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소개
- 1980년 이래 외교통상부 (단, 1998-2003.2 휴직, 국제기구 근무)
* 조약국 國際法規課 (1989-1990, 1993-1994, 1996.3-7)
* 조약국 條約課長: 1996.8-1997
* 대법원 파견 (국제협력 심의관): 2003.3-
- 1998-2003.2: UNESCO 사무국 (빠리)
* 대외협력실 亞?太 課長: 2001-2003.2
- 서울대학교 법학과 졸업 및 동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국제법)
- 영국 Sussex 대학교에서 International Relations 수학 (MA)
- 호주 Adelaide 대학교 환경대학원(Mawson Graduate Centre for Environmental Studies)에서 地球環境法 연구
최근 일본의 독도 왜곡에 대한 국제법·역사적 반박자료 역할
1996년 6월 14일.독도와 관련,일본 입장을 대변하러 온 프랑스 학자가 한국 외교부 실무자와 마주 앉았다.
프랑스 국립극동학원 동경지부의 티에리 모르망 박사와 홍승목 외교부 1등서기관(현 네팔 대사)
토론및 반박 내용모르망 : 일본은 독도분쟁을 재판으로 해결하자고 하지만 한국은 반대하는데 한국은 법적으로 자신이 없나?
홍승목 : 그렇지 않다. 한국은 국제사법재판소lCJ 라는 특정 법정에 가는데 대해 이견이 있었을 뿐이다.
일본은 ICJ에 의한 분쟁 해결을 주장하면서 중국과 분쟁이 있는 센카쿠 열도는 ICJ로 가자고 하지 않는다.
자기네가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는 안되고 상대방이 점유하는 경우만 재판에 가자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더구나 쿠릴열도는 러시아가 점유하고 있는데 왜 ICJ로 갖고 가지 않나.러시아는 ICJ로 가자고 하고 일본은 반대하고 있다.
일본은 ICJ에 판사가 있는데 한국은 없으니, 한일간 문제는 ICJ에 가는 것이 명백히 일본에게 유리하고
중국이나 러시아는 각각 ICJ에 판사를 두고 있으니 불리하다고 보는 것이다.
모르망 : 조그만 섬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일본은 냉정한 데 비해 한국의 감정은 매우 민감하다.
홍승목 :일본은 당초부터 자신의 영토가 아니니까 ICJ에 패소해도 잃을 게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일종의 부담없는 게임이다. 한국을 식민 지배했으니 자료입증 측면에서도 월등 유리한 입장이고.
모르망 : 일본은 그렇다고 치고, 한국 여론은 왜 그렇게 과민한가.
홍승목 : 한국민에게 독도는 주권과 독립의 상징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20세기 초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 때 1단계로 1905년에 독도를 빼앗고,5년 후에 나머지 전국토를 빼앗아 식민지화를 완성했다
(그리고 2011년 일본은 지금 그 단계를 다시 되풀이하려고 있음)
일본이 다케시마가 일본영토 라는 것은 한국에게 너희는 아직 완전히 독립한 것이 아니라 아직 우리의 식민지라는 것과 같다.
독일이 지금 와서 프랑스더러 파리가 나치 독일의 점령에서 해방된 것은 인정해 주겠지만, 알자스·로렌은 돌려받아야겠다고 한다면
프랑스 국민이 점잖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재판으로 해결하자고 하겠나?
모르망 : 태평양전쟁 후 1951년에 체결된 대일평화조약에서는 '제주도·거문도·울릉도'를 한국 영토로
명시하되 독도는 언급하지 않았다.(이게 일본이 주로 내세우는 주장)
홍승목 : 조약의 당사국이 아닌 한국더러 설명하라는것은 이상하다.
그것은 패전국인 일본에 대한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한국영토와 관련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부분만을
언급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명시된 섬들이 한국영토의 외측 한계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예를 들어 제주도 더 남쪽에는 마라도도 있다.
그런데 일본에 대한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일본 영토의 외측 한계가 아니라 한국 영토의 외측 한계를 결정했을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우습다. 패전국은 일본이 아닌가?
대일평화조약에서는 한국영토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부분을 언급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모르망 :1905년에 분명히 무주지라고 하면서 영토편입 조치를 했나?
홍승목 :1905년 일본내각이 독도에 관해 채택한 결정의 요지는 영토편입을 하라는 어느 개인의 청원을 접수한 것을 계기로…
검토한 결과 타국의 영토라고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되어 …국제법에 영토편입으로 인정될 조치를 한다는 것이다.
자기네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점을 여러 가지로 밝혔다.
한국의 영토라는 사실이 너무 명백했기에 차마 무주지 라는 표현조차 쓰지 못하고 타국의 영토 운운한 것이다.
일본정부가 정말로 무주지로 인식해 영토편입을 하는 경우에는 이해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나라에
사전통보를 하거나 관보게재를 통해 나중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했다.
그런데 독도에 대해서는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에 편입조치를 숨겼고 한국이 알게 될까봐
관보게재도 피했다. 도둑이 물건을 훔쳐가면서 주인이 알지 못하도록 조심한 것과 같다.
편입조치를 한국에 숨기려다 보니 일본국민조차 그 사실을 잘 몰라서 편입조치 후에도 독도를 계속 한국의 영토로
표시한 일본사료가 발견된다.
모르망 :중재재판에 부탁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보는가?
홍승목 :일본정부가 공식 제의해 온적이 없고 일본이 제의해 올 가능성도 없으므로 검토할 필요가 없었다는것이 적절하겠다.
모르망:그렇게 단정하는 근거는?
홍승목 : 30년쯤 전 한국의 李漢基 교수가 한국의 영토라는 논문으로 독도를 중재재판에 회부하자고 제의한 적이 있으나,
일본측에서 일체 반응이 없었다. 李漢基 교수는 독도에 관한 국제법 학자로서 정부 자문역이며.그의 독도 논문은 일본에 의해
이미 철저히 검토되었을 것이다.
모르망 : 일본 고지도에 독도를 일본영토로 표시한 것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홍승목 : 아마 일본 고지도에 한국의 영토로 인정한 것이 더 많을 것이다.물론 일본 정부는 불리한 것은 숨겨놓고 있겠지만,
어쨌든 독도를 일본영토로 표시한 지도도 사실은 독도가 한국영토임을 반증하는 것이다.
일부 지도제작자들이 울릉도를 일본영토로 착각하게 되면 독도도 덩달아 일본영토로 표시되는 것은 필연적이고
위치만 보더라도 독도가 울릉도에서 더 일본 쪽에 있으니까,그런데 울릉도는 한국의 영토이니 이 지도들이 일본에게
아무런 유리한 증거가 될 수 없는 것 아닌가?
모르망: 일본 지도의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반증한다는 뜻은?
홍승목 :일본 고지도의 공통점은 울릉도와 독도를 한꺼번에 한국영토로 표시하거나 또는 한꺼번에 일본영토로 표시하고 있다.
즉,두 섬을 공동운명체로 보는 것이 양국 국민들의 공통된 역사적 시각이다.
한국의 고지도는 두 섬을 공동운명체로 보면서 한국의 영토로 기술하고 있고 일본의 고지도도 두 섬을 모두 일본영토로 보든
한국영토로 보든,공동운명체로 인식하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니 울릉도가 한국영토라면 독도도 당연히 한국영토라는 인식을 나타내는 것 아닌가?
지도뿐만 아니라 역사기록에도 독도는 반드시 울릉도에 곁들여 언급되고 있으며 독자적으로 언급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공동운명체이되 대등한 것이 아니라 독도가 울릉도의 종속된 섬으로 인식되어 온 것이다.
일본이 울릉도는 한국영토, 독도는 일본영토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들의 역사와도 단절된, 20세기의 새로운 주장이다.
일본이 지도를 통해 독도를 일본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다 주장하려면 울릉도와 독도를 한꺼번에 일본 영토로 그린 지도를
다수 제시하여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독도가 자기네 영토라고 하면서 주로 울릉도이야기만 잔뜩 늘어놓고 있다.
1900년에는 정부가 취한 조치로서 독도를 울릉군수의 관할로 한다는 내용이 공포된 기록이 있다. 더 이상 무슨 의문이 있겠는가.
모르망 : 1900년 독도를 울릉군수의 관할로 한다는 내용이 공표한 한국 정부조치에 대해 일본정부는 뭐라고 하나?
홍승목 : 거론된 섬이 독도가 아니라 다른 어느 섬이라 하고있다.기록에서 독도 라고 하지 않고 석도라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 역사기록에 독도란 이름은 앞서 언급한 1906년 울릉군수의 보고서에 처음 나타나는데 이에 앞서 1900년에 독도라는 명칭이
어떻게 등장하나? 울릉도 사람들은 독도를 rock island 라는 의미인 독섬(돌섬)이라고 불렀는데, 이를 당시의 관례에 따라 한자로
표기할 때 의미를 따를 석도’가 되고 발음을 따르면 독도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이러한 표기법은 일본에서는 아직도 통용된다.
더우기 현실적으로 독도말고는 석도에 해당하는 섬이 없다.
일본이 석도는 독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도대체 어느 섬을 가리키는지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 아닌가?
일본은 한국의 역사 기록에 독도에 관한 기록이 나오면 무조건 독도는 아니다라고 미리 단정한 후 울릉도 주변에 환상의 섬을
많이 만든다. 일본의 입장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면 무조건 달은 아니다라고 단정한 후, 그 천체에 해당하는 다른 별을 잇거나,
아니면 허위기록이다. 어느 쪽이든 나한테는 마찬가지이니 나한테는 입증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심화내용
Mormanne : 상황이 바뀌어 나중에라도 일본정부가 중재재판을 하자고 제의해 오면?
홍승목 : 검토할 만하다고 보는 것이 개인적인 시각이다. 다만 식민주의에 입각한 영토편입 조치는 법적으로 무효라는데 대해
먼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 부분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Mormanne :일본의 언론은 냉정을 유지하는데 한국의 언론과 국민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인상을 보이는데?
홍승목: 일본의 언론이나 국민이 냉정한것은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일본 정부 주장이 무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방 영토와 관련해서도 일본의 언론이나 국민이 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오히려 러시아국민이 냉정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일본이 독도에만 재판(ICJ)회부를 요구하는 것은 애초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니까 패소해도 잃을 것은 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한국을 식민 지배했으니 자료입증 측면에서도 월등 유리한 입장이고
일본이 진정으로 분쟁의 평화적 해결 정신을 존중한다면 먼저 북방 영토 문제나 센카쿠 열도 문제를 ICJ에 가져가야된다.
Mormanne :1951년의 대일평화조약에서 제주도,거문도,울릉도는 한국의 영토에 포함 시키고 독도는 언급하지 않았는데?
홍 : 조약의 당사국이 아닌 한국더러 설명하라는 것은 이상하다.
조약의 해석 문제라면, 한국영토의 외곽에 있는 주요 섬이기 때문일 것이다.
혹시 한국영토의 외측 한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뜻으로 하는 질문이라면 간단히 반박할 수 있다.
이들 중 어느 섬도 한국영토의 가장 외곽에 위치하는 것은 없다. 제주도를 예로 들면 더 남쪽에 마라도가 있다.
그런데 일본에 대한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일본 영토의 외측 한계가 아니라 한국 영토의 외측 한계를 결정했을 것이라는
발상 자체가 우습다. 패전국은 일본이고 조약에서는 한국영토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부분을 언급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Mormanne :한국은 일본의 1905년 영토편입조치가 무효라 주장하지만,독도가 1905년 이전에 한국의 영토라는 근거는 충분한가?
홍 : 한 가지 물어보자. 일본의 주장대로 독도가 1905년까지는 無主地(무주지)였을 가능성이 정말 있다고 보는가?
Mormanne :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홍 : 식민주의적인 발상이다. 20세기에 와서 태평양의 외떨어진 곳에서 새로 발견된 땅이라면 몰라도 한,일 두 인접국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이미 수세기전부터 한일 양국 국민이 그 섬의 존재를 잘 알면서 그 부근에서 어업을 해 왔다면 이는 두 나라 중
한 나라의 영토라고 보는 것이 상식 아니냐?
1905년에 정말 무주지였다면 영국이든 러시아든,아니면 쿠바든 이디오피아든 아무 나라나 먼저 독도를 자기 영토로 편입할 수
있다는 논리다.만약에 이러한 나라가 20세기에 독도를 무주지 선언하면서 영토편입 조치를 했으면 일본이 이를 인정하였을까?
Mormanne : 인정하기 어려웠겠다.
홍 : 두 나라 입장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일본의 입장은 1905년에 독도는 임자없는 땅이었으므로 어느 나라든
차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한국의 입장은 1905년에 이미 인근국가인 한일 양국 가운데 한 나라가 영유권을 확보하였을것이므로
양국 중에서 과연 어느 나라의 영토였는지를 확인해 보면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입장은 서구의 식민주의 개념에 따른 것이고, 한국은 식민주의를 거부하는 입장이다.
독도의 지리적 위치와 규모를 감안할 때, 독도에 관한 기록이 한국이나 일본의 영토에 속하는 다른 유사한 섬에 대한 기록의 수준에
이르면 일단 독도는 무주지는 아니었다고 보아야 한다.한국의 경우 영토에 속한 섬은 별도의 이름을 가진 것만 해도 수백 개에 이른다.
그런데 독도는 조그마한 무인도로서 그 자체의 경제적 가치는 거의 없는데도 영유권을 입증할 역사적 기록은 다른 유사한 섬에 비해
비교적 풍부하다. 이것만으로도 무주지의 논리는 당연히 배제되어야 한다.
Mormanne : 1905년 일본의 영토편입 조치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는 뜻인가?
홍 : 아니다. 중요한 역사적 사실인데 전혀 없었던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식민주의에 입각한 영토편입 조치에 대해 법적 효과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독도를 무주지라고 선언하여 그 때까지는 자기네 영토가 아니었던 점을 명백히 한 것은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므로 없었던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Mormanne : 일본에게 유리한 것은 인정할 수 없고 한국에게 유리한 것만 인정해야 한다는 뜻인가?
홍 : 이상한 질문이다.간단한 비유를 들겠다.협박이나 사기로 남의 집을 뺏은 경우에 법적으로 소유권 취득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여
당초부터 범죄행위도 없었던 것으로 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범죄행위의 동기도 있을 것이고...요컨데,불법행위에 대해 법적 효과를
부여하지 않아야 하지만, 불법행위 자체나 그 동기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Mormanne : 결국 한국의 입장은 독도는 1905년에 이미 일본이나 한국 중에서 한 나라의 영토라고 보아야 하는데,
일본은 주인 없는 땅이라고 하여 자기네 영토가 아니라고 인정했으니까, 반사적으로 한국영토라야 한다는 것인가?
1905년에 이미 한국영토였음을 한국이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하는 것 아닌가?
홍 : 한국영토였다는 증거는 충분히 있다. 다만, 식민주의의 피해를 받은 국가들이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이지,
식민주의를 합리화하기에 유리한 엄격한 입증책임은 아니라는 점을 먼저 지적해 둔다.
우선 1905년에 한국 정부가 독도를 한국의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는지의 법적 인식(animus)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명쾌한 증거가 있다.1905년에 일본이 비밀스럽게 영토편입 조치를 한 후에도 한국정부는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같은 해에 한국 정부의 외교권을 탈취한 후 1906년에 일본관리 일행을 울릉도에 파견하여 군수에게
독도는 이제 일본영토가 되었기에 독도를 둘러보러 왔다고 통보하였다.
이에 울릉군수는 깜짝 놀라 중앙정부에게 본 울릉군 소속인 獨島에 대해 일본인 관리일행이 통보해 온 내용을 보고하고
내용을 조사토록 건의하였다.
이제부터는 일본 영토라는 일본 관리의 통보와/ 본 울릉군 소속인 독도라는 한국 관리의 보고가 당시 양국 정부의 영유의식을
너무나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는가? 이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이 걸작이다. 보고서의 원본이 없으므로 믿을 수 없다라고 한다.
울릉군수의 보고서는 같은 해의 신문이나 다른 문서에서 인용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엄격하게 원본 여부만을 가지고 따지면
일본역사인들 남아날까? 더구나 1910-1945년 간 한국을 식민지배하면서 역사 기록의 관리권도 몽땅 손아귀에 쥐고 있던 일본이
한국에 대해 역사 기록의 원본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니 가관 아닌가?
1906년에 한국의 어느 역사가는 독도는 전에 울릉도 소속이었는데 일본이 이를 빼앗아 갔다고 기록을 남겼고,이보다 몇년 앞서
1900년에는 정부가 취한 조치로서 독도를 울릉군수의 관할로 한다는 내용이 공포된 기록이 있다. 더 이상 무슨 의문이 있겠는가.
Mormanne : 1905년 이전의 역사기록으로서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임을 입증할 만한 것은 어떤 것이 있나?
방금 1906년 이전의 역사기록에 ‘독도’라는 이름은 쓰이지 않았다고 했는데… 일본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홍 : 역사기록상 우산도나 삼봉도 등은 울릉도를 가리킨다는 일본의 주장도 아주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반드시 울릉도만을 가리킨다고 단정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울릉도 주변에 관한 기록이면서도 울릉도가 아닌 별개의 섬을 가리키는 것이 명백할 때는 일단 독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상정하여 기록을 검토해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울릉도 부근에서 역사기록에 상응하는 다른 섬을 찾을 수 없는 때가 많기 때문이다.(즉 울릉도 부근 돌섬은 독도 하나뿐)
그런데 일본은 우산도와 삼봉도가 ‘울릉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이는 기록을 근거로 하여 이들은 모두 울릉도라고 단정한 후,
울릉도와는 별개의 섬인 것이 분명하면 이를 허위기록으로 몰아 붙인다.
자기네 역사책에 환상적인 허구가 많아서 남의 역사까지 의심하는구나 하고 이해를 해 주려고 노력은 하지만,허위 역사도
필요할 때 만드는 것 아닌가? 건국신화 이야기가 나오는 곳도 아닌데, 그것도 15세기 또는 그 이후의 역사기록에서
먼 바다 한 가운데에 있는 섬 이야기가 나오면 거기에 섬이 있으니까 기록된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당시 한국사람들이 독도 부근에만 가면 갑자기 눈이 멀어져 섬을 못 보다가 망망대해에서 느닷없이 환상의 섬을 본 것으로
추측해야 하나? 그 섬이 진정 독도일 수 없으면 일본의 오끼시마(隱枝島)를 가리키고,오끼시마가 한국의 영토라는 증거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독도를 제외하면 가장 가까운 섬이니까…
우산도는 우산국이라는 역사적인 나라이름에서 나온 것이고, 삼봉도는 독도의 외형이 3개의 봉우리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추측된다. 또 가지도는 가지(물개)가 사는 섬이라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독도에 물개가 많이 산 사실은 일본의 19세기 기록에도 나타난다,독도가 아닌 섬에서 물개가 발견되었다는 기록은 보지 못했다.
해류 때문에 독도가 아니고서는 물개가 몰려갈 만한 섬이 없다. 따라서 독도가 이러한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를 울릉도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때가 있다. 독도의 이름에 대해 혼란이 있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우산?무릉 1도설
Mormanne : 하지만 한국이 자주 원용하는 세종실록의 기록상 우산도와 무릉도는 모두 울릉도를 가리킨다는 일본의 주장이
일리가 있다고 보지 않나? 실제로 세종실록의 기록에서도 일설에는 우산도와 무릉도가 하나의 섬이라고 한다라고 말하고 있고…
홍 : 설사 2島說과 1島說 이 공존하였다고 해도 울릉도와 독도의 관계를 볼 때 이는 자연스런 것으로 본다.
독도는 울릉도에 비해 크기가 1/400에 불과하고 절대적 크기도 0.2㎢ 미만인 무인도이다.
또 역사기록상 독도는 그 존재가 독자적이지 못하고 항상 울릉도에 종속되어 나타난다.
그런데 울릉도에서의 거리는 약 50해리, 일반적으로 보아 이웃 섬의 한 부분으로만 보기에는 상당한 거리다.
이러한 섬을 울릉도와는 별개의 섬이라고 보아야 하나, 아니면 울릉도에 부속된 것으로 보아야 하나?
거리로 보아 별개라는 사람이 많겠지만, 규모가 워낙 작고 또 주변에 다른 섬이 없으니 울릉도의 한 부분으로 보아
관념적으로는 하나의 섬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해가 되는 것 아닌가?
2 도설과 1도설이 공존하였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게다가 우산도라는 이름이 때로는 울릉도를,때로는 독도를 가리켜 명칭상의 혼란이 가미되었으니 1도설까지 거론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세종실록지리지의 일설 기록을 인용하여 섬은 하나 라고 보는 것은 일본 측이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일설에 우산,무릉이 하나의 섬이라고 1島란 There is only one island in the area, and that island must be the holder
of both names 의 뜻이 아니라 Both names might designate one and the same island of the two 라는 의미일 뿐이다.
본문에서 섬이 두 개 있고, 맑은 날 마주 보인다라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런 단서도 달지 않았다.
단순히 우산도나 무릉도나 다 같이 본 섬(主島)을 가리키는 이름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나타내었을 뿐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우산도라는 이름에 대해 인식의 괴리가 있었을 뿐,두 개의 섬이라는 인식에 차이가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Mormanne :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 우산이라는 이름에 대해 인식의 차이가 있었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줄 수 있나?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홍 : 지방정부에서는 작은 섬,즉 후의 독도를 가리켜 우산이라고 하였는데,중앙정부에서는 한 동안 이를 잘못 이해하여
옛 우산국의 본 섬으로 이해하였다. 그 증거는 간단하다.지방정부의 보고를 기초로 할 수밖에 없는 본문의 내용은 언제나
울릉도(무릉도)에 대한 기록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인식을 반영하는 제목 부분에서는 수세기이후까지
우산?울릉(무릉)이라고 하여 우산도에 비중을 둔다.
따라서 독자들은 제목과 본문내용 간에 놓인 이상한 괴리를 느낀다.
제목을 쓰는 중앙정부의 기록자와 본문 내용의 결정적 자료가 되는 지방정부의 보고를 쓴 사람 간에 우산국에 대한 인식의 괴리가
있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다. 아마 이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우산국 멸망 후 울릉도의 이름으로는 종래의 섬의 이름인 울릉?무릉과, 우산국이라는 나라 이름에서 나온 우산도’라는 이름이
함께 쓰였을 것이다. 그런데 현지에서는 원래의 이름인 울릉?무릉이 압도적으로 널리 쓰였을 것이고,
우산도는 차츰 이름없는 섬인 독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전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에서는 우산도는 옛 우산국의 본 섬(主島)라는 고정관념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우산이라는 이름이 선입감을 가지도록 하였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기록에도 우산도는 본 섬(主島)인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오해는 불가피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별도의 의미가 있는 우산이라는 이름이 독도의 이름으로 쓰이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상당 기간 혼란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었겠지만, 민간인들이 그렇게 부르니까 정부도 이를 그대로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별개의 섬이 존재한다는 인식은 뚜렷하다.맑은 날이면 마주 바라볼 수 있다고 했는데 혼자서 마주 보는 수도 없지 않은가?
그리고 울릉도에서 볼 때 평소에는 안 보이다가 맑은 날에만 바라볼 수 있다고 한 것은 독도에 대해 아주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다.
또 17세기의 한국의 역사기록에는 (울릉도와는 별개의 섬인) 우산도를 일본사람들은 마쯔시마(松島)라고 부른다고 하였는데
더 이상 무슨 의문이 있나? 마쯔시마(松島)는 독도의 17세기 일본식 이름 아닌가? 지금은 다께시마(竹島)’라고 불리지만…
Momanne : 한국측의 기록에 우산도를 일본인은 마쯔시마(松島)라고 부른다고 한 것은 일본영유를 간접 인정한 것 아닌가?
홍 : 우산도를 일본사람들은 마쯔시마(松島)라고 부른다고 부연 설명한 것은 그동안 주로 중앙정부에서 우산도를 잘못 이해하여
울릉도와 동일한 섬이라거나 또는별개의 섬이지만 우산국의 본 섬으로 보는 견해가 있어서 이를 불식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내용은 한국의 영유권을 분명히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에 일본 영유라는 인식을 반영했을 것이라는 오해를 살 여지는 없다.
일본인이 독도를 마쯔시마(松島)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이 무렵 울릉도를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의 지방정부간에
약간의 마찰이 일어나 일본인이 울릉도를 다께시마, 독도를 마쯔시마라고 부른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울릉도를 둘러싼 마찰은 한국의 역사적 영유를 일본정부가 재확인하는 것으로 간단히 끝났다.
Mormanne : 안용복 사건이라는 사소한 에피소드를 한국 측이 독도 영유권 주장의 주요 근거로 삼고 있는데, 개인의 영웅담을
영유권 증거로 내세우는 것이 과연 타당하다 보는가?또 안용복이 범법자로 문초 받고 진술한 내용이니 신빙성도 의문스럽다.
홍 : 어느 얼빠진 정부가 범법자의 황당한 진술까지 마구잡이로 국가의 공식 역사기록으로 채택하여 남기는가?
죄인의 진술이라도 그만큼 중요한 내용이라고 판단을 하였기에 안용복의 진술이 정부의 역사기록으로 채택된 것 아니겠는가?
울릉도와 독도는 당연히 한국의 영토라는 인식에 있어서 안용복이라는 서민에서부터 중앙정부에 이르기까지 일치했음을 나타내는
기록이니까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安龍福 개인을 위해 한마디 하자면,그는 남을 해친 파렴치한 범법자는 아니다.강도를 잡느라 차도에 뛰어 들다 결과적으로
교통신호 위반이 된 것과 마찬가지다.다만 그 당시 국가정책으로 교통신호 위반을 중대하게 취급하였을 뿐이다.
당신네 나라로 비기자면,벨기에 목동이 양떼를 몰고 국경을 넘어 프랑스로 와서 풀을 먹이자 프랑스 농부가 이를 따지러
국경을 넘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국경을 넘지 말라는 임금의 명령을 어긴 것이기에 처벌을 받은 것이다.
Mormanne :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인다는 것은 사실인가?
홍 : 왜 묻는지 알겠다. 가와까미 겐조라는 일본의 어용학자가 독도에 관한 논문에서 울릉도에서 독도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모양인데… 그 사람은 일본정부의 시책에 따라 독도는 무조건 한국영토가 아니라야 한다는 결론을
미리 내려 두고, 독도에 관한 한국의 역사기록을 일본에 유리하게 왜곡 해석하거나,심지어는 기록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만 자기도취가 심하여, 금방 드러나는 거짓말을 하면서 수학적 증명까지 해 보였으니 다른 부분의 논리는 오죽하겠는가?
울릉도 출신 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어린 시절에는 맑은 날이면 산에 올라가 독도를 바라보는 것이 재미였다고 한다.
요즈음은 공해가 심해져 어떤지 모르겠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바라본 것은 역사기록에도 가끔 나온다.
1694년에 정부의 지시에 따라 울릉도를 순찰한 어느 정부관리의 기록에 (울릉도에서) 쾌청한 날 산에 올라가 동쪽을 바라보니
불과 300리(65마일) 거리에 섬이 보인다고 하였다
(註:울릉도사적,장한상 《숙종실록》(숙종21년).울릉도와 독도의 실제 거리는 50마일인데, 눈짐작으로는 상당히 정확한 것이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보았다는 기록임이 분명하다.일본인도 울릉도에서 독도를 바라 본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있던 1919년에 울릉도를 방문한 일본인 학자가 공기가 깨끗할 때 동남쪽으로 바다 멀리 섬(독도)이 보인다고
기록하였다.
(註: 울릉도식물조사서, 中井猛之進, 朝鮮總督府, 1919) 가와까미란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고 증명하려고 한 것은 눈을 감으면
안 보인다는 것인지,아니면 뒤로 돌아 서면 안 보인다는 것인지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왜 그런 증명이 필요한지는 모르지만)
Mormanne : 한국 측은 왜 이러한 입장을 국제사회에 발표하지 않나?
홍 : 독도에 있어서 일본의 입장이 너무 억지고 시대착오적인 식민주의적 영토편입 죄를 근거로 할뿐이라서 대꾸할 가치도 없다.
일본이 겉으로는 아닌 척 하지만 진심으로는 시대착오적인 식민주의적 영토편입 조치를 근거로 할 뿐이다.
Mormanne : 일본은 독도가 1905년 편입조치 이전부터 일본의 고유의 영토이고 1905년에는 시마네 현에 편입시켰을 뿐 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아는데 이 고유영토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홍 : 거짓말을 하다가 들키자 더 큰 거짓말을 해서 어려움을 모면하려는 유치한 발상이다.더우기 그 거짓말끼리 서로 모순되니…
Mormanne : 매우 강한 어조인데 상세히 설명해 줄 수 있나?
홍 :고유영토설이란 일본이 패전 후 과거 제국주의.식민주의의 효력에 의문이 생기자 종래의 영토편입설을 보강하기 위해
갑자기 지어낸 것이다.
이웃사람이 어느 날 고아를 발견하였기에 내가 데려다 키우기로 했고 하다가 나중에 강도유괴 행위가 발각되자 그 아이는 전부터
내가 키우고 있던 아이라고 떼를 쓴다면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어처구니는 없지만,꼭 그렇다면 전부터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언제부터인가, 어떻게 입증되는가, 이미 키우고 있었다면서 왜 새로 데려왔다고 했나등을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일본이 1905년에는 독도가 무주지라고 하면서 영토편입을 했다가 이제 와서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는데, 그러면 언제부터
일본 영토라는 말인지, 주장 근거는 무엇인지, 1905년에는 왜 무주지라고 선언했는지, 일본에 돌아가면 문의해 보라.
아마 아무런 입장조차 없을 것이다.
독도에 관한 일본측의 최초의 기록은 1667년의 온슈시초고끼(隱州視聽合紀)인데 울릉도,독도는 한국의 영토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일본측의 사료에 울릉도,독도가 기록되었으니 자기네 영유권의 근거가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홍 : 1905년 일본내각이 독도를 채택한 것은 영토편입을 하라는 어느 개인의 청원을 접수한 것을 계기로 …
검토한 결과 타국의 영토라고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판단되어 … 국제법에 영토편입으로 인정될 조치를 한다는 것이다.
자기네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것을 여러 가지로 밝혔다. 영토편입 청원이라든가 타국의 영토라는 증거 云云, 그리고
국제법상 인정될 조치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한국의 영토’인줄 너무나 확실히 알았기 때문에 ‘無主地’ 라는 표현조차
차마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어쨌던 한국의 영토를 강탈하면서 편법상 무주지 취급을 하였다.
식민주의가 힘을 잃고 1905년의 영토편입 조치로는 안되고 1905년까지 영유권이 없었다는 증거가 되니까 고유의 영토 라니
왜 자기 영토를 다시 자기 영토로 편입해야 하고, 자기 영토를 처리하는데 왜 국제법이 거론되는지 도무지 설명을 못한다.
고유 라는 것이 언제부터인지도 말못하고 … 입증할 수가 없으니 말할 수가 없지.
거짓말이 힘을 잃자 새로운 거짓말을 꾸몄는데, 앞의 거짓말과 모순되면 먼저 한 말은 틀렸다는 것은 인정해야 할 텐데,
뒤에 한 말이 거짓인 줄 드러날 경우에 대비해 어쩌면 앞에 한 말이 사실일 수도 있고...라고 한다.
지난 40여 년 간 독도문제에 관해 국제적으로 일본이 자기의 일방적 주장을 하도록 내버려두고 한국은 입다물고 조용하게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워낙 주장이 약하니까 국제적으로 수긍을 받지 못하고 있다.
Mormanne :상당수 한국의 고지도에는 우산도가 울릉도보다 본토에 가깝게,그것도 울릉도와 거의 비슷한 크기의 섬으로
그려져 있는데? 일본은 이를 두고 우산도는 울릉도를 가리킨 것이고 독도와는 무관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고있다.
홍 : 해석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이다.대강 18세기 후반부터 독도가 지도상 제자리를 찾아가기 때문에 한국의 영유권 주장을
결정적으로 훼손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Mormanne : 전혀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인가?
홍 :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아직 수긍이 가는 설명을 보지 못했다. 개인적인 견해가 있기는 하지만 검증된 것은 아니다.
Mormanne : 다른 곳에서 인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들려주겠는가?
홍 : 앞서 설명했듯이 당초 우산국이 신라에 의해 정복되자 울릉도의 섬이름으로는 우산도와 울릉도(무릉도)가 동시에 쓰였을 것이다. 그런데 현지에서는 당연히 본래의 섬이름인 울릉도(무릉도)라는 이름이 압도하였을 것이고, 우산도라는 이름은 주인없이 떠돌다가
차츰 독도라는 이름없는 섬의 이름으로 쓰이게 되었을 것이다. 지방정부의 보고서는 당연히 현지의 관행에 따라 독도라는 의미로
우산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을 것이지만 중앙정부의 관리들은 달랐을 것이다.별도의 설명이 없는 한 우산국이라는 이름의 영향 때문에 우산은 과거 우산국의 본 섬(主島)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방정부 보고서에서는 울릉도(무릉도)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고,우산도는 두 섬 중에서 작은 섬을 가리키는 것이라 하였다.
역사기록자 뿐만 아니라 지도제작자들도 혼란에 빠지는 것이 당연하였다.
우산도는 분명 우산국의 본 섬일텐데 울릉도 보다 더 작은 섬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필시 본토에서 더 가까운 위치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본 섬이 두 섬 중 크기가 작은 쪽이라는데 위치마저 본토 보다
멀다고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결론을 내린 듯 하다.
우산도를 울릉도보다는 작지만 그에 가까운 크기로 그리고 있는 것도 우산도가 본 섬(主島)이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라고 하겠다.
지도상의 다른 섬의 형태로 미루어 당시의 초보적인 지리적 인식으로 동해의 두 섬에 대해서만 유난히 정확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상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개인적 가설에 불과하지만 지도상의 다른 의문점도 이 가설에 따라 설명할 수 있다.
즉,우산도가 제 위치를 찾아 울릉도의 동쪽으로 옮겨가면서,한 동안 우산도의 크기에 대해 일대 혼란에 빠졌다.이는 이렇게 설명된다.
첫째로,우산도가 지금까지의 과장된 크기,즉 울릉도에 미치지는 못하나 절반 정도의 크기를 유지하면서 단순히 울릉도와 위치만 바꾼 것이 있다.
둘째로,울릉도의 크기를 유지하면서 우산도를 울릉도보다 훨씬 크게 그린 것이 있다.지도 제작자가 우산도는 우산국의 본 섬이라는
고정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채 위치를 바꾼 결과이다.
셋째로,우산도를 울릉도와의 상대적 비율에 가깝게 매우 작은 섬으로 그린 지도이다. 울릉도 보다 외측에 위치한 작은 섬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산도가 본 섬(主島)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비로소 매우 작은섬이라는 현지의 보고를 편견없이 반영한 것이다.
하여튼 우산도라는 이름을 두고 시대,지역에 따라 울릉도로 때로는 독도로 이해하다 보니 이름의 주인, 위치, 크기 등에 상당기간
혼란이 계속되었다.사실 하나의 섬이 수백년간 하나의 이름으로 꾸준히 통용되었기를 기대하는건 현대인의 편의주의적 발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도상으로 보더라도...두 개의 섬...의 존재에 대한 인식은 뚜렷하였다는 것이다.
Mormanne :일본에서도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에 대해 한동안 혼란을 겪다가 결국 두 섬의 이름이 바뀌었으니 이보다 여러 세기전에
한국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홍 : 섬의 위치나 크기에 관한 지식이 현대인의 관점에서 볼 때 정확치 못한 것은 울릉도와 독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거의 모든 섬에 공통되는 것이다. 아마 한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 공통되는 문제일 것이다.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고 하여 영유권 입증이 불충분하다고 하면 한국의 대부분의 섬이 20세기 초까지는 무주지였다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한국이 이 섬들을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선점했고 한국영토가 되었다고 해석하는 것은 해괴한 논리가 아니겠는가?
역사기록은 그 시대의 과학기술 수준을 감안해 해석해야 한다. 여러 세기 전의 지도에 두 섬이 아예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이 한국의 영유권을 부인하는 증거가 될 수는 없다. 한국의 영토에 속하는 섬으로서 고지도에 나타나는 것은 일반적으로
수십 개에 불과하다.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여 영토가 아닌가? 울릉도와 독도는 주변에 다른 섬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다른 섬보다는 그 존재가
비교적 쉽게 인식되었고 지도에 나타난 것일 뿐이다.
고지도상으로 위치는 바뀌었지만 한국의 기록에 울릉도와 독도가 나타나고 수 세기가 지난후에야 일본의 기록에도 두 섬에 관한 기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일본 최초 기록인 온슈시초고끼(隱州視聽合紀)에서 보듯이 한국의 영토라는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서...
한국의 고지도를 일본 후대의 지도,서양문물을 받아들인 후 그려진 지도와 평면적으로 비교하여 일본의 지도가 더 정확하므로
일본이 독도에 대한 인식이 더 높았다고 보는 위험은 피해야 한다.현대에 한국에서 만든 유럽지도와 15세기에 유럽인이 만든 유럽지도를 비교하면서 유럽의 어느 섬이 한국의 지도에는 정확하게 나타나는데 유럽지도에는 나타나지도 않으니 이는 그 섬이 한국영토인
증거라고 주장한다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Mormanne : 변방 섬의 이름이나 크기, 위치가 정확하지 못한 것은 근세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에서 다께시마(竹島)와 마쯔시마(松島)가 가리키는 섬이 중도에 서로 바뀌었다는 이론이 있는데,이를 어떻게 생각하나?
홍 : 러시아의 지도제작자가 착오로 이름을 서로 바꾸어 붙인 것이 계기가 되어 두 섬의 이름에 혼란이 왔고 궁극적으로는 이름을
서로 바꾸게 되었다는 주장인데,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물론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니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고...
Mormanne :방금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고 설명하지 않았나?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보는데...
홍 : 바뀌는 배경이 전혀 다르다. 혹시 자녀가 있나?
Mormanne : 있는데.....
홍 :만약 지나가는 사람이 착각하여 당신 아이와 옆집 아이의 이름을 바꾸어 부르면 당신 아이의 이름을 버리고
옆집 아이의 이름을 쓰겠는가?
Mormanne : 무슨 뜻인지 알겠다. 그러니까 일본이 유럽의 지도제작자의 실수를 계기로 하여 이름을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는 것은
두 섬이 모두 자기네 섬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뜻이 아닌가?
홍 : 백 번 양보해, 두 섬이 모두 자기네 섬이었다면 그럴 가능성이 아주 약간은 있었다고 하자.
그러나 울릉도가 한국의 섬인 것을 명백히 인식하면서 독도와 그 이름을 서로 바꿔치기 한 것은 확실히 독도도 한국의 영토인줄
알았거나, 적어도 자기네 영토는 아니었기 때문에 비로소 가능한 것 아닌가?자기네 섬의 이름과 외국 섬의 이름이 서로 바뀐 것을
보면 항의하거나 기껏 무시해 버리는 것이 상식일텐데...
일본은 왜 이렇게 우리 조상들이 몰상식하여서...하면서 스스로를 폄하하는지 모르겠다.
Mormanne :아무래도 일본이 영유의식을 갖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겠다. 그러나,서양식 국제법이 도입되기 전에는 영유의식이
없이 한,일 양국 어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해 온 것으로 보는 것은 어떤가?
홍 : 개인이든 민족이든 야생 짐승조차도 경쟁자와 만날땐 본능적으로 서로의 영역을 분명하게 하려고 한다.이렇게 장차 일어날지도
모를 불필요한 분쟁을 예방하려는 의도이기도 하다.근데 유독 독도에 대해서만 양국이 명시적인 합의도 없이 영유의식을 기피했다는 가정에는 찬성할 수 없다.안용복사건만 해도 영유권 침해를 느끼고 이를 바로잡으려는 의식의 자연적인 발로라고 본다.
Mormanne : 이제 한국 측의 시각을 상당히 이해하였다고 생각된다.그러나 한국 측에서 자신의 견해를 외국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글로 발표하지 않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연구를 하다가 의문이 생기면 다시 찾아와도 좋은가?
홍승목 : 솔직히 귀하의 전문성에 대단히 감명받았다. 제 3국의 학자한테서는 기대하지 않던 대단한 수준이다. 어쨌던 개인적으로는
즐거운 대화였다. 오늘처럼 예고없이 찾아오면 시간을 내기 어려울 수도 있으나, 사전에 연락만 해주면 기꺼이 맞겠다.
[출처] 독도 - 한국대사 홍승목 & 프랑스 국제법 학자의 대화|작성자 김삿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