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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게임]PART 4.(DATA1~완결)

왕보리 |2012.06.13 09:54
조회 1,384 |추천 1

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 웃대 : berser13 님 >

 

Data 01. 7th Simulation(7번째 실험)

[2009년 3월 18일, 03시22분 서울 구로구]

전 형사는 불이 켜진 방을 힐끗 보았다.

아주 허름한 건물이었다.

1층은 자동차 정비소였다.

2층은 당구장이었다.

3층은 칸막이 방인 듯싶었다.

3미터 간격으로 일정한 모양의 창들이 있었다.


“오 반장님. 저기란 말이죠.”


“그래.”

그 방 중 가장 가장자리에 있는 방에 신종 마약 트리플 엑스의 국내 중간 유통책인

‘강치’가 있었다.


“지원을 부를까요?”


전 형사가 물었다. 오 반장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녀석은 혼자야. 괜히 모여들면 눈치 채고 도망칠 수도 있으니 우리끼리 체포하자고.”


“그러죠.”


두 남자는 계단을 올랐다.

3층에 도착했다.

강치가 있는 곳은 복도 끝 방이었다.

전 형사가 앞 장 섰다.

전 형사는 총을 꺼내들었다.

복도 중간의 모든 방들은 모두 굳게 닫혀 있었다.

둘은 소리 없이 끝 방으로 다가갔다.

끝 방 앞에는 다 먹고 비운 자장면 그릇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문이 열려 있는데요.”


철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전 형사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 반장은 그 뒤를 따랐다.

안에서는 TV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현관에는 슬리퍼 하나가 아무렇게나 놓여져 있었고 여자 구두도 한 켤레 옆에 놓여 있었다.


“꼼짝마!”


전 형사는 소리치며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방이라고 해봤자 작은 화장실이 딸려 있을 뿐이었다.

물론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숨을 곳도 없었다.


오 반장은 창으로 다가갔다.

방에 창이 두 개가 있었는데 창 하나는 닫혀 있었고 하는 열려 있었다.

열려 있는 창 하나에서는 옆 집 옥상이 보였다.


“이리로 도망친 모양인데요. 어떻게 하죠?”


전 형사는 권총을 다시 권총집에 넣으며 물었다.


“어쩔 수 없지. 방이나 뒤져 보자구.”


둘은 방을 샅샅이 뒤졌다.

전 형사는 화장실 양변기 물탱크에서 봉지에 밀폐된 채 보관되어 있는 트리플 엑스 수백을

발견했다.


“반장님 여기 조금 있네요.”


전 형사는 봉지를 흔들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건 뭐죠?”


오 반장 역시 무엇을 들고 있었다. 총이었다. 경찰에게 지급되는 권총은 아니었다.


“미안해. 전 형사!”


[푸슛!]


전 형사는 뜨거운 물건이 가슴에 파고드는 느낌을 느꼈다.


[푸슛!]


몸이 뒤로 밀려났다. 다리가 풀려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벽에 기대에 그대로 아래로 쓰러졌다.


“반장님 왜?”


“미안해. 전 형사. 어쩔 수가 없었어.”


전 형사는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이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삐리리!]


핸드폰이 울렸다.


“축하드립니다. 고객님. 첫 번째 미션 완료를 축하드립니다. 두 번째 미션은 06시에 전달됩니다.”


오 반장의 눈동자는 풀려 있었다.


***


갇혀 있던 모든 기억이 점점 되살아나고 있었다.

무너진 둑에서 터져 나오는 물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되살아나는 기억을 막을 수는 없었다.

초점을 찾지 못하는 오 반장의 눈동자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제 모든 기억이 되살아 나셨나요? 2009년 3월 8일 03:23일 당신은 파트너인 전병재 형사를

죽여 첫 번째 미션을 완료했습니다.”


“으…. 내가. 전 형사를?”


“이제 기억이 조금 되살아 나셨나보네요.”


탁!


오 반장은 눈을 찌푸렸다.

밝은 빛이 공간을 뒤덮었다.

짙게 깔려 있던 어둠은 순식간에 자취를 감춰버렸다.

오 반장은 겨우 눈을 떴다.

주변을 살폈다.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누구?”


“접니다. 반장님.”


여자의 목소리는 바뀌어 있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보았던 목소리였다.

뿌옇던 사람의 윤곽이 점점 자리를 잡혀 가고 있었다.

오 반장은 가는 실눈이 크게 떠졌다.


“문…문교수.”


문 성실 교수였다. 물론 그녀가 서 있는 것은 아니었다.

커다란 모니터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네. 접니다. 오 반장님.”


“자네가 어떻게 여기에?”


“네. 저 역시 시뮬레이션에 참여 하고 있는 사람 중 한명입니다.”


“어떻게 그런….”


“미국에서 유학 하던 시절이었죠. 전 그곳에서 어떤 사람들에게 납치되었습니다. 그 곳은 엄청난

곳이었습니다. 미국 정부라는 엄청난 권력이 뒤에 있었죠. 그것도 최고 권력층!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저는 그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선택했습니다.

그 권력에 복종하기로…. 그리고 그곳에서 일을 하다가 3년 전에 한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명령대로 대학교수를 하면서 경찰청 자문 역할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실험에도

참여하게 된 것이고요. 물론 처음에는 강압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실험만큼 완벽하게 현장 실험으로 인간의 심리를 조사할 수 있는 경우는 흔하지

않거든요. 보통으로서는 이런 상황을 인위적으로 만들어서 특정한 상황에 대한 인간의 심리를

조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깐요.”


“그런….”


그도 예상하고 있었다.

이런 엄청난 일을 태연하게 벌이기 위해서는 국가 권력뿐이었다.

하지만 미국이라니.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들이 우리나라에 이런 일을 하고 있단 말인가?


“설마 미국이라니…”


“더 이상은 저도 알지 못하니 해드릴 말씀이 없네요. 그럼 이제 다시 잊어버렸던 과거로 돌아

가볼까요? 그래야지 반장님의 잃어버린 가족을 다시 찾을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당신들 선의와 나라를 어떻게?”


오 반장이 외쳤다.

공간에 울려 퍼지던 그의 외침이 사라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숨어 있던 기억이 조금씩 들어나고 있었다.


“이제 생각이 나시는 모양이군요. 두 번째 미션 말입니다.”


일그러진 얼굴의 오 반장은 이를 악 다물었다.

잇몸과 이 사이에서 비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끔찍한 기억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반장님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두 번째 살인은 주변 사람이었습니다. 두 번째 실험은

피실험자와 가까운 사람을 목표로 행해집니다. 당신의 두 번째 실험의 목표는 바로 당신의

딸인 나라였습니다. 바로 당신의 딸.”


다시 기억들이 비집고 나오고 있었다.

거부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강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두 번째 미션 완료 시간은 3월 8일 23:52분. 피실험자 오지혁은 딸인 오나라를 살해했습니다.”


“제발 아무 말도 하지 마. 제발.”


오 반장은 귀를 막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묶여 있었고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살갗에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흔들어댔다.

하지만 살은 파고들망정 뼈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당신은 아내를 살리기 위해 딸을 죽였습니다.”


그랬다. 모든 것이 생생이 머릿속에 기억이 나고 있었다.


그의 손으로 사람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목을 졸리고도 반항조차 하지 않는 아이였다.


바로 그의 딸이었다.


“당신이 이상하게 여겼던 12주의 의문은 바로 당신입니다. 당신이 바로 그 없어진 12주의

주인공인 것입니다.”


“그런….”


“실험 종료 후 우리는 당신의 기억을 지우고 조작된 기억을 심었습니다. 당신은 기억은 수사

도중 동료를 잃고 그 직후 아내와 딸은 실종된 것으로 바뀐 것입니다.”


“나의 기억을 왜?”


“글쎄요. 저도 확실하게는 모릅니다. 저는 이 시뮬레이션에서 아주 작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모든 것은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까 말씀 드렸듯이 두 번째 실험을

제대로 마친 케이스는 단 한 건 뿐이었습니다. 그 한 건은 오지혁 바로 당신인 것입니다.”


“제길…, 아니야. 다 거짓말이야.”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기억은 더더욱 생생하게 기억이 떠오르고 있었다.


“저의 짧은 소견으로 아마도 이번 마지막 실험에 당신을 초대하기 위해서라고 생각되는군요.

3번째 실험을 유일하게 치룬 한 명으로서 말입니다.”


”마지막 실험?“


“네. 이번 끝으로 이 실험은 끝이 나게 됩니다.”


모든 것을 깨끗이 끝내기 위함일까?

조사된 모든 사건들의 용의자는 모두 죽었다.

대부분 자살로 처리되었지만 실제 자살이었을지 아니면 이들에 의해 죽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만이 이렇게 살아 있는 것이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 텐데요.”


“더 중요한 것?”


“3번째 실험 말입니다. 당신이 수행한 3번째 미션.”


오 반장은 머리에 번개라도 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잊고 있었다.

자신의 유일한 사랑인 선의를.


“선의…선의는?”


도대체 그들이 말한 3번째 미션이은 아무리 기억해 내려 해도 생각이 나질 않았다.


“마지막 미션은 기억하지 못하시나 보군요.”


“선의는 어디에 있는 거야! 당신들 말대로 나는 선의를 살리기 위해 동료를 죽이고 내 딸을

죽였어. 그런데 선의는 어디에 있는 거야!”


“역시 기억하지 못하는군요. 마지막 미션을!”


[탁!]


불빛이 번쩍이는 것과 동시에 유 경장은 사가지고 커다란 TV화면에 한 남자의 얼굴이 비춰졌다.


“조성환!”


“맞습니다. 조성환씨는 마지막 실험을 위해 이곳에 있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마지막 미션을

수행하게 됩니다.”


“설마….”


아주 깊고 깊은 곳에 숨어 놓았던 최후의 기억까지 비집고 올라오고 있었다.

손에 들려 있는 총.

총구는 다름 아닌 자신을 향해 있었다.

심하게 떨리는 총구.


“마지막 미션은….”


그는 마지막 미션을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미션을 성공하지 못한 것이었다.

 

 

[2010년 07월 25일 일요일 00:08분 서울 서초구]


소리가 들려온 쪽을 돌아보았다.

소리가 들려 온 곳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계단으로 누군가 내려오고 있었다.

아주 일정한 속도로 한 걸음 한 걸음씩 계단을 내려 설 때 마다 어둠에 가려져 있던 그의

모습이 조금씩 들어나고 있었다.


“당신.”


나는 우습게도 방금 전 여자를 겨냥했던 총으로 계단에서 나타난 남자를 겨누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던 그 총으로 말이다.

남자는 어느새 완전히 1층에 내려와 있었고 그의 얼굴은 완전히 어둠에서 빠져나와 있었다.


“어서 쏘세요.”


간결한 말을 마친 남자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남자의 얼굴은 소년 같기도 했고 청년처럼 보이기도 했다.

평범한 복장이었지만 알 수 없는 신비한 분위기가 풍겼다.

어디서 본 듯 했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인간일까?’


문득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당신…누구야?”


“이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의 관계자입니다.”


“관계자?”


“네. 두 번째 미션을 완료 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첫 번째 미션을 실패 했을 때도 그리고 다시 그들이 내린 변경된 미션을 완료 했을 때도

그들은 마치 귀신처럼 내가 완료하자마자 전화를 걸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이 이벤트의 관계자라는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들이라면 분명히 이렇게 와서 확인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정체를 들어 낸 것이다.

이 신비한 느낌의 남자가 단순한 관계자가 아닌 것은 분명했다.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금은 0시 6분. 이미 두 번째 미션의 완료 시간인 자정은 지났습니다. 물론 이지우씨에게

작동된 톱날은 작동을 시작했고요. 톱날이 이지우씨의 목까지 도달하려면 시간이 있지만 당신이

미션을 완료하기에는 그다지 시간이 없는 것 같군요.”


“무슨 뜻이죠?”


“당신의 미션은 바로 앞에 유혜원을 죽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그녀는 스스로 죽게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당신은 미션을 실패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기랄! 하지만 그대로 나둬도 죽을 데…. 왜?”


“그렇기 때문에 안 됩니다. 당신의 손으로 끝내야 합니다. 이미 그녀는 아무것도 인지 할 수도

없는 상태입니다. 아픔 또한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들 왜 이런 짓을?”


“그건 곧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이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하면 말입니다.”


나는 그를 겨누던 총을 다시 소파에 기대어져 가는 숨을 쉬고 있는 유혜원에게로 돌렸다.


“무엇을 주저하시죠? 죄책감 때문인가요? 당신은 이미 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친구마저 죽음으로 몰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무엇을 망설이시는 건가요? 당신은 한 가지만

생각하면 됩니다. 이지우씨 한 사람만.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 ”


[탕!]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요란한 총성이 고막을 공격했다.

그것과 동시에 따뜻한 액체가 몇 방울 나에게 튀었다.

나는 차마 그것을 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축하드립니다.”


총성이 귀에서 사라진 것과 동시에 남자의 목소리가 다시 고막에 파고들었다.

나는 뒤를 돌아 떨리는 총구로 그 남자의 심장을 겨누었다.

아직도 내 손가락에는 방금 전 방아쇠를 당겼던 느낌이 남아 있었다.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충분히 맞출 수 있는 거리였다.


“방금 0시 8분에 당신은 두 번째 미션을 마쳤습니다.”


남자는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당…신 도대체 정체가 무엇입니까?”


나의 목소리는 그를 겨누고 있는 총구 마냥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확신이 들었다.

이 남자는 분명히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 같은 것이….


“저는….”


나에게 고정되었던 그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다.

남자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 것일까?


“당신이 죽인 여자의 아들입니다.”


남자의 나직한 중얼거림이 나에게 들려 왔다. 그

제야 그가 누구인지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이 나에게 보내준 두 번째 미션의 목표인 유혜원의 자료에도 그의 사진이 있었다.


유선일.


유혜원이 죽기 전에 자신이 낳았던 아이라고 했던, 이 아이를 위해 이 이벤트에 참여 한다고

했었던 바로 그 아이였다.


“그리고 이 게임에 당신을 참여 시킨 것은 바로 접니다.”


그의 말이 잠시 귓가를 맴돌았다.

이 남자가 나타났을 때 나는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리낌 없이 자신이 이 게임을 만들었다고 말하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이런 엄청난 일을 꾸민 것이 나보다 더 어려보이는 이런 남자라니…. 이게 가능한 것일까?


온 몸이 전율했다.

그리고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문득 조금 전 이 남자를 처음 보았을 때 받았던 생각 아니 느낌이 다시 떠올랐다.


‘도대체 너의 정체는 뭐야? 인간일리 없잖아. 너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이란 것이 나에게 외친 것이 아닐까?

두려움 때문에…. 이 남자가 풍기는 엄청난 이질적인 느낌에 내 본능이 반응한 것일까?


“제가 시킨 것입니다. 당신의 연인을 납치하고 당신에게 살인을 시킨 것이 바로 접니다. 그리고

저기 죽은 나의 어머니를 죽이라고 시킨 것도 바로 접니다.”


”넌 도대체 뭐냐?“


남자는 자신을 향하고 있는 총구를 무시하고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5m. 4m.

그는 어느새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는 나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가 이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나를 지나쳐간 그는 곧장 그녀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그녀에게로.


“어머니.”


내 앞에 갑자기 나타난 이 남자는 자신이 이 게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들이 나에게 내린 두 번째 미션은 이 여자를 죽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라고 나에게 명령을 내린 것일까?


피로 물든 채 소파에 쓰러져 있는 그녀에게 다가간 남자는 그녀 앞에 무릎 꿇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

그는 피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죽은 그녀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작은 소리였기 때문에 나의 귀에 들리지는 않았다.


그리고는 그는 그녀의 입술에 살며시 입을 맞추고는 몸을 일으켜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어머니의 피로 얼굴을 물들인 그가 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것은 어머니 자신이 원한 일입니다.”


“어떻게 그…그런.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라고 나에게 명령을 내린 겁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모두 그녀가 원했던 것입니다. 그녀는 증명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말을 마친 남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지금까지 무표정했던 그의 표정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소인가? 어머니의 피를 뒤집어 쓴 채 미소 짓고 있는 것인가? 정말로 악마인 것인가? 나는

악마의 실험에 참여 한 것인가? 내가 이 악몽을 깰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일까?’


나의 바쁜 머릿속과 상관없이 그는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나의 떨리는 손에는 여전히 총이 들려 있었고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확실하게 맞출 수 있는

거리였다.


“당신은 저를 쏠 수 없습니다.”


“제길. 이미 나는 여러 명을 죽였다고.”


눈앞에 보이는 피투성이의 여자와 이미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는 신중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하지만 당신에게는 아직 마지막 미션이 남아 있습니다. 당신에게는 지우라는 사람이 있잖아요.”


나도 알고 있었다.

내가 총을 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두 명을 죽였고 그리고 내 친구마저 죽였다.

이유는 하나 때문이었다.


“세 번째 미션까지 모두 완수 하면 지우는 무사히 풀려나는 겁니까?”


나의 물음에 그는 대답 없이 조금 전에 지었던 차가운 미소만 얼굴에 띄울 뿐이었다.

주의가 소란스러워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오고 있었다.

누군가가 나의 팔을 붙잡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의 팔에 무엇인가를 주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시야가 완전히 깜깜해질 때까지 나는 남자의 미소에서 시선을 땔 수가 없었다.

그 악마의 미소에서 시선을 땔 수가 없었다.

 

 

 

 

Data 02. Third Mission(세 번째 미션)

 

“조성환씨.”


밝은 빛에 나는 눈을 떴다.

꿈이었구나? 왜 갑자기 그날 일이 떠오른 것일까? 후회 때문일까?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허공에 떠 있었다.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공간이었다.

어딘가 빛이 존재하고 있는 듯 주변은 환했지만 그 빛이 어디서부터 발생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방금 꿈에서 깼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꿈이라고 꾸고 있는 듯 했다.


“정신이 드셨습니까?”


다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 역시 어디서부터 발생되어 나에게 전달되어 오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의 주인공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악마!


나는 꿈에서 깨었지만 여전히 이 악몽은 계속 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신이 드셨나요?”


“네.”


나는 순순히 대답했다.


“지금 자신의 상태가 이상하게 느껴지시겠지만 그냥 편하게 생각하십시오. 곧 당신은 마지막

미션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 마지막 상태를 위해서 저는 당신의 의식의 내부에서 대화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


“당신이 마지막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신이 참여 하고 있는 이 이벤트에 대해

아셔야 합니다.”


“그 전에 지우…지우는 무사합니까?”


“후후…”


남자의 차가운 웃음소리가 귀에 들려 왔다.

나의 의식의 내부에 들어와 있다는 남자의 때문인지 남자의 웃음소리에 내 전신이 차갑게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무엇이 저 남자에게 저런 차가운 웃음소리를 낼 수 있게 만드는지 알 수 없었다.


[탁!]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와 동시에 지우가 나타났다.

아니 나의 눈앞에 지우의 모습이 보여 졌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무엇인가를 바라보면서 살며시 미소 짓고 있었다.

납치되어 침대에 이들에게 붙잡힌 채 잠들어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나와 함께 있을 때의 모습과 같았다.


“어떻게 된 거죠?”


“아. 지금 이 모습은 조성환씨가 3번째 미션을 무사히 마쳤을 경우의 이지우씨의 모습입니다.”


“네?”


“의아스럽겠지만 사실입니다. 그럼 이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남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야에서 그녀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졌다.


“그럼 다시 이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라는 실험에 대해 잠시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 실험은

2007년부터 10월에 첫 번째 실험이 시작되어 12주마다 행해졌습니다. 당신은 이 실험의 13번째

대상입니다. 아주 간단하게 이번 실험의 목적에 대해 설명 드리면 이 실험은 인간에 있어서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 위한 실험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과연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가.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을 담보로 다른 사람을 죽이는 일을

시킬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정도 일은 인간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닐 텐데요.”


“무슨 뜻이죠?”


“인간에게 있어서 다른 것을 죽이는 행위는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니…. 인간은 다른 것을 죽이는

것을 즐기죠. 인간은 어릴 적부터 다른 생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죠. 아이에게 벌레를 가져다

주면 아이는 그 것을 관찰하다가 흥미를 잃으면 죽이죠. 인간에게 있어서 그것은 본능인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서 즐기기 위해서 다른 생물을 죽이는 유일한 종이 바로 인간이니깐요.”


“제가 원해서 죽인 것이 아닙니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왜 죽인 거죠?”


“모두…당신이 시킨 거잖아.”


나는 소리쳤다. 마치 어린아이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때 징징거리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금세 소리친 것을 후회했다.


“지우를… 살리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모두 자신의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낳은 부모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연인을

살리기 위해 이 게임에 참여했습니다. 당신처럼 말이죠.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인간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다른 인간을 죽일 수 있습니다.”


뭐라고 이 남자에게 항변 하고 싶었다.

이 남자의 말이 틀리다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외칠 수 없었다.

나 역시 이 남자가 말하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지우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나는 이렇게 말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아주 당연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아니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사랑

이라는 감정은 인간의 이성을 뛰어 넘는 것이니…. 그것은 인간의 유전자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니깐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당신 역시

그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것뿐입니다.”


궤변이라고 외치고 싶었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죽였던 첫 번째 남자. 그 남자는 살인마였습니다. 그 남자는 사랑하는 부인이 죽은 후

그 날이 되면 자신이 부인과 닮은 여자들을 죽였습니다. 그것 역시 그 남자에게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두 번째 미션에서 당신은 또 사람을 죽였습니다. 나의 어머니와

그리고 당신의 친구도….”


“으… 제길.”


신중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내가 겨눈 총구를 앞에 두고도 미소를 짓고 있던 그 여자도.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던 그 여자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혹시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그렇게 태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일까?


“저는 당신에게 나를 낳아준 어머니를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어머니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자신의 선택이었습니다. 자신의 사랑을 위한 자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 상황에서 친구를 죽이고 죽음에서 돌아온 것도 당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나요? 아니면….”


아주 짧은 정적 후 남자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면 단지 죽음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나요?”


어떤 것이었을까?

나와 신중은 그녀가 준 독을 마셨다.

그리고 그녀가 건넨 한명만 살릴 수 있는 분량의 해독약.

신중을 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마셨다.

죽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까?


“아…아니야.”


힘겹게 토해냈다.


“지우를 살리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어.”


“역시 그렇군요. 그녀 역시 당신과 똑같은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녀 역시 이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 했습니다. 그는 지령은 당신에게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자신의 자식을 살리기 위해…. 그리고 증명하기 위해서.”


“무엇을 증명한단 말입니까?”


“물론 사랑이라는 것을 말이죠.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죠. 죽음까지도. 자신의 사랑을 위해서 죽음까지도 불사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죠.”


“악마….”


나는 이렇게 내뱉었다. 이 남자는 악마라고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습니다. 저는 악마입니다. 당신에게 있어서도 저는 악마일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존재에게서도 저는 악마일지도 모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이들이 말한 2가지 미션을 완수 했다.

이제 마지막 하나가 남은 것이다.

마지막 미션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게임에 참여 했던 것이 분명했다.


“먼저 당신에게 거짓을 말하게 된 점에 대해 사과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이 이벤트에 초기에

우리에게 당신이 왜 이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저희는 당신이 단순하게

선택되었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이었습니다. 물론 지금까지 이미 실험을 완료한

12명의 사람들은 무작위로 선택되었지만 마지막 실험대상인 당신은 저의 의지에 의해 선택된

것입니다.”


“당신의 의지?”


“네.”


“하지만 당신이 날 어떻게?”


“물론 당신을 알았던 것은 아닙니다. 당신이 인터넷에 올리고 있는 만화를 보았습니다.”


내가 이번에 공모전에 올리려고 그리는 있는 만화를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는 곳이 있었다.

물론 나의 블로그에 올리는 것이었고 조회수가 거의 한 자리였다.

그 것을 이 남자가 보았단 말인가?


“아주 흥미 있는 내용이더군요. 솔직히 대중적인 인기를 끌기는 힘든 내용인 듯싶지만요. 게다가

SF라는 장르와 멜로라는 장르가 혼합되어 좀 난해한 면까지 있더군요.”


정말로 내 만화를 본 모양이었다.


“하지만 저는 아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 말입니다.”


2520년 지구는 위기에 맞는다.

지구에서 30만년 광년에서 떨어진 곳에 침입해 온 외계 종족 이드에 의해서 지구는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지구연합방위사령군의 드레이크하사에 공로에 의해 이드를 거의 괴멸 직전까지 몰아낸다.

하지만 외계 종족 이드의 최후의 병기인 광자포에 의해 지구는 멸망 직전의 위기에 처한다.


“지구를 향해 초속 1만Km의 속도로 날아오는 광자포를 향해 지구인들이 모두 함께 날리는

마음의 힘. 그것으로 광자포는 사라지고 지구는 이드와의 전쟁에서 이기게 되죠. 후후.”


다시 한번 남자의 차가운 웃음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뭐가 웃기죠?”


나도 모르게 발끈 했다.


“아 죄송합니다. 당신의 만화의 내용이 우습기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의 오만함 때문입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 광자포라는 것을 막아낸 것은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이겠죠?”


내가 그린 만화의 미래의 지구는 과학에 의해 지배되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결국 최후에서는 인간의 사랑이라는 마음이 지구 최후의 무기가 되는 설정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말이다.

이 남자가 내 만화를 읽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 때문에 내가 이 게임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하지만 제가 지금까지 보고 연구한 것과는 전혀 다르더군요.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체

중에서 가장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오직 자신 밖에 모르는 종입니다. 인간은 이 별의 생명체들

중에 자신이 가장 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간보다 더욱 고도로 발달된 생명체는 이

별에도 많이 존재합니다. 인간은 이것을 알지 못합니다. 흔히 말하는 인간이 가지고 있다는 이성.

인간은 자신들이 다른 종과 다르게 이성적인 존재라고 들먹이며 이 별을 지배하려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가진 이 이성이야 말로 인간의 진화단계에서 가장 큰 치명적인 실수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인간에게 이성이라는 게 생기면서 인간은 이 별에서 가장 이기적인 생명체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 별의 모든 것들이 자신들의 것이며, 이 별의 모든 다른 생명체가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까?”


나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좀처럼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들먹이고 있는 이 남자는 그렇다면 인간이 아니란 뜻인가?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것인가?


“인간이란 존재가 없는 이 별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별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별입니다. 모든

생명체들이 자신의 어머니인 이 별의 섭리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런 너무나도 아름다운

별입니다. 이 별에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없다면 말입니다.”


“하…하지만.”


나는 뭐라고 항변 하고 싶었다.

이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고 할지다로 뭐라고 한마디 항변을 하고 싶었다.


“물론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인간은 이미 넘어서서는 안 될 선을

넘어 섰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자신의 어머니를 죽일 수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이미 이 별을 통째로 날려버릴 만큼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을 통제하기로 결단을

내렸습니다.”


“인간을 통제?”


“인간이란 생명체는 두 가지로 진화해 나가는 생물입니다. 첫 번째 모든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유전적인 법칙에 따라 진화를 이루어 갑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인간이 만든 사회라는 조직이라

는 것을 통해 진화를 해 나갑니다. 인간이라는 조직을 이루고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면서 생활을

합니다. 살아가면서 사회에서 습득한 것을 자손에게 전해주는 것입니다. 이런 조직으로서의

진화는 이미 인간의 생물로서의 진화를 앞지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인간 사회의 조직을

통제하기로 마음먹었고 이미 우리의 통제 하에 두고 있습니다.”


도대체 이 남자의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우리는 이런 통제가 결코 문제의 완벽한 해결이 될 수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이

별에서의 인간의 존재 자체를 그들에게 맡기기로 말입니다.”


나는 이 남자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참여 하고 있는 이 게임이 평범한 살인 게임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가치가 사랑입니까?”


“모릅니다. 저한테 왜 그런 것을 묻습니까? 그냥 그건….”


“당신의 세 번째 미션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대답을 하십시오.”


“그 만화는 그냥….”


“당신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모두 이지우라는 여자를 위해서가 아닌가요? 그 사람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닌가요?”


“맞습니다.”


나는 강하게 대답했다.


“후후.”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던 것일까? 남자는 다시 한번 차갑게 웃기 시작했다.


“그럼 마지막 미션을 시작하겠습니다. 혹시 마지막 미션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두 번째 미션을 마치 직후 나는 어느 정도 결말을 예상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은 완벽한 확신이 섰다.


“그녀를 위해 내가 죽으면 되는 겁니까?”


나의 말이 끝난 것과 동시에 남자의 세 번째 조소가 터져 나왔다.

몇 초 동안 계속된 남자의 극도의 차가운 조소는 나의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커다란 해일 앞에 선 초라한 인간과도 같았다.

그 어떤 저항이 무의미했다.

그냥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죽음으로 지우를 살릴 수 있으면 당신은 죽음을 받아들이겠죠? 역시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지독한 이기심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마지막 미션은 그것이 아닙니다.”


“그럼?”


“그녀를 위해 당신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존재하지 않은 것과 죽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어는 틀리지만 똑같은 것이 아닌가?


“그게 무슨 뜻입니까?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니? 그게 내가 죽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큰 차이가 있습니다.”


[탁!]


다시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금 전과 같이 지우의 모습이 눈에 들어 왔다.

여전히 그녀는 웃고 있었다.

무엇을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지만 너무나 행복해하고 있었다.


“지우….”


지우의 얼굴만 보이던 것에 비해 점점 그녀의 주위까지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눈에 익은 곳이었다.

창 밖으로는 서울의 야경이 발 아래로 펼쳐져 있었고 차량의 불빛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이 곳은 내가 이 게임에 참여 하기 전날 그녀와 함께 했던 그곳이었다.


그 때와 다른 것은 그녀의 미소였다.

나와 함께 있을 때도 저렇게 환하게 미소 짖고 있었던가?

불과 며칠 전 일임에도 불구하고 몇 십 년 전 일처럼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무래도 뭔가 달랐다.

나는 그녀를 이렇게 환하게 미소 짓게 만드는 대상으로 눈을 돌렸다.


남자였다.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녀 앞에는 내가 앉아 있지 않았다.

그녀는 낯선 남자와 앉아 있었고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남자의 손에는 반지가 들려 있었다.

그 남자는 지우에 손에 그것을 끼워주고 있었다.


“지우야 사랑해….”


남자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 왔다.

너무나도 행복해 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게 내 망막에 아로 새져지고 있었다.


‘지…지우.’


나의 입에서 그녀의 이름이 맴돌았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나는 마치 유령이라도 된 것처럼 그녀 주변을 부유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 안 됩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전에 말한 마지막 미션이 이것입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당신은 이제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녀에게 있어서도. 이 세상에서도. 당신은 애초에

없었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내 눈의 영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의 추억들이 눈앞에 투영되고 있는 것일까?

그녀와 함께 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내가 처음으로 그녀가 나를 좋아했었다는 것을 알았던 장소였던 집 앞 놀이터.

울던 그녀를 꼭 끌어안아주며 토닥거리는 남자. 거기에는 내가 없었다.

나대신 다른 남자가 그녀를 안고 그녀를 달래주고 있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그녀를 안고 그녀를 달래주고 싶었다.

그녀를 안고 있어야 할 사람은 저 남자가 아닌 나였다.


“지…”


당장이라도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부르십시오. 그녀의 이름을… 인간의 사랑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녀의 이름을 외치십시오.

인간에게 있어서 사랑이란 것은 단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한 인간의 이기심일 뿐입니다.”


눈앞에 그려지는 그녀에 대한 영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었다.


그녀가 그렇게 기뻐하던 대학 합격의 순간에도 함께 기뻐하던 나의 모습은 없었다.

그녀가 기르던 개가 죽어 서럽게 울었고 옆에서 그녀를 토닥여 주던 나의 모습은 없었다.

그녀가 기뻐하고 슬퍼하고 웃으며 눈물 짖던 그 순간에 나는 없었다.

점점 영상이 멀어지고 있었다. 아니 내가 그녀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점점 멀어져 점이 되어가고 있었고 그녀의 목소리가 나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사라지면 당신은 완전히 지워지게 됩니다. 그녀에게서도 그리고 이 세상에서도 영원히

말입니다.”


그녀를 만난 초등학교 2학년 시절.

그 후부터 지금까지 나의 심장은 그녀를 생각하기 위해서 뛰고 있었다.

내 발은 그녀에게 가기 위해서 존재했고 내 눈은 그녀와 함께 존재하는 이 세상을 보기 위해

존재 했고 내 귀는 그녀와 함께 호흡하는 세상의 소리를 듣기 위해 존재했다.


‘이대로 내가 사라진다면….’


그녀는 나를 잊게 되는 것인가?

아니 아예 나의 존재 자체를 모르게 되는 것인가?

그녀와 함께 모든 시간이 사라지게 되는 것인가?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따스한 시선과 손길.

그 모든 것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되는 것인가?

그녀 옆에서 함께 숨쉬고 살아갈 사람이 내가 아닌 게 되는 것인가?


“그것뿐이 아닙니다. 그녀에게서 당신이란 존재가 살아질뿐더러 당신의 가지고 있는 기억.

당신이 그녀를 사랑했다는 그것. 당신이 이 세상에 살아있었다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증명하기 위한 이기심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당신이 3번째 미션을 실패하더라고 그녀는 이해 할 것입니다. 그것이 그녀를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인 것이라는 것을 알 테니 말입니다. 그녀를 가지고 싶고 그녀에게

지워지고 싶지 않은 것이 당신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될 테니 말입니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

 됩니다.”


지우.


그 아이를 보고 처음으로 사람을 보는 것이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녀를 보며 다른 이를 보는 게 기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녀를 기다리는 것이 가슴 설레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가슴 아프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대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인가?


내 시야에서 그녀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도 숨결도 이미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어둠 속에 고립되고 있었다.

이렇게 나의 존재는 사라지는 것인가?


이제 나 대신 그녀 옆에는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하게 되는 것이다.

나를 대신해 그녀와 웃고 웃으며 함께 하는 되는 것이다.

그녀는 행복할까? 그럴 것이다.

나처럼 한심한 녀석이어도 행복했는데 다른 사람이라면 훨씬 행복할 것이다.

그녀는 슬퍼할까? 그렇지 않겠지.

남자의 말대로 그녀는 아예 나라는 존재자체를 모를 테니….


“외치십시오. 인간의 사랑이란 그런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극한 이기심. 바로 그것이 인간이

최고로 여기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져 지워질 수 없는 극도의 이기심이

바로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점점 지우의 모습조차 머릿속에서 지워져 가고 있었다.

그녀의 머릿결, 그녀의 입술, 그녀의 눈 그리고 나에게 미소 짓던 그녀의 얼굴이 흐릿해져가고

있었다.


완벽한 소멸.


남자가 말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세 번째 미션이 의미하는 것은 완벽한 존재의 소멸이었다.


싫다.


‘이대로 끝내기는….’


갑자기 온 몸에서 말 할 수 없는 열기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온 몸에서 이상한 거부 반응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것이 그 남자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인간의 감정이란 것인가?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져 있는 사랑이라는 극한의 이기심이 발동하는 것인가?


‘지우?’


그녀에게서 나라는 존재가 잊혀지는 게 싫었다.

그녀를 잊는 게 싫었다.

무엇보다도 그녀 옆에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싫었다.


‘외쳐! 외쳐!’


내 몸속 무엇인가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을 외쳐!’


이것이 사랑이라는 것일까? 정말로?

남자의 말대로 유전자에 새겨진 사랑이라는 이기심인 것일까?


그녀를 위해 남을 죽일 수도, 내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녀를 위한 것이었다.

그녀에게 기억되고, 그녀의 마음에 남기 위해서였다.

그녀에게 나란 인간을 기억시키고 그녀가 나를 바라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기억조차 될 수 없게 된단 말인가?


죽음이 두려웠다.

그 뒤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그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죽으면 나름대로 행복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수조차 없단 말인가? 그녀에 대한 기억마저 모두 사라져 버린단 말인가?

그녀의 얼굴. 그녀의 미소. 그녀의 모든 것이 잊혀진단 말인가?


“지….”


안돼.


‘내가 외치게 되면 그녀는….’


그녀는 죽는 것이다.


하지만 온 몸에서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그녀를 가질 수 없다면 죽은 그녀라도 가지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내 몸을 흐리고 있는 피와 나를 감싸고 있는 살과 피부, 신경과 근육을 조직하고 있는 모든

세포들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사랑이라는 것이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억누르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더 강한 반발력으로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외쳐라.


‘아직 나는 그녀에게 하지 못한 말이 있는데….’

 

이 순간 갑자기 엄청난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 날 왜 그녀에게 그 말을 하지 않았을까? 왜? 그 때 그녀에게 그 말을 했더라면 조금은

덜 후회가 되지 않았을까? 이렇게 그녀를 사랑하는데 왜 나는 그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일까?


‘사랑해 지우야.’


그 때 이 말 했더라면….

 

 

 

 

그들의 대화 3.

 

AN-7 : 모든 실험은 끝났다.

AN-3 : 결과는?

AN-7 : 피실험자 미션을 완수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지워버렸다.

AN-2 : 그렇군. 그렇다면 그가 선택의 짐을 짊어지게 된 것이군.

AN-3 : 한 인간의 선택으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AN-7 : 이것은 결코 한 인간의 선택이 아니다. 이 것은 최초의 인류 이 후 세대와 세대를 거쳐

          진화를 거치면서 그들의 DNA에 굳게 자리 잡고 있는 사랑의 선택인 것이다. 이것은 전

          인류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AN-2 : 그가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지 알고 있나?

AN-4 : 만약 그가 너의 시뮬레이션 결과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AN-7 : 그것 역시 그들의 선택이겠지. 하지만 결과는 이미 나와 있다.

AN-5 : 나는 계획 변경을 요청한다.

AN-7 : 무슨 뜻이지?

AN-5 : 인간이라는 종이 이 지구에서 암세포라는 것에는 너의 뜻에는 의의가 없다. 하지만

          암세포라는 것 역시 이 별이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 별이 앞으로 살아갈 무구한 세월을 본다면 말이다.

AN-7 :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AN-5 : 나는 이 실험에 참여한 두 명의 인간을 구인류의 최후의 생존자이자 신인류의 아담과

          이브로 남겨두고 싶다.

AN-7 : 그렇군. 이미 모두 이야기가 된 내용인가?

AN-5 : 그렇다.

AN-7 : 그렇다면 이의는 없다. 나머지는 모두 거대한 흐름에 맡길 수밖에 없을 테니…

 

 

 

 

 

 


Epilogue.

[번쩍]


갑자기 클라리넷 소리가 들려왔다.


“왜 그래?”


그녀의 목소리에 클라리넷 목소리는 묻혀버렸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녀가 있었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아파? 갑자기 왜 그래?”


“어? 어.”


“괜찮은 거야?”


내 앞에 지우가 있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아파?”


그녀는 열이라도 있는지 알아보려는 듯 손을 내 이마를 가져가려 했다.

나는 그 손을 낚아챘다.


“아!”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

가녀린 그녀의 부드러운 손의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아파! 왜 그래?”


나는 더욱 그녀의 손을 세게 움켜쥐었다.

지우는 손을 빼려 하지 않았다.


“지우야.”


“갑자기 왜 그래?”


“지금 무슨 요일이지?”


“왜? 오늘 목요일이잖아.”


나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2010년 7월 21일 목요일 20:22]


진짜로 목요일이었다.

모든 일이 벌어지기 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게 꿈이었을까?


나의 손은 아직도 그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식칼로 남자의 배를 찌를 때 느꼈던 끔찍한 느낌.

유혜원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을 때의 묵직한 느낌.

내 온 몸을 흠뻑 적셨던 남자의 피의 끈적거림과 그 비릿한 냄새는 아직도 내 온 몸 구석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시간을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나는 분명히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의 마지막 미션을 수행 중이었다.


마지막 미션. 온 몸의 모든 세포들이 들끓어대며 그녀를 이름을 외쳐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나는 지우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왜 일까?’


이유는 하나였다.

나는 자신이 없었다.

지금껏 내가 지우에게 가지고 있었던 감정이 정말로 사랑이라는 것이었던 것일까?

나는 왜 중요한 순간마다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일까?

살인마의 최면에 걸려 내가 내 손으로 나의 심장에 칼을 찔러 넣으려고 했던 순간

그리고 유혜원이 준 독약을 마시고 정신이 혼미해지는 그 순간에도 나는 지우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사랑한다고 믿었던 이 세상에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의 목숨을 바꿔서라도 지키고 싶다고 믿었던 지우의 얼굴을 떠올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내가 정말로 지우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결국 지우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모든 게 끝이었다.


“오빠!”


나를 부르는 지우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왜 떠올리지 못했던 것일까?

수백 번도 넘게 스케치했던 그녀의 얼굴을 왜 떠올리지 못했던 것일까?

나는 두 번 다시 지우의 얼굴을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면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 거야?”


“아…아무것도 아니야.”


“아 그건 그렇고 회사에서 나오면서 오빠 블로그에 올려놓은 거 읽고 왔어. 마지막 편.”


“아. 그래? 어땠는데?”


“좋았어. 훔 마지막에 광자포를 막아내는 인간들의 사랑의 힘이라는 설정.”


“유치하지 않았어?”


“글쎄. 보기에 따라서는… 호호.”


그녀는 맑게 웃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게 오빠다운 걸. 오빠는 사랑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잖아.”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빠 제 5원소라는 거 알아?”


“5원소? 에테르?"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는 만물은 물, 불, 흙, 공기 그리고 가상의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천상의 물질이라고 여기진 에테르(aetehr)는 무게도, 색도, 냄새도 없는 완전한 물질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조금 오래된 ‘제5원소’라는 영화에서 나는 제5원소가 바로 사랑이야. 그 영화에서도

사랑이라는 힘이 지구를 지켜내거든. 사람들은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아. 사랑이라는

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최고의 가치라고 말이야.”


정말로 그런 것일까?


“지우야!”


“왜?”


“한 가지만 물어 보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그 사람에게 완전히 잊혀져야 한다면 어떻게

할 거야?”


“무슨 뜻이야?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이야기 말하는 거야? 사랑을 위해서 그 사람을 포기 한다는

그런 거?”


“아니. 그게 아니야. 완전히 지워지는 거야. 상대방에게서 그 사람은 전혀 없었던 존재가 되는

거야. 같이 웃었던 기억도, 같이 슬펐던 기억도, 같이 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거야. 그리고

그 사람 옆에는 다른 사람이 있게 되는 거지. 애초부터 없었던 그런 존재가 되어야 한다면….”


“흠. 다음 오빠 만화 스토리야?”


“아…. 아니.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


“그렇게 되면 상대방은 전혀 알지 못하게 되는 거네. 자신이 어떤 사람을 사랑했고, 무슨 일로

좋아 했고, 무슨 일로 슬퍼했는지 말이야. 잔인한 이야기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녀는 잠시 창 밖으로 쳐다보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기회도 없는 거잖아. 상대방은…. 그건 진정한 사랑이라 아니라고 생각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없어. 아무리 그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그건 아니야. 나라면 그렇게 하지 못할 거야. 오빠 말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죽을 수

있어도 말이야. 그렇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없을 거야. 내 생각은 말이야.”


말을 마친 그녀는 빙긋 웃으며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녀의 미소에서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차가운 기운을 느꼈다.

남자의 말이 떠올랐다.

사랑이라는 인간의 가진 극한의 이기심이라는 말이.

그 말이 사실인 것일까? 인간의 유전자에 새겨진 사랑이라는 감정은 결국 이런 것일까?


“그럼 오빠는 어떻게 할 건데….”


나는 어떻게 했던 것인가?

나는 남자의 말대로 지우를 외치지 않았다.

그리고 사라졌다.

지우에게서 영원히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진정으로 지우를 사랑하지 않은 것인가?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런 것이라면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은 것인가?


“아니야!”


나는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질렀다.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 누구보다도.

그녀 옆에 나 이외의 누군가가 나를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를 가지고 싶었다.

나는 그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 것처럼 그녀 역시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이었다.


“깜짝이야! 갑자기 왜 그래?”


나는 내가 큰 소리를 내지른 것을 깨달았다.

주변 사람들이 잠시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이내 원상태로 돌아갔다.

그녀만이 나를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아! 미안.”


“오빠 오늘 정말 이상하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건데?”


“아.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왜 다시 이 시간 이곳으로 돌아온 것일까?

내가 세 번째 미션을 통과했기 때문일까?

모든 것이 끝난 것일까?

하지만 이 알 수 없는 불안함은 무엇일까?

끝없이 밀려드는 이 불안감의 이유는 무엇일까?

내일이면 나는 또 다시 그 살인 게임에 참여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이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모든 게 끝난 것일까?


생각하면 할수록 불안한 마음은 더욱 더 가중되었다.

갑자기 남자의 섬뜻하고 차가운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것은 분명히 꿈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이 곳에 있는 것도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구나.”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넣어둔 것을 만져 보았다.

그녀에게 주려고 준비했던 반지가 만져졌다.

나는 전에 이것을 그녀에게 주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을 후회했다.

나는 반지를 꺼냈다.


“지우야!”


지우의 눈이 반지에 와 꽂혔다.

화려한 장식도 없고 그냥 아주 작은 보석이 박힌 그저 그런 반지였다.

이런 나는 이런 반지를 지우의 손에 끼워줄 용기가 나질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멍청한 생각이었는지 나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녀에게 하려고 망설이던 말을 이제는 할 용기가 생겼다.


“그거 뭐야?”


지우는 환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보았던 영상 속의 그 표정이었다.

세 번째 미션을 수행하기 전에 그 남자가 보여주었던 지우의 표정.

환하게 웃음 짓고 있던 바로 그 표정이었다.


[삐리리~]


핸드폰이 울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아주 정확한 타이밍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핸드폰의 벨소리의 공포 때문인지 심장 박동이 급격하게 치솟았다.


“잠깐!”


“받지 마!”


지우가 말했다.

지우가 이런 말을 하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는 조금 놀랐다.

지우가 왜 이런 말을 하는 것일까?

아마도 나는 물론 그녀에게서도 이 시간은 매우 중요한 시간임에 틀림없었다.

아마도 이런 시간을 방해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안.”


나는 액정을 확인 했다.


[서바이벌 게임 이벤트]


핸드폰을 들고 있는 손이 급격하게 떨려왔다.

하지만 나는 받을 수밖에 없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로서는….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조성환씨.”


그의 목소리였다.

나의 시야에는 그녀가 있었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녀가 있었다.

나는 애써 시선을 창 밖으로 돌렸다.

서울의 야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중요한 시간을 방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먼저 당신의 세 번째 미션을 성공을 축하드립니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제 당신에게는 최후의 미션만이 남았습니다. 최후의 미션은….”


남자의 말은 계속되었다.

나는 통화가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통화를 마친 나는 천천히 핸드폰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나는 잠시 남자가 말한 마지막 미션이라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무슨 전화인데 그렇게 받아?”


나는 걱정스러운 그녀의 눈을 애써 모른 채 하며 얼굴에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말을 더듬고 있었다.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면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 역시 알고 있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핸드폰을 받는 동안 잠시 테이블에 올려놓았던 반지를 다시 집어 들었다.


“지우야.”


나는 그녀의 손을 살며시 움켜쥐었다.


‘당신이 그 말을 하는 순간 인류는….’


통화의 내용이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애써 그의 말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노력했다.

아니 어떻게 되든 내가 알바는 아니었다.

나는 한번 지우를 잃었다.

나의 선택에 의해서…. 이제는 그것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두 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죽은 그녀라도 가질 수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나는 그녀의 손에 살며시 반지를 끼웠다. 그 남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우야. 이 세상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너를….”


나는 결국 키워드를 말하고 말았다. 인류의 멸망의 키워드를.


“지우야 사랑해.”


순간 세상은 아주 밝은 빛으로 휩싸였다.

 

 

 

[2010년 7월 21일 20:32분]

최종 시뮬레이션 종료.

지구에서 인류는 소거된다.

 역시 이 별에 왔던 7명의 정체불명의 존재들 역시 같이 소거된다.

하지만 그들의 시뮬레이션은 여전히 계속된다.

그들의 시뮬레이션은 새로운 인류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이 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두 명의 인간을 그들은 네오 아담과 이브라고 칭했다.

이 7명의 존재들 역시 누군가의 시뮬레이션에 따라 이 지구에 온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네오 아담과 네오 이브가 다시 이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인류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단 하나의 생명체만이 알고 있다.


거대한 그 생명체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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