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 중 각성 awareness during general anesthesia
주부 유선영(가명·34)씨는 3년 전 쌍둥이를 출산하기 위해 제왕절개 수술을 받던 중 의식이 돌아왔다. 유씨는 뱃속에서 아이를 깨내던 수술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며 쌍둥이를 베란다에서 던지고 싶었다고 끔찍했던 기억을 털어놨다.
서울의 한 대형종합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았던 정세진(가명·27)씨도 전신마취 상태에서 마취 중 각성을 겪었다. 정씨는 레이저로 가슴을 열고 갈비뼈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으며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눈꺼풀도 들 수 없었고 소리조차 지르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마취 중 각성을 겪은 환자 50%가량이 외상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전신마취 후 혈압이 떨어질 위험성이 있는 심장수술은 개인별 충분한 마취제량이 달라 갈비뼈를 자르는 과정에서 의식이 돌아오는 경우가 있다. 이에 심장수술의 경우 100명 중 1~2명이 마취 후 각성을 겪어 1000명 중 1~2명이 겪는 확률보다 높다.
지금부터 쓰는 글은 어떠한 픽션도 없는 필자가 겪은 일을 사실그대로 적는 글임을 밝혀둔다.
나는 올해 32살의 남성이다.
사실 내가 이일을 겪기전까지 앞에 설명했던 수술중각성이라는 단어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단한번도 접해보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2년전.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7월이였다
평소와 다름없이 회사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있었다.
아침부터 배가 살살아프더니 점심시간이 되니 그통증은 더욱 심해져 밥을 먹을수도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결국 식사를 포기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점심시간내내 엎드려 식은땀만 흘리고있었다.
회사동료들은 어디아픈거아니냐며 병원에 가보라고 했지만
그때까지만해도 퇴근시간까지는 참을수 있을 것 같아 그냥 참아보기로 하고 업무에 집중했다
하지만 통증은 더해갔고 결국 나는 3시쯤 통증을 참지못해 기절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눈을 떴을땐 회사근처의 병원이었고 와이프와 어머니가 옆에 있었다.
나는 와이프에게 무슨일이 생긴거냐고 물었고
와이프는 아직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기다려보자는 말뿐이었다.
별것도 아닌일에 괜히 어머니와 와이프에게까지 걱정을 끼치는것같아 내심 미안했지만
큰병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불안한 마음 따윈없었다.
간단한 혈액검사와 촬영으로 결과가 나왔는데
예상대로 큰 병은 아니었다.
의사는 담도 협착으로 담즙배출이 안되 통증이 따른것으로 보이며
현재 담낭염이 심해 복막염으로 발전할수 있으니 담낭을 제거하는 수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쉽게 얘기해 쓸개에 염증이 생겨 쓸개를 제거하는 수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의사는 담낭을 제거 하지않고 항생제를 투여해 어느정도 통증도 잡고
치료를 시도해볼수는 있겠지만 재발위험이 많으니 제거수술을 권유했다
나는 아무래도 이와같은 고통을 겪고 싶지 않았기에
제거수술을 하는것으로 마음을 먹었다.
곧장 회사에 병가를 내고 입원을 했고 큰수술이 아니었기에 수술은 다음날 바로 이루어졌다.
공복으로 밤을 지세우고 수술당일 아침을 맞은 나는
이런수술은 태어나 한번도 해본적이 없어 생각보다 많은 겁을 먹었었다
큰수술은 아니였지만..
간호사들이 병실로 들어와 수술시간이 다되었다며 나를 바퀴가달린 침대에 옴겼고
그침대에 오른 나는 곧장 수술실로 향하게 됬다.
그리고 마취를 시작한다는 의사의 말과 함께
나는 호흡기를 낀상태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고 아마 마취가 된듯 기억을 잃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알수 없지만 아주 흐릿하게 앞이 보이기 시작했고
또 몇초후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정말 참기힘든 고통이 찾아왔는데 이 고통은 도저히 글로써 표현할방법이 없다.
뜨거운 인두로 온몸을 지지는듯한 고통이였는데
소리를 아무리 질러도 내말을 들어주는사람은 없었다. 아마도 이때 나는 제발 죽여달라고 소리친것으로 기억한다.
서서히 시야가 밝아지기 시작했지만 몸만은 내뜻대로 움직일수 없었다
나는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죽여달라고.
하지만 내말이 들리지 않는지. 그들은 이상한 기계음만 내며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었다
고개들 움직일수 없어 얼굴을 볼수 없었지만 그들은 여러명인듯 했고 나는 여러가지 기계음들을
통해 여기가 수술실임을 짐작할수있었다
너무나 두렵고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눈을감고 싶어도 감을수 없었다
어떠한 신체의 신경도 내말을 듣지 않았다
식물인간으로 살아간다는게 어떠한 느낌인지 나는 이계기를 통하여 경험했다.
계속대는 고통에 모든신경이 무감각해져 고통을 잊을때쯤 나는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얼마후 눈을 떴을때 가장먼저 와이프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와이프는 왜이제서야 일어났냐며 황급히 누군가를 찾는듯했다.
그제서야 달려온 간호사는 생각보다 꾀 긴시간 마취에서 풀리지 않아
걱정했다며 담당의사가 곧올테니 기다리라는 말을 전했다.
그제서야 약간의 정신을 차린나는 또한번의 고통이 엄습하는걸 느꼈다
하지만 앞전에 느꼈던 그고통에 비하면 이 고통은 어린아이의 간지럼에 불과했다.
와이프는 많이 아프지 않냐며 지금 무통주사를 투여했으니 조금만 참으라며
나를 위로했다
몇분지나지 않아 담당의사가 왔고 의사는 수술은 잘됬으니 시간이 좀 경과하면
통증도 나아지고 식사도 할수있을거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수술실에서 겪었던일이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할만한 정신력이 없었고
그저 의사와 가족들이 하는 얘기만 들을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몇일후 나는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퇴원만을 앞두고 있었다.
다음날 오전이 퇴원 예정이었기에 일찍 잠에 들었는데
나는 잊고 싶었던 그날 수술실의 기억을 또다시 꿈에서 만나게 됬다
그때와 다름없이 온몸을 지지는 듯한 고통이 엄습했지만 몸전체를 움직일수 없었다.
그 악몽에 지쳐 온몸이 땀으로 젖을 무렵 신음하는 나를 와이프가 흔들어 깨웠고
그제서야 그악몽에서 깨어날수 있었다.
면소재의 병원침대시트가 흠뻑 젖어있었다.
와이프는 의사를 불러야 하냐며 어디가 아픈것 아니냐며 호들갑을 떨었지만
나는 그냥 악몽을 꾸었을뿐이라고 아무 얘기도 하지않았다.
그리고 퇴원당일 오전 담당의사를 잠깐 만났다.
의사는 당분간 내원하며 치료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고
나는 알았다며 병원을 나섰다.
와이프차에 몸을 실고 병원을 빠져나올 무렵 나는 와이프에게 차를
잠깐 세우라고 얘기한후 병원으로 다시들어가 담당의사를 찾았다
의사는 무슨일있냐며 물었고 나는 "혹시 둘째따님이 저번주에 돌이셨나요?"라며 물었다.
의사는 당황한듯 어떻게 아셨냐고 되물었고 나는 쓴음웃음 지으며
병원을 나올수밖에 없었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날 수술실에서의 기억중 몇몇 사람들의 대화가
아주 작은 부분 기억이 나는데 어떤여자가 어떤남자에게 얼마전에 있었던 둘째딸돌잔치에
못가 미안하다 내용의 대화였던걸로 기억한다.
그날 이후 나는 몸이 피곤하거나 아픈상태에서 잠에 들면
어김없이 그날 일을 꿈에서 만나게 됬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병을 갖게되어 일주일에 한번 신경정신과에서 통원치료를 받고있다.
오늘도 몸이 몹시 피곤하여 그날일을 꿈에서 만나게될까 두려워
잠을 못이루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이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