면서 일어나는 찰나 들려온 윤호의 외침에
나는 힘이 쭉 빠지는 걸 느꼈다.
이 녀석을 내려놓고 싸워야 하나 하면서 옆을 쳐다보니 저쪽에서 좀비 세 마리가 빠른 걸음으로
비척비척 다가오고 있었다.
외길이라 빠질 곳도 없다.
"첫 출전이다, 이재복. 나가서 승리를 쟁취하도록."
나는 내 대신 선두에 선 재복이에게 농담을 던졌다.
대답이 들려오질 않아 녀석을 돌아보니, 녀석은 내 농담에 대꾸를 할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아까같아서야 무작정 맡겠다고 했지만 녀석으로선 이게 진짜 처음 전투니까. 그것도 셋이나.
재복이는 내 식칼창과 자기 쇠파이프를 양 손에 하나씩 든 채 살짝 떨면서 녀석들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이건 안 좋군."
내가 나라를 내려놓으려고 자세를 숙이는데 뒤에서 수정형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덜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형은 무기를 내려놓고 총가방을 꺼내고 있었다. 윤호 역시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여자들은 셋이나 되는 좀비들에게 와싹 얼어서 각자의 무기를 앞으로 드리우고 살짝씩 뒷걸음을 치고 있었다.
"후우.."
재복이의 심호흡.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한 듯 했다.
녀석들이 몰려올 때 다른 이에게 의지를 하려 했었다면 선두 실격이지만 뭐..
저렇게 나오는데 뒤로 빼게 할 수는 없지. 그것도 여친 앞에서.
하지만 만약의 사태라는 게 있다.
나는 아름이에게 나라를 부탁하고 녀석을 살포시 내려놓은 뒤 손도끼를 꺼내들었다.
"허어- 허억- 어어-"
"꾸륵! 꾸륵!"
목에서 나는 소린지 입에서 나는 소린지, 아니면 어떤 일로 뚫려버린 몸의 구멍에서 나는 소리인지,
소름끼치는 소리들을 내며 좀비들이 다가왔다.
두 놈은 앞에서 나란히 다가오고 남은 한 놈은 조금 떨어진 상태.
그나마 다행이다.
내가 자세를 숙인 채 앞의 친구들 뒤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작전을 짜고 있는데
태완이가 재복이에게 말했다.
"이재복, 니 앞에 있는 녀석을 식칼창으로 잠깐만 막아. 5초면 돼. 옆에놈을 내가 없앨테니까."
"알았어."
뭐 저렇게 되었는데 내가 할 말은 없다.
적이 다가오고 있는데 작전을 두번씩이나 짤 정도로 우린 한가하진 않으니까.
나는 말없이 손도끼를 치켜든 채 윤호의 옆에 섰다.
언제라도 튀어나갈 수 있도록.
좀비들이 약 3미터 정도 앞까지 다가오는데 뒤에서 철컥 하며 수정형이 안전장치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
"으아아아!"
태완이는 오른손잡이라 그런지, 자기가 알아서 오른쪽으로 선 뒤 앞으로 튀어나갔다.
검을 빼고 호를 그릴 때 오른쪽에 사람이 서 있으면 베어내기가 힘이 들 뿐더러
그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태완이는 목도를 들고 있었다!
"훗!"
빠각
마치 검집에서 검을 빼듯 왼손으로 목검의 자루를 제지하고 있다가 힘껏 빼어가른 목검은,
희한한 궤도를 그리며 오른쪽에 서 있던 좀비의 오른쪽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왼쪽에 서 있던 놈은
재복이의 식칼창에 배가 꿰뚫려 잠깐 움직임을 제지당한 상태였다.
그런데 태완이가 검을 채 추스르기 전에 재복이에게 제지당하고 있던 좀비가 식칼창에 찔린
자기 배를 마구 밀어넣으며 재복이에게 다가서는 것이 아닌가!
"히이익!"
재복이는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서다가 땅에 엎어졌다.
마구 뒷걸음을 치다가 걸려 넘어진 재복이의 위로 좀비가 쓰러졌다.
쓰러지는 좀비의 뒤로 뚫고 나온 식칼창에 썩어들어간 내장이 마구 비어져나온 것이 보였다.
저 상태에서 무기를 들은 태완이나 윤호가 내려치면 물릴 수도 있다.
나는 주저없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우아아! 물린.."
"떨어져 신발새꺄!!"
뻐어억
천만다행으로, 들어갈 대로 들어간 식칼창의 자루가 지지대가 되어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좀비의 몸이
멈추어 재복이는 물리지 않았다.
윤호와 태완이가 주춤하는 사이 좀비의 대갈빡에 작렬한 내 사커킥은 놈의 목을 아예 꺾어버리고 말았다.
옆으로 엎어져 덜덜 떨고 있는 좀비의 몸에 언제나처럼 윤호의 소나기같은 쇠방망이 러쉬가 쏟아졌다.
녀석도 저 짓을 많이 하다보니 익숙해졌는지, 놈의 배에 꽂힌 채 하늘로 치켜올라가있는 내 식칼창을
교묘히 피하며 때리는 기술이 거의 달인급이었다.
탕탕-
"뭐해! 빨리!"
잠깐 위기에 빠졌던 재복이 때문에 정신이 완전히 쏠려버려 넋을 놓고 있던 우리들의 귀에 총성이 들려왔다.
앞을 보니 수정형이 쏜 총에 맞아 비틀거리고 있는 좀비가 보였다. 한 마리가 더 있었던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수정형의 외침을 들은 태완이는 곧바로 앞으로 달려나가 좀비를 발로 차 넘어뜨리고 목검으로 두부를
두 대 때렸다. 그리고 다시 놈의 몸을 뒤집고 뒤통수에 한방.
태완이의 확인사살을 보고 있던 나는 혹시나 해서 태완이가 먼저 쓰러뜨린 놈을 쳐다보았다.
역시나 놈은 확실히 뒤통수가 깨지지 않은 상태라 살짝씩 몸을 떨고 있었다.
나는 혹시라도 잡힐세라 멀리 돌아서 놈의 머리쪽으로 간 뒤 손도끼로 손수 머리를 부숴주었다.
퍼어억
앞서 묘사하진 않았지만, 내 손도끼의 앞부분은 살짝 뾰족하다.
놈의 미간부터 이마까지를 가르며 머리가 부숴지자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광경이 펼쳐졌다.
두개골이 부숴지자 양쪽으로 시신경을 타고 배어져나온 눈알.. 하나는 아예 튀어나왔다.
그리고 코가 막혔을때 항상 궁금해 하던 비강 구조의 해부도같은 광경과 죽은 후부터 썩어들어가기 시작한
엄청난 양의 분홍색 뇌수, 터져나온 핏덩이와 꿀럭꿀럭 흘러나오는 회색의 수분..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손도끼를 뽑아내었다.
"우웁.. 쿨럭! 콜록!"
갑자기 누군가가 구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완이었다.
앞서 나가서 좀비들의 머리를 부수었지만 역시 조금은 견디기 힘든 장면이었나보다.
나 역시 울렁거리는 속을 참으며 태완이에게 달려가 등을 두드려주었다.
뒤를 보니 재복이가 윤호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고 있었다.
둘 역시 입을 꽉 다문 채 욕지기를 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기야, 괜찮아?"
누가 여자친구 아니랄까봐, 전투가 끝나기 무섭게 서영이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재복이에게 달려와
윤호에게서 재복이를 넘겨받았다.
재복이는 힘없이 말했다.
"으응.. 괜찮아. 그보다 고맙다 진환아."
녀석이 나를 보며 말하자 나는 태완이를 툭 친 뒤 웃으면서 말했다.
"노 프라블럼. 하나 빚진거라고 쳐."
처음으로 괴물에게 칼을 겨눴다가 죽을 뻔 했으니 힘이 빠질만도 하지. 재복이는 얼굴이 새햐얘져서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그래도 나보단 훨씬 낫다. 나는 뒹굴고 토하고 울고 별 지랄을 다 떨었으니까.
서영이는 재복이를 끌어안고 엉엉 울고 있었고, 재복이는 누운 채 손을 올려 그런 서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정말 뭉클하다마는, 너희들 바로 뒤에 배가 뚫려서 내장이 쏟아져나오고 윤호의 쇠빳다 찜질에 떡이 된
시체가 하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줄래?
"욱.. 이게 뭔 냄새야?"
나는 남들보다 유난히 후각이 강하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누구에게나 풍겼을 법한 고약한 냄새가 갑자기 퍼져나왔다.
꼭 정화조에서 나는 듯한 구린 냄새였다.
피비린내는 익숙하지만 이런 냄새는..
나 말고도 대부분이 맡았는지 모두들 얼굴을 찡그리며 킁킁거렸다.
내 후각을 따라가 본 결과, 그것은 죽은 좀비들 중 한 놈의 엉덩이에서 피어나오고 있는 냄새였다.
이쯤되면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안다.
"미친새끼.. 곱게 뒈질것이지 똥지랄을 하고 죽냐? 지가 무슨 90처먹은 노인넨가."
내가 코를 막고 얘기하자 태완이가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사람이 죽으면.."
"알어 알어. 죽으면 온몸에 힘이 들어간 근육들이 다 풀려서 똥이고 오줌이고 죄 쏟아져나온다는 거. 아는데
처음이잖아, 이런 사태는."
우리가 앞서 확인했듯, 좀비들은 소뇌에서 나오는 근육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신호만을 가지고 움직인다.
뭐 정확하게 어떻게 돌아가는 시스템인지는 모르겠지만 뒤통수를 부수면 확실하게
죽는다는 것 만큼은 알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알고 있는 사실은 감염된 사람이 '죽는' 순간 이 바이러스가 발동된다는 것.
죽는 순간에 똥을 쏟고나서 변하는지 어쩌는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죽인 놈들 중에 똥지랄을 하고
죽은 놈은 없었다.
그럼 이놈은 죽을 때 똥꼬에 힘을 주고 죽었나?
..조금 웃기는군.
나는 실소를 터뜨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자들은 다시 짐을 챙기고 있었고(서영이가 재복이에게서 안 떨어질 것이라 예상한 윤호가 알아서 짐
하나를 짊어졌다) 앞에서 싸운 남자들은 각자 몸을 추스리고 있었다. 내가 혀를 차면서 그야말로 메스
(mess)가 되어버린 사체들을 발로 밀며 애들 쪽으로 다가가는데 수정형이 총을 다시 정리하는 것이 보였다.
전투를 여러번 해왔지만 이렇게 머리를 부순 시체가 세 구나 우리 근처에 있고,
또 그것을 넘어서 가야 하는 경우는 없었다.
또 특히나 이번 녀석들은 더럽게 죽었으니..
"빨리 가죠."
나는 피를 살짝 닦아낸 뒤, 등 쪽에 피가 뭍었나 확인한 뒤 아름이에게서 나라를 받아들고 말했다.
내가 녀석을 딱 업어들자 내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짐을 추스리며 다시 걸어갈 준비를 했다.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은 없으니까.
재복이는 서영이의 부축 아래, 태완이와 윤호가 선두를 서고 수정형과 내가 뒤에 선 채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시체들을 넘어설 때 나영누님과 아름이가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눈을 질끈 감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 밟기라도 하면 미끄러져서 시체랑 키스할텐데. 하하.
철퍽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내 발에도 철벅거리는 핏덩이의 감촉이 느껴졌다.
순간 떠오른 좀비의 박살난 머리가 머릿속에 그려져 나 역시 별수없이 시체를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걸음을 크게 해서 놈들의 시체를 지나친 뒤 몸을 한번 들썩거려 나라를 업고 있는 손을
조금 더 편한 위치에 두었다.
"태완이도 너네도 참 대단하다."
"네?"
수정형이 말하자 내가 아름이를 업은 채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도 그렇게 주저없이 앞으로 나가서 막 때려부수냐. 너네 뭐 폭력단 그런거의 아들들은 아니겠지."
"말도 마요. 우리 처음에 좀비 만났을 때 고작 한 마리가지고 다 죽을뻔한 거 생각하면 아직도 한숨이 나오니까.
지금 우리의 용맹은 변환된 두려움이라고 봐도 될 걸요. 거기에 플러스 경험 조금."
왜, 극단적인 예지만, 고딩급 쌈쟁이들과(양아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조폭들의 전투력은 거의 5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고 한다.
무리를 지어서 친다면 거의 10배 정도. 왜인지 아는가? 싸움에 임하는 자세가 틀리기 때문이다.
고딩들은 그저 쌈질이 쌈질에서 끝나지만, 조폭들은 쌈을 '목숨을 걸고' 한다. 그것 자체가 삶이자,
동시에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지면 죽는다. 각목으로 얻어맞아 어디 병신되고..
이 정도가 아니라 진짜 배때기에 회칼로 구멍이 뻥 뚫리거나 쇠몽둥이로 윤호 좀비 때리듯
쳐맞아 죽어버리는 것이다.
뭐 꼭 그러란 법은 없지만..
얘기가 좀 생소한 곳으로 샛는데, 여하튼 우리는 그거다.
처음 싸웠을 때야 반쯤 재미였지만 딱 몇 초 후에 진실을 알게 된
- 그러니까, 좀비는 우리를 '먹으려' 한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된 우리들은 너무도 큰 두려움에 휩싸여
몸부림친 것이다.
거기서 운좋게도 우린 살아남았고, 말이야 안 했지만 그 깨달음을 몸으로 새긴
우리들은 이제까지 살아남아 온 것이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우리의 싸움은 살기위한 것이다.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걸 모두가 알아야 할 텐데.
나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수없이 떠오르는,
내 눈앞에서 죽은 책방의 커플과 총을 주신 할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새기며 입술을 물었다.
"이사도 했고.. 다음은 짱박힐건지 피난인지 정하는 일만 남았군."
최후의 생존까지, 아직 29일-
혹은, 사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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