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어딘가에 아들과 남편과 아주 잘 살아보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평범한 30대 아줌마입니다.. 늦은밤... 잠도 안오고... 재작년 심리상담 받을때 선생님께서 마음속에 입은 상처는 자꾸 끄집어 내서 이야기하고 소리도 질러보고 글로도 써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야 마음 속 깊은 상처가 조금씩 치유된다구요...
매년 이맘때가 되면 우울증이 빠짐없이 찾아오더군요... 스스로를 자책하고 괴롭히며 빠져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 치는곳으로 끝없이 순식간에 추락하게 되어버려 주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가 순간 정신이 번쩍 들면 이러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또다시 자책하고 반복하고....더이상 이런일은 겪고 싶지 않아 치유해보고자 용기내어 이야기해봅니다..
전 지방 모 도시에서 세자매중 장녀로 태어났구요.. 늘 아빠는 술먹고 들어와 엄마를 때렸었던것 같아요. 엄마가 저희를 떠나게 된 건 어느날 아빠가 어김없이 술먹고 들어와 엄마를 무엇으로 때렸는지 잠결에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달려가보니 엄마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린마음에 얼마나 놀랬는지 울면서 부랴부랴 앞집으로 뛰어갔지요.
그때 그 기억이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답니다. 그이후에 엄마가 외할머니와 검은색 차를 타고 오더니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을 가득가득 담아주시고 떠난게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때 제나이 아마 7-8살정도이지 않았을까 싶네요. 막내동생과 다섯살 차이가 나는데 그때 아장아장 걷던 기억이 나거든요...
어린 저희는 그렇게 엄마와 떨어져 지내게 되었고 할머니께서 오셔서 저희를 돌보아 주셨습니다.
여기서 잠깐 저희 친정아빠 얘기를 조금 해보겠습니다.(저의 인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큰 역할을 하신분이기 때문에 빠질수가 없답니다)
저 어릴적에 젖소도 키우시고 똥차운전도 하시고 쓰레기차 운전도 하셨답니다.굉장히 노력파시긴 하지만 결과는 항상 과정에 못미쳤어요. 여기까진 제가 기억하는 전부이구요. 더 많은 일들을 하셨었죠.
8남매중 7번째로 태어나 첫째 둘째 형님, 그리고 네명의 누님, 그다음이 아빠, 남동생, 큰형님이 아버지뻘입니다. 지금 연세가 80이 넘으셨을테니까요.
어릴적에 아버지(저에겐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큰형님 슬하에 자라면서,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도 가지말라는걸 본인이 우기고 우겨서 장학금을 받고 다녔다더라구요.
저희 아빤 공부욕심이 너무나도 많은 사람입니다. 저 학교 다닐땐 아빠는 공부해라는 말밖에 못하는줄 알았지요.
형편이 어려워 대학도 고등학교 졸업후 바로 못가고 방통대를 혼자 독학해서 졸업하고
편입을 했죠. 지방에선 꽤 알아주는 대학으로 편입을해서 대학원까지 가셔서 석사학위 받으시고
결국 나이 50넘어 박사학위를 따셨답니다.
아무튼 아빠의 성격은 공무원 생활을 오래하셔서 그런건지 아님 자란 환경탓인지는 모르겠으나,
고지식 그자체에 무뚝뚝 그자체입니다. 일반인들과는 많이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시며,
그 어떤 누가봐도 이해못할 정신세계를 갖고 계신분이시죠.(절대 비하하는건 아닙니다)
친구는 필요없고 세상은 혼자 사는 세상이니 친구도 사귀지 못하게 하고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하신분이기도 하지요.
절대 가족들 말 귀담아 듣지 않으시고 고집도 쎄셔서 남들이 생각하는건 절대 인정하지 않는 분이시죠.
그 어떤 여자도 견디지 못할 그런 가부장적인 분이셨어요. 그로인해 저의 인생은 180도 바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할머니가 오셔서 우릴 돌봐주시고 그와중에 조금더 큰 도시로 이사를 합니다. 학교에 적응 할라치면 이사하고 이사하고 정말 그렇게 이사도 많이 다녔네요.가구 하나 없이 다섯식구 누우면 꽉 차는 단칸방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보냈답니다. 그렇게 또 아빠가 근무하시는 직장 관사로 이사를 갑니다.
제나이 12살 그 여자와의 악연은 시작되었지요... 어느날 갑자기 어떤 여자가 오더니 이모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정말 정에 굶주린 저희들에게 너무나도 잘해주면서 따뜻하게 대해주고 밥차려주고, 아빠랑 결혼을 합니다. 결혼한 순간 여자는 180도 돌변합니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걸래부터 내밉니다. 그다음 설거지하고 빨래하고 쌀씻어 밥하랍니다.
쌍욕에 무조건 소리부터 지릅니다.
초등학교 다니던 그 어린나이에 학교 끝나고 10분만 늦어도 때립니다. 그래서 전 어릴적 친구집에 가본 기억이 몇번 없어요. 혹시라도 가게되면 이집 저집 다 전화해서 저를 어떻게든 찾아서 저한테 욕을 해댑니다.
때리는 도구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았지만 빨래방망이가 주 무기였지요. 그렇게 하루하루 지옥같은 나날을 겪으면서 그 여자는 배가 불러옵니다. 그렇게 또 막내 동생이 태어납니다. 우리 세 자매의 인생은 더 험해집니다.
그 아이가 태어남으로서 우리와 그 아이와의 차별은 말로 다 못할 정도였지요. 냉장고에 요구르트, 우유, 그외에 먹을거리를 그아이를 위해 사다놓은걸 하나라도 먹으면 그날은 제삿날 입니다. 또 맞습니다.
그이유 아니더라도 하루하루 어떤 이유를 대서라도 때리더군요. 겉으론 티도 안나게 때리는 것도 참 지능적입니다.
어디라도 상처가 눈에 보이면 아빠한테는 넘어져서 다쳤다고 하랍니다. 밥 많이 먹는다고 머라 합니다. 그런걸 눈칫밥이라고 하나 봅니다. 밥먹고 바로 화장실간다고 또 뭐라합니다. 기껏 처먹여놨더니 싼다고. 화장실 불도 못켜게 합니다. 전기세 아깝다고. 동생이 틱이와서 눈깜빡임이 있었는데 깜빡이지 말랍니다. 젓가락으로 쑤셔버린다고. 동생 6학년때 여자아이 머리를 삭발을 시킵니다. 가발쓰고 학교 다녔습니다.
독해도 독해도 그렇게 독할수가 없습니다. 빨래방망이로 동생 머리를 때려서 머리에서 피가 흐른적도 있습니다.
배아파 낳은 끔찍한 딸은 틈만나면 백화점가서 옷을 사다 나릅니다. 저는 졸졸 따라다니며 부러워 하고, 우리 옷은 재활용품에서 가져다가 입힙니다. 내가 입었던거 동생한테 물려물려 헤질때까지 입습니다.
감기 걸리면 감기 걸렸다고 혼납니다. 병원비 들어간다고. 학교에서 들어가는 학용품비며 뭐며 눈치 보면서 돈 달라해야 하고, 살면서 용돈 천원 한장 받아본적이 없네요.
할머니 연세 90되셨을때 집에 모셔와 살더니 방에 가둬놓고 때리기도 하며 그렇게 구박을 하다가 돌아가셨구요. 나중에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지만 엄마가 옷가게 하셨는데 뻔뻔 스럽게 거길 찾아와서 옷좀 달라고 했다더라구여. 그렇게 전화를 하면서 애들 만나지 말라고 그러고 사사건건 참견도 했다더라구여.
이세상 모든 계모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어쩜 그렇게 만나도 악질을 만났는지,학교도 가지 말랍니다. 취업해서 일하랍니다.
우리 다 듣는 앞에서 우리가 그런냥. 아빠한테 요즘애들이 어떤애들인줄 아냐고 돈만주면 아무하고나 자고 다닌답니다. 설겆이 깨끗하게 안한다고 때리고, 대든다고 때리고, 운다고 때리고, 중학교땐 학교까지 찾아와 이상한 애들 만난다고 담임찾아와서 친구들 다 불러내서 뭐라하고 왕따 당하게 만들고, 같은 고등학교 배정받지 못하게 조치 취하고, 그 애들 집집 마다 찾아가서 뒤엎고,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방과후 10분이라도 늦으면 때리고, 학교다닐때 멍투성이로 학교 다녔지요.
그렇게 지옥같은 생활을 10년가까이 하고 전 20살이 되던해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창살없는 감옥에서 도망치듯 나왔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중고등학교때 때리지말라고 소리쳐보지 못했을까 반항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너무 어린시절부터 주눅들어 기죽어 살다보니 그런 엄두는 내보지도 못했던것 같아요.. 늘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었거든요..
그 이후에 남편 만나기전까지 겪은일도 쓰자면 너무 소설같은 인생인데요.. 제가 요즘 감기를 심하고 앓고있어 몸상태가 좋지않아 오늘은 여기까지 쓰고 자야할것 같아요. 내일 또 병원에를 다녀와야 하거든요..
모두 행복한밤 굿밤되세요^^