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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맛 : 모두가 순응하는 돈의 논리

민진 |2012.06.28 02:28
조회 133 |추천 0

 

 

올해 칸을 장식한 두 편의 한국영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임상수와 홍상수 그야말로 한국 영화계에서 자신의 선을 확고하게 구축한 몇 안 되는 감독들이다. 임상수의 영화가 어둡고 차가운 기운을 감지할 수 있다면, 홍상수의 영화는 신비롭고 아름답다. 임상수의 <하녀>가 서울 한복판 낡은 고시원 방에서 자살한 한 여자의 모습으로 시작했다면, 홍상수의 북촌방향은 어딘지 낯선 거리를 걸으며 이질감과 기이함 사이를 오간다. 홍상수가 계속 이야기하고픈 강력한 메시지의 영화라면, 임상수는 가만히 앉아 그저 지켜보고픈 응시의 세상이다. 두 사람의 눈은 2012년 지금 대한민국 각기 다른 사람들처럼 서로의 세상을 달리 살아간다.

 

임상수의 <돈의 맛>은 영화의 도입부가 인상적인 기운을 자아낸다. 의미심장 했다고나할까. 서울의 시가지에 자리 잡은 고층 빌딩 꼭대기에는 현금이 가득 찬 방이 있다. 과연 어느 동네 어느 지역 어떤 건물이라고 하기 힘든 보편적인 고층 빌딩에서 말이다. 과연 다 쓰고 죽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이 엄청난 현금은 누구의 것일까. 추측컨대 아마도 이건 그 어느 재벌기업의 소유일 것이다. 아 그래 난 거기 이런 돈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그 정체와 어떤 경로를 통한 돈인지도 모른 체 우리는 이 거대한 돈의 존재를 그저 인정하고 만다. 승강기 속의 한 남자는 아무런 감흥도 없이 돈다발을 가방에 담을 것을 지시하고, 그에 반해 당황한 비서로 보이는 남자 주영작은 현금냄새를 맡아보고서는 아쉬운 듯 그 자리를 쉬이 떠나지 못한다.

 

이 첫 장면에서 이 영화의 존재의미가 설명된다. 어쩌면 관객들은 저마다 짧은 시간동안 저 돈다발로 자신들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했을 것이다. 나처럼. 아 저 몇 다발의 돈으로 무엇이든 못하리. 이 서울이라는 돈의 도시에서 돈의 맛을 아는 순간은 그렇게 스쳐 지나간다. 아등바등 몇 푼의 돈을 벌기위해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첫 시퀀스는 이 영화의 존재의 의미일 것이다. 그리고 돈 냄새를 맡던 주영작의 탐욕은 돈의 맛을 알아버린 우리의 코가 되어 킁킁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돈의 맛은 우리 뇌 속에 현현하게 살아있는 이미지로 다시 킁킁댄다.

 

영화는 첫 취업 후 부잣집 비서로 고용된 주영작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다. 임상수 감독 특유의 서슬 퍼런 시선으로 지극히 부자다운 사고를 가진 이들이 이 사회를 어떤 방식으로 구워삶는지 노린내 나게 그려 넣는다. 주영작은 외부인의 시선으로 저택을 돌아다니며, 그들을 관찰하는데 열을 올린다. 봐서는 안 될 것을 목격하고, 이해하지 못할 것을 받아들인다. 이는 자연스레 관객의 시선이 된다. 훔쳐보고, 긴장하고, 부러워하고, 한탄하며 때로는 분노하고, 쓴웃음을 지어 보인다. 섹스, 폭력, 야욕, 침탈, 음모가 다양하게 저택을 휘어 감는다.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도 모른 체 그저 그들이 구축한 세계에 적응하기 위한 시선을 던지는 것이다. 임상수의 연출은 비판의 칼날이 아닌 묘하게 그들을 관찰하는 태도를 가진다. 이 느긋한 연출의 흐름이 난 너무도 불편했다. 도대체 임상수는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영화는 임감독의 전작 <하녀>와 다르게 <돈의 맛>의 경우 희망의 기운을 감지하며 시나리오를 끝내지만, 마지막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도 이 찝찝한 기운을 떨치지 못한다. 왜냐면 우리는 주영작이 <바람난 가족>의 썩은 변호사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첫 장면에서 목격했던 생생한 돈의 이미지가 알 수 없는 패배의식의 기운을 불러일으킨다.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현금의 이미지. 맡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 짜릿한 돈의 냄새가 그리운 것이다. 영화의 시작에 상상했던 돈다발의 이미지가 내 삶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었던 2시간의 러닝타임은 결코 부자들의 야욕에 총을 겨누는 분노의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돈의 진실에 대한 뼈저린 자기망각의 시간이다. 우리는 돈의 맛이 그리워 부자들을 행태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비판적 시각과 분노의 향연들은 돈의 논리가 순리가 된 현장에서 소각된다. 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영화 <돈의 맛>은 자본주의의 썩은 병폐에 칼을 들이대는 공격성향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것은 돈의 흐름을 이해하려는 주영작에 빙의된 돈의 노예들이 바라보는 노예근성 그 자체인 것이다. 그래서 영화 <돈의 맛>은 패배주의의 기운이 작품 전체를 뒤덮는다. 그 무력한 기분이 이 극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발버둥 쳐봐야 우리가 고개숙이게 되는 돈의 세상. 이것은 임상수의 전작 <하녀>와는 엄연히 다른 시각이다. 영화를 본 후엔 자리에서 쉬이 일어설 수 없는 일상의 무게감이 엄습한다. 주영작이 자신의 집 거울 뒤에 꼬불친 돈을 꺼낼 때의 눈빛처럼 차마 마주치기 힘든 돈의 맛을 본다.

 

<돈의 맛>을 보고나서 떠올랐던 책은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이다. 삼성가의 믿을 수 없는 부패의식과 썩은 힘의 논리를 까발렸던 이 소설은 마치 영화의 시나리오를 읽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구축해놓은 부의 장막이 민간인(?)들과는 너무나 멀게 느껴진다. 삼성에서 짤린 한 남자의 망상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서 무엇을 할 수 있는데. 변하는 것은 하나 없다. 투정 그만 부려, 열심히 일해서 삼성가면 되잖아. 모두가 삼성 욕을 하면서도, 삼성에 고용되길 원한다. 작가가 어떤 말을 하든지 간에 의미 없는 텍스트로 읽힐 뿐이다. 돈이 가진 권력에 종속되어진 이 사회에서 돈은 점점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돈의 정도가 그들이 가진 죄의 농도를 표시하는 기준이 되는 느낌이랄까. 영화 <돈의 맛>은 기존의 작품들이 가지지 못했던 돈에 대한 시각을 가장 차갑고 내정하게 측정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이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고 느끼고, 이 사회는 썩었다고, 개천에선 용이 날 수 없다고,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고작 신용카드를 이리저리 긁고 다니며 사치를 내 인생과 동의어로 묶는 것뿐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기는 개혁의 순간이 오기를 막연히 기다리며 긁어댄다. 영화 <돈의 맛>이 좋은 영화인 이유는 우리가 가진 돈에 대한 자세를 너무도 정확하게 측정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난 이 영화가 주는 불쾌한 뒷맛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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