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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위해 뛰어라26~28(완결)

왕보리 |2012.06.05 15:04
조회 893 |추천 0

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 웃대 : 과메기의 꿈 님 >

** 제가 퍼오는 글은 인기가 없나봐요 ㅠ

그래도 꾸준히 읽어주시는 분들을 위해 열심히 퍼퍼나를께요^^

 

 

 


26화-나타났다

 

쿠당탕


"제기랄!"


누군가가 넘어졌다보다.

한달음에 복도 쪽으로 몰리던 우리들은 한 군데가 뭉그러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다같이 휘청였다.


당장 움직일 수가 없는데다 앞이 안 보이니 실제로 좀비와 나와의 거리는 꽤 되었는데도

나는 잔뜩 몸을 도사릴 수 밖에 없었다.

뒷통수가 간질거리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나는 허겁지겁 무게중심을 바로잡으려 애썼다.

돼지가 갑자기 튀어나온 여자 좀비에게 물어뜯긴 후, 안 그래도 어두운 좁은 방 안에서 여러명이

동시에 현관 쪽으로 몰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우아아! 나와! 나와!"


"끄억.. 끄억."


뒤에서 들려오는 돼지의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극심한 공포를 느낀 우리는 한순간에 패닉에 빠지며

너나할 것 없이 팔을 휘적거였다.

내 뒤에 있는 누군가가 내 머리를 마구 밀치며 앞으로 넘어가려는 것이 느껴졌으나 나 역시 급한 상황이라

그런 그를 위해 가만히 디딤대 역할을 해 줄 수가 없었다.


"우아아! 제길! 빨리 나오란 말이야! 앞에.."


콰작


"아악! 팔! 팔이!"


귓바퀴로 빨려들어오는, 선명하고도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깡마른 남자의 비명이 들려왔다.

사람의 팔을 물어뜯는 소리를 이렇게까지 확실하게 들은 적이 있을까.


다행히 앞에서 넘어졌던 사람이 현관으로 잘 빠져나갔는지 앞이 뻥 뚫리는 게 느껴졌다.

벽을 붙잡고 앞으로 몇 걸음 걸어나가며 뒤를 쳐다보자, 금방 여자 좀비에게 물렸던 돼지가 무릎을 꿇은 채

깡마른 남자의 한쪽 팔을 붙잡고 물어뜯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제길, 즉사해서 바로 좀비로 변한건가!


깡마른 남자는 머리를 마구 흔들고 있는 돼지의 얼굴에 주먹질을 퍼부으며 소리질렀다.


"으가각.. 신창훈 이 미친새꺄! 왜 나를 무는거.. 너.. 너 설마.."


"우우우.. 꾸으으.."


우적 우적


"아아아악! 안돼! 먹지 마! 먹지 말란 말야!"


구해주고 싶지만 방도가 없다.

나는 잠깐 주저하다가 고개를 흔들면서 앞으로 뛰쳐나갔다.

이들이 좀비에 대해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고 있었으리라 생각했던 건 기우였던 것 같다.

긴팔들을 주워입었던 것도 그냥 우연이었나.


잠깐 주저한 덕분에 내 앞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이제 좀비가 되어버린 돼지와 함께 뒤엉킨 깡마른 남자와, 그에게 다시금 다가가고 있는 여자좀비를

힐끗 쳐다보며 계속 현관을 향해 달려나갔다.

순간 나보다 한 발 먼저 밖에 나가있던 애꾸가 현관 앞에 서서 나를 쳐다보더니,

문고리를 확 잡아채는 것이 보였다.


저 자식 설마..!


"미.. 미친놈! 안돼! 하지마!"


"킥!"


콰앙


나쁜 느낌을 받은 나는 전 속력을 다해 앞으로 내달리며 문을 들이받았다.

그러나 그는 아예 작정을 한 건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친새끼! 나를 여기에 가두려고!


문은 아직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어깨로 문을 밀면서 조그마하게 열린 문의 틈새에 몸을 밀어넣으려 했다.

그러나 나보다 월등히 힘이 강한 그는 내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문을 밀며 힘겹게 말했다.


"제발.. 하지.. 마!"


"크큭.. 강아지.. 너 때문에 나는 앞으로 애꾸로 살아야 한단 말이다.. 그 보상을 받아야지.."


"형! 김윤호! 이 새끼좀 어떻게 해 봐! 제발!"


서서히 틈새가 좁혀지기 시작한다.

나는 온 몸을 뻗대며 윤호와 수정형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둘은 내 부름에 응답을

하지 않았다.


제발.. 잠재능력이라도 일어나라.. 제발.. 지금 한 순간만..!


"잘.. 가라.. 좀만아!"



결국 문은 닫히고 말았다. 나는 참담한 심정이 되어 외쳤다.


"젠장! 열어! 문 열어!!"


쾅쾅쾅쾅


나는 양철문을 마구 두드렸지만 문 저편에 있는 개자식이 나를 놓아줄 리가 없었다.

거기에 다시 한 번 내 몸에서 힘이 빠지게 만드는 '철컥' 하는 소리.. 빌어먹을, 열쇠까지 챙기고 있었나..


일 분 일 초가 급한 상황. 한 순간이라도 지체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이미 이렇게 된 이상 여기로 나갈 수는 없다.

더 이상 시간을 끌어봤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에, 나는 빠르게 단념하고 다른 길을 찾기로 했다.

얼른 몸을 뒤로 돌리며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순간 저 앞에 누워있는 채 두 좀비들에게 마구 물어뜯기고 있는

깡마른 남자가 눈에 들어오며, 동시에 저 편에 있을 달빛이 들어오고 있는 커다란 유리문이 생각났다.


유일한 돌파구는 저기밖에 없다!


다행히 지금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복도에서 살짝 떨어진 지점.

나는 빠르게, 하지만 조심스럽게 마루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나는, 귀를 가득 메우는 참혹한 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으드득- 으드득-


콰직 콰직


쩝 쩝 쩝


"크.."


이건.. 아니다. 나는 진저리를 치며 고개를 돌렸다.


지금까지 내가 보아온 참혹한 현장들은 거의 우리들이 좀비를 죽이면서 만들어 내었던 것..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내가 현관에서 애꾸와 다툰 단 몇 초 동안, 깡마른 남자의 상반신은 이미 형체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난자되어 있었다.


"으그극.. 끄극.."


그는 의미불명의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고통을 참으려 했던 건지 혀를 이빨 사이에 끼워문 채 눈을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

죽기 직전인 건가.

정말 도저히 눈 뜨고 볼 수가 없군.


목덜미가 떨어져 나간 채 좀비가 되어버린 돼지는 그야말로 돼지처럼 추접하게 깡마른 남자의 어깻죽지를

뜯어먹고 있었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자 좀비는 반쯤 잘린 풍선처럼 생긴 무언가를 손에 든 채 게걸스럽게

 그것을 파먹고 있었다.

한순간 나는 그것이 무슨 장기인지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나는 그 생각을 떨쳐내었다.

내가 미쳤나..


"엇.."


아직 내겐 운이 남아있는 것인가?

창문까지 뛰어나갈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살짝 걸음을 옮기고 있던 내 발치에 무언가가 걸리는 것이

느껴져 확인해보니, 꽤 튼튼해보이는 야구방망이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정말 다행이다. 여차하면 유리창을 몸으로 뚫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이런 도구를 얻게 되다니.


물론 이 조폭들이 예전부터 써온 듯 한 무기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기는 했지만 죄다 마루 한 가운데에

널브러져 있어, 그것을 구하러 몇 초를 허비한다는 건 곧 그만큼 좀비와 뽀뽀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이기도

해 나는 아예 포기하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방망이를 집어들고 마루 안으로 들어섰다.

이제 신나게 식사를 하고 있는 놈들과의 거리는 고작 두 세 걸음. 미치겠다.


파박


"익.."


한 순간 깡마른 남자의 몸이 크게 떨리더니, 내 근처 벽에 피가 확 뿜어져나오며 내 얼굴에까지

핏방울이 튀어올라왔다.

나는 방망이를 들지 않은 손으로 볼을 닦아내며 놈들을 주시했다. 아직 놈들은 식사에만 열중하고 있다.

허나 저 깡마른 남자가 어느 순간 좀비로 변할지 모르니.. 빨리 뛰쳐나가는 수밖에.


여기는 이층이다.

때문에 그냥 뛰어내리면 자칫 크게 다칠 수가 있어서 나는 창문에 붙어선 뒤 바깥을 잘 확인하고

뛰어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지금 그랬다간 뭔 꼴을 당할지 모른다.


더이상 고민하지 말고 이제 창문 깨고 뛰쳐나가자. 나쁘게 떨어지더라도 이층인데 죽기야 할까.


"후우.."


정신차려 김진환.. 차도 얻었고, 지금만 잘 하면 가족들을 다시 볼 수 있는거야.


나는 피비린내가 가득한 내음을 감수하면서 심호흡을 했다.


셋에 뛴다.


하나..


둘..


셋!


"이야아아!"


나는 공포를 없애기 위한 비명을 지르며 창문 쪽으로 뛰쳐나갔다.

순간 깡마른 남자를 뜯어먹고 있던 두 좀비가 나를 확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그래봤자 저 놈들은 런너가 아니니 나는 살 수 있..


빠각


"아우 썅!"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유리창을 깨버리기 위해 방망이를 쳐드는 찰나, 한 순간 발가락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나는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뭐야, 벽돌? 이런 게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눈물이 쏙 빠질 정도의 아픔이었지만 지금 이 고통을 음미할 여유는 없다.

나는 내 뒤에서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을 좀비들에게 대처하기 위해 뒤를 쳐다보았다.

내 예상대로, 두 좀비들은 파먹을 대로 파먹은 깡마른 남자의 시체를 쓰레기처럼 내버려둔 채 나를 향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외다리로 뻘뻘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 놈들을 처리한 뒤 행동할지 아니면 탈출만을

생각해야 할 지 생각했다.


순간 저 뒤에 배를 위로 하고 누워있는 채 버려져 있던 깡마른 남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 부분을 모두 뜯어먹혀 하반신과 상반신이 분리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제 좀비가 된 그 남자는 고개를

이상한 각도로 뿌득뿌득 뒤틀더니 한 순간에 몸을 확 뒤집어 양 팔만을 이용해 마구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곧이어 그 괴물은 뒤틀린 목으로 내 쪽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방 안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는, 높고 낮은 여섯 개의 회색 안광..


더 이상 뭘 생각하냐. 나는 소름이 쫙 돋는 걸 느끼며 눈을 까뒤집고 유리창에다 방망이를 휘둘렀다.


와장창


"큭!"


이건 뭐냐! 한 방에 깨어져 우수수 쏟아져내릴 줄만 알았던 유리문은, 내 예상을 깨뜨리고 거미줄처럼

쫙쫙 갈라지기만 한 채 꿋꿋하게 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깨져나간 부분은 딱 내가 휘두른 방망이의 끝에 맞은 부분 뿐이었다.

몇 걸음도 안 되고 있는 곳에서 내게 다가오고 있는 좀비들 때문에 나는 극심한 공포에 휩싸여 마구

방망이를 휘둘렀다.


"으아아! 깨져! 깨지라고!"


와장창 쨍그랑


여유가 없기에 서너 번 휘두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유리창은 여전히 서너 군데에 구멍이 갔을 뿐 내가 빠져나갈 정도로 깨어지지는 않았다.

아 모르겠다!


"으아아아!"


와장창창


바로 목 뒤에서 좀비의 입김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나는 그냥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유리창을 향해 뛰어들었다.

한 순간 내 눈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곧 내 양 볼에 휘이잉 하며 바람이 느껴지면서 나는 밑으로 곤두박질쳐 내려가는 걸 느꼈다.


콰앙


"끄억!"


1차 충돌. 뭔가 묵직한 철판에 부딫히는 듯 한 느낌과 함께 나는 살짝 위로 떠올랐다.

곧이어 나는 내가 부딫힌 무언가에서 밑으로 굴러떨어지며 땅바닥과 진한 키스를 해야 했다.


털퍼덕


"어이구.."


살면서 이렇게 아팠던 적도 또 없다.

나는 내가 첫번째로 부딫힌 듯 한 물체를 붙잡고 스스로를 부축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서히 눈앞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나는 집 밖에 세워둔 자동차 위로 떨어진 듯 했다.

그리고 땅바닥으로 다시 굴러떨어진 거지.. 큭, 입술 터진 거 아냐?


나는 입술과 이마를 번갈아가면서 만지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비틀비틀 걸어 차 앞 쪽으로 나가려니 떨어진 충격 때문에 멍멍한 귀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길! 진환이가 안에 있다구요! 진환아! 이거 놔요!"


"니가 문 열었다가 저 새끼들이 끼어나오면 어쩌려고! 진환인지 뭔지 하는 놈은 틀렸으니까 빨리 떨어져!"


"입 닥쳐! 김진환! 대답해!"


소리는 이층으로 들어가는 계단에서 나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니 윤호와 살아남은 조폭 한 명이 계단에 서서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미 빠져나왔단다, 뒷북치지 마라 김윤호.. 아까 내가 부를 때나 구하러 올 것이지.


소란을 피우느라 내가 유리창을 깨고 나온 소리를 듣지 못한 듯 싶다.

윤호를 부르려고 쿨럭거리면서 앞으로 한 발짝을 더 나서는데, 아까 밖으로 빠져나온 뒤 이들이 처리했는지

집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회사원 좀비가 떡이 되어 벽 쪽에 처박혀있었다.

아까 집 안에서의 일이 생각나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자 문 쪽에 수정형과 애꾸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저 새끼가 염치도 없이 아직도 서 있다 이거지?!


"이 신발새꺄!!"


"어?"


뻐어억


온 힘을 다한 일격. 두 발짝을 뛰어들며 길게 내뻗은 주먹은 고개를 확 돌리고 있는 애꾸의 턱에 정확하게

꽂혔고, 동시에 놈은 크게 휘청거리며 땅에 자빠졌다.

나는 주먹이 상하는 것도 상관하지 않은 채 애꾸를 무차별로 구타하기 시작했다.


"개새꺄! 신발 개같은 새끼! 죽어! 죽어! 죽어 죽어 개자식아..!"


"지.. 진환아! 진환아! 너 어디서.. 아니 그것보자 진정해! 진환아!"


사정을 모르는 수정형은 깜짝 놀라며 나를 말렸다.

나는 힘없이 손을 내밀고 있는 조폭에게서 떨어지며 숨을 몰아쉬었다.

한참 헉헉거리며 애꾸를 쳐다보고 있는데 윤호가 후다닥 뛰어내려오며 내게 말했다.


"야 이 새꺄! 너 왜 늦게 나오고 지랄이야, 죽은 줄 알았잖아! 대체 어디로.."


"저 신발놈이 나를 집 안에 가뒀다고!"


"..뭐?"


내가 벽에 기대 주저앉은 채 헉헉거리고 있는 애꾸를 가리키며 말하자 윤호는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다가, 곧 상황을 이해했는지 그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이 강아지가.."


챙그랑


분위기가 험악하게 변해가는데 갑자기 유리창이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어디서 들려왔는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금방 유리창을 깨고 날아온 나는 내가 뚫고나온

베란다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뭐야 저게?"


그곳엔 무언가 기다란 것이 서 있었다.

한순간 나는 집 안에 남아있는 좀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렇지는 않아 보였다.

상당히 꼿꼿하게 서 있는 것이 무슨 인형 같기도 했다.


순간 달빛이 그것에 확 비추어지며 놈의 모습이 드러나자,

나는 그것을 처음 보는데도 놈의 정체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림자가 드리워질 정도로 기다란 손톱.


함몰된 눈.


퍼져서 흉하게 늘어져 있는 귀.


"저거.. 저거 리스너(Listner).."


촤카카캉


나는 말을 채 끝마치지도 못했다.

내가 말을 꺼내는 순간, 놈은 흡사 공기를 박차는 듯한 동작으로 한순간에 내 앞으로 날아오며 내 앞에

서 있던 자동차의 등짝에 커다란 흉처를 남겼다.


"..."


"..."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놈은 나를 지나쳐 벽까지 날아간 채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지금 나 죽었다 살아난 거 맞지?


이게 리스너..


"큭.. 큭큭큭.."


순간 누군가가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원망섞인 눈으로 웃음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았다.

내게 얻어맞은 채 뻗어있던 애꾸 덩치였다.

그는 지금 상태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는지 조용히 웃더니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이 개같은 새끼가! 내 눈깔까지 후벼파고, 신발놈이 안에다 쳐박아놨더니 어떻게.."


푸각


1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의 얼굴이 꿰뚫리기까지는.


그가 내게 열 뻗힌 악담을 퍼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내 앞에 서 있던 리스너는 그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가 그 예리한 손톱을 그의 얼굴 한복판에 꽂아넣었다.

기다란 손톱이 그의 얼굴을 관통해 뒤의 벽에 박히는 것이 보였다.


"꺼.. 꺼거.."


불행히도 즉사하지 못한 애꾸는,

그나마 남은 한 쪽 눈까지 관통당한 채 손을 바들바들 떨며 입에서 거품을 게워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리스너는 벽 채 그의 얼굴을 찢어발겼다.


푸좌자자작


"...!!"


"으..!"


털썩


엄청난 양의 피와 피 아닌 무언가가 주변으로 퍼지며, 머리가 사라져버린 애꾸의 몸은 땅에 힘없이

널브러졌다.

운 없게도 대문 앞에 서 있던 윤호는 얼굴에 애꾸 머리의 내용물들을 잔뜩 처발라야 했다.


리스너는 가만히 자신의 손톱을 까딱거리는가 싶더니, 주변의 소리를 감지하다가 우리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곧바로 쓰러져 있는 애꾸의 목없는 시체의 상처 부근에 얼굴을 대고 게걸스럽게 시체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참혹한 광경을, 눈도 돌리지 못하고, 고개조차 돌리지 못한 채, 가느다란 숨 한번 내뱉지 못하고

지켜보아야만 했다.


"..."


"..."


우린.. 죽었다.

 

 


27화-The Listener


"괜찮아?"


"으음.. 참을 만 해."


"진환이 야매수술이 니 상처 덧나게나 하면 안 되는데."


진환 일행이 조폭들을 따라 차를 구하러 간 사이, 남은 일행인 재복-서영 커플과 태완,

그리고 꼬맹이 나라와 나영은 편의점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특히 큰 상처를 입은 뒤인 재복은 그 누구보다도 휴식이 필요한 상태였다.

태완과 재복의 여자친구인 서영은 삐뚤빼뚤 흉하게 봉합된 재복이의 팔을 보며 안심 반 걱정 반인

얼굴로 재복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나영의 옆에 앉아, 먼발치서 안색이 창백해진 재복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나라가 나영에게 물었다.


"아까 아저씨들은 누구야..? 왜 다들 싸워?"


"으응, 아무 것도 아니야."


"저 오빠는? 팔 아프겠다.."


"괜찮아, 나라야. 괜찮을 거야."


나영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나라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침입자들과의 사투가 있었을 때, 어린 나라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일행들의 뒤에서 보호받은 채 겁에 질려 떨고만 있었을 뿐.

폭풍같은 시간들이 지나가고 나라에게 남은 것은 그저 불안한 마음 뿐이었다.


친절한 동료들과 이 지옥같은 곳을 헤쳐나가며, 적은 그저 좀비들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던

나영에게도 방금 전 일어난 일은 너무도 황당했고 당황스러웠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도와야 할 상황에서 서로를 물어뜯다니.. 인간은 이리도 더러운 생물이었던가?


"자기야, 뭐 먹고 싶은거 없어?"


괜찮다는 말을 연발하고는 있지만 딱 보기에도 매우 힘겨워보이는 자기 남자친구를 앞에 두고도 맘이

편할 여자는 없다.

서영은 재복이가 당장 베이징 카오야가 먹고 싶다고 해도 구해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얼굴로 재복이를

쳐다보며 그의 이마를 쓸어올려주었다.


재복은 숨을 짧게 몰아쉬며 잠깐 땅을 쳐다보고 있다가 서영에게 말했다.


"괜찮아.. 물이나 좀 갖다줄래."


"물? 알았어."


서영은 재복의 말을 듣기가 무섭게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달려갔다.

저편에서 벌컥 하며 냉장고의 문의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재복이 옆에 앉아서 지도책을 읽고 있는

태완에게 물었다.


"진환이랑 윤호랑.. 다들 잘 하고 있을까."


"잘 할거야. 수정형도 갔으니까 뭐. 차 구하면 뒤로는 시간문제지."


태완은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옆에 내팽겨쳐놓았던 배낭을 직 끌어당긴 뒤 기다랗게 둘둘 말린

무언가를 꺼냈다.

진환의 집에서 농성중이었을 때 구호물자로 내려온 박스 안에 들어있던 수도권에서 휴전선까지를

아우르는 지도였다.


"뭐.. 차이는 없네. 굳이 책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을까.."


"자, 여기 물."


"고마워."


태완이 양 손에 지도와 책을 각각 들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동안 서영이 재복에게 물을 가져다주었다.

순간 열린 채 벌어져있는 태완의 배낭에서 또 하나의 작은 지도가 굴러나오자 재복은 물을 마시려다 말고 그

것을 집어들었다.

역시 구호물자에 섞여 있었던 연합군의 남진계획도였다.


"..빨리 좀 쳐 내려오지 뭔 한달이나 시간을 끄는거야.."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역시 다친 사람 입장으로선 화가 날 수 밖에 없다.

그도 그럴것이 나라가 멀쩡한 상태였으면 이런 일을 당할 이유가 애초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재복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치지 않은 팔로 남진계획도를 들고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계획도의 기본적인 모습은 일반 전국지도와 비슷했다.

그러나 군데군데 사태의 밀집지역으로 예상되는 부근이 확대되어 있고, 날짜에 따른 진군정도가 붉은

선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이 확실히 군 목적으로 쓰이는 지도다 라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재복은 지도를 땅에 내려놓고 손가락으로 붉은 선들을 죽 그어 내리며 날짜를 확인했다.


"9월 25일.. 중부제압.."


재복이 가리키고 있는 붉은 선은 서울특별시의 아래쪽에 간신히 걸쳐져 있었고, 그

 끝에는 9/25 라는 숫자가 쓰여져 있었다.

물론 그건 날짜를 가리키는 숫자였다.

그 선의 밑으로는 붉은 색의 화살표가 세 개, 남쪽을 향하는 방향으로 그려져 있었다.


지도는 화살표와 선의 연속이었다.

선들은 보통 한 개의 도 간격으로 나 있었고, 예상기간은 보통 1주 반 정도씩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제주도는.. 포함되어 있지 않나?"


재복의 혼잣말대로, 제주도까지는 진군 예상도가 그려져 있지 않았다.

진군은 인천 즈음에서부터 시작해, 서울특별시 아래를 제압한 뒤엔 서해쪽에서도 진군을 시작,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진군양상은 부채꼴을 이루어 마지막엔 부산으로 몰아치는 양상을 띄고 있었다.


"아직도 한참 남았지, 응."


태완은 자기가 보던 지도를 옆에 내려두고 재복의 어깨너머로 진군예상도를 바라보며 한 마디를 던졌다.

재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없이 진군예상도를 접어내렸다.

순간 다친 팔이 시큰거리는 걸 느끼며 재복은 이를 악물었다.


"재복아.. 팔은 괜찮아?"


서영이 물병의 뚜껑을 따고 재복에게 권하고 있을 무렵 나영이 나라를 이끌고 다가와 물었다.

재복은 한 손으로 물병을 받아들고 조금씩 물을 마시며 말했다.


"네.. 꼬매고 나니까 벌어진 데가 가려져서 조금 덜 아픈 것 같기도 해요. 더 아픈 것 같기도 하고. 하하."


"난 그거 못 기다려."


"응?"


서영이가 한 마디를 던지자 태완이가 무슨 소리냐는 듯 물었다. 그녀는 지도를 가리키며 외쳤다.


"이거 말야! 빨리빨리 내려오지 왜 그런데? 우리 자기 팔 이상해지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진환이랑 얘들은

또 왜 안와?"


"그러게."


재복은 다친 팔을 살짝 감싸쥐며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뭐 잘못 된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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쩝쩝 쩝 쩝-


후륵 후르륵


놈은 흡사 사마귀가 사냥감을 머리부터 씹어먹는 것 처럼, 애꾸의 몸뚱이 중 목이 사라진 쪽에 흉칙한

머리를 들이대고 마구 씹어먹으며- 가끔은 뭔가를 후루룩 빨아 삼키며 식사를 즐기고 있다.


눈 앞에서 정신없이 만찬을 즐기고 있는 최강의 변형좀비, 리스너.


나는 미동도 하지 않고, 그 잔혹한 장면을 감상하고 있었다.


"..."


인간은 무언가를 '모르기' 때문에 공포를 느낀다고 했다.

내가 만약 지금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


이 놈에 대해선 거의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단지 놈은 청력에 의지해 움직이고, 군부대 하나를 상대할 정도로 강력하다는 것 밖에는.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건?


숨도 쉬지 말고 죽은듯이 있는 것.


"무슨 소리야? 이게.. 어.. 어? 이게 뭐야!"


순간 우리가 지키고 있던 정적을 무색하게 하는 소음이 들려왔다.

아까 계단춤에서 윤호와 함께 나의 구출 때문에 다투었던 조폭이었다.

대문 안에 있었던 채라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던 모양이다.


그리고, 저 괴물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도.


"쿠하가가가!"


그가 대문을 열고 나오며 소리를 치기가 무섭게, 몸을 숙이고 애꾸의 몸을 먹고 있던 리스너가

괴성을 지르며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뒤로 내빼었다.

나는 그가 당연히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쇠로 만들어진 좁은 대문을 가리고 있는 돌벽이

리스너가 휘두른 손톱의 속도를 줄여줘 그는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까가강


이어서 놈이 다른 손으로 휘두른 손톱은 철 대문을 가르고 들어가 한순간 굉장한 양의 불꽃을 만들어내었다.

조폭은 기겁을 하며 계단 위로 마구 뛰어올라가며 소리쳤다.


"이.. 이게 뭐야! 야 너네들! 좀 도와줘!"


소리지르면 죽어요 라고 소리쳐 알려주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다.


"카하악!"


리스너는 잠깐 동작을 멈추고 소리를 감지하는 듯 했다.

지금이 살아날 수 있는 기회지만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마구 소리를 질렀다.


"으.. 으으! 너희들 뭐하는거야! 그 놈 뒤에 서 있으면서.."


"께아아아악!"


그의 목소리를 감지한 리스너는 손톱을 늘어뜨리고 그에게 달려올라갔다.

실로 엄청난 속도였다.

늘어뜨린 손톱이 벽에 갈리며 까가가각 하는 괴상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와아악!"


생각할 겨를도 없었는지, 그는 소리를 지르며 계단의 난간을 넘어 아래로 뛰어내렸다.

리스너는 그대로 계단을 박차고 나가 허공에 손톱을 마구 휘두르더니 건물 너머로 떨어졌다.


잠깐 리스너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기가 무섭게 수정형이 헉 하고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이때다! 빨리! 차로 가 빨리 빨리!"


"아.. 네!"


"씨바.. 죽는 줄 알았네."


대문 근처에 서 있던 수정형과 윤호는 바로 차 쪽으로 뛰어갔다.

수정형이 받은 열쇠는 꾸러미가 아니라 단지 한 개의 키.

덕분에 여타 공포영화 등에서 주인공들을 피말리게 하던 열쇠꾸러미를 뒤지는 상황 같은 것은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형이 번개같은 속도로 차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시동을 거는데 대문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쿨럭.. 사.. 살려줘! 같이 가!"


윤호는 이미 차 문을 열고 들어간 상태.

나는 트렁크 쪽으로 다가가다 그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다.

급한 김에 잊어버렸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물론 방금 리스너를 피해 뛰어내린 조폭.

나는 곧바로 달려나가려 했으나 그가 재복이를 짓밟던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 순간적으로 발을 멈추었다.


그는 급하게 뛰어내려 어딘가가 잘못되었는지 대문 안 쪽에서 엎드린 채 힘겹게 일어서고 있었다.

저 사람을 구해야 하나? 근데 구한다고 우리와 같이 있게 해 줄것도 아닌데, 어떻게..


"신발! 좀 도와.. 콜록! 도와달라.."


푸칵


그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대문 안 쪽 어두운 곳에서 올라온 손톱에 배가 꿰뚫렸기 때문이다.

어느새 그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담을 넘어온 리스너가 그의 등에 손톱을 꽂아넣은 것이다.


"컥.. 커거.."


그는 천천히 고개를 틀어 뒤를 쳐다보려 했다.

그런데 다시 한번 퍼걱 하는 소리가 나며 그의 배를 뚫고 또다른 손톱이 올라왔다.

다른 쪽 손의 손톱을 박아넣은 모양이었다.


"꺼어어.. 개.. 가튼.. 신발.. 꿀럭.."


촤하하아악


"욱!"


꼭 홀린 것 처럼 리스너의 학살을 쳐다보고 있던 나는 다음 장면을 보고 한순간 뇌가 들썩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고개를 돌렸다.


배를 찢었어!


리스너는 등 쪽에서 박아넣은 두 손을 양 옆으로 벌리며 그의 하반신을 두 갈래로 찢어버렸고,

동시에 조폭의 명치 아래쪽에서는 엄청난 양의 피와 함께 동앗줄 더미 같은 장기들이 주루루룩 쏟아져나왔다.

 하반신에 입은 상처로는 즉사하지 않는 인간의 빌어먹을 신체구조 때문에 그 고통을 고스란히 느꼈을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며 눈을 까뒤집고 혀를 빼물며 정신을 잃어버렸다.


"까오오오오오!!"


마치 '내가 잡았다!' 라고 외치는 듯 한, 리스너의 이상한 괴성.

놈의 아래에는 하반신이 나누어진 채 상체가 찢어져 폐가 다 드러나 양 팔을 부들부들 떨며 죽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조폭이 피의 바다에 빠져 달빛을 받아 번들거리고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먹었던 음식들을 심하게 게워내며 차 쪽으로 달려갔다.


"우웨억.."


나는 다시 한번 토를 쏟아내며 문을 열고 들어가며 말했다.


"차.. 시동 꺼요. 차.."


"응?"


"차 시동 꺼요, 빨리!"


"응? 아, 알았어."


푸드득


굳이 서로 말을 주고받을 것도 없었다.

지금 차 소리가 나면 리스너가 따라올 것이다 라는 뜻이 내 말과 행동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의 최대목적인 차를 손에 넣었고, 차 안에 있음으로써 우리가 내는 소리가

어느 정도 차단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윤호가 내게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물었다.


"리스너.. 뒤에 있냐."


"응. 돌아와서 그 조폭을.."


"..그럼 지금 차는 못 몰겠네."


윤호는 그렇게 말하고 조용히 뒷 창문 쪽으로 고개를 빼고 뒤를 쳐다보았다.

리스너는 아직 대문 안에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놀고 있는건지 우리의 시야에 잡히지 않았다.


놈의 청력이 얼마나 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목소리만 듣고도 그 사람에게 정확하게 다가가

손톱을 꽂아넣는 것으로 봐서 그 청력은 인간의 영역을 훨씬 넘어선다고 해도 될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차 안에 있는 우리라고 해도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차를 뺄수도 없다.


떠들지도 못한다.


차 안에 있어야 한다.


제길, 뭘 어쩌라고.


나는 한숨을 폭 내쉬며 몸에서 힘을 뺐다.

조금 정신이 돌아오자 금방 눈앞에서 참혹하게 죽은 조폭의 모습이 떠올랐다.

좀 편하게 있고 싶지만 무서워서 의자도 뒤로 못 눕히겠다.


지금 우리가 급히 출발한다 해도, 놈의 속도는 무시할 만한 속도가 아니다.

게다가 여기서 편의점까지는 차로 이동하면 5분도 채 안 걸리는 거리다.

놈은 백퍼센트 따라올 것이다.

그렇다고 큰 길 쪽으로 나가 빙빙 돌면서 놈을 따돌린다 한들, 다른 좀비들에게 쫓기게 될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리스너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사냥을 멈추지만,

다른 놈들은 일단 기척이 느껴지면 끝장을 보고 마니.. 오히려 더 위험하다.


그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나.


우리는 차 안에서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쥐죽은 듯이 시트에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1분 1초가 너무도 길게 느껴진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막막하군.

 

28화-귀환

 


"..으음."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머릿속이 멍- 하고 앞이 어두워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 가 아니라, 나 잠들어 있었군.


나는 손으로 침이 흘러내린 입가를 닦아내며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세웠다.

머리를 의자에서 떼어내자, 여전히 붕대를 감은 채인 오른쪽 귀에 한순간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손을 귀 근처로 가져다대며 얼굴을 찡그렸다.


"아우.."


빌어먹을 변종좀비새끼. 멀쩡한 사람 귀를 반이나 잘라먹고 말야..


가만, 변종좀비..?


"흡!"


나는 반사적으로 양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나 지금 뭐야! 리스너를 뒤에 두고 잠들었던 거야?


나는 양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십 초 정도를 굳어있다가, 몸 군데군데를 헤집어보며 지금 내가

저승에 있는 건지 사바세계에 남아있는 건지를 확인해보아야 했다.

다행이군.

적어도 지금 내 손에 느껴지는 몸의 감촉은 내가 기억하는 대로야.

날개도 안 달려있고, 머리 위에 헤일로도 없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려다가 다시금 정신을 바로잡고 나오려던 숨을 꾹 참았다.

최대한 조용히 해야지.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조심스레 옆을 보니 윤호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깨었을 때 아무런 반응이 없어 뭔가 이상하다 싶었더니 역시나 녀석도 잠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다.

운전석을 보니 수정형 역시 단잠을 자고 있었다.


솔직히 피곤했을 만도 하지. 그런 일을 겪었으니..

모두가 무사하다는 것에 감사할 수 밖에.


나는 얼마나 잠들어 있었는지 시간을 확인하려 했으나, 차의 시동이 꺼져있어 시계는 켜져있지 않은데다

윤호나 수정형의 핸드폰을 본다 한들 내가 잠들기 전에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으니 지금 시간을 확인해도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도리가 없다.


다만 아직도 바깥이 어두우니 그저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르지 않았으리라 짐작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안도했으나, 동시에 편의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다른 동료들이 생각났다.

애들 피말려 죽이지 않으려면 빨리 연락을 주던가 해야겠군.


나는 트렁크에 달려있는 뒷창문으로 대문 쪽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당장은 리스너가 보이지 않았다.

허나 이 놈이 바로 저 문 너머에서 아직도 식사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혹은 어디 안 보이는 곳에서 다음 희생자를 찾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속단은 절대 금물이다.


나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게 움직이며 윤호를 흔들어 깨웠다.


"야.. 김윤호. 인나라."


"으응.. 어.. 어라.. 나 잠들었나.."


윤호녀석 역시 자기도 모르게 잠들었었나보다.

녀석은 부스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며 눈을 비비다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몇시냐 지금.."


"몰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


"앗! 리쓰너우웁..!"


원래 형광등같이 반응이 느린 종족인 윤호는 멍하니 내 말을 듣고 있다가 눈을 번쩍 뜨며 소리를 지르려 했다.

나는 황급히 녀석의 입을 틀어막으며 인상을 구겼다.


"입닥쳐 병신아..!"


"우부부.."


윤호놈은 우리가 리스너를 뒤에 두고 잠들었다는 사실에 한순간 겁에 질린 듯 했다.

소리지르는 입을 막은 터라 내 손바닥에 녀석의 침이 잔뜩 묻었지만 혹시나 있을 리스너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 보다야 백배 낫다. 젠장.


나는 흥분한 윤호가 가라앉을 때 까지 잠깐 기다린 뒤,

침이 뭍은 손바닥을 차 시트에 비벼 닦으며 조용히 말했다.


"우리 셋 다 잠들어 있었어.. 아직 리스너가 뒤에 있는지 아닌지는 몰라."


"으..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겠는데. 얼마나 잠들어 있던 거지 우리."


"모르겠어. 근데 아직도 깜깜한 걸 보니까 그닥 오래 지나지는 않은 것 같아. 그것보다 너 핸드폰 있지. 일단

두고 온 애들이랑 통화나 하자. 우리 걱정하고 있을 거야."


"어.. 어 그래. 알았어."


윤호는 잠깐 허둥대더니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핸드폰을 찾아헤맸다.

녀석은 몇 초 정도를 소모하며 시간을 끌더니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핸드폰 두고 왔나 봐."


"젠장, 도움이 안 돼요.. 수정형은 가지고 있겠지."


나는 몸을 살짝 일으켜 수정형을 깨우려 했다.

그런데 윤호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너 무기들 어쨌냐?"


"어?"


"무기. 식칼창이랑 손도끼."


"식칼창이랑 도끼? 그거라면 내가 항상.."


나는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식칼창은 제쳐두고, 항상 오른쪽 허벅지에 가죽벨트로 만든 홀스터와 함께

걸어두었던 손도끼를 찾아 손으로 내 다리를 더듬어 보았다. 불행히도 내 손에는 아무것도 짚히지 않았다.

이번엔 식칼창을 찾으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가 마지막으로 무기를 들고 있었을 때가 언제인가를 생각하다가,

순간 애꾸가 나를 집 안에 가두었을 때가 생각나 나지막히 말했다.


"저 집 안에 무기 떨어뜨린 것 같다.. 아 씨, 둘 다 잊어먹은 것 같아."


"무기도 죄다 잊어먹은 주제에 남말하네. 핸드폰보다 무기가 더 중요하잖아."


"큭."


맞는 말이다.

미쳤다고 저 안으로 다시 무기를 가지러 들어갈 수도 없다.

제길, 좋은 조합이었는데 다시금 무기를 만들어야 하나.. 겨우 며칠이긴 하지만 손에 익은 물건들인데.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지. 일단은 전화가 급해."


나는 손을 뻗어 수정형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형은 잠깐동안 잠에 취해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목을 수그리며 말했다.


"나 지금 잠들었었어?"


"괜찮아요. 우리도 다 자고 있었으니까."


"아.. 그, 그래. 운이 좋았군, 우리들."


다행히도 수정형은 윤호처럼 소리를 지르지 않아 내가 손바닥에 또다른 아밀라아제를 뭍히게 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형은 불안한 눈빛으로 차 뒷창문을 한 번 바라보고 내게 말했다.


"리스너는?"


"모르겠어요. 우리도 이제 일어난 참이라서. 그것보다 핸드폰좀 줘봐요, 애들한테 전화 좀 해보게."


"아 그래. 여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친구로서 만났더라면 형의 핸드폰엔 이미 애들의 전화번호가 등록되어 있었을 테지만,

상황이 이런지라 그럴 여유가 없었을 게 뻔하다.

애들의 번호를 알 리가 없는 형에게서 나는 핸드폰을 받아들고 태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 뚜-


몇 번의 신호음이 오가고 곧 태완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태완아, 나다. 지랄."


-야 김진환! 왜 이렇게 안 들어와? 걱정했단 말이야! 너네 지금 어디..


나는 급한 목소리로 마구 질문을 쏟아내려던 태완이를 가까스로 막으며 말했다.


"사정이 있어. 가서 설명할게. 지금은 떠들면 안 돼."


-뭐?


"리스너를 만났어. 라디오에서 들었던 변종좀비 있잖아.


-리스너..? 아, 그 청력만 살아있다는.. 근데 너희들 그걸 보고도 괜찮아?


"조폭 아저씨들은 전멸. 우리는 가까스로 피했어. 지금 자동차 안에서 피해있는 중이야."


-저.. 전멸?


태완이가 질린 듯이 말하자 나는 씁쓸하게 말했다.


"어.. 마지막 아저씨는 눈 앞에서 배가 찢겨 죽었어. 좀비로 변한 사람도 있고."


태완이는 잠깐 상상을 하고 있는지 말이 없었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태완이가 나지막히 물었다.


-자동차는 구한거야, 그럼?


"어. 우리 나간지 얼마나 됐지?"


-한 두 시간 반 됐어. 재복이 상태가 별로 안 좋아.


"알았어. 최대한 빨리 갈게."


-리스너가 있다며? 괜찮은거야?


"..괜찮길 바래야지."


-조심해라. 윤호랑 수정형한테도 조심하라고 일러줘.


"그래. 고맙다."



내가 통화를 끊고 전화기를 형에게 건네주자 윤호가 물었다.


"뭐래?"


"뭘 뭐래. 두시간 반 지났댄다. 빨리 가야지. 재복이 상태가 별로 안 좋데."


"그거 큰일인걸.. 근처 약국에서 해열제 같은 거라도 가져가야 하는 거 아냐?"


내 말을 들은 수정형이 난처한 얼굴로 말하자 내가 대답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약품은 대부분 구비해 놓았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일단은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해 봐야죠."


"아, 그거라면 나 생각해놓은 거 있는데."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윤호가 기다렸단 듯 이야기했다.

수정형과 내가 녀석을 쳐다보자 윤호는 형의 휴대폰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걸 이용하는 거야."


"응?"


윤호는 나와 수정형에게 조금 더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형이 조수석과 운전석 사이에 다리를 끼고 이 쪽으로 다가옴과 동시에 내가 고개를 숙이자

윤호가 설명을 시작했다.


"저 놈은 소리에 민감하잖아. 근데 그렇다고 우리가 지금 차 안에서 저 대문 근처에 잡동사니를 조금

던져본다고 한들 확실하게 낚이리라는 보장이 없어. 그리고 낚인다고 해도, 놈이 먼 곳에 있다가 그 소리를

듣고 달려오는데 우리는 그 시간차 때문에 안전하다고 생각하다가 당할 수도 있고 말야."


윤호는 다시금 차의 뒷창문을 한 번 살펴보고 말을 이어갔다.


"더군다가 차 문을 열었다가 그 소리에 놈이 기어나올 수도 있고.. 그럼 이미 늦은거잖아? 그러니까, 제일

소음이 적은 운전석이나 조수석 쪽 문을 열면서, 벨소리를 켜 놓은 핸드폰을 던져보는거야."


"핸드폰 망가지면?"


"우리 목숨보다는 덜 소중하다고 보는데."


"으음.."


뭐 소리로 낚아야 한다면 더없이 확실한 방법이긴 하다.

게다가 리스너가 반드시 이 근처에 있으리라 보장도 없고.


"..무엇보다 우리가 이 안에서 관찰을 할 수가 있어야 하잖아. 나가면 죽음이니까. 만에 하나 놈이 이 근처에

있다면, 벨이 울리고 있는 폰을 던져놓으면 확 날아와서 난리를 칠 거란 말이지. 우린 구경하면 되는거고."


윤호가 말을 끝마치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수정형은 잠시 자기 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생각을 하는가 싶더니 곧 결정을 내렸다.


"좋아. 하자."


"괜찮겠어요?"


내가 묻자 형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딱히 뾰족한 수가 없잖아. 내 핸드폰이 무사한 것 보다, 놈이 이 근처에 없길 빌자구."


자동차의 머리는 대문과 반대되는 방향에 가 있는 상태다.

형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앞 문을 연 뒤, 핸드폰의 버튼을 누르면서 벨소리를 울리게 하는 메뉴를 찾았다.

제기랄, 불과 몇 초 정도인데 왜 이리 떨리는 건지.


때르릉 때르릉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형이 열어놓고 있는 차의 문 틈으로 보이는 어둠을 주시하고 있던 내 귀에,

 갑자기 요란스런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다. 형이 소리를 켠 것이다.

형은 자기도 놀랐는지 움찔 하더니 곧바로 몸을 반 쯤 차에서 빼고 대문 앞으로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타악


때르릉 때르릉-


형은 핸드폰을 집어던지자 마자 곧바로 문을 닫고 몸을 수그렸고, 나와 윤호는 약속이라도 한 듯이

뒷창문을 쳐다보았다.

어스름한 어둠 속에서 빛을 내며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는 핸드폰이 괜시리 무서워 보였다.

아니, 핸드폰이 무서운 게 아니라 저것이 가져올 후폭풍이 무서운 거겠지.


1초.. 2초.. 3초..


우리는 숨소리도 내지 않고 뒷창문을 통해 대문 앞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만약 리스너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하지? 다시 잠이나 자야 하나?

아니 그렇다고 계속 여기에 있을 수만은 없잖아?


차마 계산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머릿속을 마구 휘저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지금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놈이 나타나지 않기를 비는 것 뿐이다.


"..."


"..."


때르릉 때르릉


대략 1분 정도가 지났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우리는 제각기 묻는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뒷창문을 쳐다보며, 또다시 대략 1분.


"없다."


"응. 없는 것 같네."


우리는 그제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아니, 확신까지야 못하지만 그럭저럭 마음은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수정형에게 말했다.


"형, 시동 걸어요. 나랑 윤호랑 핸드폰 가져올 테니까 바로 출발하죠."


"어, 알았어."


"가자 김윤호."


이미 큰 소리를 낸 이상 모 아니면 도다.

나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차 문을 열고 윤호와 차 밖으로 뛰쳐나와,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는

핸드폰까지 달려갔다.

나는 핸드폰을 집어드는 즉시 전원을 꺼 버리고 다시 자동차로 줄달음을 쳤다.

이미 충분한 실험을 한 뒤이지만 언제 놈이 튀어나올까 무서워서 등줄기가 짜릿짜릿하다.


쿠당탕


"하아- 하아.."


"헉, 헉, 진짜 무섭다. 이거. 나 똥 쌀 거 같아."


"여유부릴 시간 없어! 출발한다!"


끼이이이익


수 초 만에 동작을 끝마친 나와 윤호가 차에 올라타자 마자 수정형은 차를 급발진시켰다.

덕분에 열린 문 쪽에 있던 나는 달리는 차에서 문을 닫느라 낑낑거려야 했다.


드디어 차를 얻었다. 남은 건 올라가는 일 뿐!


"달려요 형 달려!"


"보채지 마! 골목 안이라고!"


안에 타고 있을 뿐인 나와 윤호나, 운전하고 있는 형이나 거의 반쯤은 패닉 상태였다.

형은 미친듯이 엑셀을 밟으며 차를 몰았고, 나와 윤호는 사방의 창문을 계속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젠장, 제발 아무것도 나타나지 말아라!


걸어서 10분밖에 안 되는 거리다.

언제 덮쳐올지 모르는 리스너의 위협 때문에 운전실력을 120퍼센트 발휘한 수정형 덕에 우리는

광속과 같은 속력으로 편의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고작 이 정도 거리에 우리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는 거다.

빌어먹을, 서울이 어쩌다 이 꼴이 됐냐..


끼익-


"뒤에 좀 살펴봐! 뭐 따라오고 있어? 빨리 봐봐!"


흥분상태에서 벗어나지 못 한 수정형이 차를 편의점 앞에서 멈추고 우리에게 다그치자 윤호는

창문을 열고 이리저리 둘러보며 대답했다.


"없어요. 아무것도."


"하아, 다행이다.."


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차의 시동을 껐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당장 차에서 내리기가 무서운 까닭은 왜일까?


"..내려도 괜찮은 거겠지?"


"I hope so."


나는 나지막히 한 마디를 중얼거리며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도 밖에 나와서 심호흡을 하는 순간 뭐가 슝 날아와 내 몸을 육시하는 일 같은 건 벌어지지 않았다.


"진환아!"


내가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윤호와 수정형을 기다리고 있는데 편의점의 옥상에서 태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빨리 문 좀 열어!"


태완이는 내 말을 듣는 즉시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안에서 동료들이 움직이는 걸 쳐다보고 있는데 윤호가 쇠몽둥이를 들고 차에서 내리며 내게 말했다.


"쟤는 리스너가 있다고 했는데 뭔 배짱으로 옥상에 서 있대?"


"그게 친구라는 거다 띨빡아."


이윽고 편의점의 문이 열렸고, 동료들이 우리를 반겼다.

우리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 다시 문을 잠궜다.

다들 잠자리에 들기 직전이었는지 편의점 안은 유달리 조용했다.

저쪽 모퉁이에 나라와 나영누님이 담요를 덮고 곤히 자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굳이 깨울 필요는 없겠지.


윤호와 수정형이 짐을 내려놓는데 아름이가 우리에게 다가와 물었다.


"괜찮아요?"


"괜찮으니까 여기 있겠지. 내 생전 최고의 모험이었어. 그.. 리스너."


"아 그 변종좀비 만났다고 했지? 어땠어?"


태완이가 묻자 윤호는 고개를 으쓱하며 말했다.


"졸라 무서워서 뭐 제대로 살피지도 못했다. 그놈이랑 싸우는 건 꿈도 못 꿔."


"그저 휴전선으로 올라갈 때 까지 그 놈을 만나지 않길 빌 수 밖에. 그나저나 재복이는 좀 어때?"


"난 괜찮다."


내가 재복이에 대해 묻자 뒤의 아이스크림 냉장고 쪽에서 재복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행들이 뒤를 돌아보자 재복이가 물을 마시며 서영이의 부축 하에 몸을 반쯤 일으키고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재복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좀 어때."


"그럭저럭. 니가 꼬맨 게 좀 효과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아직 괜찮아."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린거야."


서영이가 내게 불만을 토해내자 나는 양 손을 흔들며 말했다.


"미안해. 어쩔 수가 없었어."


재복이는 괜찮다고는 말하고 있지만 안색이 창백한 게 영 좋아보이질 않는다.

이럴 때 치료를 제대로 하고 영양섭취를 충분히 해하 하는데,

이 안에 있는 거라고는 인스턴트와 과자 뿐이니.. 어떻게는 자연식을 구해야 할 텐데.


"..내 몸 보다 너희한테 알려줄 소식이 있어."


"어?"


재복이의 말에 내가 물음표를 던지자 재복이가 태완이를 쳐다보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그러자 태완이가 녀석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말했다.


"방금 전, 라디오에서 소식이 들어왔어. 군부대가 남해안에서, 아직 감염이 되지 않은 지역에 어떤 남자들이

좀비가 든 시체를 내려놓는 걸 발견했다고 했어."


"진도였지 아마?"


서영이가 거들었다.


"그래, 진도. 하여간 그걸로 거기 감염은 막았다는 건데.. 결론은 이 사태는 그냥 벌어진 게 아니라는 거야.

감염폭발이라던가 우발적인 바이러스 사태가 아니라, 누군가가 이미 좀비화 된 사람을 의도적으로

풀어놈으로써 일어난 일이라는 거야."


"그건 또 새소식이네."


태완이의 말을 듣자 윤호가 한 마디를 했다.

수정형은 언제 꺼내왔는지 손에 스프라이트 캔을 들고 한 모금을 마시고 있다가 말했다.


"뭐.. 빅뉴스이긴 한데 그건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수정 형 말이 맞아."


나는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딴 건 군인들이나 윗대가리들이 해결할 일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지금으로서의 최선은, 구한 저 봉고차로

휴전선까지 올라가는 것. 오늘 밤이 지나면 이제 남은 기간은 딱 하루야..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자구."


내가 일행을 죽 훑어보며 힘주어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힘내자."

 

 

 

 

** 1부 끝~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 2부가 남아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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