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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로벌문화홍보대사 미션중입니다. 꼭 읽어주세요

유영수 |2012.08.23 23:01
조회 57 |추천 0

글로벌 스토리 텔링 -리투아니아

제가 한 나라를 선정해서 그 나라에 대해서 스토리 텔링을 해야된다는 생각을 하며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나라를 선정해서 어떤 방식으로 그 나라의 문화 역사 음식에 대해서 알려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내 입장에서는 미국이나 중국 일본을 선택하여 스토리텔링을 하면 조사도 할 필요없이 편하겠지만 그런 식의 스토리텔링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들어본적이 없는 나라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런 고민을 하며 세계지도를 보며 어떤 나라를 소개해야 할지 많이 고민했다. 그 고민끝에 유럽에 리투아니아라는 나라가 내 눈길을 끌었다. 우리학교에 척척박사라고 불리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리투아니아에 대해서 자주 말하는 것을 주워들은 기억이 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럽에도 이렇게 들어본 적 없는 나라가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다. 그래서 결정했다. 리투아니아에 대한 척척박사가 되어서 소개하고 전 세계인들이 이에 대해서 잘 알 수 있게 도와주겠다고...

 

자 이제 리투아니아라는 나라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리투아니아의 국기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위로부터 노랑·초록·빨강의 3색기이다. 노랑은 광명과 건강을 상징하는 태양 또는 농업을, 초록은 이 나라의 산림 등 자연을, 빨강은 활력을 상징하며 피와 대지(大地)의 빛깔을 나타내고 있다. 가로세로 비율은 2:1이다. 옛날에는 여러 가지 국기를 사용하였으나, 전통적인 국가색인 빨강·노랑·초록·하양 등에서 2~3색을 이용한 기가 대종을 이루었다. 현재의 기는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 병합되었던 이 나라가 1918년 4월 19일 독립을 선언하면서 제정하였으나, 1940년 스탈린 조약에 의해 소련에 병합된 후에는 사용이 금지되었다. 이후 빨강·초록 바탕에 망치·낫·별이 그려진 기를 사용하다가, 1988년 지식인과 작가들 중심의 ‘리투아니아개혁운동(사유지스)’이 결성된 이후 1918년의 기를 다시 채택하였으며, 독립 회복을 선언하기 1년 전인 1989년 3월 20일 제정하였다.

리투아니아는 리투아니어를 사용하고 있고

GDP는 424억 달러로 세계 84위이다. 1인당 GDP는 1인당 1만 3068달러로 세계 52위이다.

그리고 리투아니아의 종교는 로마가톨릭 교가 79퍼센트 러시아정교가 4퍼센트 개신교가 2퍼센트이다.

 

이제 리투아니아의 자연환경과 기후에 대해 알아보자.

리투아니아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함께 발틱해 국가 중 하나로 이들 중 면적이 65,200㎢로 가장 넓고 인구가 많다. 북쪽으로는 라트비아, 남쪽으로는 벨라루스공화국폴란드에 접하고 있다. 발틱해 연안선을 따라 99km의 긴 모래 해안이 전개되는 연안국가인데 758개의 강과 2,833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국토의 중요한 특징이다. 전체 국토 면적 중 44.8%만이 경작이 가능한 땅이고 나머지는 22.2%를 차지하는 목초지와 16.3%의 산림지로 구성되어 있다.

리투아니아는 해양성기후와 대륙성기후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대체로 온화한 기후를 보인다. 1월과 7월의 평균기온은 각각 -5℃와 17℃이다. 정부는 몇 곳의 국립공원과 자연보호구역을 지정하여 환경보전에 힘쓰고 있지만 환경오염에 취약하며 특히 환경적으로 불안전한 산업인 원자력발전소로 인한 환경문제를 여전히 안고 있다. 환경전문가에 의하면 리투아니아의 1/3에 해당하는 지역이 대기오염에 노출되어있다고 한다. 특히 수도인 빌뉴스를 포함한 대도시에 비료공장과 화학공장이 집중되어 있어 대기오염이 심하다. 인구 40만 명인 카우나스에는 아직도 정수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음용수를 구하기 쉽지 않으며, 화학공장이나 정유공장이 있는 도시의 주변에서 산성비에 오염된 산림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제 리투아니아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리투아니아인들은 발트해 연안에 거주하면서 중세에는 한때 강력한 국가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13세기 민다우가스(Mindaugas) 공작이 리투아니아인 거주지역을 통일하고 리투아니아 대공령(大公領)을 형성하면서 리투아니아 왕국(Kingdom of Lithuania)을 세우고 국왕이 되었다. 14세기 전반에 게디미나스(Gediminas) 대공은 1572년까지 리투아니아를 통치한 왕조를 건립하였고, 그의 아들 알기다스(Algirdas) 대공의 통치기간인 14세기 중엽에 리투아니아의 영토는 동쪽으로 확대되었다. 요가일라(Jogaila) 대공은 계속되는 독일기사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폴란드 여왕과 결혼하여 폴란드와 동맹관계를 수립하였다. 동맹 조건의 하나로 리투아니아는 로마 가톨릭교를 도입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널리 신봉되고 있다. 요가일라의 후계자인 비타우타스는 벨라루스우크라이나, 그리고 러시아 일부까지 영토를 확대하여 발트해에서 흑해까지를 리투아니아의 영역으로 만들어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그러나 16세기 들어 러시아가 강성해지면서 동쪽에서의 위협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폴란드와 연방을 형성하여 러시아에 대항하였으나, 1795년 제정러시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3국에 의해 분할되어 제정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 이후 러시아화 정책이 실시되어 리투아니아어로 된 출판이 금지되기도 하였다. 19세기 말 강력한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 수차례 반(反)러시아 봉기가 일어났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1915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리투아니아는 독일에 점령당하였으나, 1918년 제정러시아의 붕괴 및 독일의 패전으로 독립에 성공하였다. 1920년 폴란드가 빌뉴스 지역을 병합하였으나 카우나스를 수도로 하여 독립국가를 형성하고 폴란드와 러시아의 승인을 받았다. 1922년 최초의 헌법을 제정하고 의회민주주의를 선언하였으나, 안타나스 스메트나(Antanas Smetona)가 쿠데타를 통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권위주의 통치를 1940년까지 행하였다. 이 시기에 포괄적인 교육제도의 도입과 농지개혁에 기반한 농업부문의 성공으로 중요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1940년 히틀러와 스탈린의 조약에 의하여 사실상 리투아니아는 소련에 병합되었다.

스탈린은 리투아니아 정부를 억누르고 사회주의화 정책을 강압적으로 시행하여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을 출범시키고 소연방의 일원으로 만들었다. 한편 빌뉴스는 다시 리투아니아로 반환되었다. 소련 치하에 많은 리투아니아 민족주의자들이 체포되고 시베리아 유형에 처해졌기 때문에 1941년 소련을 침공한 독일군은 처음에는 환영받았다. 그러나 독일 치하에서 16만 명의 유대인을 포함한 21만 명이 희생되었다. 1944년 돌아온 소련군은 사회주의정책을 다시 시행하여 농업의 집단화, 급속한 공업화, 그리고 가톨릭 교회에 대한 탄압이 행해졌다. 권력은 리투아니아 공산당에 독점되었으며, 중공업화 과정에서 러시아인의 유입이 이루어졌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종교적·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시위운동이 나타났다. 1980년대 중반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은 리투아니아 민족주의운동의 부활을 촉진하였다. 이들의 요구는 처음 환경과 리투아니아 언어·문화 보전운동으로 시작되었다. 민족주의운동에 대한 경찰의 탄압과 느린 개혁에 대한 지식층의 실망은 1988년 지식인과 작가들이 중심이 된 ‘리투아니아개혁운동(사유지스)’ 결성으로 나타났다. ‘사유지스(Sajudis)’는 환경오염과 민족문화 억압, 러시아화 정책에 항의하고, 다른 발트 국가와 연대하여 1940년 독·소불가침조약의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비밀의정서 무효화를 주장하는 대중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리투아니아 공산당에 독립을 선언하고 국어로서 리투아니아어를 인정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국어의 채택·전통적 리투아니아 국장의 회복 등은 최고소비에트에서 받아들여졌다. 1989년 실시된 인민대표자회의 선거에서 사유지스가 압승을 거두었다. 그러자 여전히 공산당이 지배하는 최고소비에트는 인민의 지지를 유지하기 위하여 리투아니아법이 연방법 위에 있다는 리투아니아 주권과 1941년 소비에트 권력 수립이 헌법을 위배한 것임을 선언하였다.

독·소 밀약 조인 50주년 기념일에는 에스토니아의 탈린에서 라트비아를 지나 빌뉴스에 이르는 총길이 620km에 걸쳐 100만 명 이상의 발트3국 인민이 참여한 ‘인간의 사슬’ 시위가 이루어졌다. 소연방의 발트 민족주의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1989년 12월 리투아니아 공산당은 종교의 자유·다당제 합법화 등 개혁조치를 시행하였고 마침내 라투아니아 공산당은 소련공산당으로부터 독립된 정당임을 선언하였다. 1990년 2월 리투아니아 최고소비에트선거에서 공산당의 개혁조치에도 불구하고 사유지스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였다.

최고소비에트를 의회로 개칭하고 이 새 의회는 1990년 3월 리투아니아 독립회복을 선언하였다. 소련정부는 리투아니아의 독립 움직임을 비난하고, 빌뉴스에 군대를 투입하고 연료공급을 중지하는 경제봉쇄를 실시하였다. 소련과 독립협상을 위하여 독립선언을 6개월간 유예하였으나, 1991년 1월 의회 의장 란스베르기스는 독립선언을 중단하는 기간이 끝났음을 선언하였다. 긴장이 고조되어 소련 내무성 부대가 빌뉴스에 투입되고 친소쿠데타가 발생하였으나, 리투아니아 국민들은 바리케이드를 쌓아 저항하였다.

소련의 무력개입은 독립 열망을 더욱 촉진하여 1991년 2월 독립에 대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국민의 84%가 참여하여 90%가 독립을 지지하였으나, 러시아계와 폴란드계가 주로 거주하는 지역의 비공식적 투표에서는 50만 명이 투표하여 99%가 소연방의 유지를 지지하였다. 독립으로 인한 소련의 무력개입 확대 우려는 1991년 8월 소련 쿠데타의 실패로 사라지고, 그 직후 리투아니아 정부는 소련군의 철수를 요구하고 친소적 리투아니아 공산당의 활동을 금지했다. 리투아니아의 유명한 문화유산에 대해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빌니우스 역사지구  

 

 유럽 북동부의 국가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에 위치한 세계유산이다. 중세 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을 오늘날까지 잘 간직하고 있다. 다양한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교회, 궁전 등의 중세 건축물이 도시 곳곳에서 이색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94년 그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빌뉴스 역사지구(Vilnius Historic Centre)는 그 명칭에서 이미 알 수 있듯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Vilnius)에 자리 잡고 있다. 빌뉴스는 리투아니아 남서부에 위치해 있는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매우 오랜 세월에 걸쳐 이루어진 빌뉴스 역사지구에는 중세도시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곳은 13세기에서 18세기말까지 리투아니아 대공국(Grand Duchy of Lithuania)의 정치적 중심지였다. 리투아니아 대공국은 중세시대 동안 동부 유럽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국가였다. 따라서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중심지였던 빌뉴스는 자연스럽게 중세 기간 동안 동유럽지역의 문화 중심부로 성장하였다. 특히 빌뉴스에 지어진 중세 시대 건축물들의 양식은 동유럽 전역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오랜 세월과 전쟁으로 인해 유적의 일부가 손실되기도 했으나 오늘날 빌뉴스 역사지구에는 많은 수의 중세 건물들이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고딕(Gothic), 르네상스(Renaissance), 바로크(Baroque), 신고전주의(Neoclassical) 등의 매우 다양한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들이 이색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특색으로 인해 빌뉴스 역사지구는 유럽의 모든 건축 양식을 볼 수 있는 몇 되지 않은 귀중한 장소로 여겨진다.

빌뉴스 역사지구에 위치한 대표적인 중세 건축물로는 대통령궁(Presidential Palace), 빌뉴스 대성당(Vilnius Cathedral), 대성당 광장(Cathedral Square), 성안나 교회(St. Anne's Church) 등이 있다. 대통령궁은 14세기에 처음으로 지어진 건물로 수세기동안의 증축과 보수 작업을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갖게 된 것으로 주교 궁(Bishops' Palace)으로 불리기도 한다. 13세기에 지어진 건축물인 빌뉴스 대성당은 리투아니아 대공국의 대관식 장소로 사용되었다. 빌뉴스 대성당 정면에 위치한 대성당 광장은 19세기말 성당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리투아니아의 주요 역사적인 사건들이 일어났던 곳이다. 성 안나 교회는 나무로 지어졌던 것이 화재로 손실된 후 15세기에 벽돌로 견고하게 다시 지어진 것이다.

1994년 빌뉴스 역사지구는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그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유산(World Heritage Site)으로 선정되었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후 빌뉴스 역사지구는 기존 빌뉴스 구 시가지(Vilnius Old Town)로 불리던 때보다 좀 더 넓은 범위의 역사 유적들을 포함하게 되었다.

 

이제는 리투아니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 사진을 몇장 보여드리겠습니다.

















   리투아니아 정말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이제는 조금 안타깝지만 리투아니아의 어두운 면에대해 간단히 소개 드리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자살률이 높은 나라인  리투아니아는 인구 10만명 당 70.1명의 남성이, 14명의 여성이 자살로 숨을 거둡니다. 2위는 러시아로  10만명 당 61.6명, 10.7명이 자살하고 있습니다.  높은 음주율이 자살율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실제로, 러시아에 보드카 가격이 오르면 자살률 역시 떨어진다고 하며, 다른 나라에서도 역시 음주가 자살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자살에 심대하게 영향을 끼친 요인은 사회적 변화, 즉  위 두개의 국가 모두 최근 엄청난 사회적 변화를 겪었고 이 변화에 뒤처진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5개국으로는 러시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벨로루시, 불가리아 등이 꼽히고 있습니다. 이들 국가가 가난하다는 말이 아니라,  이들의 특징은 급격한 체제변화 이후 생활수준의 향상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가 폭발하고 있는데 현실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 수가 있습니다. 기대가 높다보니 실망도 커서 행복지수가 몇몇 아프리카 빈국보다도 오히려 더 못하다는 것입니다.

 

  리투니아 출신의 한 천재소녀의 말이  오늘날 자기 조국의 실상을 대변해 주고 있습니다.

리투아니아 출신의 천재소녀 화가 아키아네 크라마릭은 94년 7월생으로 올해 15살의 나이인데, 3살때 꿈속에서 `하느님의 속삭임`을 들은 후 회화에 대한 천재성을 부여받았다는 이 꼬마 아티스트의 그림은 전세계 화랑가에서 평균 2만5천~5만달러의 가격으로 거래됩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고국 리투아니아 `거리의 어린이들`을 위해 기금마련에 힘쓰고 있는 아키아네는 그 천재성 못지않은 어른스러움으로 주위를 경탄케 하는데, 아키아네는 "리투아니아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음식과 의약품, 무료병원이 절실히 필요한 나라" 라며 "거리의 어린이들을 위해 무료병원을 꼭 지어주고 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연이 있듯이 리투아니아는 어두운 면도 가지고 있지만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모두 이런 리투아니아에 관심을 갖고 많이 도와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 글로벌 오류 시정하기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 국내 신문 , 잡지, 교과서 그리고 인터넷을 전부 뒤지며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의 다른 나라에 대한 오류를 찾아내기 위해서 몇날 몇일을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알고 있는 상식의 양이 적어서 인지 좀처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외국인들을 한국을 관광하며 잘못된 번역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우리나라의 잘못된 표지판을 찾는것으로 초첨을 맞추었습니다. 역시 표지판의 오류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꼭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오류는 영덕군에 위치한 영해터미널사거리의 도로표지판에 병곡(Byeonggok)을 벙곡(Beonggok)이라고 표기가 되어있고 고래불(Goraebul)을 Goreabul로 표기되어있고 영해로타리 표지판에 병곡(Byeonggok)을 벙곡(Beonggok)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외국인들이 보고 한글을 읽지 않고 영어발음만 일게 된다면 벙곡... 고리에불... 등 잘못된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도 있기 때문에 저는 이 오류가 빠르게 시정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 오류를 빠르게 시정하기 위해서 아시아소사이어티의 SCC사이트에도 가입하여 오류를 신고하였으며 다른 사이트에도 올릴 수 있는지 알아보고 있습니다. 지금 정말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본적인 도시의 이름이나 고유명사 등 기본적인 표시판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서 어떻게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 오류는 시급히 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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