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부검을 마치고
오늘 결국은 화장을 하고.. 이렇게 보냈구나
오빠 나이 고작 32에 이렇게 갔네..
나 어렸을 때 집안 형편 안좋아서 부모님이 날 도저히 키우질 못해서
이모집에 맡겼었지
그리고 한창 사랑받을 그 나이에 이모집에서 살면서
난 참 행복했어
오빠도 언니도 이모도 이모부도 너무 잘해줘서..
정말 친 딸 , 친 동생같이..
제작년에도 우리 막내삼촌이랑 오빠랑 언니랑 나랑 넷이
오빠 집에서 치킨에 맥주 먹던게 생각난다
그 때 한잔만 더 마시다 가라고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 꽃을 피웠는데
거절하고 집에 왔던게 참 지금은 후회되는거 있지
첨에 오빠 중환자실에 있단 소리 들었을 때 나 사실 실감 안났어
울음이 나오지도 않고 그냥..
일어날거라고 당연히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토요일.... 엄마 통곡 소리에 잠이 깼는데
눈 뜨고 싶지 않았어
무슨 일일지 뻔했고 그 뻔한 사실이 꿈이길 바랬으니까
바로 온가족 모두 갔지.. 난 광주 오빠는 서울..
갈 때도 참 눈물이 안났었는데
오빠 영정사진을 보는데.. 아..이거 진짜구나 나 지금 진짜 오빠 장례식장에 와 있구나
싶으니깐 눈물이 미치도록 흐르더라..
언니도 이모도 이모부도 .. 거기 있던 모든 분들이..
간호사인 난 다음날 새벽 출근이라 한두시쯤 출발하는데
그렇게 가는 내가 너무 미웠어.. 오빠 두고..
내겐 친오빠와도 같았으니까
오늘도 일어나자마자.. 오빠 화장할 시간이란거 알고 또 눈물이 나더라..
그리고 지금도...
참 너무나 허무하게 가버렸다 우리 오빠
그 의사가 물론 고의로 오빠를 그렇게 만든건 아니겠지만
난 지금 너무나도 그 의사가 원망스럽고
오빠를 꼬드긴 그 코디네이터도 원망스러워..
우리 오빠 어떡하지
우리 이모 이모부 언니..다 어떡하지
나도 이렇게 늦은밤 마음이 찢어져서 잠 못이루고 눈물 흘리고 있는데..
오빠 내가 이모랑 이모부 둘째 딸 할게
언니한테 동생할게
내가 오빠 몫까지 더 잘할게
오빠.. 다음에는 우리 더 오래보자
먼저 가지말고..
우리 이모, 이모부, 언니 빨리 힘낼 수 있도록 해줘
더 이상 고통스러워하지 말고 쉬어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