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보는 예능은 아닌데 택시를 봤다. 여자 개그우먼 3명이 나오더군.
근데 가운데 개그우먼이었던 이국주가 양세형을 좋아한데. 이국주는 되게 덩치큰 편이고 양세형은 덩치가
작은 편이라 '반대인 사람이라 끌리나?' 뭐 이런 시덥잖은 생각을 하면서 보고 있는데 양세형은 이국주한
테 관심없어서 좀 너무하다 싶을만큼 내치고 있더라고. 상처가 되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 나도 거기까진
그냥 안타깝게 봤어.
근데 갑자기 이영자가 양세형이랑 키스는 해봤냐고 하더니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해주겠대. 난 그냥 질
나쁜 개드립이라고 생각했어. 서로 좋아하지 않는 두명을 어떻게 키스를 시키냐.
근데 택시가 연습실로 가더니 양세형을 불러서 이상형을 물어봐. 그랬더니 이상형에 딱 맞는 여자가 있다
고 택시에 태워. 근데 눈을 가린 상태로 태우네? 처음엔 mc손으로 가리고 택시 뒷자리에 타면서는 이국
주 개그우먼 손으로 바통터치하네? 예능에서 남자에게 여자를 소개해줄 때 흔히 하는 거니까 양세형은
별 의심도 없었겠지. 이거 진짜 설마설마 하던 상황이 벌어지는건가 싶더라.
그리고...
ㅅㅂ 진짜로 키스를 하네 샹. 그 뒤에 그 개그우먼은 잽싸게 택시를 내리고 진실을 확인한 양세형은 조카
화내더라.
만약 내가 술자리에서라도 친구들한테 그런 일을 당했으면 조카 정색하고 자리 차고 나와버렸을 것 같다.
근데 양세형은 평소에도 그 여자한테 심하게 대해서 평소보다 더 심하게 하려면 욕하거나 때리기라도 해
야 하는데 여자니까 그럴수도 없고 방송이라 더더욱 그럴수가 없잖아. 나중엔 그냥 웃고 말더라 --.
이게 도데체 무슨 시추에이션이야? 어떻게 저런 일이 실제 키스까지 진행될 수 있는건데? 답은 뻔하지. 이
게 우리나라의 현재 인식 상태인거야.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지만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 상태에서
몰래 짜고 남자가 불쾌해하는 강제 키스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거야. 오히려 재
밌는 놀이 정도로 생각하더구만. 게다가 저건 방송인데 당당히 저런 일을 진행시켰다는건, '해도 된다.' 라
는 인식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박혀있는거잖아?
만약 성별이 뒤바뀌어서 남자가 여자에게 강제 키스를 했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 여자는 대단히 불쾌
해하며 화를 낼 거고 인터넷에선 남자를 사회적으로 매장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겠지.
난 저 방송을 보고 혹시 저런 짓을 한 택시가 욕을 먹진 않을까 싶어서 검색을 해봤어. 이 글 보고있는 사
람들도 한번 쳐봐. 상태는 마찬가지야. 기사도 그렇고 카페나 블로그 글들도 그렇고 그 상황을 아주 재미
있는 것으로, 마치 매우 유쾌한 일이라도 되는양 써놓고 있어. 자세히 찾아보면 모르겠지만 적어도 검색하
고 첫 화면에 보이는 수십개의 글들 중에 문제제기를 하는 글은 하나도 없어.
얼마전에 어떤 여자가 방송에서 김준현에게 '엉덩이 좀 만져봐도 되요?' 하면서 김준현이 대답도 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지는 사건이 있었지. 그 사건도 마찬가지의 맥락이야. 근데 아무리 엉덩이라도 신체를 손
으로 만지는 것보단 키스가 더 진한 행위라고 생각하는데 설마 키스까지도 저런 일이 발생할줄은 몰랐다.
게다가 더 절망적인건 김준현 엉덩이 사건은 그냥 한 여자가 개념이 좀 부족하다고 여기면 되지만 이건 방
송에서 mc들이 아무런 거리낌없이 진행해서 발생한 일인데다가 그 뒤 인터넷에 반응까지도 그저 재미있
게 생각한다는 점이지. 여자들은 그렇다 치고 공형진에게도 좀 실망했어. 물론 여자 4명과 남자 1명이 있
는 장소에서 남자가 여자 4명에게 반기를 드는게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는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말렸어야
되는거 아냐?
개인적으로 이번 사건은 공중파급의 인기를 가진 (아닐수도 있지만 너무 따지진 말자고) 방송 프로그램에
서 공공연하게 계획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남자의 성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거
라고 생각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남자들은 다들 내 말에 공감할거라 믿고 여자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정말 여자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남자에게 아무런 동의 없이 키스하는게 그저 장난으로 받아들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냐?' 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