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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이지메

왕보리 |2012.06.14 14:44
조회 8,822 |추천 16

출처 : http://web.humoruniv.com/main.html
< 웃대 : hirurika 님 >

 

[단편] 이지메

 

 


"조금만 더 가면 나와."

"진짜 그런데가 있어?"

"응. 자전거 타고 가다가 내가 발견했어."

 

 

우린 현철이와 함께 그곳으로 갔다.

흉가... 철없던 어린시절 그 이름만으로도 두려움과 함께 호기심을 유발시켰던 추억의 장소.

 

 

"진숙아 너도 궁금하지?"

"으응..."

 

 

항상 말도 없고 내성적이던 그녀.

당시엔 12살짜리 여자아이에 불과했지만 유감스럽게도우리 마을엔 그녀 또래의 여자애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종종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놀곤 했다.

 

 

"키득키득... 다 내가 신호하면..."

 

 

하지만 사실 우리가 흉가에 가는 목적은 따로 있었다.

함께 어울린다고는 하지만 선천적으로 타고난 신체구조와정신구조가 서로 달랐던 우리는

그녀를 동등한 친구라기보단 놀림의 대상으로 여겼다.

 

 

"히히. 또 조카 우는거 아냐?"

 

 

그녀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겠지만 혼자보단 우리와어울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는지

문앞에서 이름을 부르면언제나 조금 부끄러운듯 조용히 문을 열고 나오는 것이었다.

 

 

"근데 이러다가 우리 진숙이네 엄마한테 또 혼나면 어떻게."

"븅신 접때 저 계집애가 일러서 우리 조카 혼났잖아. 복수를 해야지. 복수를."

 

 

조금의 거짓말도 없이 우린 약 3시간 가량이나 걸어서 흉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진숙이는 뭐가 불안한지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걷다가 어느샌가부터 내 옷자락을 꽉 쥐고

걷기 시작했다.

 

 

"진짜 무섭게 생겼다."

"텔레비전에서 보던거랑 비슷해."

 

 

진숙이는 흉가를 보며 잔뜩 얼어붙은 표정이었고, 그 순간 현철이의 목소리가 커졌다.

 

 

"지금이다. 뛰어."

 

 

현철이의 말과 동시에 우린 모두 진숙이를 두고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야, 어디가? 흑흑... 가지마..."

 

 

사실 난 이런류의 장난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또래집단에서 도태 되는건 더더욱

싫었기에 애써 그녀의 손길을 뿌리치며 친구들을 놓칠새라 정신없이 달렸다.

그렇게 달리는 우리의 뒤로 진숙이가 울면서 따라오는 것이 보였다.

 

 

"헉헉... 야 이제 안보인다. 하하."

 

 

현철이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통쾌하게 웃어댔지만 난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심장이

뛸때마다 가슴이 지끈지끈 거리는 통에 숨쉬기가 거북할 정도였다.

 


"그만하자..."

"하하 왜? 재밌는데."

 

 

놀리려는 의도는 충분히 달성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가 울면서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30분이 지나도 보이지 않는 그녀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야, 다른길로 갔나봐? 안쫒아 오는데?"

"그럴리가... 여기까지는 외길이잖아."

"우리가 어디 다른데 숨었는 줄 알고 찾고 있는거 아냐?"

 

 

한참이 지나도록 진숙이는 따라오지 않았다.

우린 다시 흉가가 있는 곳으로 가보았지만 진숙이의 모습은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한참동안 그녀를 찾던 우린 날이 저물자 어쩔도리 없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혹시 먼저 집에 가있는거 아냐?"

"그랬음 좋겠다."

"아이 조까고 차라리 잘됐어 그깟 기집애 차라리 어디서 확 뒈졌음 좋겠다."

 

 

며칠전 진숙이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괴롭히다가 진숙이네 엄마에게 걸려 싸대기를 맞았던

현철은 그 후로 진숙이를 맹목적으로 미워하기 시작했다.

 

 

'흑흑... 가지마... 흑흑... 흐으윽...'

 

 

내 옷자락을 붙잡고 울던 진숙이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떠다녔다.

앞으론 이런 장난엔 동참하지 않을 생각이다.

 

 

"얘들아. 너희 진숙이 못봤니?"

 

 

동네 어귀에서 초조한듯 진숙이를 기다리던 진숙이네 엄마는 우리를 보자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서 있었는데 그 순간 현철이가 불쑥 입을 열었다.

 

 

"우린 이제 걔랑 안놀아요. 가자."

 

 

현철이는 쌀쌀맞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고, 우린 앞장서서 걸어가는 그의 뒤를 따라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푹 숙이고 뒤따라갔다.

 

 


"오늘일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거다."

 

 


마치 뒷골목에서 삥뜯는 양아치마냥 목소리를 낮게 깐 현철이는 위협적인 기세로 말했지만

사실 우린 모두가 공범자였다.

 

 

"진숙이는 어떻게 됐을까?"

 

 


~ ~ ~

 

 

"어머? 너 민석이 아니니?"

"누구...신지?"

"나야 진숙이. 기억 못해?"

 

 

그녀는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그날로 부터 10여년이 흐른 지금 눈부신 미모와 흠잡을 곳 없는 몸매,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밝아진 성격까지.

 

 

"너... 너 살아 있었구나."

 

 

놀람과 감격에 찬 내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간 받아왔던 양심의 가책을 이제는 조금 덜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녀는 살아 있었다.

 

 

~ ~ ~

 

 

그날밤 동네는 술렁거렸다.

경찰까지 와서 조사를 하고 갔지만 아무런 단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물론 우리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당신 들었어요? 진숙이가 발견됐데요."

"그래? 무사하데?"

"그게..."

 

 

거실에서 부모님이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된 난  그녀가 발견됐다는 말에 기뻐했지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흉가 안에서 죽은채 발견되었다는 말에는 피가 거꾸로

솟는듯한 충격을 받았다.

 

 

"말도안돼... 정말... 흑흑... 끄흐윽..."

 

 

만약 우리가 흉가 안엘 들어가 보았다면 그녀는 살 수 있었을까?

그날 이후로 난 밤마다 악몽을 꾸기 시작했다.

학교 성적은 날이 갈수록 곤두박질 쳤고,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마치 약에 취해사는 사람마냥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입원치료하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흑흑 민석아..."

 

 

급기야 난 정신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르렀다.

무려 2년이란 시간동안 치료를 받고서야 간신히 사람구실을 할 수 있게 된 난 다시 사회로

돌아왔고, 간신히 학교를 졸업했다.

 

 


"으악... 헉헉..."

 

 

시간은 모든걸 희미해지게 만들었지만 그녀에 대한 기억만은 그렇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갈 수록 그녀는 내 안에서 점점 또렷하게 각인되었고,

악몽을 꾸는 횟수도 늘어만 갔다.

 

 

"어머? 너 민석이 아니니?"

"누구...신지?"

"나야 진숙이. 기억 못해?"

 

 

그날은 병원에 통원치료를 받으러 가는 중이었다.

낮선 미모의 여인이 내 앞에 나타났고, 이럴수가... 그녀는 살아 있었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근처에 커피숍 있는데..."

 

 

한참이나 말없이 앉아 서로를 관찰하던 우린 정말 오랜시간이 지나서야 어렵게 말문을

열 수 있었다.

 

 

"예뻐졌다."

"고마워. 너도 멋있어 졌는데."

"부모님은 잘계시고?"

"그렇지 뭐. 넌 요즘 뭐하고 지내?"

"특별히 하는 일은 없구, 그냥 놀아."

 

 

사실 이딴 얘긴 쓸모도 없었다.

난 당장 그녀에게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다.

그날 무슨일이 있었는지, 죽었다는 소문은 어떻게 된건지.

 

 

"으음. 저기 말야..."

"알아 무슨말 하려는지. 근데 꼭 들어야겠니?"

"내 책임도 커... 들었으면 해..."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담배를 한대 피워 물고는 깊게 빨아들였다.

 

 

"그러니까..."

 

 

그녀는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흐윽... 얘들아 같이가..."

 

 

민석이가 내 손을 뿌리치고 달려가는 순간 난 어쩌면 미아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무작정 그들이 달려간 곳으로 울면서 쫒아갔다.

 

 

"웁..."

 

 

하지만 갑작스레 억센 팔이 내 몸을 감싸는가 싶더니 이내 그는 내 입을 막으며 날 흉가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모든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진숙아. 어딨어?"

"우리가 잘못했어. 얼른나와 진숙아."

 

 

잠시 후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내 힘으로는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위압적인 힘이

내 입과 몸을 짓누르고 있는 통에 겁에질린 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죽은듯이

방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울거나 소리를 지르면 아저씨 화낸다?"

 

 

그의 말에 난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기쁘다는 듯 정신병자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착하네... 아저씨가 화나면 무서워요. 여기 얘처럼 돼. 그럼 안되지?"

 

 

그는 뭔가를 가리려는 듯 덮어놨던 신문지를 슬쩍 들어보였고 신문지 아래엔 내 또래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눈을 까뒤집은채 거품을 물고 죽어 있었다.

 

 

"흐흐흐흐윽... 끅, 끄흐윽..."

"아저씨가 울면 화낸다고 했지?"

"윽... 흑... 흐읍..."

 

 

그는 내 머리카락을 한차례 쓰다듬은 후 완전 겁에질려 있던 날 일으켜 세운후 옷을 벗겼다.

팬티까지 모조리 벗긴 후 그는 신문지로 덮어놨던 죽은 아이에게 내 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넌 착하니까 아저씨가 재밌는거 보여줄게."

 

 

그는 주머니에서 작고 더러운 유리병을 꺼낸 후 내 눈앞에서 그것을 흔들어 보였다.

유리병 안에선 물같은 액체가 출렁거리고 있었다.

 

 

"자 이제 뚜껑을 열어서..."

 

 

치이익

 

 

그는 유리병에 있던 액체를 죽은아이의 얼굴이 조금씩 부었다.

살이 타는 소리가 나며 역겨운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동시에 죽었지만 곱상했던 여자아이의 얼굴은 흉칙하게 문들어져갔다.

 

 

"히히히. 어때 재밌지? 재밌지?"

 

 

그는 매우 즐거워했다.

이내 한병을 전부 쏟아부은 그는 아쉬워 하며 유리병을 아무 곳에나 던져놓은 후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흑흑... 아저씨 살려주세요... 집에 갈래요..."

"아저씨 말 잘들으면 집에 보내 줄거예요. 알았지?"

 

 

그는 광기어린 눈동자로 12살 소녀였던 날 겁탈했다.

그날밤의 기억은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영영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흑... 흑흑... 흐읍... 흐으윽..."

 

 

지옥같은 순간이 지나갔고 그는 날 끌어안은채 잠이 들었다.

살아야겠다는 일념하나로 조심스럽게 그에게서 빠져나온 난 죽은 여자아이를 지나 떨리는

손으로 최대한 조용하게 문을 열었다.

 

 

삐걱 철컹.

 

 

낡아빠진 문은 열림과 동시에 거친 마찰음을 냈고 그 순간 잠이 들었던 그가 깨어났다.

난 덜덜 떨며 그대로 집밖으로 미친듯이 달려나갔다.

 

 

"지금 안서면 아저씨 화낸다."

"흐흐흑 꺄아아악."

 

 

죽기살기로 달렸다.

하지만 어린 소녀가 성인남자의 달리기를 당해낼 순 없었다.

금새 따라잡힐 듯 거리는 좁혀졌고, 패닉상태에 빠져 미친듯이 소리지르던 내 목소리에

인근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창문을 내다보거나 문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제기랄..."

 

 

그는 사람들이 모여들자 당황해서는 그대로 달아났고, 긴장이 풀린 탓인지 난 그대로 혼절을

하고 말았다.

 

 

~ ~ ~

 

 

"그 후로 5년동안 정신병원에서 치료받았어. 덕분에 지금은 그냥저냥 지낼만 하고..."

 

 

그녀는 씁쓸하게 담배를 재털이에 비벼 껐다.

어느새 그녀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미안해..."

"아냐 지금은 다 잊었어. 지난 일이잖아."

 

 

애써 밝게 미소짓는 그녀를 보니 난 그녀의 상처를 어떻게든 치료해 주고 싶었다.

이유야 어떻든지간에 나도 그자리에 있었고, 그리고 그녀의 손을 뿌리친 것도 나였다.

 

 

"나 때려... 화 풀릴때까지..."

"뭐?"

"우리가 거기 대려가지만 않았어도 그런일... 없었을거잖아."

"바보 난 다 잊었어... 너도 미안해 하지마. 이렇게 될 줄 알고 그런것도 아니잖아."

 

 

바보처럼 착한 그녀... 모습은 변했지만 여린 성격은 아직도 예전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더 미안했다.

욕하고 화라도 냈으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 텐데.

 

 

"술... 마실래?"

"아니... 약속이 있어서..."

"그래, 이거 내 연락처거든. 아무때나 연락해."

 

 

그녀와 헤어지고 혼자서 포장마차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던 난 그녀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렸다.

눈처럼 새하얀 피부에 예쁘게 쌍꺼풀진 눈,  오똑한 코, 도톰한 입술, 게다가 모델 뺨치게

잘빠진 몸매까지...

 

 

"어렸을 때 좀 잘해줄 걸..."

 

 

밤이 깊어갈 무렵 얼큰하게 취해서 포장마차를 나섰다.

비틀비틀 거리며 집으로 걸음을 옮기던 난 뒤통수에  아찔한 충격을 받고 그대로 정신을

잃어버렸다.

 

 

"쩝쩝... 오도독, 아구아구..."

"거기 누구있습니까?"

"오도독, 오도독, 쩝쩝... 꿀꺽..."

 

 


어둡다.

어딘지 모를 어두운 공간에서 누군가 허겁지겁 뭔가를 먹고 있다.

 

 


"쩝쩝... 와삭와삭..."

"저기요."

 

 


어둠속에서 희끄무레한 형체가 보였다.

등을 돌린채 뭔가를 쩝쩝 거리며 먹고 있었다.

기분나쁜 소리...

 

 


"이봐요. 여기가 어디죠...?"

 

 


그의 어깨에 손을 얹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입가에 잔뜩 피를 뭍힌 내가 진숙이를 뜯어먹고 있었다.

 

 


"허억."

"어머 이제 깨어났니?"

 

 


눈을 뜨니 묘한 천장무늬가 보였다.

진숙이가 커피를 마시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뒤통수가 지끈거렸지만 그래도 그녀를 보자 안심이 되었다.

 

 


"어떻게 된거야?"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에서 일어서려 했던 난 곧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슨..."

"걱정많이했어. 죽으면 어쩌나 하고 말야."

 

 


그녀가 요염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쟈스민 향기가 은은하게 후각을 자극했다.

 

 


"진숙아?"

"그렇게 쉽게 죽일 순 없단말야."

 

 


진숙이는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방을 나가더니 잠시후 커다란 주사기를 하나 들고 다시 돌아왔다.

 

 


"어, 어쩌려고?"

 

 


난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날 묶어놓은 끈이 원채  단단해서 도저히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주사바늘로 내 눈을 찌르려는 듯 가까이 대었다가 이내 정신없이 웃으며 자신의

팔에 주사바늘을 꼿았다.

 

 


"모두 너 때문이야."

 

 


주사기로 자신의 팔에서 피를 뽑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녀의 이상한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그래 진숙아... 다 지난일이라며..."

"물론이야. 하지만 내 얘기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어."

"뭐? 그게 무슨 말이야?"

 

 


~ ~ ~

 

 


"허진숙씨는 퇴원하면 뭘 가장 하고 싶죠?"

"저요? 공부도 하고싶고, 친구들도 만나고 싶어요."

"요즘도 악몽을 꾸나요?"

"아뇨... 이젠 괜찮아요."

 

 


5년만에 난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거울속의 내 모습은 너무나 낯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예뻐..."

 

 


자해방지를 위해 정신병원에 있는 동안 거울을 모두 치워버려 몰랐던 사실 중 하나는 내가

봐도 아름다울 정도로 난 예쁘다는 것이었다.

 

 

"......"

 

 


아름다움, 그것은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덕분에 오랫동안 격리되왔던 과거의 악몽같은 기억을 빠르게 떨쳐버릴 수 있었다.

 

 


"신입생 허진숙입니다."

 

 


검정고시에 합격하자마자 난 수능을 보았고, 지방의 한 국립대에 입학하며 과거의 잔상을

모두 떨쳐낼 수 있었다.

 

 


"네가 없으면 안될 것 같아... 나랑 사귀어 줄래?"

"나라도 좋다면."

 

 


남자친구도 생겼고,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많은것들을 하나씩 해보며

난 영영 잃어버린 줄만 알았던 행복을 조금씩 되찾아갔다.

 

 

"꺄악... 흑흑..."

 

 

물론 아주 가끔씩 두번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날의 악몽을 꾸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모두 해결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말이다.

 

 

"감기기운 있다면서 괜찮겠어?"

"헌혈하는데 그런거 일일이 따질생각 없어."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하게된 헌혈.

난 그렇게 내가 에이즈(AIDS)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 ~

 

 


"그... 그럼 네가 에이즈에 걸렸단 말야?"

"놀라지마 곧 너도 그렇게 될거니까."

 

 


진숙이는 팔에서 주사바늘을 뽑으며 말했다.

그녀의 피로 가득찬 주사바늘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난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러지마 진숙아..."

"너 때문이야."

 

 


그녀는 주사기를 들고 천천히 나에게 걸어왔다.

온몸을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서 무슨 말도 그녀에겐 통하지 않았다.

 

 

"현철이는... 그놈이 주동자였는데..."

"뭐?"

"현철이 그놈이 애들을 선동한 거라고."

"개수작 마. 흉가엔 너하고 나 둘이 갔어."

 

 


그녀는 믿기 어려운 말을 했다.

흉가를 간건 우리 둘이었다고? 그럴리가 없다.

그녀는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다.

 

 


"시간을 끌려는 모양인데... 소용없어."

"크윽..."

 

 


주사바늘이 내 정맥을 파고들었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그녀의 피가 내 혈관을 타고 흘러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녀의 피가 내 몸안으로 전부 흘러들어왔다.

이제 난 막다른 길까지 몰렸다.

여기서 나간다고 해도 이제 내 인생은 끝장이다.

하지만 그녀는 날 쉽게 풀어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주사를 놓는 그녀의 하얀 손가락이 눈에 띄였다.

 


"새끼 손가락이 왜 그래?"

"응 다쳤어."

"하하 그럼 병신이네. 조카 이상한거 알지?"

"흐아아앙."

 


한쪽 마디가 없던 그녀의 새끼 손가락은 놀림감으론 안성맞춤이었다.

새끼 손가락 이야기를 꺼내면 그녀는 언제나 눈물부터 흘렸다.

그런데...

 


"넌 누구지?"

"미친척을 해보겠다는 건가?"

"발뺌할 생각마..."

 


난 침착하게 말을 꺼낸 후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여유로움을 가장하고 있지만 그녀의 눈가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넌 진숙이가 아냐."

"우, 웃기지마.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

"원하는게 뭐냐?"

 


당황한 표정으로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던 그녀는 텅빈 주사바늘을 내 얼굴에 집어던진 후

그대로 방을 나갔다.

잠시후 돌아온 그녀의 손엔 사진 한장이 들려져 있었다.

 


"서, 설마..."

 


내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하자 그녀는 싸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진숙이건 아니건 그건 너한테 아무런 상관도 없어. 결국 넌 아무것도 할 수 없을테니까.

다만 네가 그 사실을 조금 더 일찍 눈치채서 실망한 것 뿐이야."

 


~ ~ ~

 


"축하합니다. 쌍둥이네요."

"감사합니다. 수고했어 여보."

 


쌍둥이 자매는 겉모습 만으로는 누가 봐도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닮아 있었지만 마치 자석의

N극과 S극에 모두 같은 색을 입혀놓은 것처럼 전혀 다른 성격으로 자랐다.

 


"진숙아, 엄마 시장갔다 올게 동생 잘 보고 있어?"

"네. 엄마."

"5분차이 밖에 안나면서 무슨 니가 언니냐?"

"진선이 너 엄마가 누나한테 너라고 하지 말랬지?"

"하지만 엄마."

 


그날은 여느날과 다를바 없는 아주 평범한 날이었다.

문앞에서 어떤 남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나 그렇듯 진숙이를 부르는 것이었다.

 


"또 나가냐? 넌 맨날 놀림만 당하면서 왜 나가?"

"같이 갈래?"

"싫어. 난 어린애랑은 안놀아."

 


진숙이가 나가자 진선은 창문가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어떤 남자아이와 함께 걸어가는

진숙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러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그녀는 이내 옷을 챙겨 입고 몰래 그들의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뛰어."

 

 

한참을 걸어 도착한 어쩐지 음침한 장소에서 남자아이는 '뛰어'를 외치며 그 외진곳에 진숙이

를 두고 마구 달리기 시작했고, 혼자남은 진숙이는 울면서 그의 뒤를 쫒았다.

 


"으이구 저런 등신."

 


그 광경을 보며 끌끌 혀를 차던 진선이 진숙을 부르려 했지만 그 순간 난데없이 흉가에서 나온

끔찍하게도 추물스럽게 생긴 남자가 진숙을 끌고 흉가로 들어가 버렸다.

 

 

"......"

 

 

겁에질린 그녀는 생각할 것도 없이 집으로 달아났고 혼자서만 달아났다는 죄책감 때문에

아무에게도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하루종일 방안에서 흐느껴 울던 그녀는 며칠 후 진숙이가 흉가에서 죽은채로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 ~ ~

 


"복수냐?"

"그래. 넌 이제 여기서 평생을 살아야 할 거야."

"그럼... 진숙이는 죽은건가?"

"니가 죽인거야."

 


그녀는 한맺힌 목소리로 악을 쓰듯 외쳤다.

물론 내 책임이 크지만 이런 곳에서 평생을 살 순 없었다.

난 부모님이 휴대폰 위치추적 기능으로 어서빨리 날 찾아내길 기다렸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는데?"

"입닥쳐."

"제발 부탁이야. 없었던 일로 할테니 날 풀어줘."

"입 닥치라고 했다."

 


일주일이 지났다.

난 여전히 그녀의 집에 갇혀 있었고, 아무도 날 찾아내지 못했다.

휴대폰은 처음부터 그녀가 박살을 내 버렸다고 한다.

 


"뭐든지 할게... 시키는건 정말 뭐든지 할게..."

"필요없어."

"흑흑... 나 잘못했어... 응?"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어?"

 


내가 미친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가 내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그럼 입 좀 닥쳐줄래?"

 


하루, 이틀... 또다시 한주가 지났다.

몸을 움직이지 않아 욕창이 생기는 것 같다.

 


"차라리 날 죽여."

"내가 그럴 것 같아?"

"이만큼 했으면 됐잖아..."

"아직 멀었어."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한 후 방을 나가버렸다.

최소한 죽지 않을 정도의 식사만을 주며 날 지독하게 괴롭히는 그녀였다.

혀를 깨물고 죽을까도 생각해 봤지만 나에겐 무리였다.

 


"읍... 읍읍..."

 


그러던 어느날 난 창문에 왠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보게되었다.

이곳이 적어도 5층이상의 높은 아파트라는 사실을 알고있던 난 죽을때가 가까워 졌음을

직감했다.

그들은 날 데리러 온 것이리라.

 


드르륵

 


괴상한 장비를 동원해 창문을 연 그들은 조심스럽게 내가 있는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꽁꽁

묶여있는 날 보고는 흠짓놀라며 말했다.

 


"씨벌 이새끼 뭐야?"

"묶여있는데?"

 


그들은 잠시 놀란듯 보였지만 이내 날 신경쓰지 않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나갔다.

돈이 될만한 걸 모조리 들어낸 그들은 잠시 후 내가 있는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말했다.

 


"존내 황당하네. 웬 여자는 화장실에서 뒈져있고, 어떤새끼는 침대에 꽁꽁 묶여있질 않나 너

거기 있는거 혹시 즐기는거냐?"

 


내가 미친듯이 고개를 가로젓자 그는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니가 보다시피 내가 도둑이라 풀어주진 못하겠고, 그래도 양심은 있는 놈이라 경찰에 신고는

해줄테니까 좀 기다리고 있어라."

 


그렇게 난 도둑놈의 도움으로 그 집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집에서 나온 후 알게된 충격적인 사실은 진선이라는 여자가 벌써 2주일쯤 전에 손목을

끊고 자살을 했다는 것이었다.

욕실에서 혀를 길게 빼문채 전신이 썪어가고 있던 그녀는 몸 곳곳에서 구더기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그럼..."

 

 

2주동안 날 가둬두고 있던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방금 전에도 나와 이야기를 나눴던 그여자는...

 

 

 

에필로그

 


철처한 검사끝에 난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사건이 있은지 5년이 지났지만 그날의 악몽같은 기억은 내 머릿속에서 쉽사리 지워질 것

같지가 않다.

 


"여보 수한이 데리고 병원 좀 갔다올게요."

"어, 그래. 조심해서 다녀와."

 


다니던 병원의 간호사였던 아내와 3년전에 결혼을 했다.

막 돌을 지난 아들은 잔병치레가 잦아 병원엘 자주 간다.

힘들었지만 가족이 있기에 내가 그날의 악몽같은 기억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휴우..."

 

 

창문을 통해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는 아내와 아들을 보며 손을 흔들어 준 후 거실로 돌아와

텔레비전을 켰다.

영아 유괴에 관한 뉴스가 보도되고 있었다.

뉴스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던 난 시끄럽게 울려대는 전화 벨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여보세요?"

"여보... 흑흑... 어떻게 민석씨."

"왜 그래? 무슨일이야?"

"수한이가... 없어졌어..."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수한이가 없어지다니?"

 

 

깜짝 놀란 내가 큰 목소리로 다그쳐 묻자 아내는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흑흑... 어떤 여자가 화장실 갔다올 동안 봐준다고 해서 잠깐 맡겼는데 갔다오니까 사라졌어."

"뭐? 어떤 여잔줄도 모르고 아이를 맡겼어? 당신 제정신이야?"

"그럴사람 같지 않았단 말야. 착하게 생기고..."

"뭐 생각나는건 없어? 인상착의라던가."

"그냥 잘 모르겠어... 얼굴은... 좀 예쁘고 새끼 손가락이 한마디 정도가 없었는데."

 

 

아내의 말에 난 망연자실하게 수화기를 떨어뜨렸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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