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전문가가 아닌 평범한 한 시민의 의견으로서 부족한 점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최대한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쓰려고 노력했으며 글의 특성상 일부 주관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시고 부족하거나 잘못된 점이 있다면 정중하게 답변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네티즌 여러분들의 다양한 의견도 듣고 싶습니다. 매우 민감한 주제이기에 감정에 치우치기보다 이성적으로 생각하시고 정중한 답변을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올해 8월에 일어난 묻지마범죄만 6건입니다. 12일 부산 호프집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18일 의정부에서 무고한 시민을 흉기로 공격한 사건, 21일 새벽, 수원의 술집과 가정집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같은 날 저녁, 울산의 슈퍼마켓에서 주인을 흉기로 공격한 사건, 26일 여의도 길거리에서 발생한 흉기난동사건, 30일 나주에서 발생한 아동성폭력 사건까지 있었습니다. 이 범죄의 공통점은 당사자와의 직접적인 원한관계가 없이 무고한 시민과 가까운 이웃이 피해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피해자와 가족들은 슬퍼하며 분노하고 있으며 억울해하고, 무엇보다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고 신체적으로 상해를 입고 정신적 트라우마에 빠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 피해로 인하여 신체적으로 나았다 할지라도 후유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으며 정신적으로도 큰 혼란과 후유증을 남기게 됩니다. 비단 직접적으로 신체적 상해를 입은 피해자와 가족들만이 피해자가 아닙니다. 그 당시 그곳에서 벌벌 떨었던 시민들 중에도 어쩌면 정신적 후유증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연속된 사건으로 인하여 국민들이 불안해 한다는 것이죠. 이유가 무엇이든 정말 용서받을 수 없고 또한 용서해서도 안 되는 무서운 범죄입니다. 이들에게는 지금보다 더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 처벌이 매우 경미하고 또한 강력한 처벌만이 그들의 범죄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처벌이라는 것은 인간의 도덕성만으로는 사회의 질서와 치안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놓은 사회의 강제적인 수단일 뿐 범죄를 예방하기위해서는 그것의 원인과 동기를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만약 강력한 처벌만으로 그들의 범죄를 막을 수 있었다면 제가 이런 글을 쓰지도 않았고 “그것이 알고싶다” 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울산 칼부림 사건의 용의자는 예전에 부모님께서 이혼하시고 쌍둥이 누나와도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가족뿐만 아니라 그 누구와도 연락이 되지 않았으며 09년부터 무직생활을 하면서 열악한 환경의 주택에서 은둔생활을 했다고 밝혀졌습니다. 부산 호프집 살인사건의 용의자는 9년 전 이혼한 후 고단한 생활 속에서 유일하게 의지하였던 누나마저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 이후 고시원으로 들어와 일용직근로자로서 일했지만 손가락을 부상당한 이후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며 병원비로 모두 써버려서 생활이 어려워 졌다고 합니다. 퇴원 후에도 고시원에서 은둔생활을 했다고 밝혀졌습니다. 여의도 칼부림 사건 용의자는 지난 7년 동안 단 한차례만 제외하고 2년 계약직으로 자주 직장을 옮겼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가족과의 갈등도 깊어졌고 직장생활을 하는 곳은 기본급도 없이 성과를 내야만 소득이 들어오는 업무로서 소득이 없는 달도 있었다고 합니다. 계속된 비정규직 생활과 경쟁에서 도태됨으로서 형편은 더욱 어려워졌고 자신의 경쟁자인 직장동료의 탓으로 돌리며 흉기난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의정부 칼부림 사건과 수원 살인사건, 나주 성폭행 사건의 용의자들도 이와 비슷한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죠. 그렇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고 성실하게 살아가며 이를 극복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외로움이 묻지마범죄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을지라도 그것을 이유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죠.
묻지마범죄의 원인이 열악한 환경이라고 주장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습니다. 그들이 고단한 삶을 살면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 하나 없고 차가운 현실 속에서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며 인간답게 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불공평하게 주어진 출발선에서 그들은 더욱 먼 곳에서부터 출발하였고 경쟁에서 도태되었고 우리들은 성장과 발전이라는 명목아래 무한경쟁을 펼치며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가는 것을 배우고 그에 익숙해져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 25 전쟁을 거치며 어려운 시기를 겪었던 대한민국은 기성세대들의 악착스런 노력으로 인하여 꽃을 피웠습니다. 물론 부작용도 많이 있지요. 이 과정에서 우리는 경쟁을 배웠고 그것은 어린 시절 공교육에서부터 배우게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더 빨리 가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학년을 뛰어넘는 조기교육열풍이 불고 심지어는 유치원시절부터 한글도 제대로 떼지 못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합니다. 또한 좋은 대학만이 출세하는 길이라며 그들을 몰아놓고 주입식, 암기식교육으로 그들을 세뇌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좋은 대학을 나왔어도 결국 생기는 것은 학력인플레로서 고학력자 백수들은 넘쳐나는 현실입니다. 조금 지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카이스트에서도 잇따른 자살학생들이 있었고 매년이면 수능 이후 자살하는 학생도 심지어 중고등 학생들도 학업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살을 하기도 합니다. 인간사회 어디에나 경쟁은 있습니다. 동물의 세계에도 마찬가지지요. 그것으로 인한 스트레스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다윈의 자연선택설에 의하면 생물 간의 경쟁에 의해 그것에 적응하지 못한 소수의 하위는 떨어져 나가고 그것에 적응하는 다수의 상위만이 살아남고 진화하게 됩니다. 그 진화가 반복되는 것이죠. 쉽게 말하자면 MBC 프로그램의 “나가수”는 다수의 사람들 중 한 번에 한명씩만 떨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이죠. 경쟁을 통하여 성장하고 발전하며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이 이론대로라면 말이죠. 그러나 오늘날의 현실은 그 반대가 되었습니다. 1%의 상위들만이 잘살며 99%의 하위가 떨어져 나가는 세상이 된 것이죠. 그렇기에 그 생존하는 1%가 되기 위해 경쟁을 넘어 이제 피나는 전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닿을 수 없는 그 1%의 생존자가 되기 위해 99%의 사람들은 사랑도 인정도 없이 오직 이기주의와 탐욕으로 무장하며 다른 사람을 죽이는 현실이 된 것입니다. 대기업에서도 타인의 것을 착취하여 자신들만 배부르고자 하죠. 하청업체에 대한 무리한 단가인하와 소비자를 우롱하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공생이란 없는 것이죠. 물론 기업의 특성상 이윤추구를 하고 극대화 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약할 수 밖에 없고 대기업들이 살 수 있도록 그들을 지탱해주는 하청업체에게 모든 이익을 자신에게만 돌리려고 합니다. 그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의 대기업도 있는 건데 말이죠. 세상에는 경쟁을 통하여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경쟁도 99%의 생존자일 때의 얘기이고 다수가 행복한 사회일 때의 얘기겠죠. 세상에는 강한사람이 필요하다면 그보다는 조금 약한 사람도 필요한 법입니다. 누군가가 혼자서 독차지하여 배부르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고 평화가 아니죠. 자신의 이기심으로 인해 해를 끼치면 그 해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또한 거대한 하나만으로 의지되는 경제와 사회구조는 불균형적이고 불안하기까지 합니다. 오늘날의 기업과 고용시장이 그를 잘 반증합니다. 지역 간의 불균형도 그렇고요. 세상에는 경쟁만으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서로간의 상생과 협동도 있어야만 멀리갈 수 있는 것이죠.
얘기가 잠깐 삼천포로 빠졌습니다. 잇따른 묻지마범죄로 인하여 경찰들은 검문을 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좋은 취지이지만 실효성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묻지마범죄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아니죠. 묻지마범죄와 같은 무고한 시민이 피해를 보는 끔찍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욱 강력한 처벌과 법 제도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강제적인 수단일 뿐 그것이 범죄예방을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상생하여 발전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이는 다수의 생존뿐만 아니라 협동을 통하여 더 큰 발전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특히 대한민국의 어려운 이웃들과 소외된 이웃들에게 더욱 관심을 보여 줘야하지요. 소외된 이웃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사회를 위협하여 발생하는 손해와 비용에 비하면 그들을 구제하고 사회의 인재로서 쓰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단순히 어려운 그들이 불쌍하여 돕는 차원이 아니라 이 사회의 더 큰 발전과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또한 사회적인 안전망도 확충되어야 하겠지요. 복지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는 차원을 넘어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고 더 큰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기반이죠. 선진국들이 이토록 복지에 힘을 쏟고 그토록 많은 세금을 아까워하지 않는 데에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아직 대한민국 현실에서는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말이죠. 2012.09.08 “그것이 알고싶다” 의 후반부에 보면 용산구 동자동 사랑방이 나옵니다. 그곳은 이처럼 어려운 이웃들이 모여 사는 곳이지요. 경쟁에서 도퇴되고 소외받은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인간적인 정서적 유대감을 나누고 보다 나은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환경이나 형편은 열악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돈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있다면 아마 서로 사랑하고 감싸줄 수 있는 것이겠죠. 과거 그들도 이런 상황 속에서 지금의 범죄자와 같은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하지는 않았지만요. 또한 부산 호프집 살인사건이 있었을 때 그 용의자의 옆방에 살았던 그 사람도 어려운 환경과 소외받음으로 흉기로 일을 저지르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께서 막으셔서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것이지요. 어떠한 삶이 나으시겠습니까? 범죄자들이 무고한 시민들을 위협하고 그에 무서워하며 각종 호신용품과 높은 담장으로 무장하며 그들을 향해 비난하고 욕하는 사이 사회에 분노를 품고 또 다른 범죄가 계획되는 삶과, 소외된 이웃들을 감싸주고 서로 상생하며 그들이나 시민이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지 않은 그들이 그런 끔찍한 범죄를 상상조차 하지 않는 삶과 무엇이 더 낫겠습니까? 물론 이렇게 말하는 저도 그들을 감싸줄만한 대인배는 아닙니다. 제가 그러면 예수님이고 부처님 이였지요. 정말 이런 뉴스가 나올 때 마다 솔직히 저도 그들을 향해 욕했습니다. 정말 화가 나고 그 피해자가 너무 불쌍했지요.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향해 욕하고 비난할수록 그들은 우리에게 분노를 품고 또 다른 범죄를 계획하며 그것이 악순환 된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저도 말로만 상생이고 이웃사랑을 외치는 위선자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