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어둠속의 공포
2. 폐허속의 그들
3. 약속의 대가
4. 공포 마일리지
[폐허속의 그들]
고요한 정적이 흐르는 중국의 어느 마을.
폭격으로 쑥대밭이 된 그곳에 미군 네 명이 주위를 살피며 걷고 있었다.
그때 큰 폭발음과 함께 미군들이 지나치던 옆 건물의 잔해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적이다!”
집이라고 하기엔 몰골이 처참하기 그지없는 한 건물에 병사들이 뛰어 들어갔고 각자 몸을 벽에 기댄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다시 한 번 큰 폭발음이 들렸고 몸을 숨긴 네 명의 병사 중 하나가 총구를 건물 밖으로 향한 채 아무렇게나 총을 쏴댔다.
“조지! 탄알을 아끼라고!”
까만 피부에 두툼한 입술을 가진 잭슨이 소리쳤다. 얼굴엔 긴장이 감돌았지만 눈매는 매서웠다. 게다가 입에 물은 시가는 오히려 그를 평온하게까지 보이도록 만들었다.
“망할 놈의 원숭이 놈들! 다 뒈지라고!”
오랜 전쟁으로 렌즈의 구실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조지의 안경에 모래먼지가 점점 더 쌓여갔다.
“이봐, 조지.”
머리에 두건을 두른 로만이 조지의 곁에 바짝 다가앉아 자신의 머리를 그의 철모에 부딪혔다. 덥수룩한 수염과 양 볼 사이에 주름이 깊게 팬 로만은 철모와 군모 쓰기를 끔찍이도 싫어했다. 악 소리를 내며 총을 쏘던 조지의 행동이 로만 덕분에 수그려 들면서 정적을 깨던 총 소리도 멈췄다. 조지의 총구에선 아직도 열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이봐 보이~ 진정하라고. 로만?!”
잭슨은 로만을 쳐다보며 자신의 검지로 밖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시가를 크게 한 모금 빨아들이고 후 하고 연기를 내뱉었다.
로만은 부서진 벽 틈으로 고개를 살짝 내밀고 밖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움직이는 물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중국 놈들은 이런 식으로 게릴라전을 펼쳤다. 그들에게 특별한 계획이나 전략 같은 건 없었다. 중국인을 제외한 모든 인간들은 다 죽이려고 마음먹은 놈들이었다.
로만은 이쪽저쪽 벽에 몸을 숙인 채 옮겨 다니며 숨어있는 적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옮겨 다니던 로만의 시선이 한쪽에 고정됐다.
“쟈니!”
로만은 오른쪽 무릎을 땅에 붙인 채 안정된 자세로 앉아있는 쟈니를 작은 소리로 부르며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약간 마른 체구에 긴 갈색머리를 뒤로 묶은 쟈니는 항상 허둥대는 법이 없었다. 그의 본명은 조니클롭 이었으나 그의 동료들은 그를 쟈니라고 불렀다.
쟈니가 조심스레 로만의 곁으로 가서 앉았다.
“저기 빨간 벽돌집 앞 드럼통 보이지?”
로만과 쟈니는 부서진 벽의 갈라진 틈을 사이에 두고 밖을 쳐다봤다.
“드럼통 뒤에 한 명……”
쟈니는 조용히 읊조렸다.
“그래…… 원숭이 한 마리가 숨바꼭질을 하고 있어. 어때? 사냥하기 쉽겠어?”
로만이 쟈니의 눈을 쳐다보며 말하고는 다시 드럼통을 주시했다.
“이건 내 전문이니까.”
쟈니는 어깨에 메고 있던 라이플을 벽의 갈라진 틈 사이에 얹어놓았다. 양반다리로 자세를 고쳐 않고 라이플의 조준경에 눈을 가져갔다.
“흠……”
그는 감긴 한쪽 눈을 더 찡그리며 짧은 한숨을 내 뱉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로만이 낮은 음성으로 조심스레 물었다.
“애야…… 남자애군…… 한 18살쯤? 동양인들 나이는 맞히기 힘들지만 내 생각이 맞는다면 17살에서 19살은 됐을 거 같은데.”
쟈니가 조준경의 초점을 맞추며 조용히 말했다.
로만은 한숨을 쉬었다.
“왜 항상 이런 식이지? 왜 우리만 나쁜 놈이 돼야 하냐고!”
그때 탕! 하고 단발의 총성이 들렸다.
“겁 없는 녀석이군. 폭탄을 손에 든 채 달려오다니.”
쟈니의 총에선 탄피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튀어 나왔다.
“제군들, 상황 종료인가?”
잭슨은 갈라진 벽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는 두 병사에게 물었다.
“예예~ 이 동물원엔 원숭이가 한 마리밖에 살지 않는 거 같은 뎁쇼?”
로만이 원숭이 흉내를 내며 조지를 바라봤다.
“로만이 앞장서고 나와 쟈니가 뒤를 따른다. 조지, 후방을 맡도록.”
그렇게 미군 네 명은 폐허가 된 건물을 나와 마을을 조심스레 수색했다. 로만은 달려오면서 맞은 총알의 충격으로 다리를 꺾고 그대로 주저 않아 죽은 중국인 남자아이를 발로 툭툭 건드리고 있었고 조지는 그가 던지려고 했던 폭탄을 살펴보고 있었다. 쟈니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의 끈을 놓지 않았고 잭슨은 본부에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1년 전이었다. 중국이 유럽연합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고 유럽 전역에 핵을 투하했다.
유럽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됐고 저항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유럽의 발목을 꺾어버린 중국은 미국을 넘보기 시작했다. 미국과의 전쟁은 장기전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중국이 유럽의 숨통을 미리 끊은 것이었다.
밀고 당기는 싸움은 계속됐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미국은 중국을 향해 하루에도 몇 번이고 미사일을 퍼 부어댔다. 그들은 게릴라전에 능한 놈들이었기 때문에 섣불리 지상군을 투입하지 못했다. 그래서 융단폭격 후 외인부대들이 주요 거점 지역을 돌며 썩은 고기를 치우는 하이에나마냥 아군이 안전하게 주둔할 수 있도록 잔당들을 처리하고 다녔다. 이 네 명의 병사들이 바로 이런 일을 하는 하이에나 중 하나였다.
“젠장!”
손을 눈 위로 가린 채 하늘에서 투둑 투둑 떨어지는 비를 보며 로만이 소리쳤다.
그들은 비를 피할만한 곳을 찾기 위해 마을 이곳저곳을 뛰어 다녔다.
벌써 한 달이 넘게 비가 오고 있었다. 급작스레 오는 비가 많았기에 몸을 숨길 수 없는 곳에 있기라도 하는 날에는 꼼짝없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기 일쑤였다.
“잭슨! 저기!”
로만이 한 집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와우! 저 집은 멀쩡한데? 운 좋게도 폭탄에 안 맞았나 봐. 근데 왜 아까는 못 봤지?”
조지가 눈을 찡그리고는 엉망이 된 안경을 벗고 빗물을 털어내며 말했다.
“일단 안으로 가자. 비가 쉽게 그치지 않겠어.”
잭슨이 소리치자 그들은 2층으로 된 중국식 정통 건물의 문 앞으로 뛰어갔고 두 명씩 짝을 이루어 문 옆에 섰다. 로만이 문을 열기 위해 문고리를 힘껏 밀었지만 그의 힘이 다하기도 전에 문은 부드럽게 열렸다. 잭슨이 신호를 보내자 한 사람씩 집 안을 경계하며 조심조심 들어갔다.
내부는 깨끗했다. 1층은 넓은 홀이었고 건물의 양 벽에는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이 있었다. 천정에는 형형색색의 등이 홀을 밝히고 있었다. 원형 테이블이 10여 개 정도 있었고 붉은 색으로 치장된 테이블보가 씌어져 있었다. 의자도 4개씩 짝을 맞춰 놓여있었고 용무늬가 새겨진 푹신한 방석도 놓여 있었다. 그리고 누가 예약이라도 한 듯이 테이블 위엔 접시와 식기도구들이 놓여 있었다.
“로만, 쟈니. 2층을 조사해 봐.”
잭슨이 2층의 난간을 쳐다보며 말했다. 로만과 쟈니는 2층을 올려다보며 천천히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갔다. 로만은 오른쪽, 쟈니는 왼쪽으로 복도를 따라 들어갔다.
“이거 이거 너무 깨끗한데요?”
조지가 테이블 위에 놓인 젓가락과 접시를 손에 들고 탬버린을 흔들듯이 흔들거리며 잭슨에게 물었다.
“전쟁 중에는 별의 별 일을 다 겪는 법이라고. 이상한 걸로 치면 비속에 이런 건물을 찾은 것 자체가 이상한 거 아니겠어? 이 건물…… 운이 아주 좋았어.”
잠시 후 로만과 쟈니가 내려왔다.
“아무것도 없어요. 방은 5개 구요. 쟈니쪽은 4개에요. 2층은 여인숙으로 쓴 것 같아요. 굉장히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더라고요.”
로만이 어깨를 으쓱하며 쟈니를 쳐다봤다, 쟈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밤은 여기서 묵고 가자고. 어차피 비도 빨리 그칠 것 같지 않은데, 오늘은 혼자서 편안하게 잘 수 있겠어. 변태 같은 너희들이랑 몸을 비비고 자지 않아도 된다고.”
조지가 로만과 쟈니를 보며 허리를 앞뒤로 흔들어대며 낄낄댔다. 로만은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 보이며 입 모양으로 욕을 해대고 있었다.
“조지 말대로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까지 주둔부대를 기다린다. 내일 오후에나 합류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그때까지 여기서 밖의 동정을 살핀다.”
장대 같은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고 어둠이 깔린 지도 오래였다. 간단히 식사를 마친 그들은 테이블에 둘러앉아 포커를 치고 있었다. 조지가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잃으며 게임은 끝이 났다.
“로만과 쟈니는 2층의 좌, 우 방으로 간다. 밖이 잘 보이는 곳에 잡아라. 위기 상황이 올 수 있으니 알아서 대처하도록. 나와 조지는 1층을 맡는다.”
조지가 이번에도 왜 나냐는 식으로 어깨를 으쓱하며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로만은 계단을 올라가며 울상인 조지에게 손을 두어 번 흔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테이블 위에 군화 발을 올려놓은 채 자고 있던 잭슨이 천둥소리에 놀라 잠에서 깼다. 고개를 돌려보니 조지는 없었다.
“이봐! 조……”
조지를 막 부르려던 찰나 1층 주방으로 두 눈이 쏠렸다. 중국식 전통 옷을 차려 입은 소녀가 음식이 담긴 접시를 들고 나오고 있었다. 잭슨이 놀라 벌떡 일어났고 그 충격으로 의자는 힘없이 뒤로 넘어가 버렸다. 그 여자는 음식을 내려놓고 잭슨을 향해 웃음을 한번 짓고는 이내 돌아서서 주방으로 사라졌다.
“내가 미쳤나? 꿈일 거야…… 꿈…… 근데 이 음식 향은 뭐지? 혹시 몰래 들어 온 중국 놈들?”
잭슨은 침착함을 잃지 않기 위해 위 주머니에서 시가를 찾았으나 이내 바닥에 떨어트려 버렸다. 2층 계단에서 굉장히 화려한 장식의 중국식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잭슨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녀는 잭슨 옆에 요염한 자세로 앉았다. 그리고는 주방을 향해 손바닥을 가볍게 쳤다. 그러자 아까 그 소녀를 따라 다른 몇 몇의 소녀들이 더 따라 나왔다. 손에는 접시에 담긴 중국 음식이 있었고 소녀들은 잭슨 앞에 음식들을 차례대로 내려놓았다. 눈으로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게다가 향은 말할 것도 없었다. 요염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그녀는 잭슨에게 술을 한잔 권했다. 잭슨은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 술을 받고는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러자 그녀는 작은 접시에 음식을 손 수 덜어주며 잭슨의 입에 가져다주었고 아무 말 없이 음식을 받아먹었다. 얼마나 먹었을까? 더 이상 배가 불러 못 먹을 지경에 이르자 잭슨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그만…… 그만……”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고 음식을 계속해서 잭슨에게 권했다. 어린 소녀들은 음식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방에서 새 음식을 내오고 있었다.
“그만! 죽을 것 같다고! 나 좀 살려줘…… 배에 있는 것 좀 꺼내줘!”
그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하자 그녀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품에 있던 칼을 천천히 꺼내 잭슨의 배로 향했다.
천둥소리에 놀란 로만이 번쩍 눈을 떴다.
찬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비 오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로만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닫고 뒤돌아섰다. 그 순간 그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반사적으로 허리춤에 있던 권총을 뽑아 들었다.
“손들어!”
로만은 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그의 앞에는 머리를 두 갈래로 딴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인형을 들고 서 있었다.
아이는 비단으로 곱게 짠 붉은 빛의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그 빛깔이 너무 고와 눈이 부실 정도였다. 아무 말 없이 서 있던 여자아이는 한 발짝 앞으로 다가오더니 인형을 건넸다.
로만은 혼돈에 휩싸였다. 적군이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면 이미 그를 죽이거나 포로로 삼을 터였다. 하지만 밖은 너무도 조용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로만은 소녀를 밀치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는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소녀에게서 인형을 받아 들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그 인형은 중국 어린이들의 전통의상을 입은 여자아이 인형이었다. 소녀와 같이 머리를 두 갈래로 따고 있었으며 눈은 검고 코는 오뚝했다. 입술은 빨갛고 두 손은 가지런히 앞으로 놓여 있었다. 소녀와 인형을 번갈아 보던 로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의 귀에서 노래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분명 중국어였다. 처음에는 여자아이 한 명이 노래를 부르더니 점차 그 수가 많아졌다. 로만은 들고 있던 인형을 쳐다보았고 인형은 노래 소리에 맞춰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놀라 인형을 벽에 던진 후 권총을 들어 인형을 향해 발사했다. 그러나 노래 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점점 더 많은 소녀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던 소녀는 그의 주위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는 소리는 점점 더 늘어나고 더욱 더 커졌다. 이제는 노래라기보다는 주문에 가까웠다. 로만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공포감에 눈은 반쯤 돌아갔고 입에서는 침이 흐르고 있었다.
“그만! 노래를 멈춰! 멈추란 말이야!”
그의 주위를 돌던 소녀가 로만이 소리치자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는 방구석에 떨어진 인형을 주어 들고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는 인형의 품에서 작은 칼을 하나 꺼내더니 무릎을 꿇고 고통스러워하는 로만의 귀로 칼을 가져갔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던 쟈니는 계속해서 뒤척이고 있었다. 처음 이 건물에 들어왔을 때부터 그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던 그가 살짝 잠이 들었을 때 천둥이 그의 귓가를 때렸고 그는 천천히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으며 칠흑같이 어두웠다. 그때 1층의 홀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그는 잽싸게 총을 거머쥐고는 복도 끝으로 몸을 밀착했다. 고개를 살짝 내밀고 1층의 홀을 내려다봤다. 홀의 광경을 목격한 그의 호흡이 순간 멎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음식과 술을 마시고 있었으며 음악을 연주하는 악단도 있었다.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으나 사람들은 꽤나 시끄러웠고 즐거워 보였다.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그는 2층의 난간으로 몸을 더 이동했다. 그때 누군가가 1층에서 그를 발견하고는 손짓을 했다. 순간 모든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고는 환영한다는 듯이 그에게 손짓을 했다. 그는 라이플을 어깨에 메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그가 1층에 다다르자 사람들은 그를 이끌고 홀의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혔다. 얼떨결에 자리에 앉은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어로 무어라 소리치고 있었고 주먹을 불 끈 쥔 몇몇 사람들은 그를 향해 정신없이 말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쟈니는 자신의 앞에 누군가 앉아있다는 사실도 알 수 없었다. 그가 주사위를 큰 소리가 나게 내려놓기 전까지는.
쾅 하는 소리에 깜짝 놀란 쟈니는 그제야 앞을 바라보았다. 양복을 차려 입은 한 사내가 테이블 위에 손을 얹은 채 그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검은 머리는 모두 빗어 넘겼으며 윤기가 흘렀다. 눈썹은 짙고 눈동자는 깊고 검디검었다. 렌즈가 동그랗고 테가 얇은 안경을 쓰고 있었고 입의 한쪽 꼬리는 살짝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꿈에서도 볼 수 없을 만큼 아리따운 미녀가 앉아있었다.
그가 테이블에서 손을 떼자 주사위 두 개가 보였다. 그가 손가락을 한번 튕기자 누군가 점으로 숫자를 표시한 나무패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는 그들 앞에 두 줄씩 나란히 놓아두고는 이내 자리에서 사라졌다.
사내는 쟈니를 천천히 훑어보더니 그의 목 부분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그의 목을 한번 가리키더니 테이블의 중앙을 톡톡 두드렸다. 쟈니는 자신의 목으로 손을 가져갔다.
“인식표?”
그는 인식표를 만지작거리며 사내를 쳐다봤다. 그 사내는 고개를 끄덕하더니 자신의 손으로 목걸이를 끊는 시늉을 했다. 쟈니는 영문도 모른 채 인식표를 풀고는 누군가 가져다 놓은 금색 접시 위에 인식표를 얹어놓았다. 사내는 만족한다는 듯이 미소를 짓더니 그의 옆에 있던 미녀에게 손짓을 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허벅지까지 깊게 파인 치마 사이로 길고 흰 다리가 드러났다. 쟈니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는 그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허리를 숙이고 작은 입술을 그의 귀에 갖다 대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속삭였다. 그녀의 온기가 온 몸으로 전해져 오는 듯 했다. 그리고는 그의 옆에 앉아 다리를 살짝 꼬더니 어깨에 손가락을 올리고 살살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사내가 자신의 앞에 있던 말 중에서 점이 하나가 찍힌 말과 네 개가 찍힌 말을 세워 놓았다. 그리고는 주사위를 집어 들고 테이블 가운데 가볍게 굴렸다. 이상하게 주사위는 보이지 않는 컵에 쌓여 튀고 있는 팝콘마냥 제자리에서 마구 튕기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튕기던 주사위가 멈춰 서자 1과 4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사내는 금 접시에 담긴 인식표를 기분 좋게 쳐다보고 있었다. 주변의 소리가 잦아들자 사내는 쟈니의 앞에 놓인 패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쟈니는 자신의 패를 내려다보았다. 눈동자는 떨리고 입술은 바짝 말라갔다. 왠지 패를 올리고 주사위를 던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 그녀가 다시 한 번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녀의 입김이 닿을 때마다 온 몸에 전율이 돋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점이 세 개 찍힌 패와 다섯 개가 찍힌 패를 세웠다. 떨리는 손으로 주사위를 잡고 테이블 중앙에 굴렸다. 한참을 튕기던 주사위가 멈춰 섰고 침묵이 흘렀다. 사내는 미소를 짓고 인식표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쟈니는 영문도 모른 채 자신이 던진 주사위를 쳐다보았다. 주사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흰색만이 보일 뿐.
“이게 어떻게…….”
그는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의 눈에 번쩍하며 빛을 발하는 칼 든 미녀가 보였다.
주둔부대는 폭우로 인해 오후 2시가 다돼서야 도착했다. 마을을 수색하던 부대는 폐허가 된 한 건물에 여기저기 널브러진 시체 세 구를 발견했고 사건일지에 이렇게 기록했다.
[검은 장막 수색 팀 사망 사건에 따른 기록일지]
해밀턴 잭슨 소위 사망 – 예리한 칼에 배가 난도질당함. 특이한 점은 배 속의 내장이 모두 도려내어져 있었음. 야생 동물의 짓이라고 판단되지는 않음.
라이놀 로만 상사 사망 – 두 귀가 모두 잘린 채 사망. 감식반도 감탄 할 정도로 고막이 깨끗하게 도려내어져 있었음. 감식결과 특별한 도구가 있어야 고막이 도려내어 질 수 있다고 판단. 그러나 그런 도구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음.
슈테이만 조니클롭 중사 사망 – 단두대에 잘린 듯 목이 깨끗하게 잘려나가 사망. 이상한 점은 잘려나간 자리 어디에도 혈흔의 흔적이 없음. 사체에 인식표도 없으나 분실했는지 알 수 없음.
지스키 조지 하사 실종 – 어디에도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음. 현재는 그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배 중이나 자살의 확률도 있기 때문에 주변 탐색을 위주로 그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음.
조지를 찾은 건 그로부터 3일 뒤였다. 마을의 뒷산 키 큰 나무의 나뭇가지에 목을 매단 채 죽어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높은 나무에 목을 맸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이미 까마귀들이 시체를 많이 훼손 한 뒤였다. 인식표로 그였음을 확인 할 수 있었고 그의 목에는 쟈니의 인식표도 걸려 있었다. 그러나 무기로 썼다고 판단한 칼은 나오지 않았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조지의 바지 주머니에서 반은 망가져버린 중국 인형이 나왔다는 것이다.
[검은 장막 수색 팀 사망 사건에 따른 기록일지 – 최종]
지스키 조지 하사의 정신 분열 증세로 부대원들을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 것으로 판단.
그러나 본 사건은 설명 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기에 본국에 자료를 보내 분석을 의뢰하기로 함.
본 사건의 기록은 이것으로 종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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